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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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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3. 16:49 길섶에서
연말이 되면서 각종 모임이 잦아진다. 그 중 가장 반가운 건 역시 초등학교 동기모임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흰머리와 처진 어깨에 이고 지고 모이지만, 마음은 냇가에서 물장구를 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갈수록 줄어 이젠 많이 모여야 스무명 안팎이다. 여름에는 고향으로 가고, 겨울에는 시골 친구들이 서울로 온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소풍가듯 모여 기차를 타고 온다. 그들에게는 고향 뒷산의 솔바람과 흙냄새와 새소리가 묻어서 온다. 마디마다 옹이가 박힌 손을 잡으면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가슴속에서 걸어나온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농사로 시작된다. 올 수확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옆자리의 친구는 씁쓸한 웃음부터 베어문다.“배추 농사는 망했어. 한포기에 100원씩이라는데, 그나마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갈아엎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배추를 갈아엎을 때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친구는 의연하다.“걱정 마라. 굶어죽기야 하겠냐. 내년에 제대로 하면 되지.” 그 와중에도 ‘내년의 희망’을 얘기하는 친구의 잔에 술이나 채울 뿐이다.
200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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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3. 16:47 길섶에서
“혹시 기억하실지, 얼마 전에….” 전화를 받은 건 점심무렵이었다. 기어들어 갈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두어마디 들어보니 누군지 금방 기억이 난다.“그 날 하도 고마워서 잠깐 인사나….” 별일도 아닌데 그럴 필요없다고 몇차례 사양해보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만다.

일이 좀 늦었던 날,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주름살 깊은 기사는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하소연하듯 털어놓았다. 남의 얘기가 아닌지라 절로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그러다 잠깐 졸았던지, 눈을 떠보니 택시는 엉뚱한 곳을 달리고 있었다. 차를 돌려 집 앞에 도착한 뒤 미터기에 나온 대로 돈을 건네자 기사는 극구 손사래를 쳤다. 더 나온 만큼 빼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길 안내를 못한 죄도 있다며 끝내 거스름돈을 받지 않자, 명함이라도 한 장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 앞에서 만난 그는 환한 얼굴로 “손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일할 맛이 난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러더니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떠맡기다시피 하고는 바쁘게 사라진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서로 기대어 온기를 나누는 일은 결코 포기할 게 아니다.
200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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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19. 18:27 사라져가는 것들

염부의 땀, 육각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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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에 살면서 먼 세상을 꿈꾸던 바닷물이, 어느 햇살 좋은 날 한반도 서해안으로 나들이를 나온다. 사리 때를 손꼽아 기다리던 염부는 바닷물을 퍼 올려 넓은 염전에 냉큼 가두어 넣고 나갈 길을 막아버린다. 바닷물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이글이글 불타는 여름의 태양은 바닷물을 뜨겁게 달군다. 바닷물은 서서히 졸아든다. 비명을 질러보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물이 조금씩 줄면서 염도는 점점 높아지고 진득한 소금물이 되었다가 결국은 육각의 하얀 결정체가 태어난다. 소금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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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흘리는 염부들의 땀은 갓 만들어진 소금만치나 짜디짜다.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증발시키고 소금을 거두고 창고에 쌓기까지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온몸을 뜨거운 태양아래 고스란히 내맡겨야한다. 염부의 야윈 몸이 까맣게 탈수록, 더욱 하얗고 맛좋은 소금이 태어나는 것이다. 더구나 소금을 만드는 과정이 매번 순서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뜬금없이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염부들은 마음까지 까맣게 탄다.

소금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가난했던 시절, 촌부들의 소원 중 하나는 소금을 온전한 포대로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다. 소원으로 말하면 어찌 소금뿐이었을까. 겨울나기에 지장 없을 만큼의 양식, 어린 자식들 춥지 않게 할 만큼의 땔감…. 소금은 그 자체로도 음식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1년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간장과 된장 및 김장을 담그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소금에서 나온 간수는 두부를 만드는데도 없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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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소금도 무조건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땐 약이 되고, 어느 땐 독이 되기도 한다.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은 혈액과 체액의 양을 적절히 유지하게 하고 산과 알칼리의 균형을 지켜준다. 또 세포에 영양분이 흡수되는 것을 돕고 신경계의 신경전달신호와 근육이 수축할 때 절대 필요한 성분이다. 소금을 너무 적게 섭취하면 신진대사가 마비되고 혈압이 떨어져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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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게되면 고혈압으로 인한 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 암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위 속에서 소금농도가 높아지면 위를 보호하는 점막이 파괴되어 위가 헐고 염증이 생기게 되어 암으로 진전될 수 있는 위축성변화가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골다공증과 요로결석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이런 경우는 그 좋은 소금이 독이 되는 것이다. 과해서 좋을 것은 없다는 진리가 통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 많던 염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은 바다에 가도 염전을 구경하기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던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세월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가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중국산 싼 소금에 뒷덜미를 잡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남은 염전들도 어느 곳은 생태공원으로 어느 곳은 광광코스의 하나로 변해가고 있다. 하긴 그렇게라도 남아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고마워 해야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바닷물이 하얀 소금이 되는 그 경이로운 과정을 실험실에서나 보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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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
2007. 4. 19. 18:26 길섶에서
헐떡이는 숨을 고르느라 다리쉼을 하는 참에 은은한 빛살 하나가 눈에 닿는다. 도봉산을 오르다 보면 원통사라는 오래된 절을 만난다. 절 한편에는 작은 채마밭이 있고 무, 배추가 김장을 기다리고 있다. 빛을 따라 눈을 돌려 보니, 밭둑 풀숲에 어린아이 주먹보다 더 작은 호박 하나가 숨어 있다. 솜털이나 벗었을까. 여리디여린 아기호박이다. 모두가 이별을 준비하는 이 늦가을에 태어난 새 생명이라니.

지금은 어느 식물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에 늦은 계절이다. 남들이 한살이를 마치고 내년을 기약하는 때가 아닌가. 하지만 아기호박은 찬바람 속에서도 밝게 빛난다. 겨울쯤이야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삶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줄기와 잎도 계절을 잊은 채 어린 생명을 위해 물을 길어올리고 날카로운 늦가을 햇살을 걸러준다. 그들은 여전히 푸르고 활기차다.

우리네 인간은 호박 하나만도 못하다는 생각에 쉽사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우린 얼마나 주변 탓을 많이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신보다 늦거나 못하다는 이유로 남을 비방하고 비웃기를 일삼는…. 극복보다는 걱정부터 하느라 밤을 지새우며 한숨이나 쏟아내는….
2004년11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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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12. 19:06 사라져가는 것들

풀수록 신나는 추억의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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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대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박치규 선생님이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 아니, 나타난 정도가 아니라 생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출입이 찾아졌다. 그는 내가 다니는 읍내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총각 선생님이었다. 내 상식으로 박 선생님이 우리 동네에 출현할 이유는 누에씨만큼도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가정방문이 있을 턱도 없었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내가 모르는 가정방문이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소문은 잘 익은 보리들을 간지럽히며 지나는 바람을 타고 금세 온 동네에 퍼졌다. 선생님이 맞선을 본 여자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여자가 다름 아닌 빨간기와집 순자누나라는 소식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담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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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소문은 두어 주일이 지날 무렵 친구 상길이가 전해줬다. 상길이는 그날따라 아주 은밀한 목소리로, 아끼던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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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도 나눠주듯 그 소식을 전했다. 박 선생님이 우리 동네를 다녀갈 때마다 보리밭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유 없이 밭 한가운데의 보리들이 땅바닥에 눕기도 하고, 사람 한 둘이 누울만한 공터가 생기고…. 그 날 이후에도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골목길을 배회했다. 누군가가 박 선생님과 순자누나가 보리밭에서 같이 나오는 걸 봤다느니, 그 때 순자누나의 옷에 지푸라기가 잔뜩 묻었더라느니…. 그 해 가을, 박 선생님과 우리 동네의 가장 예쁜 처녀 순자누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순자누나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바람결을 타고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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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에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보리밭은, 언제 풀어도 신나는 일이 툭툭 튀어나오는 추억의 보따리일 것이다. 보리밭은 그 혹독한 겨울의 추위 속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여리고 때로는 흔들리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민초들의 희망처럼. 봄이 되면 잔설을 뚫고 웅성웅성 올라오는 보리들 사이로 달래, 냉이 등 나물이 얼굴을 내민다. 나물 뜯는 보리밭의 누이들은 아름다웠다. 보리가 조금 자라면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언덕에 누워 보리밭 사이로 총알처럼 솟아오르는 종달새를 보며, 하늘을 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뱃가죽이 등에 닿을 무렵이면 잊지 않고 보리는 익어갔다. 아이들은 자나깨나 배가 고팠다. 밀서리 보리서리에 빠진 아이들의 입 주변은 늘 거뭇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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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했다.

지금은 농촌에 가도 보리를 보기가 쉽지 않다. 거의 심지 않기 때문이다. 보리의 수요가 없기도 하지만, 벼를 벤 자리에 보리를 뿌리는 이모작을 할 만큼 그악스럽게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그래도 보리밭을 보고싶은 이가 있으면 남도 땅으로 가면 된다. 경남 하동이나 전남 보성, 벌교, 순천 등 넓은 벌을 지나노라면, 지금도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가 손짓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리타작을 할 때는 온 들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찬다. 보릿짚을 태우는 연기다. 길가에 서서 가만히 보노라면 그 연기 속에 우리들의 추억이 성큼성큼 걸어나온다. 박치규 선생님이나 순자누나, 그리고 나물 뜯던 누이들, 장난꾸러기 상길이가 손을 흔들거나 활짝 웃으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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