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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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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가다'에 해당되는 글 6

  1. 2011.06.27 [백두산을 가다 1] 보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더라11
2011. 6. 27. 15:37 백두산을 가다

변명
백두산 등정기(?)를 쓰기까지 좀 많이 망설였습니다. 중국 땅이 수시로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 된지 언젠데 새삼스럽게 여행기라니. 마치 싸구려 머플러를 두르고, 세상에 없는 것인 양 동네방네 자랑하는 격이 아닌지 고민스러웠습니다. 그것도 관광객들 틈에 끼어 34일 주마간산으로 다녀온 처지에. 하지만 결국 쓰기로 했습니다. 열 사람, 아니 천 사람이 같은 곳을 가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각자 다른 것을 보고 오는 게 여행이라는 제 소신 때문입니다. ‘20116월 어느 날, 사강이라는 장삼이사의 시선에 들어온 중국과 백두산을 그려볼 생각입니다. 따라서 여행기라기보다는 감상기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백두산이라면 입에서 신물이 올라오시는 분은 이쯤에서 읽기를 그만두셔도 됩니다. 아참, 가는 길에 압록강과 광개토대왕릉도 들렀습니다.

그리운 백두산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묵은 빚처럼 늘 가슴 한쪽에 무지근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민족의 영산(이 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쩌고 하는 엄숙 모드가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초··고등학교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동경하는 마음 한 자락 정도는 갖고 있는 게 예의지요.

또 한 가지. 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뒤지는 게 일인 저는 오래 전부터 세워둔 계획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족과 고려인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과 러시아 일대를 취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을 우리 문화의 원형을 확인하고 채집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왔습니다. 개발에 밀려 더 망가지기 전에, 증언할 수 있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물론 돈과 시간이 필수겠지요.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우선 맛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 첫 단계가 고구려인들의 발자취를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서두르게 된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백두산 화산폭발설때문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데, 터지면 볼 수 없는 곳인데. 천추의 한이 되기 전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을 몇 차례 다녀왔는데도, 백두산 쪽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제가 낸 책이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레 여행 이야기로 흘렀습니다. 그러다 백두산이란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결론은 함께 가보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도원결의를 하듯 굳은 맹세를 했던 친구들도 막상 떠나려니까 탈락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끝까지 남은 건 세 명. 그러다보니 이왕 이렇게 된 거친구부인 두 명이 대타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끝내 혼자였습니다. 5명의 백두산 등정단은 그렇게 꾸며졌습니다.

준비? 돈만 있으면 OK
일정은 63일에서 6일까지. 월요일인 6일은 현충일이라 황금연휴였습니다. 제 욕심으로는 여행사를 끼지 않고 현지 가이드를 구해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일정도 너무 짧았고 경비도 부담스럽고, 친구와 그 부인들의 편의도 고려해야 하고. 잘 아시다시피 여행사 상품으로 가는 여행은 별로 준비할 게 없습니다. 돈과 여권 사본만 보내면 단체비자까지 알아서 해결해주니까요. 이웃에 마실 가는 것만큼이나 준비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백두산의 변덕스런 날씨를 감안해 방수 겸용 바람막이 옷 정도. 저는 카메라와 렌즈들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아무 음식이나 없어서 못 먹는 막입을 믿고 그 흔한 깻잎 통조림 하나 챙기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63, 인천공항으로 출발. 여행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옆집을 가도 설레기 마련입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사를 찾아가 비자와 티켓을 받고 출국하면서 세관에 카메라 신고하고절차는 일사천리였습니다. 약간의 문제는 비행기에 오른 다음에 생겼습니다. 출발 시간이 넘었는데도 꼼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활주로 대기 문제로 출발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그리 드문 일도 아닌 듯, 별 미안한 기색도 아닙니다. 그렇게 1시간을 기다렸습니다. , 작은 비행기, 그것도 중국 변방으로 가는 비행기는 활주로 배정도 꼴찌로 받는구나. 지루함에 못 이겨 혼자 한 생각입니다. 오후 16:00. 드디어 이륙. 인천국제공항에서 심양공항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제가 사는 도봉구 방학동에서 영등포쯤 가는 시간입니다.

심양에 발을 딛다
비행기 안에서 조금 졸아볼까 하는데, 밥 먹으라고 깨웁니다. 왜 기내식은 거의 의무적으로 먹어야할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내 돈 냈는데 절대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고국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뒤였지만 밥은 물론 맥주를 두 캔이나 마셨습니다. 이젠 정말 졸아볼까? 하는 순간 비행기 고도가 낮아집니다. 에이! 낸 돈이 얼만데 이렇게 짧아. 쓸데없이 구시렁거리면서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 넘었습니다.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늦춰놓습니다. 중국은 우리보다 표준시간이 한 시간 늦기 때문입니다. 심양뿐 아니라 중국 전역이 그렇습니다. 그 넓은 땅덩어리를 하나의 시간으로 묶어놓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행기 창밖으로 끝없는 평원과 뱀처럼 이어진 도로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덜컹거리며 착륙합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가이드가 팻말을 들고 기다립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팻말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곤 했는데, 제가 그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닥쳐보니 어떤 심정이었느냐고요? 별 생각 없었습니다. 길 잃어버릴까봐 가이드를 졸래졸래 따라가기도 바빴지요. 공항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주차장 한쪽에 일행을 태울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24인승 노란버스.

버스에 타고나서야 드디어 일행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상품이라는 게 누가누군지 모르고 간 뒤 현지에서 합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14. 좋든 싫든 34일을 함께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이게. 아무리 둘러봐도 가이드를 빼고는 저와 제 친구들이 가장 젊습니다. 60~70세 넘어 보이는 어른들도 수두룩(?)합니다. 여행 왔다가 어르신들 수발만 들고 가는 거 아니야?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며 히히덕거리는데 버스가 출발합니다.

쓸데없이 서론이 길어지는 바람에 오늘은 여기까지.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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