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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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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 14:04 카테고리 없음

“거기 위험하지 않아?”
“어디? 쿠바? 그럴 리가. 치안이나 안전성으로 보면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맞아.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라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야. 어떤 이데올로기도 위험을 전제로 태어나지는 않아. 문제는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이지.”
“그래도 난 불안해서 못 갈 것 같아.”
“그건 뭐 선택의 문제니까. 따지고 보면 그 나라야 말로 서구 열강의 탐욕으로 고통을 겪은 피해자지.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끼리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아.”

 

쿠바로 떠나기 전, 몇몇 사람이 걱정을 했다. 몇몇은 전선으로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가는 곳이 조금 위험한 지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터키와 시리아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인근에 있었고, 파리에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고 싶어 했듯이, 내게는 위험을 갈구하는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바는 여지없이 내 기대를 저버렸다.

 

그곳은 내가 예측한 것보다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트리니다드에서 한밤중에 가로등도 없는 거리를 헤매고 다녀도 불안하지 않았고, ‘불량기’ 가득한 아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아바나의 말레꼰을 산책할 때도 아무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공항의 입국은 이웃집을 드나들듯 쉬웠고 사람들은 아침에 피는 나팔꽃처럼 밝았다.

 

1492년 그 섬에 첫 발을 디딘 콜럼부스가 “인간 세상에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던가? 정복자이자 파괴자인 콜럼부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그 섬에 늦게 도착한 게 한스러웠다.

 

내가 본 쿠바는 여행자의 천국이었다. 가난한 천국이었다. 다만 문이 너무 넓게 열려 있어서 언젠가 닫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천국이었다. 세 배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오래된 풍경이 외지인의 발길에 의해 깨질 것 같아 불안한 천국이었다. 그곳은 오래 전에 내가 떠나온 고향별이었다. 아마, 당신의 고향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에는 언어와 사진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가보면 안다.

 

 

posted by sagang
2013. 7. 19. 15:23 카테고리 없음

'클라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에 이은 이호준의 터키기행그 세 번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제목은 문명의 고향 티그리스 강을 걷다 (부제 : 터키, 숨겨진 옛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블로그에도 연재했듯이, 이번 책은 EBS의 세계테마기행(터키 편)과 함께 했던 기록입니다. 주로 터키의 오지를 돌아다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이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던 쿠르드인. 그들 속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 본 여행객이라고 자부할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었습니다.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희열에 떠는 날도 있었지만, 설산을 오르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쓰러질 듯 길을 걷는 날도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간 근본의 고뇌와 제 뇌리를 징처럼 울리던 깨달음도 촘촘하게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sagang

하산케이프에서 마르딘으로 가는 길에 만난 초원

하산케이프와 작별할 시간이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도 여행자는 늘 등을 보이며 떠나야 한다. 반도 그렇지만 하산케이프 역시 정이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류 문명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이 물에 잠긴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내가 설령 다시 찾아온다 해도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까.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마르딘으로 가는 길 옆에는 양탄자 같은 풀들이 보기 좋게 깔려있다. 초원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일부러 차를 세우고 풀밭을 걸어본다. 푹신푹신한 감촉이 발에 정겹다. 우리나라는 아직 한겨울일 텐데 여긴 완연한 봄이구나. 게으르게 누워 낮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다. 하지만 또 떠나야지.

멀리서 본 마르딘 구시가지 

아득한 메소포타미아 평원

오랜 역사의 도시, 마르딘에서 시작하는 첫 아침. 맨 먼저 구시가지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구시가지는 해발 1,000m의 산기슭을 따라 세워진 집단 주택지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을 바라본다. 엄청나게 큰 산 하나가 통째로 사람들에게 거처를 내줬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맨 꼭대기에는 성채가 우뚝 서 있다. 전형적인 방어형 주거지. 뒤를 돌아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둘러 봐도 그저 초원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청소하는 당나귀

마르딘은 남동부 아나톨리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마르딘 주의 주도(州都). 어제 떠나온 하산케이프에서 한참 내려와야 만날 수 있다. 어느 정도 남쪽인가 하면 시리아 국경과 2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랍족이 많이 살고 있으며 투르크족, 쿠르드족,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뒤섞인 복잡한 인적 구성을 보인다. 고대에는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으며 아직도 그 때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다양한 종교의 산실로도 유명한데 시리아 정교회의 총본부가 1932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중심역할을 했다. 그밖에도 아르메니아 정교회, 예지디교, 조로아스터교 등 여러 고대종교가 둥지를 틀었던 곳이기도 하다. 마르딘이라는 이름은 시리아어로 성채를 의미하는 메르딘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상업도시로도 이름을 날렸다. 지리적으로 볼 때 아나톨리아 고원과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연결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아랍과 페르시아에서 출발한 대상들이 이곳을 거쳐 아나톨리아로 들어섰다. 또 밀이나 참깨, 목화 등이 재배되고 양모가 많이 나면서 면직물과 모직물을 만드는 소규모 공업이 발달했다.

 

구시가지의 건물들

이제 마르딘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차례. 구시가지의 명물은 바로 원형이 잘 보존된 산동네 골목길이다. 하지만 골목길로 들어서기 전에 반가운 풍경부터 만난다. 바로 당나귀 청소원. 당나귀의 양 옆으로 두 개의 나무상자와 마대자루가 매달려 있다. 그곳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 들어있다. 아하! 이게 말로만 듣던 청소하는 당나귀구나.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청소차 대신 생활쓰레기를 나르는 당나귀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르딘 전체를 1960년경에 문화 보호구역으로 지정면서 도시 안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을 금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골목은 가파르고 좁아서 차가 들어갈 수가 없다. ‘압바라라고 부르는 석조 건축물들이 골목과 골목을 미로처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소를 안 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동원된 것이 당나귀다. 40마리의 당나귀가 청소에 동원되는데 이들은 시청에 소속돼 있는 공무원이다.

 

일반 주택들이 마치 성채 같은 위용을 보인다.

당나귀를 따라 골목 탐색에 나선다. 듣던 대로 집들은 요새처럼 높은 담을 쌓았고 골목은 사람 한두 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다. 집들을 이렇게 높고 튼튼하게 지은 것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 도시 전체를 요새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골목도 가능한 한 좁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세력도 영원히 이 도시를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격을 하던 쪽이 방어하는 쪽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는 일도 빈번했을 것이다. 집들은 다른 곳에서 보던 집들과 조금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바로 아랍풍의 건축물들이 많다는 것. 어떤 과정을 거쳤든, 이곳을 누가 차지했든 이제는 그저 이야기로 남아 떠돌아다닐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덕분에 아름답고 튼튼하고 은밀한 골목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골목들이 이어진다.

신이 나서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또 다른 청소원을 만났다. 이 아저씨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뭔가 보여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우선 당나귀의 재주를 선보인다. 아저씨가 서! 하면 신통하게도 그 자리에 선다. 물론 가! 한마디가 떨어지면 뚜벅뚜벅 걸어간다. 거참, 말 안 듣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내가 재미있어하자 아저씨는 신이 나서 계속 서! !를 반복한다. 어휴, 그만 좀 하세요. 당나귀 짜증나겠어요. 아저씨와 당나귀가 골목으로 사라지자마자 행상을 하는 당나귀가 나타난다. 커다란 자루에 각종 채소를 담아서 팔러 다닌다. 자루를 들여다보니 감자, , 시금치 등 온갖 채소가 들어있다. 우리로 치면 트럭행상인 셈이다. 감자 있어요! 시금치가 왔어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다.

 

당나귀들의 집

골목의 끝에는 쓰레기 집하장과 당나귀들의 집이 있다. 쓰레기를 부린 당나귀들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다. 헌데 건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일부러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이런! 역시 오래된 건축물이다. 하긴 서 있는 모든 것들이 고대두 글자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당나귀우리 아니라 무엇으론들 못 쓰랴.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말뚝 박고 철조망까지 친 다음 접근금지라는 팻말이라도 걸어놨을 것 같다. 청소원들은 여기서 퇴근한다. 동행한 아저씨 말로는 아침에 나와 열시에 퇴근한 뒤 오후에 다시 나온단다. 전에는 오전만 일했는데 시장이 바뀌는 바람에 오후에 한 번 더 청소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서인지 불만이 있는 눈치는 아니다.

 

학생들이라는데...

그 특이한 초대는 과자 하나로부터 시작됐다. 쓰레기 집하장 앞에 학교가 하나 있는데 안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발견한 게 문제였다. 영상카메라가 계속 따라다니니, 아이들 눈에는 동양에서 온 스타쯤으로 보였나보다. 그 중에 한 아이가 과자 하나를 주길래 받아 먹었더니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그때부터 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다가 시작된다. 철문은 아이들이 나오지 못하게 잠겨있고 주번으로 보이는 고학년 하나가 지키고 있다. 철문에 매달리는 아이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난다. 어른들과 달리 남녀 간의 구분 같은 것도 없다. 아니 여자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 같은 건 더욱 없다. 하도 아이들이 몰려드니까 결국 주번 아이가 문을 열어준다. 나는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에게 무방비로 둘러싸이고 만다. 이런 땐 적진으로 과감히 돌파하는 게 최고다. 학교 구경을 해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도 신나서 따라오고. 장 선생에게 수업 참관을 할 수 있는지 섭외를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한참 뒤에 허가가 떨어진다. 수업광경이 TV에 나가려면 상급 관청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난색을 표명하던 교장 선생님이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수업 참관

어느 학교인지 밝히지는 말고 찍어주세요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이다. 물론이지요.(편집 과정에서 잘리는 바람에 TV에는 안 나왔다.) 이 나라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합쳐서 8학년제로 운영된다. , 초등 과정 5학년, 중등 과정 3학년을 한 공간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 수가 700명인데 학교가 좁아서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운영한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교실로 들어갔다니 환호가 터져 나온다. 아이들은 어디나 똑같기 마련이다.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수업을 지켜본다. 지금은 수학시간. 알리라는 아랍식 이름을 가진 20대 초반의 선생님이 가르친다. 수업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롭고 활발하다. 선생님이 질문하고 아이들이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시 골목으로

참관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또 다시 함성이 터져 나온다. 혹시 나 진짜 스타 아냐? 교장선생님이 교문까지 나와 전송한다. 전혀 예정에 없었던 학교 방문. 즐거운 경험이었다. 어느 곳이나 아이들은 희망이고 미래다. 다시 골목을 따라 내려온다. 골목은 집과 집을 끼고 끝없이 이어진다. 길을 한번 잘못 들면 헤매기 딱 좋을 것 같다. 여기라고 빈부의 차이가 없을까. 어느 집은 고성처럼 웅장한가 하면 판잣집을 간신히 벗어난 모양의 집도 있다. 성 같은 집은 문도 육중한 철문을 달았다. 어느 집에 창문에 ‘KiRALIK’라고 크게 써놨길래 뭐냐고 물으니 세 놓습니다라는 뜻이란다. 이렇게 오래된 집들도 세를 놓는구나. 이런 곳에서 잠시 살아봤으면 좋겠다. 높은 집 위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려다보고 있길래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받는다. 하지만 몇 마디 해달라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얼른 숨어버린다. 여기 사람들은 카메라 울렁증이 있나보구나. 그러든 말든 골목 탐험을 멈출 수는 없지.

 

 

 

 

*출판사와의 협약에 의해 이호준의 터키기행3 [숨겨진 옛 도시를 걷다] 연재를 여기서 마칩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이달 말 혹은 새달 초에 발간되는 '문명의 고향 티그리스 강을 걷다'를 통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당분간 쉰 뒤 좀더 재미있는 여행 시리즈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posted by sagang

 

 

저물어가는 하산케이프와 티그리스 강

어둑어둑한 언덕을 내려오는데, 장 선생이 들렀다 갈 곳이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전에 하산케이프에 왔다가 인연을 맺은 분들이 있는데 잠깐 인사나 하고 가겠단다. 장 선생은 이 땅에 대한 애정과 학문적 식견이 깊은 분이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장 선생이 금방 나오더니 촬영팀의 옷소매를 끈다. 이 집에서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올 것을 어떻게 알고 저녁식사를 준비했지? 해답은 무슬림 특유의 초대정신에 있겠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금방 가봐야 한다고 하니까, 그럼 일행을 모두 데리고 오면 될 게 아니냐고 윽박질렀을것이다. 안 봐도 상황이 훤하다. 사실 저녁 무렵 별 생각 없이 남의 집을 방문한 게 문제였다. 우리가 들어가면 이 집 식구들은 준비했던 저녁식사를 몽땅 내줄 게 뻔하다. 몇 번 사양해 보지만 사양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경험으로 안다. 식사 때 들른 나그네를 그냥 보낼 사람들이 아니니까.

 

이방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도 집 주인은 당황한 기색이 없다. 여자들은 주방으로 들어가고 남자들은 아이들까지 나서서 손님맞이를 한다. 상은 금방 차려진다. 보자기가 펴지고 빵과 볶음밥이 나오고 꿀이 나오고 아이란이 한 순배 돌고. 잠시 뒤에는 화술리에라고 부르는 콩죽과 김이 푸짐하게 오르는 닭(백숙)도 나온다. 짐작대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말이 그렇지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식사 직전에 찾아온 손님에게 자신들의 밥을 다 내어주고 다시 준비하는 상황. 그렇다고 장 선생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손님맞이를 지휘하는 이는 이 집의 가장인 노인이다. 한쪽에 앉아서 연신 맛있게 먹으라고 권한다. 민망한 마음에 함께 드시자고 권해도 소용없다. 음식은 무척 맛있다. 시중에서 파는 음식을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나도 과식한다 싶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그릇을 비우면 자꾸 더 덜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더 먹어라더 먹어라그릇을 안 비우면 맛없어서 그러는 줄 알까봐 열심히 비우게 되고 비우면 더 덜어주고. 이런 상황을 일러 진퇴양난이라고 했던가.

 

동굴집에도 불이 켜지고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벌써 차이를 준비하고 있다. 포크를 내려놓자 차이 잔이 가득 채워진다. 차 역시 비우는 대로 따라주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에 신경을 써야한다. 노인의 아들 둘이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은 차이를 따르고 한 사람은 설탕을 넣어준다. 난로 위에서는 주전자가 계속 김을 품어내고 있다. 차이를 끓이는 주전자의 이름은 차이단리크.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난로 위에 있다. 이 주전자는 이층 구조로 아랫부분이 조금 더 큰데 여기에 끓는 물을 담는다. 위쪽 주전자는 뎀리크라고 하는데 홍차를 듬뿍 넣고 물을 조금만 담는다. 난로 위에 얹어놓으면 아래쪽 주전자에서 나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위로 올라가 차의 온도를 유지시킨다. 차를 마시는데 이 집 어른이 베이셀에게 뭔가 훈계를 하는 눈치다. 베이셀은 무척 당황한 것 같다. 장 선생의 옆구리를 쿡 질렀더니 혼나고 있는 거란다. 쿠르드족인 어른이 역시 쿠르드족인 베이셀에게 자기들 말로 뭔가 물어봤는데 못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훈계를 요약하면 왜 우리말이 있는데 투르크 말만 하느냐라는 것이다. 이들도 세대 간의 단절이 심하구나.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지만 방언이 심한데다 젊은이들이 자꾸 터키화돼가는 바람에 언어의 맥이 끊기고 있다고 한다.

 

TV에서는 어제 안타키아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소식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13명이 사망했는데 4명은 터키사람, 9명은 시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터키 땅에서 벌어진 폭탄테러에 시리아 사람이 많이 죽은 것을 보면, 내전을 피해 터키로 피난 온 사람들이 타깃이었던 것 같다. 이런 잔혹성과 증오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대체 어쩌자고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는 걸까.

 

새벽의 하산케이프는 안개가 점령했다.

노인에게는 33녀의 자식들이 있는데 시집간 딸만 빼고 한집에 모여 산다. 노인은 평생 마을의 이발사였다. 지금은 셋째 아들이 이어받아 함께 일을 한다고 한다. 이곳 역시 시골동네 이발소는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한다. 큰 아들은 이혼을 했다고 장 선생이 귀띔한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이혼에도 남녀차별이 있다. 남자들은 이혼하기가 식은 죽 먹기만큼 쉽다. 증인을 놓고 이혼한다, 이혼한다, 이혼한다세 번만 말하면 된다. 굳이 의무가 있다면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재산을 돌려주는 것뿐. 물론 여성들은 선언만으로 이혼을 할 수 없다. 법정에 서야하고 이혼이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할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 1934년에 여성 참정권이 부여됐고 여성 변호사와 국회의원도 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법보다 종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배가 터질 정도로 밥과 차이를 마셨다. 무슬림 가정에, 그것도 보수적 쿠르드족의 가정에 느닷없이 들어가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함께 TV를 보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손님접대가 이렇게 지극정성인 것은 순박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슬림에게 환대란 손님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다. 심지어는 손님 접대를 제대로 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믿음까지 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온 가족이 문밖까지 나와 전송한다. 대체 우리는 이들에게 무엇일까. 바트만으로 돌아가는 길 초승달이 내내 따라오며 웃는다.

 

카메라감독의 고독

다음 날 새벽. 네 시부터 서둘러 다시 하산케이프로 간다. 양을 몰고 초원으로 가는 목동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초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컴컴할 때 길을 나선다. 티그리스 강을 따라 하산케이이프로 가는 길은 온통 안개들의 세상이다. 안개군단은 자신들의 제국에 느닷없이 나타난 헤드라이트 불빛에 움찔움찔 물러선다. 하산케이프도 온통 안개가 점령했다. 인적이 없는 작은 도시에 안개가 들개 떼처럼 우우 몰려다닌다. 세상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지금의 이 안개와 어둠도 언젠가는 물에 잠길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날 것이다. 안개속이라고 해도 쉬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닭들이 새벽을 알리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 그들은 합창대회라도 나온 듯 열심히 고요를 밀어낸다.

 

어제 저녁에 내려왔던 언덕길을 다시 올라간다. 단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색다른 분장이라도 한 듯 조금 낯설다. 어둠 속에서 양과 염소들이 내는 소리가 옹알이처럼 들려온다. 저들은 이미 깨어 있었던 걸까. 어둠은 조금씩 걷히는데 안개는 갈수록 짙어진다. 티그리스 강이 강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토해냈을 안개. 안개 속에 긴 세월의 냄새라도 배어있나 싶어 혼자 킁킁거려본다. 촬영팀이 준비를 하는 동안 혼자 길을 올라가다가 느닷없는 위기에 부딪힌다. 컴컴한 어둠, 아니 안개 저쪽에서 들리는 으르렁거리는 소리. 모든 신경을 집중한 공격 직전의 경고가 틀림없다. 순간 전신을 감싸는 공포에 온몸의 털이 송곳처럼 떨치고 일어난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캉갈이다. 어제 저녁부터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경계하던 녀석들 중 하나일 것이다. 캉갈은 터키의 나라개(國犬)이자 터키사람들의 자랑이다. 원산지는 터키 중부 캉갈(Kangal)이라는 조그만 읍. 주로 양치기개로 쓰이지만 힘이 무척 좋아서 트랙터 한 대를 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늑대와 11로 싸우면 이길 확률이 50%이상이며 두 마리가 협공하면 식은 죽 먹기다. 그렇게 엄청난 힘과 용맹을 가졌지만 주인에게는 순한 양이나 다름없다. 그에 반해서 침입자에게는 단호한 응징을 가한다.

 

초원으로 가는 길, 염소들이 앞장 선다.

그런 녀석과 안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것이다. 도망치기에는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저 개에게 나는 지금 침입자일 뿐이다. 촬영팀과는 떨어져 있고(가까이 있은들 무슨 도움이 되랴) 주변에는 무기로 삼을만한 것도 없다. , 이게 바로 원초적 공포라는 거구나. 입에서는 신음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그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들여다보는 자아라니. 안개 저쪽의 절대자에게 안개 이쪽의 생명은 먹이라는 이름과 다르지 않다. 개와 사람 간에 설정된 상식의 관계는 안개 하나로 철저하게 무너져 있는 것이다. 준비된 폭력 앞에서 나는 절대 무기력한 존재일 뿐. 얼마나 허세 속에 살았던가. 그런 자각들이 빛의 속도로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또 누군가가 순간의 반전을 준비해뒀던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양치기 청년이 츼츼츼! 소리와 함께 나타난다. 개가 고개를 떨어트린다. 또 한 번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자리에 주저앉기라도 할 듯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다시 허세의 나로 돌아오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의 여운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여행자,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진짜 를 만나려 떠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도 셔터를 누르는 미친 존재일지도.

 

먹이를 찾아 나서는 장엄한 행렬

조금 전의 죽음 같았던 공포는 오로지 나를 겨냥해 준비된 상황극이었을 뿐이다. 충격의 잔해도 온전히 내 몫이다. 목동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아침 맞을 준비를 한다. 안개가 짙어질수록 닭들의 울음소리는 그악스럽게 높아진다. 보이지 않을수록 소리를 높여 존재를 알리는구나. 안개 속에 서 있으려니 이상한 안도감이 전신을 감싼다. 어쩌면 익명의 자유 속에 풍덩 빠져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안도인지도 모른다. 안개 속에서 경계는 물론 분별마저 잃고 싶다. 강이 이렇게 엄청난 안개를 토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사물은 경계를 지워버렸다. 이거니 저거니 가늠하던 눈은 더 이상 쓸모없어졌고 그나마 열린 귀도 분별을 위해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만 더욱 또렷해졌을 뿐이다. 이곳이 호수로 바뀐 뒤, 안개는 여전히 아우성으로 몸을 일으키겠지만 흐름은 멈출 것이다. 양떼를 몰고 초원으로 향하는 목동도 없을 것이다. 안개 속은 걸어갈 수 있지만 물속을 걸어갈 목동은 없을 테니.

 

 

목동들의 아버지, 노인도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어제 저녁 내내 그렇게 귀찮게 했는데도 반갑게 맞아준다. 아침 6. 양들에게 아침을 먹인 목동들이 츼츼츼 소리와 함께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녹아든다. 양이 앞서고 중간에 노새가 걷고(저 노새는 왜 필요한 거지?) 염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캉갈들이 주변을 에워싼 긴 행렬. 안개가 걷힌 산봉우리에서 해가 반짝 얼굴을 내민다. 금세 안개를 밀어낼 듯 기운차다. 하지만 안개의 방어도 만만치는 않다. 이들도 전쟁으로 하루를 지어나가는구나. 한 눈 팔다 행렬을 잊은 듯 어린 양 한 마리가 울며불며 달려온다. 조금 달리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지만 앞에서도 뒤에서도 행렬을 찾지 못한 순간의 당황. 느닷없이 내가 지금 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려간다고 달려가는데 홀로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는. 아이야.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지금 네가 달려가는 길이 옳고 그름은 한참 더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

 

홀로 떨어진 철학자 염소

양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쉬는 시간. 동굴집들의 주변은 느닷없는 적막 속에 잠긴다. 안개도 어느덧 걷혀있다. 저들은 또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고삐 없는 소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길 위에 빵떡 같은 똥을 얹어놓아도 뭐라는 사람 하나 없다. 뿔날 자리가 간지러운 어린 녀석들은 지들끼리 머리를 부비며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한다. 참선하는 염소도 있다. 이 녀석은 절대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초원으로 가는 동료들의 긴 행렬이 출발할 때도 남 보듯 한다. 주인도 포기한지 오래인 것 같다. 가까운 풀밭까지만 데려다 주고 바로 돌아서버린다. ‘특별한녀석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썩은 눈치다. 밤새 배가 고팠으련만 녀석은 풀 따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멀리 두고, 태양과 티그리스 강이 교접해서 낳은, 퍼덕거리는 물비늘만 응시할 뿐이다. 산들바람이 불어도 선정(禪定)에 든 노승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일부러 바짝 다가가 인기척을 내보지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다. 이 염소는 대체 무엇을 참구하는 것일까. 촬영팀이 풍경 스케치를 하는 동안 내 시선은 오로지 염소에 고정돼 있다. 그만 가자는 재촉에 발길을 돌리면서도 눈길은 쉽사리 돌리지 못한다. 저 깊고 깊은 고독에 경의를.염 선생,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있거든 바람결에라도 소식 한 줄 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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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에서 바라본 하산케이프.

 

분명히 사람 흔적은 있는데 대답은 없다. 나는 지금 동굴집 앞에 서 있다. 3,500개가 넘는다는 동굴 중 하나다. 압둘라의 말로는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소개(疏開) 시켰다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최소한 한 집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 있다. 집 앞에 벽돌을 쌓았거나 난로 연통 같은 인공구조물이 있고 심지어는 안에서 불빛까지 새어나온다. 그렇다면 그냥 갈 수 없지. 작은 문이 달려있는 동굴 앞에서 파르돈(실례합니다)”, “메르하바를 열심히 외쳐본다. 하지만 사람이 나오는 기색이 없다. 닭 팔러 장에라도 가셨나? 그냥 포기할 내가 아니지. 장 선생을 옆에 모셔 두고 다시 한 번 목이 터지게 불러본다. 그제야 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노인 한 분이 나온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장 선생께 인터뷰 허락을 좀 받아달라고 했더니, 이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부터 설레설레 흔든다. 손만 흔드는 게 아니라 아예 등을 돌려 들어가 버린다. 오래된 교각에 깃들어 사는 사람에 이어 두 번째로 인터뷰를 거절당한 것이다. 반에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산케이프 사람들은 왜 이러지?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굴에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동굴 안으로 번잡한 카메라가 들어오는 게 반가울 턱이 있나. 은자(隱者)는 은자로 살게 놔두는 것도 예의일 터.

 

 

동굴의 문.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발길을 돌리는데 옆 동굴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기척을 했더니 청년 하나가 내려온다.

여기 살아요?”

아니요. 저 아랫동네 사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 동생들 하고 놀러왔어요

전에 이 동굴에 살았어요?”

그건 아니고요. 모두 빈집이니까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놀아요. 이 안에 사람이 키우던 비둘기들이 있어서 재미있거든요

“(너 혹시 애들 데리고 본드 하러 온건 아니지?) 저기 사는 할아버지 알아요?”

그럼요. 원래 저 집에서 사냥하며 살다가 아랫동네에서 가족들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다시 혼자 살아요왜요?”

, 이곳엔 일거리가 없어서 가족들이 전부 아다나로 갔거든요. 할아버지는 죽어도 여기서 살겠다고.”

결국 댐이 만들어놓은 이산가족이구나. 마을이 사라진다니까 일거리는 자꾸 줄어들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낚시도 하고 사냥도 하고 가끔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도 떤단다. 그만하면 그렇게 고립된 생활도 아닌데 인터뷰 좀 해주지.

모두 사람이 살던 동굴이다.

사람의 흔적이 있는 건 그 집(동굴) 뿐만 아니다. 상주하지는 않더라도 들락거리기는 사람들은 있는 모양이다. 한 동굴에 들어가니 사람 대신 닭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바위를 위쪽으로 뚫어서 계단을 만들어놓은 동굴로 올라가 본다. 사람이 근래까지 살았던 듯 천장에는 그을음이 그대로 있다. 하긴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동굴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방들은 사각형의 형태를 갖추었고 벽에는 빗살무늬의 정 자국이 나 있다. 오랜 옛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동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전, 도구도 변변치 않았을 시절에 어떻게 이런 굴들을 뚫었을까. 정 자국을 하나씩 쓰다듬으며 계단을 올라간다. 마치 다락방을 올라가는 것 같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이르자마자 내 입에서는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풍경이라니.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을 파 놓았다.

저 아래로 티크리스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앞으로 하산케이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까마득히 먼 곳에는 파랗게 빛나는 초원. 저기 어디쯤에 양들이 풀을 뜯고 있겠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바위들. 내가 가진 언어의 빈곤을 절감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느닷없이 옛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여기서 이런 풍경을 보고 살았을 테니 무엇이 부족했으랴. 동굴에서 내려와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드디어 사람을 발견한다. 한 노인이 마대자루를 메고 터벅터벅 올라간다. 노인을 따라 올라가보니 여긴 또 다른 세상이다. 동굴 앞마당이 축사로 바뀌어 있다. 이곳에서 양을 키우는 모양이다. 노인에게 구경을 좀 해도 되느냐니까 흔쾌히 타맘이다. 구경이랄 것도 없다. 지금은 양들이 모두 풀밭으로 간 시간이기 때문이다.

 

 

동굴에서 청년 하나가 나온다. 수염은 무성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아주 앳된 얼굴이다. 노인의 아들이란다. 이들은 원래 이 동굴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정부 정책에 의해 아랫동네로 이사 간 뒤 이곳에서 양을 키운다. 동굴들 중 일부는 양의 우리로, 일부는 창고로 쓴다. 결국 고향집을 양들에게 내준 셈이다. 동굴은 정부 소유기 때문에 축사로 쓰려면 허가를 받아야한다고 한다. 허가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간단하다.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지요

굳이 여기까지 올라와서 양을 키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양 우리는 냄새도 나고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다른 집들하고 떨어진 곳에 있는 게 좋아요

아버지와 아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들판에 나간 양들이 돌아오기 전에 준비를 마쳐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언덕 아래에서 사료를 등에 지고 올라온다. 노인지만 걸음걸이가 꼿꼿하다. 아들은 나귀를 타고 오르내리며 양들에게 먹일 물을 길어온다.

 

티그리스 강과 하산케이프.

그 단조로운 작업을 구경하고 있자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림자 하나가 강변마을을 서서히 덮는다. 석양이 지고 있는 것이다. 건너편 티그리스 강안(江岸)의 동굴집들이 마지막 햇살을 받아 황금빛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장엄한 그림 한 폭이 눈앞에 걸려있는 듯 황홀하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은 건 이 시간마다 보여주는 저 풍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은 또 지금도 쌓고 있다는 댐으로 이어진다. 저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위대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하산케이프에 며칠만 더 묵으면 화병이 생길 것 같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들판으로 나갔던 양들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목동과 개, 그리고 양과 염소들이 섞여 언덕을 올라온다.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아까부터 누가 양들을 몰고 나갔을까 궁금했는데 눈앞에 그 답이 펼쳐진다. 물을 나르던 청년과 비슷하게 생긴 청년이 목동들 특유의 지팡이를 짚고 걸어 올라온다. 한 눈에 봐도 피를 나눈 형제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에게는 자식이 열 명이나 있단다. 그중에 아들이 여덟이고 딸이 둘인데 아들 중 세 명이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 물을 나르던 청년이 막내고 그 위로 두 명은 양을 몰고 날마다 들로 나간다. 이 지역은 기온이 온화해서 겨울에도 양들에게 풀을 먹일 수 있다.

 

저 동굴 안이 양들의 집이다.

도착하자마자 양들은 양대로 염소들은 염소대로 나위어서 우리로 들어가더니 준비된 사료를 먹는다. 평소에 잘 훈련된 듯 각자 자신들의 자리를 능숙하게 찾아들어간다. 양과 염소를 섞어서 키우는 이유가 있단다. 양들 사이에 염소를 풀어놓으면 염소가 뿔로 양들을 치받는단다. 그러면 양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기가 맛있어진다나?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은 들은 소린데. 메기효과하고 비슷하잖아.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 어항에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생해진다는데. 사람으로 보면 대단한 발견일지 몰라도 양이 들으면 스트레스 받을 애기다. 왠지 인간의 욕심만 차리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

 

 

노인의 일곱째 아들인 메숫은 방송에 관심이 많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사양 한 번 안하고 술술 대답을 잘한다.

아직 젊은데 대처에 나가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런 생각 별로 안 해봤어요. 양을 키우는 게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이고 또 어려서부터 해온 일인데 버리고 갈 수는 없지요

이곳이 좋아요?”

그럼요. 여기서 태어났고 자랐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산케이프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인데 어떻게 생각해요?”

배운 게 없어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랑스러운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모자 상봉을 하는 양들과 양치기 3형제.

또 하나의 아들이 제법 어두워진 언덕길을 올라오면서 들판으로 나갔던 모든 양들이 돌아왔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기서 키우는 양이 250~400마리 쯤 된다고 한다. 양들이 모두 도착하자 일대 장관이 벌어진다. 어미들이 나간 사이에 동굴에서 기다리던 새끼 양들을 풀어놓으니 이게 웬일. 배고팠던 새끼들이 한꺼번에 어미 양을 찾아 달려가는 광경이 눈물겹다. 저 많은 양들이 어떻게 저렇게 제 어미와 새끼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지. 비밀은 고유한 냄새에 있단다. 그러나 예외 없는 원칙이 어디 있어. 몇 녀석은 제 어미를 못 찾고 매애~ 매애~ 난리가 났다. 이상하게 새끼를 피해 도망가는 어미들도 있다. 목동들은 그런 녀석들을 안고 돌아다니며 어미 찾아주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눈물겨운 상봉은 그리 길지 않다. 이별이 길었던 만큼 만남도 길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젖을 다 먹고 나면 또 다시 이산가족이 된다. 밤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재운 뒤 밤새 젖이 불면 아침에 먹이고 다시 초원으로 가는 것이다. 이 계절에는 젖을 새끼에게만 먹이고 봄이 지난 뒤부터 파는 젖을 짠다. 이제는 잠 잘 시간. 동굴마다 양들이 그득그득 들이찬다.

 

엄마, 배고팠어요!!

양들이 잠들었으니 사람도 자러갈 시간이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일곱 째 아들이 바위 위에 올라가더니 신발을 벗고 메카 쪽을 향해 절을 한다. 실루엣으로 눈에 들어온 모습이 경건하고 장엄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어찌 거룩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진정 거룩함은 가난한 곳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등 뒤로 어둠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나는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한다. 가슴에 담을 건 가슴에 담는 게 좋다.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