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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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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인 하산케이프. 티그리스 강이 흐른다.

 

반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일정보다 많이 늦어져 조금 서둘러야 할 판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트만(Batman). 하산케이프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 격인 큰 도시다. 반에서 바트만까지는 4~5시간 정도 걸린다. 조금 달리다보니 산마다 차양처럼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갈을 오가는 차들은 거의 없다. 골골마다 박힌 집들은 하나 둘 등불을 밝히고, 차에게 질세라 걸음을 재게 놀리는 민둥산들은 황혼을 안고 황금빛으로 빛난다. 가는 도중에는 2000m가 넘는 고개도 있단다. 눈이 쌓였을지도 모르니 좀 더 서둘러야 했는데. 나귀를 몰고 재를 넘는 장돌뱅이처럼 마음만 자꾸 초조해진다. 차장 밖으로 눈길을 던지니 이 시간이 주는 특유의 쓸쓸한 기운이 천지간에 가득하다. 아냐, 아냐. 애써 머리를 털어낸다. 잘못하면 우울 속으로 빠져들기 쉽지. 한번 들어가면 헤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반에서 바트만으로 가는 길. 설산에 황혼이 드리우고 있다.

차는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건만 반호수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벗어났겠지 싶어 내다보면 여전히 바다 같은 물이 곁을 따라온다. 하긴 반에서 호수 건너편에 있는 타트완 항구까지 페리가 다니는데 가로지르는 데만 4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바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마치 서해안의 어느 한적한 해변 길을 달리는 기분이다. 그나마 가끔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 나타나서 덜 삭막하다. 이런 동네에 살면 옆 마을까지 가는데도 꽤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런 고립된 삶은 상상만으로도 고독감과 행복을 동시에 준다. 이런 곳에 아무도 모르게 묻혀 살다 슬그머니 죽는 나를 그려본다. 하루 이틀 꿔온 꿈은 아니지만.

 

타트완이라는 조그만 도시를 지나다가 삼성디지털플라자 간판을 보고 반가움에 눈을 떼지 못한다. 큰 도시에서는 늘 보는 간판이지만 이런 작은 도시까지 진출해 있다니. 이런 턱없는 반가움도 국수주의의 일종일까? 아무튼 뿌듯한 기분은 감출 수 없다. 국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재벌문제가 그 위에 교차된다. 재벌을 해체해야한다. 그들의 패악이 크다…. 무슨 소리냐. 그나마 그들이 있어서 우리 경제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관점의 문제일 수 있는 이 해묵은 논쟁. 사실은 정도의 문제가 아닐까. 양심이라고 부르는 잣대를 들이대면 그 결과가 명확해지는…. 재벌이 도덕과 양심을 되찾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가. 혜택 한번 본 적이 없는 나는 간판 하나로도 이렇게 반가워하는데.

 

휴게소에서 만난 일가족.

먼 길을 갈 때 동승자보다 운전자가 훨씬 더 고단한 건 당연한 이치. 저녁도 먹을 겸 휴게소에 들른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안에 있던 예닐곱 먹은 꼬마가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다. 아이와 나 사이에는 넓은 통유리가 가로막고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 하얀 히잡을 썼는데 본래의 용도보다는 멋으로 쓴 것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얼굴을 드러내놓았다. 밥을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고 앉아있을까. 아이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는 큰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며 놀고 있으려니 이번엔 엄마가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다. 작은아이도 찍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눈으로 OK 사인을 보냈더니 작은아이를 얼른 데려온다. 하지만 이 녀석 이방인들과 커다란 카메라를 보더니 느닷없이 울면서 몸부림을 친다. 엄마는 가자고 하고 아이는 안 간다고 하고…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이곳이 교조적인 무슬림들이 사는 동부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굉장히 개방적인 엄마임에 틀림없다. 이 가족에게 얼른 가장이 돌아오길.

 

바트만 시내의 아침 풍경.

다시 바트만으로 가는 길. 날은 온전히 저물어 온 세상이 잉크를 엎지른 듯 캄캄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 어두운 빗길, 게다가 도로 사정도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다. 베이셀의 운전솜씨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불안한 눈치를 감추지 못한다. 오후 8시 15분, 드디어 바트만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휴우~ 3시30분에 출발했으니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온 셈이다. 딱 한 번 쉬고 내처 왔는데도 이만큼 걸렸으니 멀긴 먼 거리다. 비는 더욱 거세져서 앞이 거의 안 보일 지경이다. 내일까지 그치지 않으면 일정에 차질이 클 텐데. 제작진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트만 주의 주도인 바트만은 별 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도시다. 아나톨리아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도 30만 명 전후로 그리 많지 않다. 주요 농산물은 목화이고 주민은 쿠르드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서부터 50분 정도 걸리는 하산케이프를 가려는 사람들은 보통 이 도시에서 하루 묵고 아침에 출발한다.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떨어지는 빗소리에 마음은 스산하고 잠은 올 것 같지 않다.

 

하산케이프로 가는 길에 펼쳐진 밀밭.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는데, 장 선생이 안타키아(Antakya)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전해준다. 안타키아는 십자군 전쟁 등을 다룬 역사서에 안티오크 혹은 안티오키아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며, 성서에는 안디옥으로 나온다.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데 최근 시리아가 내정에 빠지면서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피난민들을 겨냥한 테러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편하지 않다. 시리아 내전은 터키와 시리아 사이에도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분쟁지역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출발하기 전에 호텔 로비에 앉아있자니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 서너 명이 나타나더니 탁자를 닦고 바닥을 쓴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인데 이렇게 여럿이 나눠서 한담? 역시 일거리가 없다는 뜻이겠지. 헌데,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나를 흘끔거려가며 수줍게 웃는다. 에구, 이러다 마음 설레면 안 되지.

 

삭막해 보이는 산들도 만나고.

하산케이프로 가는 길. 다행이 비는 그쳤다. 비 그친 아침 특유의 싱그러운 공기가 세상에 그득하다. 특히 길옆으로 파란 밀밭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풍경이 눈길을 자꾸 당긴다. 겨울을 견뎌낸 생명들의 푸르른 노래. 고향의 청보리밭으로 돌아간 듯 한껏 흥겨워진다. 기분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하산케이프는 꼭 가고 싶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고대도시. 이번 촬영지를 정할 때 내가 꼭 들러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곳이기도 하다.

 

티그리스 강가의 동굴집들.

다리를 건너면 하산케이프다.

한참 달리니 굽이쳐 흐르는 강이 나타난다. 티크리스 강이다. 아!! 나는 또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보는 아이처럼 감탄사를 아끼지 못한다. 또 하나 문명의 시원에 왔구나. 지난해 말라티아에서부터 샨르우르파로 가는 동안 내내 함께 했던 유프라테스 강에 얼마나 감동을 거듭했던지. 내가 무슨 팔자가 좋아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만들어낸 두 개의 강을 연달아 볼 수 있는지. 강의 뒤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서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벌집처럼 뚫려 있는 동굴들. 인류의 조상들이 살기 시작해 대대로 주거 공간 역할을 했던, 원시적 형태의 ‘가옥’들이다. 다만 이 지역에서 만큼은 최근까지 동굴에서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원시적’이라는 말이 안 어울릴 지도 모른다.

 

비잔티움 제국 때 세웠다는 다리. 교각만 남았다.

나를 반겨주던 강아지. 주인 없는 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눈에 들어온 첫 인상은 ‘쓸쓸하다’는 것. 이 세계적인 유적지에 사람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관광시즌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강아지 몇 마리가 반갑게 꼬리치며 달려와 내 다리에 머리를 부비더니 아무것도 나올 눈치가 없자 다시 돌아가 게으르게 눕는다. 떠돌이 여행자가 줄 게 뭐 있겠니. 얼마나 순한지 이방인에 대한 경계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다리 건너 마을은 무척 쓸쓸해 보인다. 인구가 줄고 줄어서 3,000명에 불과하다고 하더니 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류문명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도시 하산케이프가 이렇게 자꾸 쪼그라드는 것은 하류에 막고 있는 일리수 댐 때문이다. 댐 이야기는 차차 하겠지만, 좀 씁쓸한 농담이 이곳에 드리운 불안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댐 공사가 시작됐지만, 그리고 매년 “올해 말에는 잠긴다, 잠긴다” 하지만 티그리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언제쯤이나 마을이 잠기느냐고 물어보면 “모르지요. 이미 50년 전부터 잠긴다고 했거든요”라며 웃는다. 아무튼 일거리는 없고 물에 잠긴다는 마을에 투자할 일도 없으니 인구는 자꾸 줄고 빈집도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각 끝에 지은 집.

세상사야 그러든 말든 강가에는 봄이 아주 깊숙이 와 있다. 아니, 아예 겨울이 다녀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둑에는 파란 풀들이 아우성으로 자라고 작은 꽃들도 앞 다퉈 봉오리를 맺고 꽃잎을 연다. 어제 그악스레 내리던 비는 티그리스 강에 누런 황톳물을 선사했다. 저만치 무너진 다리가 보인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 세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라고 한다. 한때는 실크로드를 오가는 대상과 낙타들이 지났던, 말 그대로 세계적 유적이다. 물론 댐을 막으면 저 다리도 잠긴다. 지금은 무너진 교각만 남았지만 천 년의 세월을 이야기해 주기에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내 눈길을 계속 잡아끄는 건 강가의 절벽마다 빽빽하게 들어앉은 동굴집들. 그리고 무너진 다리의 교각 끝에 덧대어 지은 흙집. 흙집에는 TV안테나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사람이 사는 게 틀림없다. 저들은 길고 긴 세월에 기대어 먹고 자고 싸고 빨래하고 아이들을 키우는구나. 이방인의 눈으로는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왜 저런 삶을 선택했을까. 외롭진 않을까. 무엇보다 머릿속에는 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우성친다. 낯선 땅에 와서 낯선 방식의 삶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