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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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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4. 17:39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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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정말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까?
조롱에 갇힌 새들은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일까?
"새는 인지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유나 속박 따위를 느낄 수 없으며…."
이런 구구단 같은 대답으로 만족할 만한 명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럴 때마다 궁금증의 터무니없는 증식을 막기 위해 하는 일이 기껏, 인간의 사고 틀에 몰아넣어 결론을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마음먹기 나름이야"
새장 안에서도 자유를 노래하는 새가 있고, 하늘을 날면서도 속박에 몸부림치는 새가 있을 것입니다.
속박에 몸부림치는 새에게는 어차피 끝없는 우주도 커다란 조롱에 불과하겠지요.
결국 자유와 속박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게,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내리는 결론입니다.
누구나 아는 흔한 경구 같은 결론이지만, 흔하다는 건 그만큼 진리에 가깝다는 뜻도 되겠지요.
강화도에서 석모도를 오가는 배를 타면 엄청나게 많은 갈매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배를 따라 하루종일 부지런히 오갑니다.
그 곳의 갈매기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새우깡입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한 치열한 경쟁속에서 더 높은 세상을 꿈꿀 틈이 없어보입니다.
그들에게는 새우깡이 조롱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불쌍하거나 불행하기만 한 존재이고, 새우깡 따위는 무시하고 조나단처럼 높게 날아오르는 갈매기만 행복할까요?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세상은 빛과 그림자로 짠 직조물입니다.
밝음 뒤에는 분명히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 반대쪽에는 밝은 빛이 있습니다.
조롱에 갇힌 새를 보고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조롱 속이 바람과 비, 천적으로부터 얼마나 안온한지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철새의 자유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비바람에 날개가 부러지고 낙오한 새의 눈물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지금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진은 대왕암 갈매기들입니다.

posted by sagang
2007. 12. 26. 18:44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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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에 들렀다 계림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경주는 4계절 중에 가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오래된 숲은,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따그닥거리며 달려오는 마차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첨성대가 서있고 가운데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재 너머 아들네 집이라도 다녀오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관광객을 마차에 태우고 왼쪽에서 달려오는 말(馬).
누가 일부러 꿰어 맞춰놓은 듯한 구도였습니다.
1000년의 세상을 구경했을 돌탑(제 눈엔 돌탑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과, 100년 안쪽의 삶을 등에 진 노인, 그리고 다섯 손가락이면 살아온 날을 헤아리고도 남을 말.
애당초 근본도 다르고 살아온 세월도 다른 대상들이 만나, 헛헛하던 나그네에 가슴에 따뜻하고 조화로운 그림으로 들어앉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질적 존재=배척 대상'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였기 때문에 더 조화로운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받아들여 어깨를 겯고 함께 걷다보면 미운 사람도 예뻐 보이게 돼 있습니다.

'관계'까지 헤아릴 능력이 안 되는 제 카메라는, 그 날 마음에 드는 풍경 하나를 만나 나름 바빴습니다.

posted by sagang
2007. 12. 5. 17:29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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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역마살이라고도 하고, 누군 가슴의 열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타박을 하기도 합니다.
틈만 나면 배낭 하나 꾸려 집을 떠나는 저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길을 걷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사람들 틈에서도 특별히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길가의 나무 한 그루 돌 하나가 모두 피붙이처럼 정겹습니다.
가끔은 감정의 부풀림이 지나쳐,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그대로 스러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나그네병에도 아킬레스건은 있습니다.
저녁 무렵에 특히 약합니다.
서쪽 언덕이 붉게 물들어가고 바람이 스산하게 불면 괜히 마음이 흔들립니다.
묵을 곳은 정해놓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어둠이 밀려오는 겨울날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저 사진처럼, 하얗게 사위다 지친 억새나 산골마을의 저녁 연기라도 만나는 날이면 통곡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서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저 곳은 경북 영덕읍 창포리 강축도로(강구와 축산간의 해안도로)  언덕에 있는 풍력발전소입니다.
특별히 작정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고 지나던 길에 우연히 들러본 곳입니다.
아름다웠다는 기억은 시간이 가도 흐려지지 않습니다.
아프고 외로웠던 날도 아름다움으로 기억할 만큼 세상을 살아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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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27. 18:32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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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럽니다.
슬픔이 뇌수에 박힌 사람은 슬프다 말하지 못하고,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 사람은 외롭다 말하지 않는다고.
쓸쓸함도 그러하겠지요?
가슴이 턱 막힐 정도로 쓸쓸한 광경 앞에 서면 쓸쓸하다는 말은 저만치 달아나 버릴 겁니다.
하지만 저는 소리내어 쓸쓸하다 말하겠습니다.
쓸쓸함이 말이 되어 나올 때, 쓸쓸함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모양을 갖추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모양 잘 갖춘 쓸쓸함을 어디 쓸 거냐고요?
나누려고요.
서울 근교에, 주변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살짝살짝 다니는 조그만 절이 있습니다.
삶의 무게로 등이 휠 것 같은 날이면 그 절에 가서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쓸쓸함에 푹 젖어 돌아옵니다.
가끔 다람쥐나 들러갈까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감나무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한 절입니다.
스님들은 가을이 되면 곶감을 만들어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깎을 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햇살이 자리를 펴는 대로 양지바른 곳만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눈물이라도 날만큼 쓸쓸해지면 산을 내려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아온 쓸쓸함을 조금씩 나눠줍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이라도, 계절이 이리 오고가는데 쓸쓸함 한번 느끼지 못한다면 반쪽의 삶일 뿐이라고….
소금간만으로는 음식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듯이 슬픔과 외로움, 쓸쓸함도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무척 어두운 저 사진은 그 절에서 찍은 것입니다.


posted by sagang
2007. 11. 27. 18:02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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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에 찍은 주산지입니다.
특별히 잘 찍지도 못한 이 사진을 소개하는 건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산지는 풍경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10월말에서 11월 초 사이 단풍이 절정으로 타오를 때 주산지의 아름다움도 절정에 달합니다.
특히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의 풍경은 '오줌을 지릴'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저 역시 물안개를 만나러 그 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날 낮에 사전답사 겸 들렀다가, 써 붙여 놓은 안내문을 보고 다음날로 예정된 새벽촬영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올해부터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촬영이 허용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왕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랍니다.
버들이라고 해서 우습게 알면 안됩니다.
아름드리 버들이 물 속에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보호해 보겠다고 목책을 둘렀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데크는 아주 협소했습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수백 명의 사진쟁이들이 다 들어가기엔 어림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간 낮에도 목책을 넘어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새벽에는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땐 유달리 극성을 부리는 제 안의 욕심과, 정해놓은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 사이의 싸움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입니다.
즉, 새벽 컴컴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목책을 넘을 테고, 저 역시 그 유혹에 시달릴 게 뻔합니다.
하지만 목책을 넘는 건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역시 분명한 일입니다.
그렇게 갈등하는 제가 미워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새벽촬영을 포기하고 그냥 기념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목책을 넘지 않은 건 잘한 게 분명한데, 그 곳까지 가서 새벽촬영을 포기한 게 정말 잘 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 사진관련 사이트에서는 주산지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목책을 넘은 사람들이 몰매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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