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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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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에 해당되는 글 31

  1. 2007.09.19 [길섶에서 24] 머위2
  2. 2007.09.05 [길섶에서 23] 이젠 잊어주세요
  3. 2007.08.22 [길섶에서 22] 삼국지
  4. 2007.08.15 [길섶에서 21] 엄마의 마음
  5. 2007.08.08 [길섶에서 20] 봄봄
2007. 9. 19. 17:24 길섶에서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머위’라는 글에 절로 눈길이 멎었다.“잎이 솟아 나올 때 불그스레한 자루와 함께 따서 샘물에 훌렁훌렁 씻은 뒤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쌉싸래한 맛, 독특한 향에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글 쓴 이의 맛깔스러운 표현이 절로 입맛을 다시게 했다.

생각난 김에, 아내에게 머위가 먹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저녁에 집에 도착해 보니 아내는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몇 군데 가봤지만 구경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긴 서울에 그런 게 그리 흔하려고…. 휴일에 재래시장이라도 가보자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는 집 근처 어디든 머위가 지천이었다. 담밑에도 뒤란 언덕에도…. 어머니는 밥을 짓다가도 나가 금방 한 움큼씩 뜯어오곤 했다. 밥상에서 맞이하는 그 쌉쌀한 맛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두렵기도 하다. 인스턴트식품과 자극적인 음식으로 척박해졌을 입에 머위는 아직도 그 때 그 맛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게 한두 가지랴마는….
2005.4.21

posted by sagang
2007. 9. 5. 19:07 길섶에서
‘이제 그만 잊어주세요’ 아침에 지운 e메일 제목 중 하나다. 이 정도는 눈길도 안 줄 만큼 스팸메일에 익숙해졌다. 유혹하는 단어는 이것뿐 아니다.‘re:안녕하세요’는 기본이고 팔자에 없는 ‘오빠’가 되기도 한다. 스팸단어를 설정해서 거를 수도 있지만 중요한 메일을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감수하고 있다.

스팸도 세태나 경기를 반영한다. 요즘은 음란성보다 ‘카드대납’‘저금리 대출’등 사채광고가 많아졌다. 여기도 현란한 문구가 동원된다.‘초저금리’‘당일대출’‘무방문’‘누구나’는 고정 메뉴다. 제목대로라면 돈 때문에 고민할 사람은 없을 것같다.

이런 스팸이 하루에도 수백 통이다. 그렇다고 e메일 의존도가 높은 업무특성상 통째로 지울 수도 없다. 모래에서 사금 고르듯 눈을 부릅뜨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내게 온 메일을 발견하면 금덩이라도 주운 듯 반갑다.

스팸이야말로 문명의 선물에 덤으로 딸려 온 애물단지인 셈이다. 정부의 규제도 한강에 돌 던지기다. “이제 제발 좀 잊어주세요.” 무차별로 살포하는 이들에게 호소라도 하고 싶다.
2005.4.18

posted by sagang
2007. 8. 22. 18:36 길섶에서
삼국지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장수는? 얼마 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에서는 “무력으로만 봤을 땐 여포가 최고”라는 분석을 내놨다. 기사를 읽으며 생각은 과거로 달렸다. 여남은 집에 불과한 산골에서 책이라고 부를 만한 걸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글 깨우친 값을 한다고 그랬는지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는 했다.

오죽하면 누구 집 변소에 찢어진 책이 걸려 있다는 정보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을까. 삼국지를 처음 읽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박종화의 월탄 삼국지였다. 마을 유지 집에서 그 거대한(?) 한 질의 책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이야말로 산삼을 본 심마니의 그것이었다.

절대 더럽히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빌려온 책을 읽기엔 밤이 너무 짧았다.“기름 닳는다, 불 끄고 자라.”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얘기를 동료에게 하며,“요즘 애들은 삼국지 안 읽지요?”라고 묻자 뜻밖의 대답을 한다.“더 열심히 읽어요. 삼국지게임을 잘 하려면 책 읽는 건 필수랍니다.” 목적이야 어떻든 열심히 읽기만 한다면….

2005.4.13
posted by sagang
2007. 8. 15. 18:12 길섶에서
버스 안, 옆자리의 여자는 쉬지 않고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응, 학교 마치자마자 영어학원에 가야 되고…. 그 다음은 컴퓨터학원이라니까. 학습지 선생님은 여덟시쯤 오시기로 했어. 뭐?그전? 그 시간엔 중국어학원에 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선생님 오시면 잘 지켜봐 줘. 첫날이니까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판단해야….”

직장에 다니는 주부인 것 같았다. 자신이 못 챙기는 아이의 공부를 언니에게 부탁하는 모양이었다. 회사에서 늦을 수밖에 없는데, 마침 학습지 선생님이 바뀌는 날이라 누가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학습지 회사에, 언니에게, 아이에게…. 그녀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어서, 시끄럽다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직장은 그만둘 수 없고, 아이의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고. 때문에 학원순례에 학습지까지 시키는 것일 게다. 아이들이란 자칫하면 게임에 빠져 숙제도 놓치기 일쑤니까. 하지만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댁의 아이는 언제 하늘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펴고, 언제 친구들과 손잡고 노래라도 불러보나요? 댁의 아이는….”
2005.4,9

posted by sagang
2007. 8. 8. 18:53 길섶에서
대지의 즙을 흠뻑 빨아들인 은행나무 가지들은 몽글몽글한 잎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부풀어 있다. 성급한 몇몇 나무들은 손톱만한 잎새를 내밀었고, 빌딩 앞 화단의 산수유도 노란 꽃잎을 토해냈다. 날카로운 바늘 끝을 감춘 바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모두가 봄이라고 소리치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하다.

좀 멀리 나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화창한 날씨에 반해 걸어보기로 한다. 이 계절에는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한결 밝아졌고 발걸음들도 가볍다. 등이 휠 것 같은 짐들을 벗어버리고 훨훨 날기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결혼해서 섬에 사는 조카의 전화가 온다.“요즘은 어떠냐?” “좋아요. 지금 봄맞이 산책 중이에요. 운동도 할 겸…. 마음 붙이고 열심히 살기로 했어요.” 낯선 삶터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워하던 아이다. 마음을 바꿨다는 목소리에도 봄의 생기가 듬뿍 묻어있다. 그래, 봄은 가슴에 새로운 희망을 담는 계절이지. 잘 생각했다.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니….
20056.4..6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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