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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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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호수의 하늘.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점심은 반 시내로 다시 돌아가 해결하기로 한다. 반 성채 인근에는 눈을 씻고 봐도 구멍가게 하나 없다. 오늘 찾아가는 집은 피데 전문점. 피데는 밀가루 반죽을 둥글고 납작하게 만들어 화덕에 구운 터키의 전통 빵이다. 어디 가나 쉽게 이 피데를 볼 수 있다. 야채와 고기, 치즈 등을 올려서 굽기도 한다. 타원형과 원형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피자와 사촌 쯤 돼 보인다. 그래서 이탈리아 요리인 피자가 터키의 피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꽤 설득력을 얻는다. 피데 굽는 광경을 한참 구경하는데 주인이 한번 해보겠느냐고 나를 살살 꼬인다. 피데는 밀가루 반죽을 긴 주걱에 얹은 다음 화덕 안쪽에 던져서 굽는다. 제대로 위치를 잡아야하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마다할 내가 아니지. 주인이 시켰으니 잘못된들 내 책임이랴. 화덕 앞에 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밀가루 반죽을 던진다. 그럼 그렇지. 초보자가 잘 할 리가 있나. 여기저기 불시착의 연속이다. 하지만 주인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는다. 결국 먼 나라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걸로 ‘피데 사건’은 마무리 된다.

 

피데집 사장님. 잘 생겼지 않은가.

느닷없이 만난 눈밭.

상치 못했던 상황과 부딪힌 것은 반호수를 찾아가는 길에서였다. 반 호수를 간다 간다 해놓고 이틀 째 다른 곳에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이제야 고개를 넘는 중. 어느 고갯마루에 오르자 느닷없이 풍경이 바뀌어버린다. 어라? 이게 무슨 조화지? 눈앞에는 끝을 헤아리기도 힘든 설원이 펼쳐져 있다. 조금 전에 ‘맨땅’을 지나왔는데…. 그리고 이 높은 곳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다니. 아나톨리아가 예측 불허의 상황을 곳곳에 감춰두고 있는 땅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상상을 한참 초월하는 상황이다. 눈도 그냥 눈이 아니다. 최소 20cm는 쌓여있다. 일본의 홋카이도가 부럽지 않은 눈의 세계. 나는 신이 났는데 운전하는 베이셀은 영 걱정스런 눈치다. 차를 세우더니 저만치 걸어간다. 이 정도 눈이면 앞길이 막혔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 들어갔다가는 인가도 없는 곳에 꼼짝없이 갇힐 판이다. 한참 있다 돌아온 베이셀이 다행히 차가 못갈 정도는 아니라고 전한다. 그럼 잘됐다. 차에서 내린 김에 눈밭에서 좀 놀다가야지. 나는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고 카메라는 웬 떡이냐, 따라다니고. 알고 보니 이 넓은 평원은 밀밭이라고 한다. 고원지대인지라 겨울에는 눈에게 자리를 내주고 봄이나 돼야 밀의 영역을 되찾는 것이다.

 

눈길을 헤치고. 저만치 쉬판 산이 보인다.

길을 내려오다가 고즈넉하게 숨어 있는 마을 하나를 만났다. 왼쪽에는 고대 우라루트 왕국이 자리를 잡았다는 우라루트 성이 남루를 외피로 두른 채 남아 있다. 반 성채와 같은 시기에 축조됐다고 하니 3,000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리고 저만치에는 거대한 산이 하나 서 있다. 쉬판 산이라는 이름의 4,000m급 고산이다. 산이 호수에 들어앉아 있는 듯 산과 호수의 경계가 흐릿하게 지워졌다. 여기서부터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짐작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저 모호하고 신비로워 보일뿐이다. 신이 사는 산의 모습이 저러할까? 마을이 하도 정감 있게 생겨서 이름을 물어보니 아야느스쾨이라고 한다. 왜 밑도 끝도 없이 이 작은 마을에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눈이 쌓인 마을 어귀를 기웃기웃 돌아다닌다. 이 마을은 모든 것이 작다. 아주 작은 학교, 작은 과수원들, 작은 모스크…. 개 짖는 소리와 양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시도 때도 모르는 닭울음소리도 간간히 끼어든다. 거기에 아이들 노는 소리. 아이들은 눈 위에서 간이 썰매를 탄다. 우리로 보면 비료부대 썰매를 타는 것이다. 모든 게 ‘너무’ 평화롭다. 이렇게 당혹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워도 되는 거야? 안온한 기운이 올가미가 되고 덫이 되어 내 발목을 꽁꽁 묶는다. 나는 그동안 너무 삭막하게 살아왔구나.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다.

 

내 발길을 잡았던 아야느스쾨이. 쾨이는 마을이란 뜻이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명태 덕장 꼴이 되는 바람에 반 호수를 둘러싼 길은 엉망이다. 차가 하도 덜컹거려서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베이셀은 능숙하게 앞으로 나간다. 왼쪽에는 반 호수가 차를 따라 달리고, 오른쪽에는 과수원과 작은 집들이 푸른 물빛에 그림자를 담그고 있다. 호수가 곁으로 바짝 다가서는 순간, 바다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가 이 넓은 물을 호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은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맑고 잔잔하다. 반 호수는 거대한 호수지만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이는 바람에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저나 대체 이런 걸 무슨 색이라고 하지? 파랑? 녹색? 아니면 비취? 사파이어? 아! 부질없다. 구별하고자 하는 마음은, 세상의 모든 색을 자신들이 만든 분류 안에 포함시키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일 뿐. 반 호수의 물은 일곱 가지 색깔을 띤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한 단어로 표현하려는 오만이라니. 그냥 호수의 색깔일 뿐이다. 반 호수의 색깔… 호숫가에는 새알처럼 생긴 돌들이 한없이 깔려 있다. 돌들도 색깔이 제각각이다.

 

반 호수에 깔린 자갈들.

이쯤에서 반 호수에 대해 소개를 하고 가는 게 예의겠지? 이 호수는 해발 1,646m의 고원에 위치하고 는 터키 최대의 호수다.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 고도가 설악산 대청봉(1708m)에 근접하는 셈이다. 호수를 둘러싼 호안선이 약 500km나 되는데 쉽게 풀어보면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가 다섯 시간은 걸려야 호수 한 바퀴를 구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호수 주변의 도로사정을 감안한다면 하루 종일 달려도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평균 깊이는 171m, 가장 깊은 곳은 451m나 된다고 한다. 이 호수는 세계 최대의 염호(鹽湖)로 소금의 농도가 매우 높다. 물이 들어오는 하천은 있는데 물이 나가는 하천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즉, 대부분의 물이 증발된다는 얘기다. 호수 밑바닥에서는 물이 계속 솟아오르기 때문에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 곳에 따라 염도가 달라 상류 쪽 강 부근에서는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반 호수와 쉬판 산의 아련한 풍경.

저만치에 배들이 정박해 있다. 언뜻 봐도 어선들이다. 어선 중에서도 통통배를 벗어난 중급 어선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정말 바다의 풍경을 그대로 닮았다.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마침 고기잡이를 마치고 온 어부들로 늦은 오후의 호숫가가 시끌벅적하다. 아니, 아무리 봐도 호숫가라는 생각은 안 들고 우리나라 서해안 어느 항구쯤에 도착한 기분이다. 오늘 잡은 물고기들을 배에서 내리는데 어황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물고기를 담은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상자의 수가 몇 개 안된다. 반 호수에서 잡히는 고기는 단 한가지다. 바로 ‘임지케파르’라고 부르는 청어처럼 생긴(크기는 좀 작다) 물고기다. 보통은 물고기라는 뜻의 ’발륵‘이라고 부른다. 이 호수의 어종이 단 한가지이기 때문에 그저 ’물고기‘인 것이다. 소금호수에서 아무 물고기나 살 수 없는 건 자명한 일. 결국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다른 말로 독한 녀석들만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도 바다가 아닌 바다에서 물고기가 산다는 게 신기하다. 이 물고기는 주로 바비큐용으로 쓰인다.

 

반 호수 유일한 물고기인 임지케파르.

어부들은 눈앞에 보이는 마을에서 2011년 지진으로 16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부터 해준다. 진앙지가 이 호수였던 것이다. 아픈 기억은 뼈에 깊이 각인 되는 법. 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그 끔찍했던 재앙이 가장 큰 화제일 수밖에 없다. 눈을 들어 어림해본다. 땅이 통째로 흔들렸을 그때 이 잔잔한 호수는 얼마나 크게 뒤채였을까. 어부 하나가 저쪽 산허리까지 물이 치고 올라갔다고, 할머니에게 악몽을 하소연하는 손자의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어부들의 이야기는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현실로 이어진다. 우리네 바다처럼 이 호수도 어자원이 말라가고 있는 걸까. 애써 잡은 물고기도 값이 싸서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이들이 받는 값은 1kg에 1.5리라다. 우리 돈으로 치면 미처 1,000원도 안 되는 액수다. 그걸로 살 수 있는 게 빵 두 개에 불과하다고 늙은 어부는 주름을 더욱 좁힌다. 그 얼굴엔 삶의 기대나 희열 대신 피곤이 그득하다. 게다가 기름 값이 갈수록 오른다고 또 한숨이다. 터키의 기름 값은 우리보다 비싼 편이다. 배에 쓰는 디젤연료가 1리터에 4리라인데 한번 나가면 30~40리터 씩 쓴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밑지는 장사인데 이들은 또 날마다 호수로 나간다. 어로행위는 겨울에 주로 하는데 4월15이면 끝난다. 이후에는 산란기이기 때문에 금어기간으로 정했다. 호수로 나가지 않을 때는 양을 키운다.

 

멀리 나갔던 어선들이 속속 들어온다.

외국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에게 하소연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부들은 뭔가 자꾸 털어놓고 싶은 눈치다. 이들은 정부에서 아무 지원도 안 해 주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이 쿠르드족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흑해 쪽 어부들은 기름 수급 등에서 편의를 봐주는데 자신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바로 그 증거란다. 더구나 외부에서 오는 후원조차 중간에 가로채서 폭탄 만드는데 쓴다고 이구동성이다.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들의 낡은 배만큼 서글픈 현실이다. 어쩌면 이들의 눈물로 호수가 자꾸 짜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가 담긴 상자를 나르는 어부들.

배는 계속 들어온다. 이번에 들어온 배에서 나온 상자는 여섯 개. 아까 다른 배에서 나온 세 상자보다는 낫다. 늦게 들어오는 배는 물고기를 찾아 좀 더 멀리 나갔다 오는 것이다. 저만치 마지막 배가 들어온다. 저 배는 만선의 꿈을 이뤘을까? 굳이 부두에서 서성거리다가 상자수를 헤아려 본다. 하나, 둘, 셋. 기껏 세 상자라니…. 결국 또 헛수고를 한 셈이다. 9척의 배가 모두 돌아온 게 3시50분. 부두는 벌써 파장 분위기다, 중간상에게 넘길 건 넘기고 오늘 저녁 먹을 것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하나둘 떠나는 어부들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꼭 석양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나니 호숫가는 적요만 맴돈다. 배 위를 맴돌던 갈매기들도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하나 둘 자취를 감춘다. 호수는 여전히 유리처럼 매끄럽다.

 

배들이 정박한 부두.

다섯 시가 가까워지면서 호수 저쪽에서부터 검은 카펫을 깔듯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짐승 하나가 입을 크게 벌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것 같다. 서둘러 출발했지만 차도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어둠이 사위를 점령한 뒤다. 헌데, 이게 웬일? 총을 멘 몇 명의 청년들이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다. 가슴이 덜컥한다. 시골길에서, 더구나 밤에 총을 멘 젊은이들이라니. 여기는 강성 쿠르드족이 사는 지역 아닌가. 그런 분위기는 나만 느끼는 게 아닌 듯 차안의 공기가 일순 무겁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베이셀은 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그대로 차를 몰아 지나친다. 무엇을 하는 젊은이들이냐고 물어봤더니 사냥꾼들이란다. 휴우~

 

설산 위로 갈매기가 나르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정부군과 반정부군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렇게 시골에서 총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코루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단다. 쿠르드족이지만 정부에 고용돼서 동족 게릴라를 잡는 사람들이다. 옛날 ‘일제 앞잡이’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쿠르드족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월급을 받아서 쿠르드족의 투쟁자금으로 넘기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참…. 쿠르드족은 민족이라기보다는 씨족단위의 개념이 강해서 단합이 쉽지 않다. 어쩌면 그런 특성이 아직도 나라를 세우지 못한 원인 중 하나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쿠르드족이 잘하는 건 싸움과 목축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을까. 실제로 쿠르드족은 싸움에 있어서 발군이다. 6.25때도 터키군의 쿠르드족이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고 한다. 쿠르드족의 용병 역사는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 부시가 치른 걸프전이나 아들 부시가 치른 이라크전(전쟁이라기보다 일방적 공격이었지만)에도 쿠르드족이 용병으로 고용됐다.

 

호수에 어둠이 깃든다.

차가  덜컹거리며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장 선생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런 시골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건 아주 간단하다고 한다. 콜타르를 대충 뿌리고 나서 그 위에 콩자갈(아주 작은 돌)을 쓰윽 뿌리면 그걸로 끝이란다. 우리처럼 롤러로 밀고 다지고 하는 과정은 그 위를 다니는 차들이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아스팔트를 깐 길을 지나간 차들은 바닥이 콜타르 범벅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공사를 대충 하니 겨우내 도로는 누더기가 되고 여름에는 다시 ‘콩자갈 공사’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동안 차는 반 시내에 도착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어두운 색깔의 옷에 둘러싸여 유령처럼 배회하는 도시 반. 반의 밤이 깊어간다.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