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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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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전경

아침 일찍 보스타니치라는 마을의 가축시장으로 간다. 첫 일정이 하필 가축시장이야? 물을 필요는 없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반 지역은 목축이 주업이다. 아니 목축을 빼놓고는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을 찾으려면 가축시장으로 가면 된다. 가축시장의 첫 인상은 삭막과 번잡으로 표현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배타적이어야 할 두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니. 시장이 자리 잡은 장소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그나마 저만치 설산이 없었다면 사방으로 지평선만 보일 뻔했다. 그래도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곳곳에서 온 차들과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소와 양.

 

검은 옷이나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맨 먼저 마주친 건 그리 달갑지 않은 풍경이다. 시장 입구 노지에서 양을 도살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법도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공도축장이 있지만 이런 식의 야매도축이 싸기 때문에 늘 성업을 이룬단다. 고급차를 몰고 온 사람도 길바닥 업자에게 도축을 맡긴다. 칼만 하나 들고 나타난 도축업자는 능숙한 솜씨로 양의 목을 따고 가죽을 분리하고 내장을 들어낸 뒤 고깃덩어리를 고객에게 건넨다.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회를 떠갖고 가는 절차와 비슷하다. 그 모든 게 맨 땅에서 진행된다. 조금 전까지 펄펄하게 살아있던 녀석들, 칼날 하나에 온기를 내준 육신은 금세 허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나는 차마 그곳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한다. 한 생명을 보내는데 대한 경건함은 어디에도 없는 현장.

 

멀리 설산이 보이고

양들도 서로 기대 온기를 나눈다.

장이 워낙 크다보니 온갖 부설시장도 생겼다. 닭을 파는 트럭, 빵과 사과를 파는 손수레. 그 틈을 뚫고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나타나자 고요하게 가라앉았던 시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양과 소와 검은 옷을 입는 사람만 있어야 할 시장에 느닷없이 원색의 옷을 입은 동양인과 듣도 보도 못한 카메라가 나타나다니. 그런 의아심을 눈 가득 담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내 주변을 감싼다. 시장이 생긴 이래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다는 표정들이다. 헌데 내 눈에는 좀 이질적인 게 먼저 보인다. 노인, 장년, 청년, 아이, 강아지까지 있지만 여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슬람의 전통이 극명하게 반영된 곳이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파는 것은 물론 장을 보는 일까지 모두 남자의 몫이다. 애당초 여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나타나면 안 되는 존재다.

 

기념 사진 찍어주세요!! 가운데 꼬마는 어른들과 전혀 모르는 사이. 사진마다 등장한다.시장바닥은 사정없이 질척거리며 신발에 매달린다. 밤새 얼어있던 땅이 풀린 데다 소와 양의 배설물이 두툼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을 땐 편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가축 분뇨를 양탄자라도 되는 양 마구 밟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신발은 신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어려울 만큼 괴물이 돼버린다. 쌓이고 쌓인 배설물 역시 그 자체로 역사고 문화다. 누구는 이 시장이 1,000년은 됐을 거라고 하고 누구는 그걸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하긴 그렇지. 사람이 사는 곳에 동물이 있었고 동물이 있으니 사고 팔 시장이 생겨난 건 당연한 것. 이 시장은 매일 열리는데 하루에 1,000명 정도가 모인다고 한다. 외탄자쾨이라는 동네에서 왔다는 노인에게 여기서 얼마나 떨어진 곳이냐고 물으니 60km 정도 될 거란다. 100km나 되는 곳에서 양을 팔거나 사러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네 5일장처럼, 사고팔기 보다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양을 팔러온 사람도 사러온 사람도 급할 거 하나도 없다는 표정이다. 양을 팔아버린 아저씨도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그렇다고 우리네 장날처럼 걸쭉한 술판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차이 한 잔 사마시며 이리저리 오가는 게 전부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유?

나는 여전히 미꾸라지들 틈의 메기처럼 퍼덕거리며 쏘아 다닌다. 그런 나를 둘러싼 열기도 갈수록 뜨거워진다. 소를 끌고 온 할아버지는 고삐를 쥔 채, 양을 몰고 온 아저씨는 지팡이를 든 채, 담배를 팔던 아이는 장사하는 것도 잊은 채 모여든다. 조금 당혹스럽긴 하지만 내가 언제 이렇게 주인공이 된 적 있더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온갖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수다를 떨다 보면 누구는 소를 보여주겠다고 손을 끌고 누구는 내 양이 얼마나 많은지 봐달라고 반대쪽에서 당긴다. 또 한 사람은 30분 넘게 따라다니며 귀네코레(남한)? 쿠제이코레(북한)?를 반복해서 묻는다. 이들에게 북한은 전쟁터에서 싸웠던 적이기 때문에 북한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나이보다 무척 늙어 보인다는 것. 70은 된 것 같은 노인도 나이를 물어보면 대개 40~50대다. 하지라는 친구(60세쯤 된 줄 알았는데 역시 40대다.)가 양 한 마리의 입을 벌려 이빨을 보여주더니 값이 낮은 양이라고 설명해준다. 이빨이 거의 없는 늙은 양이기 때문이란다. 새끼는 9만원, 어미는 24~25만원, 이빨이 없는 늙은 양은 2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새끼양 이쁘지요?

대대로 물려줄 사진이니 잘 좀 찍어봐.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양을 살 사람이 나타나면 팔 사람과 손을 마주잡는다. 보통은 중개인인 제3자가 서로의 손을 쥐어준다. 잡은 손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가격을 맞춰나간다. 깎고 버티고, 그런 과정은 꽤 길게 진행된다.

한 마리에 30만 원씩만 내

무슨 소리야. 너무 비싸. 20만원으로 하지

에끼, 이 사람. 그건 개 값도 안 돼. 그러느니 늙혀 죽이고 말지. 28만원 내

애들이 늙었던데 뭘좋아, 내가 통 크게 양보해서 23만원 줄게

허어, 이 사람아. 저렇게 통통하게 잘 키운 애들을 늙은 양 취급하면 어쩌나. 좋아. 내가 손해 보는 셈 치고 26만원까지 맞춰줌세

이런 식으로 가격을 맞춰나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가격이 안 맞으면 손을 놓고 돌아선다. 거래가 깨졌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흥정을 하다가 소리를 높이거나 싸우는 경우는 없다. 안 팔면 그만이고 안 사면 그만이기 때문에 얼굴까지 붉히면서 거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서로의 눈을 보고 체온을 나누며 하는 거래에 속일 일도 없다. 긴 세월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들의 아이들 역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가운데 낀 아저씨의 표정을 보라.

애들도 한몫. 그런데 애들 맞아? 이 나라는 낳자마자 얼굴이 늙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특히 극성스러울 만큼 나를 환대한다. 가축시장에 웬 아이들? 그들 역시 모두 제 일을 한다. 아버지와 함께 양을 몰고 온 아이도 있고 차이나 담배를 파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는 구두 통을 멘 녀석도 있다. 이 오물천지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도 있을까? 구두 닦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동부지역에서 겨울에 장사가 가장 잘되는 3대업종이 세차장과 구두닦이, 차이장수라고 한다. 차이야 언제나 마시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세차와 구두는 왜? 여기 사람들은 깨끗하고 꾸미는 걸 좋아한단다. 헌데 도로환경은 기대치를 영 못 따라가니 매일 세차하고 구두를 닦을 수밖에.

 

우린 친구여

시장 사람들 이야기나 계속 하자. 대충 봐도 30명은 포진해 있다. 이쯤 되면 뭔가 개인기를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슬슬 걱정된다. 하지만 그럴 것까지도 없다. 내가 수첩에 뭘 기록하고 사진만 찍어도 그들은 자지러진다. 어른이고 애고 내 글씨를 들여다보며 돌아가며 품평을 한다. 대체 처음 보는 이 글씨가 잘 쓴 글씨냐, 못 쓴 글씨냐. 자기들끼리 격렬하게 토론을 벌여보지만 결론이 날 턱이 있나.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한 녀석은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뷰파인더 속에 들어와 있다. 양을 찍어도 이가 몽땅 빠진 노인을 찍어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있다. 말리고 끄집어내도 소용없다. 그 녀석은 그날 내 사진에 수십 번 등장했다. 얇은 홑겹 옷 하나 입고 퍼렇게 언 얼굴로 배회하는 게 가슴 아파서 꼭 안아준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그 순간 녀석은 나에 대한 특권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난 독사진 아니면 안찍어. 뒤에 붙은 놈 누구여?

담배 파는 아이는 피우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따라다니며 시가라(sigara)”를 외친다. 반에는 담배 파는 아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심심해서가 아니라 아이들도 벌어야 먹고살기 때문이다. 담배는 이라크 등에서 밀수한 것이라고 한다. 차이를 파는 아이는 말만 잘하면 공짜로 줄 수도 있다는 눈빛을 자꾸 보낸다. 아참, 차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나를 꽤 힘들게 하는 어른도 있었다. (촬영)에 집중할 만 하면 어깨를 툭 치면서 차이를 마시러 가자고 조른다. 자기가 한 잔 내겠다는 것이다. 그 눈빛이 얼마나 순수하고 기대에 차 있는지 박절하게 거절하기도 어렵고, 일을 하다말고 따라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계속된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진 별들이나 진창 속에서 피어난 꽃들 속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별이나 꽃들이 원하는 대로 수백 번의 사진을 찍고 수백 번을 함께 웃었다.

 

우리가 좀 노는 애들이랍니다.

 

그 녀석들이 나타난 건 그런 소동이 한 풀 꺾일 무렵이었다. 홍해를 가르듯 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등장한 두 녀석. 거뭇한 수염으로 한껏 성인을 가장했지만, 스무 살도 안됐다는 걸 간파하기 어렵지 않다. 그 바닥에서 논다는 녀석들인 게 틀림없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와 카메라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한다. 그마저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들이자 녀석들은 느닷없이 호의를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장 선생에게 찾아가 저 형이 좋다고 고백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형이라니, 이 녀석들아. 그래도 기분은 좋은데? 녀석들의 친밀감은 무한대다. 내가 쉬는 틈이면 어깨동무를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녀석은 내게 춤을 추자고 계속 졸라댄다. 그래 해보자. 결국 스텝을 맞춰보지만 내가 몸치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말았다. 내 주제에 무슨 춤을. 녀석들이 깔깔거리고 배꼽을 잡는다.

 

 

시장을 벗어나면 설국이 펼쳐진다.

당혹스러운 일은 잠시 뒤에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서막에 불과했다는 듯 뜻밖의 반전이 벌어진다. 두 녀석 중 하나가 내게 느닷없이 묻는다.

“What do you think about Kurdistan”

나는 잠시 멍한 상태가 돼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쓰던 말이 아닌 영어. 그리고 쿠르디스탄? 쿠르드족이 모여 사는 산악지역을 그렇게 부르지만, 녀석이 물은 건 쿠르드인들의 나라(아직 가상국이다)가 틀림없다. 자신들 외에는 누구도 나라로 불러주지 않는 나라. 그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아이. 표정에 장난기 같은 건 없다. 평생을 독립투쟁에 바친 늙은 전사의 얼굴만 거기 있다.

“I love Kurdistan”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 귀젤”(매우 좋다, 훌륭하다, 예쁘다 등으로 감탄사 비슷하게 쓰이는 말) 등으로 장난스럽게 할 대답은 아니다. 그리고 그건 내 진심이다. 내 핏속에는 억압 받고 지배 받는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DNA가 숙명적으로 존재하니까. 긴장했던 녀석의 얼굴이 물에 던져 넣은 물감처럼 풀어진다. 그리고 거침없이 포옹을 해온다. 마주 안은 몸이 용광로처럼 뜨겁다.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노는 녀석까지 간절히 원하는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