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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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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9. 18:48 길섶에서
모처럼 찾은 근교의 고모 댁, 노인은 초겨울 햇살 아래 앉아 텃밭의 푸성귀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가꾼 것들과 이별을 늦추고 싶어서 수확을 미룬 게 틀림없다. 출가한 딸들은 멀리 살고 아들마저 이국땅으로 떠난 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존재는 그들뿐이다.

마당을 서성이던 고모가 헛간 지붕을 가리킨다.“다른 건 다 손이 닿는데 저 녀석 하나만은 어쩔 수가 없어. 한 번 좀 올라가봐.” 슬레이트 지붕 위엔 한아름은 될 듯한 누런 호박이 몸집을 자랑한다. 지붕이 꺼질세라 조심조심 끌고 내려오는데 등에 진땀이 흥건하다.

“왜 이 놈만 높은 곳에 열려 가지고…. 못 올라가게 좀 말리시지.” 땀을 훔치며 투정하는 조카에게 고모는 웃으며 대답한다.“씨를 뿌리고 키우는 일이야 농사짓는 사람 몫이지만, 자리를 잡는 거야 일일이 간섭할 수 있나. 자식도 마찬가지야. 품을 떠난 뒤엔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거지. 하지만 걱정이야 왜 안 될까. 저 곳은 봄에 새 생명을 틔울 데도 못되니….” 시선을 지붕에 둔 노인의 목소리에 습기가 촉촉하다.
200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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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2. 19:08 사라져가는 것들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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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의 붉은 대추만큼이나 물씬 익은 가을이, 하늘 가득 그림을 그렸다. 말·기린·코끼리·원숭이… 아이가 든 주전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 화살처럼 빠른 빛을 되 쏜다. 아이의 발길은 날기라도 할 듯 가볍다. 하지만 주전자 속에 든 막걸리가 새어나오기라도 할세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아이의 집에서 지붕을 올리는 날이다. 아버지는 추수가 끝나면서부터 마당 한켠에 쌓아둔 짚단 옆에서 이엉을 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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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시작했다. 그렇게 엮은 이엉둥치들이 마당을 그득하게 메울 무렵, 동네아저씨들이 이른 아침부터 아이 집에 모여들었다. 농투사니(농투성이)라면 이엉쯤 혼자 엮는 건 일도 아니지만, 지붕을 올리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는 지붕 올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붕을 올리는 날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부침개 몇 쪽은 부치게 마련이다.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토요일이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막걸리 심부름부터 한 참이었다. 아버지와 동네아저씨들은 어느새 이엉을 다 얹고 용마름 덮는 작업을 한다. 용마름은 이엉이 맞닿는 마루를 덮는 것으로서 초가를 이는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짚을 틀어서 터진 갓처럼 만들어 올린다. 아저씨들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손발이 척척 맞는다. 용마름을 다 덮으면, 이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고삿을 맨다. 다 올린 지붕이 보름달처럼 밝게 빛난다. 집이 새로 지은 듯 훤하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집 주변을 뺑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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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백성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던 초가집은 1970년대 '새마을노래' 2절과 함께 우르르 사라졌다. 그래서 농촌도 둥그런 초가집 대신 울긋불긋한 함석집이 주인노릇을 하게 되었다. 편리하기야 매년 바꿔줘야 하는 초가집이 반영구적인 함석집을 따를 수 있으랴.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찌 편리함으로만 재단될 수 있을까. 초가집은 잘난 체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둥그런 앞산·뒷산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산이 지붕이고 지붕이 산이 되어 서로 얼싸안고 내닫던 우리네 고향풍경. 초가나 산이나, 고난 속에서도 둥글둥글한 심성을 잃지 않았던 이 나라 백성을 닮았다. 초가집은 배타적이지 않았다. 모든 걸 품어 안을 줄 알았다. 초가지붕 속에는 참새가 둥지를 틀었으며, 어느 집은 업이라 불리는 구렁이가 상주하기도 했다. 몇 년씩 묵은 지붕은 굼벵이들의 삶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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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으로 따져도 뛰어난 점이 많았다. 속이 비어 있는 볏짚은 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햇볕의 뜨거움을 덜어주고 겨울에는 집 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 그리고 볏짚은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내리므로 두껍게 덮지 않아도 비가 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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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초가집은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어머니의 흰머리 같은 존재였다. 때론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과도 같아서, 도시에 있어도 가슴속에서 항상 펄럭대던, 그래서 뜨겁게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고향으로 가는 길, 언덕에 올라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초가지붕을 보노라면 가슴이 울컥 뜨거워졌던 기억이 어찌 몇 사람만의 소유일까.

강제적 지붕개량사업이 아니었더라도 지금까지 초가집이 남아있을 리는 없다. 해마다 갈아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그러잖아도 일손이 없는 농촌에서 초가집을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운 건 그리운 것이다. 초가지붕의 그 따뜻한 발색. 부드러운 곡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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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2. 19:07 길섶에서
휴일 아침의 산책은 느긋함을 동반할 수 있어 좋다. 겅중거리며 곁을 따르는 작은아이의 재잘거림도 산새소리만큼이나 흥겹다. 산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서울 외곽에 정착한 지 10년. 이젠 등을 떠밀어도 못 떠날 것 같다.

산 어귀로 접어드는 순간 아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진다.“와! 저게 뭐지?” 두 평이나 될까. 누군가 공터를 일궈 물을 대고 벼를 심었다. 추수기가 지난 벼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의 감탄사를 끌어낸 건 벼보다 논가의 허수아비다. 손이 많이 간 듯 제법 정교하다. 논을 가꾸고 허수아비를 세운 사람은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지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가슴에 와닿는다.

얼마 전 서울시가 어느 동네든 집에서 5분 이내에 공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는 ‘환경비전’을 발표했다. 정책입안자에게 허수아비가 서있는 작은 논을 보여주고 싶다. 좋은 환경은 비싼 잔디와 번듯한 나무로만 꾸미는 건 아닐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너와 내가 아닌 하나되어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 그게 본질이 아닐까. 허수아비 하나에도 감동하는 사람들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20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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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5. 19:01 사라져가는 것들

화덕 있던 자린엔 잡초만 무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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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살던 마을의 조씨네 대장간은, 거북고개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장장이 조씨의 집이자 일터인 대장간은 누가 파먹고 버린 게딱지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눈 밝지 못한 외지사람은 못 알아보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움막 같은 대장간도 막상 들여다보면 필요한 건 모두 갖추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웃통을 벗어붙인 조씨가 땅땅거리며 쇠를 아우르거나 치익치익 소리를 내며 담금질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먼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는 조씨의 모습도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씨익~ 한번 웃어주는 게 조씨의 인사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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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홀아비였다. 원래 홀아비였던 것은 아니고, 그의 아내가 어느 날 새벽 갓난아이를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 뒤 홀아비가 되었다. 어른들이 수군수군 한 이야기를 주워 모아 엮어보면 그랬다. 어른들은 조씨가 좀 모자라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꽤 오랫동안 '모자라다'는 말이 '착하다'는 말과 같은 줄 알았다. 대장장이 조씨가 젖동냥으로 키운, 아내가 떨구고 간 혈육은 커서 그의 조수가 되었다. 조씨의 '훌륭한 조수' 만복이는 아이와 동갑이었다. 만복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대신 대장장이 아버지로부터 풀무질 하는 법이나 쇠 잡는 법을 배웠다.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풀무를 돌리는 만복이가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누룽지 따위를 주고 역할을 바꿀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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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주 대장간에 들렀다. 어린 아이가 대장간에 볼 일이 있을 턱은 없었다. 대장간 앞에 멀찌감치 쪼그리고 앉아서 조씨가 일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했다. 아이 눈 속에 들어온 조씨는 마술사가 되었다. 뭉뚱그려지고 닳고 못 쓸 것 같았던 낫이나 괭이나 도끼, 보습이 그의 손을 한번 거치면 날이 씽씽하게 선 새것이 되었다. 아이는 그 과정이 좋았다. 쓸모 없을 것 같았던 쇳덩이가 괭이가 되고 칼이 되는 과정을 보는 건 산수문제를 풀고 국어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파란 불꽃 속에 몸을 담그고 나온 쇠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쇳덩이를 앞에 두고 옷을 벗어 던질 때마다 조씨의 어깨와 팔뚝의 근육들이 아우성치며 일어섰다. 아이는 그럴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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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에서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집게로 꺼내어 모루 위에 얹어놓고 쇠메를 내리치며 모양을 만들어 나갈 땐 오줌이라도 질금질금 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끝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조씨의 작업은 단조롭게 반복되었다. 쇠메질을 어느 정도 하면 물에 담그고, 그것이 식으면 다시 화덕에 넣어 풀무를 돌리고, 그렇게 달궈진 다른 쇠를 꺼내어 쇠메질을 하고….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원하는 모양이 갖추어지면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우고 자루를 끼우면 낫이나 도끼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쇠를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하는 과정 속의 조씨는 마치 신내린 무당 같았다. 아무 잡념도 번뇌도 없는, 무아지경 속에 있는 이처럼 거룩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커서 조씨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어쩌면 쇠를 두드린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두드리고 담금질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살아도 살아도 헛헛하기만  한, 가슴속의 바람구멍 같은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렇게 두드려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가 성인이 되어 막연한 그리움을 안고 고향을 찾았을 때 대장간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움막 같던 그의 집과 풀무와 모루, 그리고 조씨와 그의 아들 만복이가 있던 자리에는 풀만 무성하게 자라 바람결에 고개를 휘휘 내젓고 있었다. 그들이 있었다는 존재 자체를 부인이라도 하듯… 어느 시골마을이나 그렇듯 지나다니는 강아지 한마리 없어 그들의 행방을 물을 길도 없었다. 어른이 된 아이는 하릴없이, 이제 이 나라에서 대장장이를 찾기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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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5. 18:58 길섶에서
그를 청년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다.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다. 잠시도 가만있을 틈이 없는 그는, 초겨울 바람이 문턱을 넘은 요즘도 반팔 티셔츠 차림이다. 그는 바쁜 움직임 속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숙여 인사한다. 입가엔 미소가 봄꽃처럼 환하다.

청년은 신문사가 있는 빌딩 지하 3층에서 구두를 닦는다. 건물 곳곳을 누빈 지 벌써 10년이 가깝다. 20층 건물 중 8층까지가 그의 ‘영역’이니 꽤 넓은 셈이다. 그가 하루에 만나는 구두는 보통 150켤레다. 그래서 빠른 걸음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친 구두에는 구두약보다 더 진한 정성이 묻어 있다. 주인에 따라 더러는 험상궂고 더러운 구두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꼼꼼히 문지르고 광을 낸다.

프로는 야구장이나 골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다. 자신을 ‘시장’에 내놓고도 상품성을 높이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 일이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그 속에서 청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200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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