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알란야의 호텔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 알란야에서 묵었던 호텔.
아폴론신전의 야경에 흠뻑 취한 채 시데를 출발한 시간이 7시20분.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 씻고 누우면 얼마나 좋을까만 지금부터 알란야(Alanya)로 가야한다. 그곳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버스가 안탈리아 시내를 벗어나니 오로지 캄캄한 세상. 창밖을 스쳐가는 풍경을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뿐이다. 그래, 때로는 상상 속의 풍경이 더욱 아름다울 때도 있는 법. 알란야는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져 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이슥한 밤이다. 이러다 저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는지 원. 설마 굶기기야 하겠나. 알란야 시내에 도착해서도 버스는 골목골목을 누비더니 해변 쪽으로 빠져나가는 기색이다. 창밖 가로등 아래, 빵을 사들고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여인의 실루엣과 조우한다. 여기도 생로병사, 부와 가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곳. 낯선 도시에 대한 이질감이 반으로 줄어든다. 호텔에 도착하니 늦은 밤인데도 뷔페식 식사가 마련돼 있다. 다른 손님들이 없는 것을 보니 따로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미리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다가 창밖을 보니, 아! 그곳엔 또 특별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호텔 아래 도로 건너가 바로 바다인 듯, 정박한 배들과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무슨 조명을 쓰기에 저런 황금도시를 만들었을까. 식사를 하다말고 굳이 창문에 카메라를 대고 풍경을 찍는다. 좀 흔들리면 어때. 부랴부랴 밥을 먹고 나니 씻고 잠자기도 바쁘다.
딤 동굴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알란야 전경. 딤 동굴의 종유석들.
온갖 형상의 석순과 종유석. 딤 강 유원지.
산에는 소나무가 유난히 많다. 당연히 솔방울도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어릴 적 땔감을 찾아 솔방울을 주우러 다니던 생각이 난다. 저 정도면 밥 한 끼는 거뜬히 할 텐데. 이 촌놈 냄새는 언제나 내 몸을 빠져나가려는지. 아마 운명처럼 끌어안고 죽을 것이다. 동굴은 우리의 석회동굴과 그리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아기자기 하달까. 종유석과 석순들이 재주껏 삼라만상을 만들었다. 부처도 있고 해파리도 있고, 어느 건 폭포처럼 우르르 소리 내며 흘러내릴 것 같고…. 형성된 지 100만년 정도로 추산된다는 이 동굴은 길이가 총 360m. 터키에서 손꼽히는 것은 물론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동굴이란다. 맨 앞에서 열심히 가다보니 작은 못이 나오고 거기가 끝이다. 곳곳에서 파닥 파닥 머리 위를 나는 박쥐 떼를 만난다. 너희들의 영역에 이방인이 침입한 셈이구나. 주는 것 없이 단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 나와, 길가 매점에서 차이를 한 잔 마시며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다. 다음 목적지는 딤 강(江). 딤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러고 보면 딤이라는 게 이 지역의 이름인 모양이다. 특별히 찾아간다기에 대단한 강인가 했더니 폭이 개천 수준이다. 대신 수량은 제법 많다. 여길 왜? 궁금했는데 다큐팀의 일정에 포함됐단다. 우리의 유원지와 비슷한 곳이다. 한탄간 유원지, 송추 유원지… 그런 식. 즉, 강물을 끼고 장사를 하는 곳인데 우리의 유원지보다 훨씬 잘 만들어놓았다.
강 위에 설치된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알란야 성채 알란야 성채.
2세기경의 해적 두목 다아도토스 트리폰이란 자는 왕권까지 넘볼 정도로 큰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긴 도둑이건 해적이건 나라를 세우면 왕인 게지. 한고조 유방이나 명태조 주원장의 근본이 왕후장상의 피였더냐. 으음, 이런 소리 함부로 하다가 사회 불만 세력으로 찍힐라. 암튼 그렇게 대단했던 해적도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장악하면서 세력이 약해지게 된다. 이곳은 십자군전쟁과도 인연이 있다. 제3차 원정 때에는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프랑스의 필리페가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13세기 이곳을 점령한 셀주크 튀르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가 자신의 이름을 따 알라니예(Alaniyye)로 부른 것이 오늘날 알란야의 어원이 됐다. 셀주크의 술탄들은 겨울이면 이곳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겨울 수도 역할도 했다. 1471년에는 오스만제국의 영토로 편입됐다. 알란야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알란야 성채는 BC 67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해적을 소탕하고 쌓은 것이라는데 1226년에 조금 전 등장했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가 대대적으로 증축했다고 한다. 즉, 지금의 성채는 대부분 셀주크 튀르크 때 쌓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성채까지는 제법 높은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걸어가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여행객이라면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 유적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다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을 권한다. 40분~1시간 정도 걸린다.
여기서부터 환상의 풍경이 연출된다. 교회도 자미도 세월에 닳고 무너지고.
성벽에는 철망을 씌워놓았다. 돌틈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또 지고...
성 안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넓은 정원을 만나게 된다. 전쟁을 전제로 만든 성이지만 지금은 그저 평화로운 기운만 가득하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커다란 물 저장고(사르느즈)가 눈에 들어온다. 저장고는 성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하긴 싸움을 하든 족구나 하며 놀든 물만큼 중요한 게 있으랴. 골조만 남아 조금은 흉물스러워 보이는 비잔티움 교회를 지난다. 내 삶을 지키거나 상대방의 죽음을 전제로 한 성채와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교회. 극단적인 이질감 속에서도 또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동질감을 느낀다. 병사들은 포화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전쟁과 평화는 애당초 남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처럼 나란히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인류의 역사를 직조해온 것일지도. 도저히 틈이 없을 것 같은 메마른 성벽에도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냈다. 꽃 한 송이를 통해, 난 지금 평화로운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안도를 얻는다. 얼마 안 가 성벽의 끄트머리에 도달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니 정말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야말로 아름답다는 말이 얼마나 옹색한지 실감나게 해준다. 그동안 내지른 감탄사들이 조금 아깝다. 저만치가 바로 클레오파트라 해변이라지? 클레오파트라는 저 아름다운 해변에서 무엇을 했을까. 시퍼렇다 못해 시커먼 바다. 누가 잉크를 저리 엎질러 놨길래…. 막혔던 가슴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저곳이 클레오파트라 해변이라지. 숨이 턱 막히더니 가슴이 뻥 뚫렸다. 성채에서 바라본 알란야 시내.
저 푸른 바다를 지나는 배도 파랗게 물들 것 같다. 풍덩 뛰어들고 싶은 심정들일까?
그중에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는 터키로 1200만 명에서 1500만 명 정도를 헤아린다. 1970년대 들어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 이라크의 쿠르드애국동맹(PUK)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으로 각국에 내전이 발발, 10년간 4만 명 이상이 죽고 2백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특히 터키 남동부에 대한 자치권을 주장하고 있는 PKK는 지난 1984년 이후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 본거지를 두고 터키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어제 안탈리아의 폭탄테러도 그런 무장 투쟁의 일환으로 일으킨 것이다. 테러를 할 때는 외국인들이 없는 군사지역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어찌 아나, 폭탄에 눈이 없으니. 은근히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오늘 메뉴는 햄버거란다. 원래 즐기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보조를 맞출 수밖에. 찾아간 곳은 익숙한 간판 버거킹. 전에 먹어본 기억이 있길래 베이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별 사람 다 보겠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아차! 여긴 이슬람국가지. 돼지고기가 있을 턱이 있나. 그럼 치킨!! 닭 안 먹는단 얘긴 없더라. 가게 앞 큰 길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햄버거를 베어 무는데 덩치 큰 검정개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슬그머니 길 가운데 눕는다. 길 양쪽으로 테이블을 놓았고 그나마 터놓은 길이 거긴데 개가 누워버렸으니 오가는 사람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그래도 다들 건드리지 않고 슬그머니 피해서 간다.
길을 턱하니 막고 있는 떠돌이 개. 음식도 골라먹는다.
배가 고픈가 싶어서 햄버거 조각을 줬더니
, “네 정성이 갸륵해 먹어준다”는 듯 심하게 게으른 동작으로 다가와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다. 세상의 양반 개는 여기 다 모였나. 그리고는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참선에 들어간다. 이왕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터키는 집 없는 동물(반드시 유기동물은 아니다)의 천국이다. 특히 개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오가며 산다. 복잡한 거리에서도 아무데나 턱, 하고 누우면 그 영역이 절대 보장된다. 보드롬 오래된 빵집 앞의 그 좁은 길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아 행인들을 품평하는 개를 보았고, 알란야 성채에서도 송아지만한 개가 저 멀리 클레오파트라 해변을 바라보며 ‘견생무상(犬生無常)’을 참구(參究)하는 것을 보았다. 어디가나 마찬가지다. ’늘어진 개 팔자‘라는 말이 이 나라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의 떠돌이 개들이 비루해 보이는 것과 달리 하나같이 깔끔하고 영양상태도 좋다. 먹는 건 이 사람 저 사람이 챙겨주니 별 걱정 안 해도 되고, 건강관리는 관공서에서 해준단다. 귀에 관리를 위한 인식표가 달려 있다나.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천국처럼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떠돌이 개들이여. 편도 비행기 값만 벌면 터키로 가시라. 그곳에 그대들의 파라다이스가 있나니. 눈치 보며 쓰레기통이나 뒤져야 하는 이 나라는 깨끗이 잊으시라. 그나저나 개 얘기 하다가 날 새겠다. 햄버거 하나 먹었으니 힘내고, 또 배낭 메고 일어서야지.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