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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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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에 해당되는 글 17

  1. 2007.11.26 [이야기가 있는 사진 1] 대왕암 오징어8
  2. 2007.11.25 [이야기가 있는 사진 3] 노인들의 미소
2007. 11. 26. 11:25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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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겨울바다가 주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의 추위입니다.
대왕암이라고 부르는 문무대왕릉에 일출을 찍으러 갔던 날이었습니다.
태양은 구름 속에 숨어서 인색하게 굴었지만, 어느 순간 우르르 일어 아우성치며 달리는 해무는 장관이었습니다.
해변에서 올라오는 길에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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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데기'가 거의 다 된 오징어를 널고 계셨습니다.
꾸들꾸들하게 말린 반건조 오징어를 피데기라고 부릅니다.
치아가 안 좋은 분들은 마른 오징어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줄에 걸린 오징어들은, 마침 구름을 열고 나오는 태양 빛을 가슴마다 안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물체는 역광 속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남지만, 반투명한 물체는 역광을 받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순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줄에 걸린 오징어였습니다.
갈무리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징어 사이로 문무대왕릉이 살짝 보였습니다.
그런 풍경을 마련해주신 대왕의 은총에 고개 숙여 감사 드렸습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차가운 바다에 누운 왕.
그가 지키려했던 나라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세상은 무심하여 여전히 아름답게 빛납니다.


posted by sagang
2007. 11. 25. 17:57 이야기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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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례식에 갔다가 노인 두 분을 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노인들이 따로 할 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한쪽 구석에 의자를 놓고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눈동자가 공허해 보였습니다.
무심하게 먼저 가버린 친구를 그리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인사를 드릴 겸 사진촬영 허락도 받을 겸 “건강해 보이신다”고 말씀드렸더니 금세 아이들처럼 웃으십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포즈도 잡아주십니다.
한 세상을 넉넉하게 품은 웃음인지라, 삭막했던 마음이 아랫목의 엿처럼 눅진하게 풀어집니다.
제 할머니도 어머니도 입에 달고 사신 말이 “곱게 늙어 고생 않고 죽었으면….”이었습니다.
모든 노인들의 소망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친구들이 한 둘 스러져가면서부터 든 생각입니다.
건강한 몸으로 살다 맑은 정신으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노인들처럼 넉넉한 웃음으로, 사랑하는 것들과 작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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