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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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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16. 18:44 길섶에서
“혹시 기억하실지, 얼마 전에….” 전화를 받은 건 점심무렵이었다. 기어들어 갈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두어마디 들어보니 누군지 금방 기억이 난다.“그 날 하도 고마워서 잠깐 인사나….” 별일도 아닌데 그럴 필요없다고 몇차례 사양해보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만다.

일이 좀 늦었던 날,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주름살 깊은 기사는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남의 얘기가 아닌지라 절로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그러다 잠깐 졸았던지, 눈을 떠보니 택시는 엉뚱한 곳을 달리고 있었다. 차를 돌려 집 앞에 도착한 뒤 미터기에 나온 대로 돈을 건네자 기사는 극구 손사래를 쳤다. 더 나온 만큼 빼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길 안내를 못한 죄도 있다며 끝내 거스름돈을 받지 않자, 명함이라도 한 장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 앞에서 만난 그는 환한 얼굴로 “손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일할 맛이 난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러더니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떠맡기다시피 하고는 바쁘게 사라진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서로 기대어 온기를 나누는 일은 결코 포기할 게 아니다.
2004.12.7

posted by sagang
2007. 5. 9. 18:48 길섶에서
모처럼 찾은 근교의 고모 댁, 노인은 초겨울 햇살 아래 앉아 텃밭의 푸성귀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가꾼 것들과 이별을 늦추고 싶어서 수확을 미룬 게 틀림없다. 출가한 딸들은 멀리 살고 아들마저 이국땅으로 떠난 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존재는 그들뿐이다.

마당을 서성이던 고모가 헛간 지붕을 가리킨다.“다른 건 다 손이 닿는데 저 녀석 하나만은 어쩔 수가 없어. 한 번 좀 올라가봐.” 슬레이트 지붕 위엔 한아름은 될 듯한 누런 호박이 몸집을 자랑한다. 지붕이 꺼질세라 조심조심 끌고 내려오는데 등에 진땀이 흥건하다.

“왜 이 놈만 높은 곳에 열려 가지고…. 못 올라가게 좀 말리시지.” 땀을 훔치며 투정하는 조카에게 고모는 웃으며 대답한다.“씨를 뿌리고 키우는 일이야 농사짓는 사람 몫이지만, 자리를 잡는 거야 일일이 간섭할 수 있나. 자식도 마찬가지야. 품을 떠난 뒤엔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거지. 하지만 걱정이야 왜 안 될까. 저 곳은 봄에 새 생명을 틔울 데도 못되니….” 시선을 지붕에 둔 노인의 목소리에 습기가 촉촉하다.
2004.11.29

posted by sagang
2007. 5. 2. 19:07 길섶에서
휴일 아침의 산책은 느긋함을 동반할 수 있어 좋다. 겅중거리며 곁을 따르는 작은아이의 재잘거림도 산새소리만큼이나 흥겹다. 산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서울 외곽에 정착한 지 10년. 이젠 등을 떠밀어도 못 떠날 것 같다.

산 어귀로 접어드는 순간 아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진다.“와! 저게 뭐지?” 두 평이나 될까. 누군가 공터를 일궈 물을 대고 벼를 심었다. 추수기가 지난 벼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의 감탄사를 끌어낸 건 벼보다 논가의 허수아비다. 손이 많이 간 듯 제법 정교하다. 논을 가꾸고 허수아비를 세운 사람은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지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가슴에 와닿는다.

얼마 전 서울시가 어느 동네든 집에서 5분 이내에 공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는 ‘환경비전’을 발표했다. 정책입안자에게 허수아비가 서있는 작은 논을 보여주고 싶다. 좋은 환경은 비싼 잔디와 번듯한 나무로만 꾸미는 건 아닐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너와 내가 아닌 하나되어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 그게 본질이 아닐까. 허수아비 하나에도 감동하는 사람들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2004.11.16

posted by sagang
2007. 4. 25. 18:58 길섶에서
그를 청년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다.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다. 잠시도 가만있을 틈이 없는 그는, 초겨울 바람이 문턱을 넘은 요즘도 반팔 티셔츠 차림이다. 그는 바쁜 움직임 속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숙여 인사한다. 입가엔 미소가 봄꽃처럼 환하다.

청년은 신문사가 있는 빌딩 지하 3층에서 구두를 닦는다. 건물 곳곳을 누빈 지 벌써 10년이 가깝다. 20층 건물 중 8층까지가 그의 ‘영역’이니 꽤 넓은 셈이다. 그가 하루에 만나는 구두는 보통 150켤레다. 그래서 빠른 걸음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친 구두에는 구두약보다 더 진한 정성이 묻어 있다. 주인에 따라 더러는 험상궂고 더러운 구두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꼼꼼히 문지르고 광을 낸다.

프로는 야구장이나 골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다. 자신을 ‘시장’에 내놓고도 상품성을 높이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 일이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그 속에서 청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2004.11.13

posted by sagang
2007. 4. 23. 16:49 길섶에서
연말이 되면서 각종 모임이 잦아진다. 그 중 가장 반가운 건 역시 초등학교 동기모임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흰머리와 처진 어깨에 이고 지고 모이지만, 마음은 냇가에서 물장구를 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갈수록 줄어 이젠 많이 모여야 스무명 안팎이다. 여름에는 고향으로 가고, 겨울에는 시골 친구들이 서울로 온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소풍가듯 모여 기차를 타고 온다. 그들에게는 고향 뒷산의 솔바람과 흙냄새와 새소리가 묻어서 온다. 마디마다 옹이가 박힌 손을 잡으면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가슴속에서 걸어나온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농사로 시작된다. 올 수확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옆자리의 친구는 씁쓸한 웃음부터 베어문다.“배추 농사는 망했어. 한포기에 100원씩이라는데, 그나마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갈아엎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배추를 갈아엎을 때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친구는 의연하다.“걱정 마라. 굶어죽기야 하겠냐. 내년에 제대로 하면 되지.” 그 와중에도 ‘내년의 희망’을 얘기하는 친구의 잔에 술이나 채울 뿐이다.
200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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