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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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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13. 13:39 길섶에서
버스는 아침마다 만원이다. 교통체계 개편초기의 여유롭던 출근길은 어느덧 옛말이 됐다. 종점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1분이 급한 승객들은 꾸역꾸역 밀고 올라온다.

“위로 올라오세요. 백미러를 봐야 출발할 거 아닙니까.” 기사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난다. “가긴 어디로 가요. 올라갈 데가 어디 있다고….” 맨 뒤에 타서 아직 발판을 벗어나지 못한 승객의 목소리도 뾰족하다.“출발하지 말라는 거요? 어서 비켜요.” “허 참, 주저앉을까요? 누워요?” 오고가는 목소리에 가시가 날카롭다.

“아니, 이 사람이. 아침부터 말투가 왜 그래?” “뭘 어쨌는데요? 그러는 아저씨는 왜 반말을 해요?” “어라? 언제 반말을 했다고 그래? 그리고 자식 같은 사람에게 반말 좀 하면 어때.” “자식들한테나 하세요.” 이제 증오까지 담긴 말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끝없이 질주한다. 왜 다투기 시작했는지 잊어버린 지는 오래다. 버스는 떠날 기미가 없고 시간을 강탈당한 승객들은 답답하다. 이 나라 정치판을 빼닮았다.
20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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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6. 17:19 사라져가는 것들

줄 위의 재담에 웃고 울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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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텅 비었기 때문에 더욱 가득 차 보인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높다랗게 물러선 하늘은 돌이라도 던지면 쨍! 하고 금이 갈 것 같다. 추수가 끝나면서 한숨 돌리나 싶었던 장부자네 너른 마당은 사람들의 발길로 북새통이다. 장부자가 손녀딸 순심이보다 더 아끼고 좋아한다는 놀이마당이 벌어지는 날이다. 그 중에서도 줄타기는 행사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줄타기는 준비하는 과정부터 지켜볼 만 하다. 우선 나무 네 개를 두개씩 X자로 묶는다. 이를 작수목이라 한다. 작수목의 머리를 안으로 향하게 다리를 벌려 뉘어놓고 마당 양쪽에 박아놓은 말뚝에 줄을 맨다. 그런 다음 작수목을 세워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한다. 줄은 질긴 삼(麻)을 삶아 말려 세 가닥으로 꼰 굵은 동아줄이 쓰인다.

아침부터 마당 한켠에 자리잡고 앉은 아이들은 꼼짝 않고 준비하는 과정을 구경한다. 고추잠자리가 손에 잡힐 듯 마당 위를 유영하건만 어느 녀석 하나 눈을 돌리지 않는다. 작업이 다 끝나 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무렵이 되면 아이들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거린다. 이제부터 신나는 잔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놀이패를 불러 흥겹게 한마당을 노는 것이 장부자의 연례행사다.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마을을 드나들 수 없을 만큼 큰 지주인 장부자가 소작인들이나 동네사람을 위해 베푸는 선심이었다.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장부자가 부른 단골 놀이패가 마을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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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는 시골에서는 보기 쉽지않은 구경거리라, 자리보전하고 있는 노인들까지 지팡이를 들고나선다. 어찌 동네사람 뿐이랴. 장부자네 줄타기는 소문이 제법 나서 근동 몇 개 동리의 사람들까지 몰려든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은 몰려든 사람들로 저잣거리처럼 북적거린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로 준비가 끝나면 고사를 지낸다. 다음으로 장구·해금·피리 등을 부는 악사(삼현육각잡이)들이 줄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연주를 하고 줄광대가 음악에 맞춰 줄에 오른다. 한 손에 쥘부채를 쥔 줄광대는 작수목에 오르자마자 쉬이~ 하는 소리로 연주를 중단시키고 관중을 둘러본 뒤 재담을 시작한다. 줄 아래에 있는 어릿광대가 추임새를 넣고 재담을 받으면서 마당에는 서서히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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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장생  :  휴~ 저기서 보기엔 얼마 안 되는 거 같아 마음 푹 놓고 왔다 죽을 똥 쌀 뻔했네.
내 이번엔 네년이 남의 집 서방하고 붙어먹다 들켜 허겁지겁 도망가는 걸음을 뵈줄테니 한번 볼테냐?
하고는 아낙네들 치맛자락을 잡듯 도포자락을 잡고 잰걸음으로 쪼르르 달려 맞은편 끝에 가 선다.
공길 :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똑 떨어져 뒤질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장생 : 내 이제 신나게 한판 놀아 볼 것인데, 이 모습을 보면 처녀 할미 할 것 없이 정신이 팔려 사내가 아랫도리를 훔쳐도 모르니 네년도 아랫도리 단속 단단히 하고 보거라.
공길 얼른 아래춤을 손으로 가린다.
구경꾼들 웃는다.
장생 성큼성큼 줄 위를 걸어 가운데로 와 허궁제비(줄을 튕겨 다리사이로 앉았다 오르기)를 한다.
공길 : 아이고 이놈아, 니 다리사이 두 동네가 한 동네 되것다. 
장생 : (멈추더니) 아이고, 이년아. 두 동네고 한 동네고 간에 똥꼬가 저릿저릿한 것이 오줌이 마려워 못 놀것다. 내 오줌이나 한번 싸고 계속 놀련다.(바지춤을 풀고 내릴 시늉한다) (후략)
[영화 '왕의 남자' 도입부 대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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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광대가 줄 위에서 하는 동작은 다양하다. 걷는 것은 기본이며 뒤로 걸어가기, 한 발로 뛰기, 걸터앉고 드러눕기…. 때로는 재주를 넘고 떨어지는 척 해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또 중타령, 새타령, 왈자타령 등 갖가지 노래를 곁들이거나 파계승이나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관객을 웃긴다. 또 바보짓이나 화장하는 모습들을 흉내내기도 한다. 놀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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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구경꾼들은 잠시도 시선을 떼지 못한다. 오줌보가 탱탱해져도 발을 동동 굴러가면서 자리를 지킨다. 줄광대의 재담에 배꼽을 잡기도 하고, 떨어지는 흉내라도 내면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한다. 그렇게 줄타기 마당은 자지러지는 웃음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이 어우러지며 고비를 넘는다.

줄타기는 원래 서역(西域 중국의 서쪽, 현재의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수·당 시대에 성행하였고, 한반도에는 신라 때 전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사당이라는 떠돌이 예능인이 혼인·생일·환갑잔치 등에 불려가 줄타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 들어와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특별한 행사 때 공연되거나 보존단체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긴 지금은 줄타기가 어울리는 시대는 아닐 것이다. 볼거리가 넘쳐나니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 힘든 수련과정을 견딜만한 지원자도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잠깐이긴 했지만, 2005년 말에 개봉된 영화 '왕의 남자'가 히트한 것을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세월을 따라 줄타기가 무대 뒷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줄 위에서 흘렸던 광대들의 땀과 눈물이야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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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 6. 17:18 길섶에서
옷섶을 거칠게 헤친 칼바람은 늑골까지 파고들 정도로 집요하다. 배달 갔던 아들이 동동걸음으로 돌아오자 노모는 트럭의 조수석으로 올라가 한기를 던다. 아들은 쉴 틈도 없이 익은 통닭을 꺼내고 새 닭을 집어넣는다. 두 사람 다 볼이 퍼렇게 얼어있다.

동네 어귀에 저녁이면 전기구이통닭을 파는 트럭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아들 혼자 장사를 하더니 배달 주문이 잦아지면서 노모가 따라나오기 시작했다. 전기구이는 장작구이와 달리 굽는 사람에게 온기를 주지 못한다. 다행히 장사는 꽤 잘돼, 통닭을 사려면 한참씩 기다려야 한다.

며칠 전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통닭 할머니가 아들 중매 좀 서라네.” “아들? 그 사람이 아직 결혼을 안 했어? 나이가 꽤 들어 보이던데?” 노인은 안면이 익은 사람을 만나면 아들 장가 좀 보내달라고 하소연한단다.

나이 40이 다 되도록 색시감이 없어 걱정이라면서. 개진개진 젖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새 봄에는 통닭 트럭 옆에서 노모 대신 새색시를 볼 수 있기를….
20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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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30. 18:37 사라져가는 것들

청춘남녀가 사랑을 나누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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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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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계집은 손을 빼려고 하며, "점잖으신 어른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하면서도 그의 몸짓에는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 보였다. 영감은 계집의 몸을 끌어안더니 방앗간 뒤로 돌아 섰다. 계집은 영감 가슴에 안겨서 정욕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보면서, "영감." 말 한번하고 침 한번 삼키었다. "영감이 거짓말은 안 하시지요?" "아니." 그의 말은 떨리었다. 계집은 영감의 팔을 한 손으로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방앗간 속을 가리켰다. "저리로 들어가세요." 영감과 계집은 방앗간에서 이삼십 분 후에 다시 나왔다. (나도향의 '물레방아' 중에서)

우리 문학작품이나 옛이야기 속에는 물레방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위에 예를 든 소설 외에 시나 노래에도 물레방아는 단골 메뉴다. 가수 조영남이 Proud Mary를 번안해서 불렀던 '물레방아 인생' 이라는 노래 중에 '세상만사 둥글둥글/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정처없이 이곳에서 저 마을로/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대목은 왜 물레방아가 우리네 백성과 왜 그리도 친했던지 단초를 보여준다. 어차피 삶이란 물레방아 같은 게 아니던가. 구비를 넘고 산모롱이를 돌고 돌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가진 것 없고 힘도 없던 이 땅의 민초들이 욕심을 내어본들 무엇하랴. 그저 주어진 여건대로 둥글둥글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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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물레방아는 곡물을 찧는 것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레방앗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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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사랑'을 나누거나 '밀회'를 하는 장소로 주로 쓰여진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생원의 하룻밤 사랑이 그랬고, '물레방아'의 신치규가 남의 여자를 상대로 욕망을 푼 곳 역시 물레방앗간이다. 문학작품뿐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빈번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밀회를 위한 장소로 물레방앗간 만한 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레방아가 물길을 따라가다 보니 마을 어귀나 민가와 좀 떨어진 곳에 있기 마련이었다. 또 잔치 같은 게 있을 때나 쓰였고, 그것도 주로 낮에만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남들의 눈을 피하는데는 안성맞춤이었을 터이다.

물레방아 구조는 크게 물레 부분과 방아 부분으로 나눠진다. 물레는 말 그대로 쏟아지는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수차를 말한다. 물레 좌. 우에 십자목을 설치하여 물레가 돌아가면서 생산한 에너지로 방아를 찧는 것이다. 방아공이와 곡식을 담는 돌확은 방앗간 안에 있다.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 즉 물레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면서 공이로 돌확에 담긴 곡물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동작이 자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방아를 찧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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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삶의 주변에서 물레방아를 볼 수 없게된 건 오래 전이다. 동네마다 기계식 도정시설인 방앗간이 들어오게 되면서 대부분 퇴출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물레방아를 보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지자체 등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하는 것은 물론, 장식물로 물레방아를 달아놓은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물레방아가 아니다. '방아'가 없이 수차인 '물레'만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물레도 물 대신 전기의 힘으로 돌아간다. 그거라도 볼 수 있으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서글퍼 해야할지. 전시용 물레방아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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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많이 생긴다 해도 물레방앗간의 정서야 다시 돌이킬 수 있을까. 으슥한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을 나눌 돌이와 순이가 사라진지 오래이거늘.

[취재를 하면서] 오리지널 물레방아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전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진짜'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강원도 정선 백전리라는 곳에 아직도 곡물을 찧는 물레방아(사진 맨 위)가 있다고 하여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곳의 물레방아 역시 '현역'은 아닌듯, 물줄기를 맞으며 세월을 관조하고 있었습니다. 물레는 힘차게 돌아가고, 방앗간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정작 방아는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명절 같은 때만 가동할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진짜 물레방아가' 눈물겹게 반가워, 오래 그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람이 차갑게 부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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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30. 18:36 길섶에서
“이번엔 잘 좀 됐으면 좋겠네.” 아내의 목소리에 걱정이 그득하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아내의 시선은 풍선이 주렁주렁 매달린 빵집에 가 있다. 그러고 보니 무심히 지나친 며칠 사이 간판이 바뀌어 있다.

빵집은 몇 달 사이에 세 번째 주인을 맞이했다. 처음의 젊은 부부는 꽤 버티는 듯하더니 어느 날 가게를 넘기고 떠났다. 그걸 인수받은 중년부부는 모든 게 어설퍼 보였다. 빵을 구울 줄 몰라 제빵기술자를 고용하고, 장사도 초보 티가 역력했다. 명예퇴직을 하고 퇴직금을 투자해 차린 것 같았다. 손님을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는 부부를 볼 때마다, 아내는 자신의 일인 양 한숨을 짓고는 했다. 결국 두어 달도 못 버티고 넘긴 모양이었다.

아파트단지 규모로 볼 때, 빵집이 들어선 자리는 누가 봐도 장사가 잘 될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싼 임대료 때문인지 계속 새 주인이 들어온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살피면 실패 확률을 훨씬 줄일 수 있을 텐데.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의 안위에 대한 초조감이 판단력을 반감시키는 것일까. 발걸음이 무겁다.
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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