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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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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6. 14:26 카테고리 없음

 

이호준의 터키기행 1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가 문화체육관광부 2012년 우수교양도서(총류)에 선정됐습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과 작은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sagang
2012. 11. 1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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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6. 16:11 카테고리 없음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에 이은 터키기행 시리즈로 혼신을 다한 결과물임을 자부합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말로 책 소개를 대신합니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떠나기 위해 돌아온다.

 

길 위를 떠도는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제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입니다. 아홉 달 만에 다시 찾은 터키에서도 이 짧은 문구가 주는 행복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떠날 때 아쉬움이 컸던 만큼 재회의 기쁨도 컸습니다. ‘형제의 나라는 여전히 포근한 미소로 형제를 반겼고, 저는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행복했습니다.

 

이번 여행도 이스탄불에서 시작해서 말라티아, 샨르우르파, 하란을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짧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는 히포드롬, 블루모스크, 성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 그랜드 바자르 등을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녔습니다. 그리스로마, 그리고 이슬람이 남긴 발자취는 가는 곳마다 옷깃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이스탄불을 떠나 말라티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터키의 속살을 찾아가는 여행’. 아나톨리아 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말리티아나 그보다 훨씬 더 남쪽에 있는 샨르우르파하란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닙니다. 당연히 국내에 소개될 기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설렘을 안고 찾아간 그곳은 기대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누군가 감춰둔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행복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살구와 체리의 고장 말라티아는 많은 볼거리들을 꼭꼭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레벤트 협곡에서는 그랜드캐니언에 카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심어놓은 것 같은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거대한 것과 아기자기한 것들이 맞춤옷처럼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윳빛 토흐맛 강이 흐르는 다렌데에서의 하루, 황금빛 밀밭이 일렁이는 유프라테스 강가의 저녁나절은 황홀했습니다. 또 대대로 동굴 집에서 사는 슈크르 쿠르트 일가나 6,000년의 시공을 단숨에 뛰어넘게 해주는 아슬란테페 유적과의 만남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습니다.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 안티오코스 1세의 거대한 무덤이 있는 넴루트 산을 거쳐 도착한 샨르우르파는 오랫동안 벼르던 여행지였습니다.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 바로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감동은 더 컸습니다. 예언자들의 도시, 성서의 무대, 종교의 고향, 종교 부화장, 아브라함의 땅, 세계 최초의 도시. 온갖 수식어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 도시에 첫발을 딛는 순간,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얼마나 빈약한지 실감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순례자가 되어 성서의 무대를 촘촘히 누비고 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의 동굴과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 욥의 동굴. 도시 자체가 울타리 없는 박물관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워져 폐허가 된 도시 하란은 인류사의 산증인입니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살았다는 황량한 평원을 선지자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종교인이 아닌 저에게도 신성은 깃드는 듯, 내내 벅찬 희열을 보았습니다.

 

그 감동의 여정을 묶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발끝마다 봄날의 민들레처럼 솟아오르던 작은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제 기약 없는 걸음은 더운 피가 도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이 책을 여러분께 맡기고 또 배낭을 꾸립니다.

 

서점에는 내일(8일)부터 나옵니다.

 

posted by sagang

 

샨르우르파 도시박물관 야외전시장.

 

눈에 검은 돌을 박아 넣은 1만 년 전 인물상.

샤워를 하는데 아침마다 문안을 오던 코피가 소식이 없다. 이게 무슨 징조냐? 어라? 그러고 보니 속도 제법 편안하다. 완전히 내려간 것은 아니지만 뱃속에 얹혀있던 돌덩이가 제법 가벼워진 느낌이다. ! 그 덕이구나. 속이 편해진 배경에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다. 먹지 못하고 고생하는 나를 위해, 누구는 가문의 비방(祕方)으로 지었다는 약을 가져오고 누구는 아끼던 깻잎 통조림을 풀었다. 음식점에 가면 따로 맨밥을 주문해주기도 했다. 그 마음들이 모여서 오래 속 썩이던 체증을 녹여낸 것이다. 사람의 마음만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머니의 약손에 약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듯이. 일단 아침밥도 어제 얻어놓은 인스턴트밥과 깻잎 통조림으로 혼자 해결하기로 한다.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는데, 이런! 내부구조가 인스턴트밥이 안 들어가게 돼 있다. 반으로 구겨도 비틀어도 들어갈 생각이 없다.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는데 엉뚱한 데서 막혀버리니 괜히 안달이 난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얼음을 담아 놓는 아이스 볼이 눈에 들어온다. 너 잘 걸렸다. 겉은 스틸로 돼 있어서 활용이 가능할 것 같다. 안에 있는 플라스틱을 빼내고 인스턴트밥을 넣으니 원래 세트였던 것처럼 딱 맞는다. 그럼 그렇지. 다 살게 돼 있다니까. 포트에 물을 끓여서 붓고 뚜껑을 닫는다. 내 나라에서라면 좀 구차해 보이는 그림이겠지만, 며칠 굶은 자의 밥을 향한 일념 앞에서는 그 무엇도 장애가 될 수 없다. 15분쯤 기다린 뒤 열어보니 보슬거리는 밥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먹을 만하게 익었다.

 

멧돼지 상.

 

사슴을 사냥하는 사람.

이거 상당한 노하우인데? 맨입으로 공개해도 될까? 아무튼 조금 서걱거리는 인스턴트밥에 깻잎 하나뿐인 아침 밥상은 내 생애 가장 맛있는 식사 중 하나가 됐다. 먹으니 힘도 난다. 그래, 난 원래 이렇게 단순한 동물이야. 훨씬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은 두 곳의 박물관을 들르기로 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샨르우르파 도시박물관.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강렬하게 내 눈길을 끌어당긴 것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인물석상 하나. 사람 키 높이 정도 될까? 거친 돌에 조각된 석상의 코는 깨져 있고 가슴엔 V자 모양이 양각돼 있다. 허리는 금이 가 있다. 상체보다 하체가 무척 짧아서 손은 무릎 아래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대체 무엇이 자꾸 내 눈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한참 들여다보니 두 눈에 검은 돌 같은 게 박혀있다. 마치 아몬드처럼 생긴. 저게 뭐지? 몸체와는 완전히 다른 재질과 색깔의 광물질로 눈동자를 해 넣은 것이다. 숱한 석상을 봐왔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다. 흑요석?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박물관 관계자가 설명을 해준다.

아브라함의 성스러운 연못 근처에서 발견된 석상입니다. BC 8000~95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으니, 지금까지 발견된 인간 모습을 한 석상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지요.”

나는 지금 1만 년 전에 만들어진 석상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아득한 옛날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모양을 갖춘 인간의 자화상. 그는 무슨 생각으로 검은 돌을 찾아 눈을 만들어 넣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석상은 저 검은 눈동자를 통해 무엇을 보고자 1만 년을 견디어왔을까.

 

 

 

매장된 고대인의 모습.

 

출산 장면으로 보인다.

석상을 만든 사람도 그가 만든 석상도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고대 인간과 작별을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 박물관은 1964년에 발견된 ‘1만 년 전의 사원괴베클리테페에서 나온 유물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고 한다. 돌에 양각된 사슴과 사냥하는 사람, 멧돼지, 여우, 도마뱀거칠지만 살아있는 듯 생동적이다. 화살을 든 군인은 히타이트 제국의 전사다. 저건 공룡일까? 활짝 웃는 것처럼 이빨만 부각시킨 게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장난감 같다. 한 층을 더 올라가다 또 하나의 기묘한 석상을 만난다. 길쭉한 바위에 사람의 형상을 새겼는데 얼굴은 없지만 여자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밑으로 아기가 새겨져 있다. 출산 장면인가? 강한 주술적 기운이 전해진다. 석상에 여성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BC 3000년경부터라고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석상들이 있다. 그리스인들의 섬세한 조각과는 다른 원초적 모습의 인간과 동물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 앞에서 1만 년 전 사람의 생각을 엿보려 한참 기다려본다. 누군가 돌 안에 배어 있는 신화를 조곤조곤 들려줄 것 같다. 보통 박물관에 가면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제법 오래 걸린다. 화두처럼 던지는 관계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유럽의 박물관에 있는 유물은 거의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져간 것들입니다. 그걸 모두 반환 받으면 유럽 박물관은 텅텅 비겠지요?”

훔치거나 약탈한 남의 물건을 버젓이 전시해놓고 자랑하는 사람들.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까? 우리 가까운 이웃에도 그런 나라 하나 있지.

 

매운 케밥.

맵지 않은 케밥. 재료는 양의 간이다.

점심에는 벼르던 매운 케밥을 먹어보기로 한다. 그동안 거의 물과 과일로만 때웠으니 이제 제대로 좀 먹어봐야지. 특히 샨르우르파에서는 그 유명한 매운 케밥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몸이 안 좋은 나를 위해 훌리아가 정보를 하나 준다.

터키에 여행을 다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Eczane라고 쓴 곳을 찾으세요. 그곳이 바로 약국이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병원은 뭔데?”

“Hstane라는 간판만 찾으면 돼요.”

“ne자 돌림이구먼. 우리 동포들에게 꼭 전해줄게.”

나는 참 여러 가지 보살핌을 받으며 산다. 음식 이야기 계속해야지. 어딜 가나 먹는 건 중요한 거니까. 우르파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은 지에르라고 부르는 양간이다. 얼마나 양간을 좋아하는지 아침식사로 먹는 것은 물론 세 끼를 모두 그것으로 때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맵게 만든다. 빵에 끼워서 고춧가루를 듬뿍 뿌리고 동그랗게 말아먹는다. 양 간을 원료로 한 케밥인 셈이다. 음식점에 도착했으니 선택을 해야 한다. 재료는 소, 닭고기와 양간이 있으니 그 중에 고르란다. 선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세 가지를 다시 매운 것 안 매운 것으로 나눈다. 내게는 가장 안전한 게 안 매운 소고기일 것 같은데 과감하게 양간을 선택한다. 굳이 간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직접 먹어봐야 맛을 전해줄게 아닌가. 대신 안 매운 것으로 시킨다. 매운 육회를 상추에 싸먹는 음식도 있다는데 이 식당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매운 케밥에 또 고추를 얹어먹기도 한다.

이렇게 김밥처럼 둘둘 말아서 먹는다.

후식까지 먹어야 식사 끝. 왼쪽은 아이란.

모든 케밥은 보자기처럼 널찍한 밀가루 전(라와시)에 싸먹는다. 안 매운 양간은 요리할 때 고춧가루를 안 친다. 그렇다고 고추의 고장에서 그냥 지나갈 리가. 살짝 구운 빨간 고추가 곁들여 나온다. 이건 장식이 아니다. 반으로 갈라서 함께 싸서 먹는 거란다. . 그럼 매운 거 시킨 것과 뭐가 다르담. 식사의 기본 절차는 라와시를 펼치고 적당량의 고기를 올린 뒤 향신료와 우리의 고수 같은 풀과 고추를 얹어서 말아서 먹는 것이다. 향신료나 나네민트라는 풀 대신 양파를 얹어 먹기도 한다. 양간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하지만 내가 시킨 음식만 맛보고 갈 수는 없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냥을 다니면서 조금씩 맛을 본다. 내 입맛에는 역시 안 매운 쇠고기가 가장 맞는다. 특히 깻잎에 싸먹으니 천상의 맛이다. 매운 것도 그렇게 엄청날 정도는 아니다. 희석식 요구르트인 아이란도 나왔지만 나는 시금털털한 것을 안 좋아하니 무효. 종업원들은 이방인이 자기네 음식을 열심히 먹으니 신기한 모양이다. 자꾸 주변을 오가며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모양이다. 드디어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벽에 걸린 하란 사진을 가리키며 가봤느냐고 묻는다. 그걸 계기로 몇 마디 손짓발짓 대화를 나누다 드디어 한국말 교육이 시작된다.

“Say! 안녕하세요.”

처음엔 수줍어서 말문이 안 터진다. 에이, 괜찮다니까. 어서 해봐. 그럼 그렇지. 몇 번 시키니까 자연스럽게 따라한다. 이젠 동양 사람들 나타나면 무조건 안녕하세요하면 돼. 알았지?

 

돈두르마를 만드는 모습.

돈두르마.

한낮의 거리는 프라이팬 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듯 뜨겁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이 나타난 뒤로 시원해졌다고 거듭거듭 강조하지만, 그래봐야 40도 가까이 되니 30도의 나라에서 온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다행인 것은 땀은 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사막에 가까운 지역이라 습도가 극히 낮아서 땀이 나오면 바로 마른다. 또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버스도 에어컨을 최대로 켜놓건만 선풍기를 켜놓은 정도의 역할밖에 못한다. 음식점에서 얻어올 때만해도 제법 시원하던 물은 거리를 조금 돌아다니면서 목욕하기 딱 좋을만한 온수가 되었다. 찹쌀떡을 닮은 아이스크림, 돈두르마 가게만 보면 뛰어 들어가고 싶어진다. 음식점에서 후식으로 나왔을 때 조금 더 먹고 나올 걸. 그러고 보니 샨르우르파에서 돈두르마의 본 고장 카흐라만 마라슈까지 그리 멀지 않다. 돈두르마를 출생지의 이름을 따서 마라슈 아이스크림이라고도 부른다. 이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카흐라만 마라슈에서는 눈이 내리면 그 눈을 석굴이나 움푹 팬 곳에 꽉 채운 뒤 관목 줄기나 나무 도막으로 밀봉해서 여름이 와도 녹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그 눈을 퍼내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시럽을 섞어서 먹었다. 이게 바로 돈두르마의 기원이 됐다. 물론 시럽만 섞어서는 돈두르마처럼 쫀득한 맛이 안 난다. 거기에 야생 난초의 구근을 말려 가루로 만든 살렙과 질기게 해주는 유향수지 등을 첨부해야한다.

 

모자이크 박물관.

아킬레우스를 스틱스에 담그는 테티스.

돈두르마 생각을 하니 서울의 돈두르마 장수도 생각난다. 지금도 계속 장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동 입구에도 잘 생긴 아이스크림 장수가 있었다. 터키여행기 1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가 출간됐을 때 인사동에서 간단한 축하연을 하고 나오다 그 친구를 만났다. 터키라는 동질성만으로도 얼마나 반갑던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책을 보여줬더니 자기 와이프도 보드룸에 산다며 뛸 듯이 좋아했다. 그는 한국에서 터키를 그리워하고 나는 터키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셈이다. 어쩌다 보니 아이스크림 얘기가 신파조로 흘러버렸다. 정신 차리고 빨리 다음 목적지로 가야지. 지금 찾아가려고 하는 모자이크 박물관 역시 샨르우르파 시내 한 가운데 있다. 이 동네는 심심한 사람이 대충 삽질만 해도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인 셈이다. 모자이크 박물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박물관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자그마한 야산 기슭에 누런 포장을 쳤을 뿐이다. 언뜻 보면 옛날 우리네 잔칫집 같다. 산 위에는 빈민촌처럼 보이는 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모자이크가 펼치는 화려한 마술에 경탄을 아끼지 못한다. 넓은 토판에 작은 돌들로 섬세한 그림을 그렸는데 마치 스토리가 있는 달력처럼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 내용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아킬레스건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 태어나는 장면에서부터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장면, 트로이 전쟁에 나가는 장면, 그가 죽은 뒤 슬퍼하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반인반수.

얼룩말을 조련하는 흑인노예.

모처럼 아킬레우스를 만났는데 잠깐 신화 공부나 하고 갈까.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들이 결혼하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이야기가 복잡해지니까 생략하기로 하자. 테티스는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겠다는 갸륵한 욕심으로 스틱스강(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강)에 담갔다. 왜 느닷없이 소림사 18동인이라는 영화가 생각나지? 헌데 아무리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바늘만한 빈틈은 있는 법. 아이를 담글 때 테티스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젖지 않아서 급소가 되고 말았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가리키는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트로이전쟁에 내보내지 않으려고 여장(女裝)을 시켜서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 숨겨놓았다. 신화에 나오는 이름들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하지만 아킬레우스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발각되면서 전쟁터로 나가고 만다. 아킬레우스는 최고의 전사가 되어 싸우지만 결국은 치명적인 약점인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아 죽고 만다. 그는 트로이전쟁에서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모자이크는 아킬레우스의 일생 외에도 얼룩말을 조련하는 흑인노예를 그린 장면도 있는데 그 당시 아나톨리아에는 얼룩말이 없었단다. 대체 넌 어디서 온 거냐? 또 전설 속의 아마존 여인들, 아마조네스를 그린 모자이크도 눈에 띈다.

 

아마존의 여전사 아마조네스.

세계 최고로 일컬어지는 이 모자이크 보드가 발견된 것은 2007년이었다.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하는 중에 엄청난 유물이 나오는 바람에 공사를 중단하고 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작품들은 로마 후기나 비잔티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자이크를 제작하는 과정도 상상을 초월한다. 1m²5000~6000개의 돌이 들어간다고 한다. 돌 숫자가 많아질수록 좀 더 정교한 문양을 낼 수 있다. 돌들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가져왔는데 염색을 하지 않고 원래 색깔 대로 분류해서 썼다. 다양한 색깔의 돌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을까. 발굴은 2007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인데,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성스러운 물고기 연못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 세계 최대의 박물관을 지을 계획도 갖고 있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가 곧 책으로 출간됩니다. 출판사와의 협약에 의해 연재는 이번 주로 마칩니다. 나머지이야기는 책에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더 재미있는 여행 이야기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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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파의 옛집. ㅁ자형으로 지었다.

대가족의 여자들이 모여앉아 음식을 만들고 있는 모습

울루자미를 찾아가는 길. 어느 건물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 훌리아에게 물었더니 오늘이 바로 71일 월급날이란다.

월급날이면 사람들이 저렇게 은행 앞에 줄을 서?”

그럼요. 은행에 가야 월급을 찾아오지요.”

그렇구나. 옛날에 월급날이면 누런 봉투를 나눠주던 생각이 난다. 그땐 그마나 그날만큼이라도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가끔은 아내의 살가운 눈길 속에 삼겹살과 소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모든 게 온라인으로 바뀐 뒤부터 월급쟁이들은 월급기계로 전락해버렸다. 괜한 감상으로 가슴이 뜨뜻하다. 울루자미로 가기 전에 키친박물관이라는 곳을 잠깐 들른다. 과거 우르파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골목 안에 있는 집은 무척 크다. 지금의 큰 건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호가 살았을 것 같다. 지은 지 200년 됐다는데 4각형 구조로 문을 빼면 사방이 모두 막혀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작은 분수대도 있다. 지하층에서는 동물들을 키웠다. 우물도 부엌에 있다. 집안에서 모든 걸 해결한 셈이다. 대가족 제도가 유지되던 시절이라 20~30명이 한 집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분가하는 게 아니라 방을 하나 내줘서 함께 사는 방식이다. 그 당시 생활상을 모형으로 꾸며놨는데 여자들 예닐곱 명이 한꺼번에 둘러앉아 음식을 만들고 있다. 시어머니,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 . 날마다 잔칫집 같았겠다.

 울루자미 입구.

 

대사원이란 뜻의 울루자미 역시 샨르우르파 시내에 있다. 이곳은 원래 457년에 36개의 붉은 기둥 위에 세운 교회였다고 한다. 그래서 붉은 교회라고 불렀다. 1175년에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8각형으로 우뚝 솟은 미나레트는 이 도시 최초의 시계탑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왼쪽에 묘지가 보인다. 사원 내 공동묘지인 모양인데 별로 넓지 않은 곳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좀 답답해 보인다. 돌로 만든 구조물 위에 묘비를 세운 것도 있고 맨 땅에 묘비를 세운 것도 있다. 묘비는 제각각이다. 짧은 것, 긴 것, 글씨를 새긴 것, 지워진 것, 모양을 낸 것, 밋밋한 것. 묻혀있는 사람들도 살아있을 때 저렇게 제 각각이었겠지. 죽음으로도 동질화되기 어려운 게 사람인가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내세를 믿는다. 따라서 죽음은 종말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인다. 또 시신을 화장할 경우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된다는 믿음 때문에 매장문화가 일반화 돼 있다. 일종의 영혼이 거주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슬람사회의 장례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보통 24시간 이내에 매장한다. 사람이 운명을 하면 사자의 머리를 메카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염을 하는데 염 절차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솜으로 입과 귀, 코 등을 막은 뒤 흰 무명천으로 시신을 둘러싼다. 묻을 때는 관 없이 매장한다. 사람 키 높이 정도로 비교적 깊고 넓게 판 묘실에 얼굴을 메카방향으로 향하게 시신을 안치한다. 시신 위에 일정한 공간을 두고 석판 등으로 덮는다.

사원 내의 공동묘지. 

크고 작은 묘비들.

묘실을 팔 때는 보통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넓게 파는데, 한 세대가 지나면 한 무덤에 또 다른 가족을 매장하는 관습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나라도 역시 묘 자리가 부족한가보다. 요즘은 묘지를 쓴 뒤 7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을 묻을 수 있다고 한다. 영혼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의 임대차 한도가 고작 7년인 셈이다. 매장문화의 문제점이라고 할까. 하지만 종교를 배경으로 한, 즉 내세 부활을 전제로 생긴 매장문화이기 때문에 단시간 내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미망인 얘기나 잠깐 하고 가자. 전통 이슬람사회(터키는 무척 유연할 것이다)에서 미망인은 남편과 사별하게 되면 4개월 10일간 외간 남자와의 접촉을 피해 집에서만 지낸다고 한다. 이게 바로 절대적 재혼 금지기간일 것이다. 보통은 1년이 지나야 재혼이 허용된다고 한다. 재혼의 대상은 제한이 없지만 전통적인 유목사회에서는 근친이나 족내혼을 주로 한다. 다른 가문이나 부족의 남자와 재혼할 경우 집안의 수치로 받아들여 부족 간의 적대관계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쩌다 공동묘지 옆을 지나는 바람에 장례 이야기가 길어졌다. 사원 자체는 특별한 게 없다. 앞에서 언급한 시계탑 정도가 눈에 띌 뿐. 마당 가운데에는 우아하게 지붕을 해 얹은 우물 하나가 있다. ! 이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수건의 전설을 지닌 우물이구나.

울루자미의 시계탑.

사원 내에 있는 해시계.

예수의 얼굴을 닦았던 수건이 이곳에 떨어졌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예수가 에데사에 언제 어떤 이유로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나 남겼다. 붉은 교회를 방문한 그가 수건 한 장을 자신의 얼굴에 대자 얼굴의 모양이 그대로 찍혔더란다. (에데사 왕국의 아브가루스왕이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니까 얼굴이 찍힌 수건을 보냈다는 설도 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성화라고 일컬어지는 성스러운 수건이다. 이 수건은 944년까지 에데사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943년 비잔티움 제국의 로마노스 1세가 도시를 포위하고 수건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기독교의 유물이리니 돌려달라는 뜻이었겠지. 이슬람에서도 예수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도 성스러운 수건일 수밖에. 하지만 힘없는 자가 죽지 않으려면 별 수 있나. 결국 강탈당하다시피 한 수건은 944815일에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했다. 비극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기독교의 나라를 약탈했던 제4차 십자군이 1207년에 이 수건을 슬쩍한다. 수건은 비잔티움 제국을 떠나 베네치아로 갔지만 그 뒤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건 프랑스에서였다. 루이 9세 때 파리의 성샤펠 성당에 다시 나타났다가 1700년대 후반의 프랑스혁명 때 또 사라졌다. 그 뒤로는 어느 곳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이 없앤 게 아니라 욕심이 없앤 거겠지.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보면 참 한심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깟 수건 한 장 뺏고 빼앗기고. 그럴 시간 있으면 기도나 하지.

 

'성스러운 수건'의 전설이 탄생한 우물.

 

성스러운 수건이라니까 혹시 베로니카의 수건을 두고 착각한 거 아냐?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아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성스러운 수건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피와 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를 본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갖고 있던 수건으로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 줬다고 한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수건에 예수의 얼굴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나왔다는 것이다. 그걸 베로니카의 수건이라 일컬었는데 이 수건이 여러 번 기적을 일으켰다. 목이 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고 눈먼 자를 고쳐주었으면 심지어는 죽은 자를 소생케 한 일도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이 수건을 성물(聖物)로 정하고 존귀하게 여기도록 했다. 하지만 이 수건 역시 인간들의 손에 의해 우여곡절을 겪는다. 1527년 로마가 이방인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폭도처럼 변한 군중들에 의해서 파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어떤 작가는 베로니카의 수건이 도난당해 로마의 이곳저곳 주점에서 나돌고 있었다고 쓰기도 했다. 혹자는 무슨 소리냐, 바티칸에 그대로 보존돼 있었으며 폭도들이 약탈한 물건 중에서 베로니카의 수건은 없었다고 기록했다. 결론은 분명하다. 설령 베로니카의 수건이 바티칸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성물은 아니라는 것. 물론 행방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터키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이런 때 공부 조금 더 한다고 남 주는 건 아니니까. 어떤 경우든 인간들의 욕심이 저지른 파국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원에 놀러온 꼬마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던 울루자미는 우리 일행이 들어서면서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꼬마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주변을 맴돈다. 그것도 갓 부화한 물고기 떼처럼 한꺼번에 몰려다닌다. 어휴! 귀엽지만 시끄럽다. 이런 땐 어찌해야 되는지 잘 알지. 카메라를 녀석들 앞으로 들이밀었더니 느닷없이 조용해진다. 잠시 뒤에는 저희들끼리 알아서 정렬까지 한다. 거봐. 사진이 특효라니까. 짜낸 것 같은 성스러움으로 위장한 사원보다는 이렇게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 구실도 하는 곳이 훨씬 더 정감이 간다. 아이들은 천사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원에 천사가 찾아오면 최고의 손님이지. 시장으로 가는 길은 번화가다. 좁은 길에 신문가판대도 세워놨고 노점상도 있다. 어디 가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 마을버스도 오간다. 버스요금은 1리라라고 한다. 환율을 700원쯤으로 잡으면 우리와 비슷한가? 물 한 병은 25크루슈. 1크루슈는 1리라의 1/4이다. 그러면 우리 돈으로 170~180원쯤 되겠네. 물 값은 싼 편이군. 걸어가면서 훌리아에게 묻는다.

발르클르 연못(성스러운 물고기 연못)을 한국말로 뭐라고 한다고?”

~ 물고기 수영장요.”

흐흐흐, 아직도 물고기 수영장이냐? 물고기 연못이라고! 물고기 연못!!”

무슨 소리인가 하면 성스러운 물고기 연못을 아무리 가르쳐도 연못이라는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물을 때마다 수영장이란다. 그 재미에 묻고 또 묻는다. 이젯에게 물어도 마찬가지다. 혹시, 내가 이들을 놀리는 게 아니라 이들이 짜고 날 놀리는 건가?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

고춧가루 종류가 열 가지도 넘는다.

시를 쓰는 노점상.

구두닦이? 광약 장수? 정체가 불분명한 노점상.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여러 번 하는 말이지만 나는 역시 시장 체질이다. 느닷없이 피가 빠르게 순환하기 시작한다. 곡물가게 앞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곱게 빻아놓은 고춧가루다. 터키에 무슨 고춧가루?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샨르우르파는 고추의 주산지다. 그래서 이 동네는 매운 케밥으로도 유명하다. 요리에 고추구이가 필수적으로 딸려나온다. 심지어는 가지만한 풋고추를 우적우적 씹어 먹기도 한다. 현지인이 먹는 걸 보고 한번 따라했다가 매워서 사망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내가 워낙 매운 걸 못 먹기도 하지만 여기 고추는 맵기가 보통이 아니다. 고추를 먹고 음식에 고춧가루가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 사람들과 동료의식을 느낀다. 고춧가루도 참 여러 가지다. 분홍에 가깝게 빨간 것, 아주 빨간 것, 거무스레한 것, 아주 검은 것. 종류별로 나눠 나눠놓은 비닐포대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원래 고추 자체의 종류가 그리 많은 건지, 건조 과정에서 색깔이 달라진 것인지. 좌판을 벌여놓고 잡동사니를 파는 할아버지는 뭔가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혹시 길거리의 시인이 아닐까. 광약을 파는 건가? 구두를 닦는 건가? 조금 애매해 보이는 아저씨도 앉아있다. 조그만 문을 지나가니 널따란 광장이 나온다. 쇠전도 아니고 시장 한복판에 광장이라니 좀 느닷없다. 사람들이 파라솔 아래 나무의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차이를 마시고 있다. 카라반사라이가 있던 자리인가? 시장 한가운데에 대상들이 쉴 수 있는 큰 뜰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만히 둘러보니 남자들뿐이다. 시장에도 금녀구역이 있는 모양이군.

 

시장 안의 휴식광장.

실크 상가.

실크상가에서 만난 사내.

실크상가로 들어간다. 실크로 만든 모든 상품이 있는 곳이다. 인파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데 날카로운 눈초리 하나가 등에 와 박히는 느낌에 움찔한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언젠가,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숲에서 벗어나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릴 때쯤 잃어버렸던 본능 같은 게 살아나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굳이 경계의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좀 미흡한, 필요 없다고 어디엔가 내던졌던 민감한 신경같은 것일 게다. 시선 쪽으로 눈을 돌리니 한 사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시장 풍경과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사내다. 타임머신을 타고 카이사르의 갈리아 군단에 용병이라도 다녀온 것 같은 느낌. 그런 단단함과 날카로움이 적절히 버무려진 사내.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내게로 저벅저벅 걸어온다. 그런 땐 독일병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도 있는 걸음걸이다. 가까이 온 그가 나를 끌어안더니 자신의 뺨을 내 뺨에 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반대쪽 뺨. 다음엔 손을 내민다. 나 역시 아무 거부반응 없이 손을 내민다. 악수를 마친 그가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거수경례를 한다. 나는 경례를 받는 대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독일병정처럼 꼭 다문 저 사내는 나와 무슨 인연으로 여기서 인사를 나누는 것일까? 왜 내겐 낯선 사내의 거친 뺨이 낯설지 않은 것일까? 전생, 어디를 흐르는 강쯤에서 헤어졌다가 이리 만난 것일까? 눈짓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인파 속으로 묻힌다.

 

카메라에 관심이 많았던 모녀.

옛날식 다리미도 있고.

카메라를 들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진사가 되는 건 금방이다. 히잡을 두른,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자꾸 내 카메라에 시선을 보낸다. 표정은 수줍기 짝이 없지만 낯선 물건에 대한 관심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 것 같다. 자기들끼리 카메라를 가리키며 무슨 말인가 연신 주고받는다. 그런 땐 무기가 있지. 삶은 콩 얻어먹은 당나귀처럼 잇몸까지 보이며 웃어준다. 마음이 놓이나 보다. 젊은 여자가 묻는다.

필름?”

노 필름

이 정도면 서로 영어 좀 되지 않는가? 디지털 어쩌고 안 하고도 서로 하고 싶은 말 다했다. 사진보다는 카메라 자체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카메라를 내밀면서 한번 찍어 보라고 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찍을 줄은 모르고 자신들을 찍어서 보여 달라는 것이다. 수줍음 속에서도 할 건 다한다. 오케이, 오케이! 얼마든지요. 노소 무슬림 여성을 모델로 시장 한가운데서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사진을 보여줬더니 할머니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떡거리면서 고맙단다. 디지털 카메라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보시하기 쉬운데 뭘. 모델 확보해서 좋고 고맙다는 인사 들어서 좋고.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늘 이렇게 저절로 모델이 구해지는 건 아니다. 우선 인상이 좋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항상 웃는 얼굴이어야 한다. 찡그린 사진사에게 모델이 돼주는 경우는 없다. 다음으로 눈이 마주치면 현지 말로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아야한다. 예를 들어 터키에 가면 귀나이든(잘 잤어요? 좋은 아침!!)~ 메르하바~(안녕하세요?) 정도는 입에 달고 사는 게 좋다. 인사한다고 욕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이 아이 대신 장사를 해줬다.

대장장이.

주석공방 골목.

어느 가게 앞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 일하는 걸 보는 게 이젠 낯설지 않다. 방학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 가게를 보는 아이들이 많다. 헌데, 이 녀석 정말 기특하다. 서 있는 나를 보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앉으란다. 이런 경로사상이 투철한 아이가 있나. 아니면 내가 불쌍해 보였나?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지. 아이를 한쪽에 세워놓고 장사를 시작한다.

싸요, 싸요. 최고급 실크 머플러가 말만 잘하면 공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일행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든다. 다른 터키 사람들도 이방인이 싸구려를 외치니 신기하다는 듯 모여든다.

다른 데 갈 것 없어요. 싸게 드릴 테니 여기서 사요.”

손님과 아이 사이에서 흥정을 벌인 끝에 두 장을 팔았다. 물론 사는 사람들도 혜택을 봐야하니까 30리라짜리를 25리라로 깎아줬다. 아이도 불만스럽지 않은 표정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뭐. 아이와 작별을 하고 실크 상가를 벗어난다. 바로 앞에 대장간이 있다. 대장간 분위기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덕과 모루, 각종 장비그리고 대장장이의 힘찬 망치질. 만드는 물건은 좀 다르다. 도끼나 칼 등도 있지만 주로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만든다. 저게 뭘까? 물어봤더니 케밥을 만들 때 쓰는 꼬챙이란다. 대장장이는 다섯 살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해서 45년 동안 이 일만 해왔다고 한다. 쉰 살이라는데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인다. 평생 불 앞에 살아서 그럴 거야. 익은 거지 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공방들이 줄지어 있다.

 

완성된 주석 제품들.

주석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웃는 얼굴로 일하는 아이.

전통기법으로 주석 용기를 만드는 곳이란다. 주석이 이렇게 예쁜 물건으로 변할 수도 있구나. 보석 못지않게 화려하다. 한 집에 들어갔더니 부자(父子)로 보이는 장년 사내와 아이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동그란 주석 판에 문양을 새기고 아들은 판 위에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어려 보인다. 아홉 살 쯤? 커다란 나무망치를 들고 연신 내리치는데 그 나이에 하기에는 조금 벅차 보인다. 하지만 이 녀석 조금도 싫증난 표정이 아니다. 입가에 미소까지 매달고 있다. 착하고 착한지고. 저렇게 일하는 아이도 있는데 어른인 내가 여행을 하면서 뭐가 힘들다고. 배낭을 추슬러 올리고 힘차게 나서보자.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