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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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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야기, 그 두 번째 장정을 시작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연재했던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후 조리도 못한 채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일종의 신고 의식이 필요했던 셈이지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번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블로그에 연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책으로 낼까.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는 오랜 원칙을 깰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또 긴 여정에 들어갑니다. 읽은 뒤 그냥 가지 말고 한 줄 답글로 아는 척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권과 마찬가지로 댓글로 격려해주신 분들에게는 2권이 출간된 뒤 저자 사인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사진 왼쪽 넓은 바다가 마르마라해, 오른쪽으로 꺾어진 해협이 흑해와 연결되는 보스포루스, 가운데 강 같은 곳이 골든혼이다. 육지는 맨 왼쪽 반도처럼 나온 곳이 유럽 쪽의 구시가지, 골든혼을 건너 펼쳐진 땅이 역시 유럽의 신시가지. 그리고 앤 앞쪽에 보이는 것이 아시아 땅이다.

전쟁? 절대 안 나요.”

새벽 430.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두 명의 청년. 시리아와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들이대듯 묻자, 모루에 해머를 내리치듯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 왜 안 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전쟁을 해서 이득을 보는 쪽이 아무도 없거든요. 시리아는 물론이고 터키 역시 마찬가지예요. 전쟁이 나면 관광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잖아요. 또 전쟁에서 이긴다고 땅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옛날하고는 달라요.”

으으음”(엄청나게 감탄했다는 듯 끄떡끄떡)

미국도 이스라엘도 이득 볼 게 없고중국 역시 반대하는데다 NATO도 전쟁에 참여할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어요.”

그렇구나. 전쟁이 안 일어나는구나. 헌데, 이 친구들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해박하지? 내가 장군 출신의 군사평론가들을 만난 건가? 그나저나 안 물어봐줬으면 얼마나 섭섭할 뻔 했니? 나는 감탄을 지나 감동까지 하고 만다. 하늘의 점지로 우연히 만나게 된 터키 청년들. 한국에서 3년가량 일하고 돌아왔다는 그들과의 질펀한 수다가 시작된다. 너희들 딱 걸렸어. 내가 바로 그 유명한 호기심 사나이거든.

 

하늘에서 본 이스탄불.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한 게 더위전쟁이었다. 더위야 최종 목적지로 잡은 샨르우르파란 곳이 섭씨 50도를 넘나든다니 염려해주는 게 당연하지만 느닷없이 전쟁 걱정은 왜? 출발을 코앞에 두고 터키와 시리아 간에 전쟁 발발 가능성을 예고하는 사건이 터졌다. 먼저 시리아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지중해 연안에서 터키 전투기를 격추했다. 불뚝 성질 하나만큼은 선불 맞은 멧돼지도 부럽지 않을 터키가 넙죽 엎드려 있을 턱이 있나. 반응은 즉각 나왔다. 국경에 접근하는 시리아 군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고 대공포와 미사일 발사기 등을 국경지대에 배치했다. 여기까지가 출발 직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문제는 내가 갈 곳이 바로 잘못 넘어지면 배꼽이 국경선을 넘어갈 정도로 시리아에 가까운 접경지역이라는데 있었다. 몇몇 사람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고 몇몇 사람은 뭔가 기대하는 눈초리로 등을 떠밀었다. 이참에 날 치워버리겠다는 심보겠지? 나는 잘하면 종군기자 한번 해보겠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현실성 떨어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목표로 했던 지역을 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였다.  그러다보니 공항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 전쟁’일 수밖에 없었. 터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공항이나 이스탄불, 그리고 훗날 접경지역에서 만난 그 누구도 전쟁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걱정 따위는 서리서리 접어 배낭에 넣어두고 어렵게 만난 청년들하고 놀아볼 일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

주로 이야기를 나눈 청년의 이름은 이브라힘이다.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유일신 3대 종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이슬람식 표기가 바로 이브라힘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에는 드물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와 친해질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 일했다는 경험이상의 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갔을 때 서울에서 일했어요?”

아뇨, 저는 주로 지방에 있었어요. 혹시 예산이라고 아세요?”

예산?(사람들이 놀라 돌아볼 만큼 목소리가 커진다) 아다 마다야? 그쪽이 바로 내 고향이에요. 수덕사라고 들어봤어요? 내가 거기서 자랐거든.”

정말요?(기특한 것. 한국식 추임새까지 넣을 줄 알고). 제가 바로 예산에서 일했어요. 수덕사도 당근 알지요. 덕산을 거쳐서 가는.”

어라? 어라?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야. 이 머나먼 곳에 와서. 이 정도면 고향 동생? 아니, 동생이라기에는 나이차이가 좀 나고. 아무튼 객지에서 고향의 조카쯤 만난 듯한 감동이 물밀 듯 몰려온다. 이야기는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말투도 은근히 내려간다. 그의 소망은 한국에 가서 식당을 차리는 거란다. 전에 돈을 좀 벌어서 식당을 열었는데 망했다고 아쉬워한다. 터키에도 코리언 드림을 품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고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다.

 

아타튀르크 공항 내부.

식당을 차리면 서울은 좀 어려울 것 같고. 대전이나 천안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저 개업하면 형이 신문에 내줄 수 있어요?”

그럼, 내주다마다. 신문이 문제야? ‘테레비에도 빵빵 때려줄 테니 차리기만 해.”

내가 준 명함에서 신문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 친구, ‘실속하나 챙긴다. 나는 훗날 걱정 같은 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덜컥 굳은 맹세부터 한다. 내가 무슨 재주로 음식점 개업 소식을 신문에 내고 TV에 때려준단 말이냐. 하지만 그 소망 가득한 눈망울 앞에서 차마 “No”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용기부터 주는 거야. 그나저나 언제부터 우리가 형 동생이 됐지? 아무렴 어떠랴. 터키에 어린 동생 하나 생겼으니 좋은 일이지. 우리는 공항 대합실 한 가운데 서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사진도 신나게 찍어댄다. 남들이야 흘끔거리건 말건. 그러다가 결국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말았다. 그의 뜨거운 피가 내게로 내 피가 그에게 흐르는 느낌이 선연하다. ! 너와 나 사이엔 원래 하나의 이름을 가진 강이 흐르고 있었을지도 몰라. 이번 여행 일정에 넴루트 산이 있다니까 그쪽의 아드야만이 자기 고향이라고 또 한 번 팔짝 뛰며 반가워한다. 그래, 인연이라는 게 이렇다니까.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니 안내하고 싶다며 금방이라도 따라나설 기세다. 하지만 그도 직장생활을 하는 몸. 말만으로도 고맙지. 작별을 하기 전에 터키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새벽 승객을 기다리는 공항택시들.

내 동생, 이브라힘아, 너는 네가 유럽인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해?”

유럽이든 아시아든 아무 상관없어요. 우린 터키사람이거든요.”

우문에 현답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물어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터키는 국토의 97%가 아시아 땅(아나톨리아)에 있고 단 3%(트라키아)만 유럽의 끝 발칸반도에 걸쳐 있다. 영토의 비중으로 보면 아시아에 속한 국가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의 일원이 되고 싶은 열망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오스만 제국이 세계를 호령할 때, 동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삼고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기억을 갖고 있는 투르크족. 그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미련일까. 세계 1차 대전에서 참패하고 1923년 로잔조약을 체결할 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에게해의 섬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스탄불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 땅을 갖는다는 상징성과 서구로 연결되는 통로를 지켜야 한다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는 아시아의 이름으로 살기보다는 영광이 대대손손 계속 될 것 같은 유럽에 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찬반 논란이 거세긴 했지만 터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 자동차 번호판도 ‘EU Style’이다. ‘준비된비회원국인 셈이다.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서는 달러보다 유로화가 주로 통용된다.

 

세상은 아직 박명 속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터키는 여전히 유럽연합의 외곽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회원국인 그리스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과 인권이나 키프로스 갈등’, ‘쿠르드족 문제등을 가입 거부 이유로 들지만 까놓고 말하면 유럽은 터키가 싫은 것이다. 과거의 정복자에 대한 공포의 잔해도 있을 테고, 어쩌면 기독교 문화권에 이슬람 문화를 끼어주기 싫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터키 경제에서 별로 덕 볼 것도 없으니 잘(?) 나가는 자기들끼리 놀아보겠다는 수작이기도 하다.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요즘은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에 목을 매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 역시 유럽이 전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등 몇몇 나라의 경제가 도미노 게임이라도 하듯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의 뒤통수를 강타하는 판이니 그 아수라장에 무엇 하러 낄 것인가. 더구나 이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아시아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당신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거야? ‘유럽이든 아시아든 상관없다. 우리는 터키 사람일뿐정답이다. 스스로의 자존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뒤에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얘기가 잠시 무겁게 흘러갔다. 읽다가 덮은 독자는 없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임을 알아야 된다. ‘아빠 좋아? 엄마 좋아?’ 식의 선택지는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니. 아무튼 공항에서 금방 만난 동생 이브리힘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드디어 가이드들을 만났다. 맨 오른쪽이 이젯, 가운데가 훌리아.

한국에 오면 꼭 전화해. 알았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멀어지는 그의 어깨가 듬직하다. 근처에 서 있다가 잠깐 눈이 마주친 여행작가 P가 감탄사를 섞어 한마디 한다.

참 빠르시네요.”

뭐가 빠르다는 거지? 사람 사귀는 게? 내 삶이 그래요. 나는 오로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여행을 하는 걸. 그리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또 사람들 사이를 떠나는 걸. 이별은 상봉을 낳는 것일까? 이브리힘과 헤어지는 찰나에 가이드들이 허겁지겁 나타난다. 그들이 지각하는 바람에 일행은 잠시나마 공항의 미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귈 기회를 얻었지만. 가이드는 남녀 2명이다. 그들 눈에는 옆 사람과 내가 닮아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들 둘이 무척 닮아 보인다. 혹시 남매나 부부 아닐까? 뭐 차차 알아보면 될 테고. 둘 다 키가 크지 않고 아담하다.  내가 큰 키가 못돼놔서 작은 사람들을 만나면 형제애부터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큰 사람은 가까워지는 단계부터 약간 부담을 느낀다. 가끔은 터키 사람들이 유럽인처럼 키가 큰 줄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큰 사람은 크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작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생긴 것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짐작이긴 하지만, 아주 오랜 옛날 몽골초원에서 돌궐족으로 살 때는 우리네 생김새와 많이 비슷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중앙아시아를 지나며 적절히 피를 섞고 또 아나톨리아에 들어와서 또 다른 피를 섞으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들의 멀고먼 여행 이야기는 터키 역사를 말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하자.

 

여자 가이드의 이름은 훌리아(Fulya). 이들의 한국말은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들보다 어눌하다. 내가 잘 못 알아들으니 훌랄라라고 할 때 훌리아예요.”라며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준다. 훌랄라? 이거 또 괴물 하나 나타난 거 아냐? 그 순간 그녀가 말한 훌랄라는 훗날 많은 사람의 입에서 울랄라가 되기도 하고 얼랄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지만 한국에는 단 하루만 가봤다는 스물일곱의 그녀. 명물이다. 남자 가이드의 이름은 이젯 혹은 가제트를 연상시키는 이제트(Izzet). 어라? 이제트? 이집트에서는 여자 이름인데? 람세스 2세가 뜨겁게 사랑했던 여인이잖아. 이 친구는 비교적 과묵한 편이다. 스물여덟 쥐띠라고 한국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역시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포항에 있는 선린대에서 6개월 어학연수를 받았다. 그 역시 숱한 전설을 남겼다. 한국에 하루 가본 훌리아나 현지에서 6개월 공부한 이젯이나 말이 유창하지 못하긴 마찬가지. 나는 내가 터키말을 배우느니 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로 한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의 한국어 교사다. 하드트레이닝을 시킬 테니 각오하라. 속으로 하는 생각을 그들이 알 턱이 있나. 물론 암울한 미래도 알 수 없겠지. 비행기가 도착한 게 현지시간으로 4시 40분. 새로 만난 동생과 수다를 떨고 가이드들과 감격의 상봉을 해도 아침 먹을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다. 공항을 한 바퀴 돌아본다. 밖으로 나가니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맑은 날이 많은 터키에서는 보기 드문 하늘이다. 9개월 전에 만났던 폭주족 택시운전사가 생각난다. 생명을 담보로 유희를 즐기던 그, 잘 있겠지? 별 사람이 다 보고 싶다.

 

 

차 안에서 찍은 이스탄불의 주택가.

이스탄불 시내로 가는 길. 새벽이라 오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저 어디엔가 잠들어 있을 오욕칠정. 그리고 밝음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음습한 뒷골목 풍경. 사람 살이가 모두 빛과 그림자의 직조물이 아니던가. 오랫동안 궁금했던 게  느닷없이 생각 나 이젯에게 묻는. 이 느닷없음이야말로 나의 오랜 지병이다.

터키에도 집창촌이 있어요?”

? 무슨촌요?”

단어 자체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하긴 학교에서 그런 말을 가르칠 리 있나. 하지만 무슬림이 대부분인 터키에도 집창촌이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그냥 물러설 수 없다. 이리 저리 설명해 보지만 성매매라는 단어조차 모르니 요령부득이다. 이게 어디 온갖 단어를 동원해 설명할 일이던가.

돈 주고 여자를 사는 곳, 몰라요?”

그 말은 효과를 본 모양이다. 잠시 얼굴이 붉어지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있어요.”

정부에서 인정하는 건가요?”

그렇구나. 있구나. 그것도 공식적으로. 하긴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게 그 직업이라지 않던가. 에페소에 가면 고대에 창녀촌을 안내하던 세계 최초의 광고도 있는 판인데.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 동행자들의 눈초리가 약간 새치름해진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이건 순전히 학문적 궁금증이라니까요. 공부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이스탄불 시내.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새벽, 도시는 여전히 적막에 싸여있다. 그리고 모든 갈등은 평화라는 위장막에 덮여있다. 나는 지금 터키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푸듯, 이 도시에 수천 년동안 고인 이야기를 퍼내야 된다. 숙련된 백정처럼 도시의 정수리에 잘 벼린 펜과 카메라를 들이대야 된다. 느닷없이 불타오르는 전의로 온 몸이 뜨거워진다.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