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자는 유흥가로 애국자는 일터로
시간은 생명이다 일초라도 애껴쓰자
양담배 연기속에 사라지는 六십억환
넘쳐나는 왜노래에 흐려지는 민족정기
한 시대를 대표했던 계몽 표어들이다. 이런 구호를 보면서 실소를 머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1960년~70년대, 더 나아가 80년대까지 '왜노래' '양담배' '도박' 등은 나름대로 심각한 국가적 문제였다. 그래서 동네어귀, 골목마다 그런 '비애국적 행위'를 경계하는 벽보(표어 또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벽보는 일반 광고도 있었지만 정부부처나 관공서의 이름으로 나붙은 '공공목적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눈만 들면 '반공방첩'이었고 고개만 돌리면 '불조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정책전달이나 국민계몽을 위한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디오가 있다고 하지만 집집마다 보급되었던 것도 아니었고, TV는 대중화되기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러다 보니 표어와 포스터는 중요한 의사전달 수단이었다. 학교에서도 미술시간에 자주 포스터를 그렸다. 소재는 주로 북괴타도나 남북통일이었다. 아이들은 한반도지도를 반으로 갈라 북쪽은 빨간색으로 칠하고 뿔 달린 도깨비나 늑대를 그려 넣었다. 남쪽은 파랗게 칠하고 순하게 생긴 아이들이나 양을 그려 넣었다. 그 그림에 "무찌르자 오랑캐… 때려잡자 괴뢰군…" 등의 문구를 써넣으면 선생님이 만족할 만한 포스터가 완성되고는 했다.
국민계몽의 소재 중, 세월 따라 처지가 가장 많이 뒤바뀐 것은 '가족계획'이다. 60년~80년대에는 어디를 가도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는 국민구호가 붙어 있었다. 산아제한은 애국이고,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반사회적 행위'라고 할 만큼 눈총의 대상이 되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뻔한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산아제한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 둘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나들이 가는 부부와, 많은 자식들에 치여 허덕거리는 부부의 모습이 비교되기 일쑤였다. 인구억제를 위한 계몽활동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루우프 피임법을 아십니까?'라는 주제로 피임방법을 교육하는 벽보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학교에서도 산아제한 교육은 끊임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형제가 많은 집 아이들은 괜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낮은 출산율이 나라의 근심거리가 되고, 정당이나 정치인이 내세우는 공약의 단골메뉴로 '육아지원'이 떠오르는 세상이 올 줄을 누가 알았으랴. 아이를 낳으면 눈총을 받던 세상에서 아이를 낳으면 지원금을 받는 세상으로의 변화, 불과 몇 십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포스터는 쥐잡기였다. '쥐잡기의 날'을 정해서 전국적으로 일제 소탕작전을 벌이던 시절이 있었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쥐가 들끓었다. 그들이 축내는 곡식도 곡식이려니와 쥐가 옮긴다는 전염병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학교에서도 주기적으로 쥐꼬리를 몇 개씩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 만큼 쥐잡기는 국가적 과제였다. 살찐 쥐를 그려 넣고 '모월 모일 모시에 쥐약 놓아 다같이 쥐를 잡자'라고 써 놓았었다. '이달의 할 일'이라는 계몽용 포스터도 있었는데 '초등학교 취학 적령자 등록을 빠짐없이 합시다-쥐를 잡읍시다-교통사고를 방지합시다' 등의 문구로 '쥐'는 빠지지 않는 단골이었다. 또 하나의 국가적 과제는 '혼식'이었다. 혼식의 날과 분식의 날을 정해놓고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하던 시절이었으니, 벽보가 나붙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 적인 문구가 '혼식으로 부강찾고 분식으로 건강찾차'였다. 이 포스터에는 혼식을 잘 지켜서 퉁퉁한(건강한) 사람과 쌀밥만 먹어서 빼빼 마른(병약한) 사람을 같이 그려 넣어 '혼식의 효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쌀밥만 먹으면 **병에 걸린다느니 하는 교육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했다. 쥐잡기나 혼식이나 모두 먹고살기에 혼신을 다해야 했던 시대의 아픈 그림자였다.
먹고사는 문제 이상으로 중요했던 과제는 '반공방첩'이었다. 이 땅을 휩쓸었던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뻘건 생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간첩신고는 113' '간첩을 잡아내자-**경찰서' 같은 벽보는 어느 동네나 없으면 섭섭했던 '담벼락 메뉴'였다. 반공방첩에 관련된 표어·포스터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북괴남침 예고없다 자나깨나 총력안보' '반공방첩 철저하면 우리나라 부흥한다' '신고하여 부자되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자수하여 자유찾고 신고하여 자유수호' 그런가 하 면 반공방첩이라는 '국가적 지상과제'에 정권유지 수단으로 등장했던 '유신'이 슬며시 끼어 들기도 했다. '유신으로 굳게뭉쳐 북괴도발 분쇄 하자' 왜 북괴도발을 분쇄하는데 유신이라는 망치가 필요한 것인지…. 물론 나라에서 그렇다면 모두 옳은 줄 알았던 민초들에게 큰 거부감 없이 먹히던 소재였다. 포스터도 반공방첩 분야로 가면 꽤 입체적이었다. 예를 들어 '간첩은 노린다. 눈조심, 귀조심, 입조심' 이란 포스터에는 눈과 귀와 입을 실감나게 그려 넣어, 백성 된 도리를 하기 위해서는 자나깨나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 귀야 간첩을 알아보고 신고하는데 필요하겠지만 왜 입조심까지 나왔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반공방첩 못지 않은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가 바로 선거와 투표였다. 대통령선거는 10월유신 이후 국민투표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국회의원이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대통령 선거인단)을 뽑는 선거는 치를 때마다 요란했다. 선거 참여를 독려하거나 올바른(?) 투표를 계몽하는 벽보가 담벼락마다 나붙었다. 그 중 대표 적인 문구가 '내 한 표 바로 던져 평화통일 앞당기자'였다. 내 한 표와 평화통일의 상관관계 역시 풀리지 않는 숙제다. 여당에 찍어야 통일을 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싶은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또 '내가 찍은 바른 한표 이 나라 기둥된다' 와 같은 문구도 단골메뉴였다. 포스터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불조심이었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빨간 불꽃이 날름거리는 불조심 포스터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그림에 찰떡궁합으로 따라다니는 문구는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불도 다시보자'였다. 어느 시대나 불이 무섭 긴 마찬가지지만, 잠이 들어서도 불조심을 해야할 만큼 화재에 취약하던 시절이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한 때 직장에서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물'을 먹고 한직에 앉게 되면 뒤에서 소곤거렸다. "저 양반 언제 부활할지 몰라. 꺼진 불도 다시 봐야지…."
세월은 쇳덩어리도 스러지게 할 만큼 무서운 존재다. 그 세월의 줄을 타고 나타났다 사라진 표어·포스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인분을 준 채소를 먹으면 회충·12지장충에 걸린다'는 표어는 언제부턴가 필요가 없게 돼버렸다. '집집마다 의례준칙 바로 알고 실천하자' '미신을 타파하고 과학생활 이룩하자' 역시 별 실감이 나지 않은 옛이야기가 됐다. 글 초반에 예로 들었던 '넘쳐나는 왜노래에 흐려가는 민족정기'야 말로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일본노래, 일 본만화, 일본패션에 열광하는 요즘 일부 청소년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구호일 것이다. 하긴 우리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각 국을 누비는 마당에 '민족정기'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벽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연 등을 알리는 상업적 목적의 벽보는 여전히 유용하게 쓰인다. 또 선거나 계몽을 위한 현수막 역시 때만 되면 거리에 나붙는다. 하지만 벽보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이콘, 벽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민초들의 절뚝거리던 삶이 나란히 걸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