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30. 19:20
사라져가는 것들
“혼자 나왔는가?”
“응, 혼자 왔네. 자네는?”
“마누라랑 같이 왔네. 병원에 데려다 주고… 난 그냥 구경이나 허다 갈라구.”
“술 한 잔 할 텐가?”
“이 시간에 벌써?”
“아따, 원제 시간 봐감서 술 먹었남. 가세!!”
가세, 소리가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의 호령처럼 힘차다. 장터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두 노인은, 안부 인사조차 중동무이하고 어깨동무 하듯 서로를 당겨 선술집골목으로 사라진다. 장을 보러 온 건지 술을 마시러 온 건지 헷갈리지만, 새삼 따져 무엇 하랴. 술보다는 정이 더 고팠던 거겠지. 어차피 공치기로 한 하루, 얼큰하게 한 잔 마시고 장 구경 실컷 한 다음 고등어 한 손 들고 가면 그만일 터. 5일장은 시골노인들의 사교장이다. 농사에 휘어진 뼈골을 잠시라도 펴보는 날이다. 장에나 가야 이웃 마을 친구도 만나고 재 너머 사돈도 만난다. 그래서 특별히 사고 팔 게 없어도 장날이면 엉덩이가 들썩거리게 마련이다. 그렇게라도 숨을 돌리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너른 장터는 노인 일색이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노인이다. 가끔 젊은 사람이 지나가면 이방인이라도 보는 듯 낯설다. 논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젊은이가 장터라고 흔전만전 넘쳐나랴. 바깥노인들만 장에 오는 건 아니다. 한쪽엔 안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보따리 대신 얘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아, 글쎄. 40평짜리 아파트를 샀어. 이번에…”
“잘혔네. 잘혔어. 종숙이 걘 잘 살 줄 알었어. 보통 바지런해야지. 딸 잘 두면 뱅기 탄단 말두 있잖여”
“에이, 뭐 뱅기까지야. 암튼, 새 아파트도 가볼 겸 혀서…”
말은 땅바닥만치 낮지만 얼굴은 자랑의 기색으로 하늘에 떠 있다. 정담만 오가는 건 아니다. 한쪽에서는 좀 젊은 아낙이 서툰 흥정을 붙여본다.
“아니, 그새 이만큼이나 올랐어요?”
“어딜 댕겨왔길래 소식이 이렇게 캄캄허댜? 채소값이 금값 됐단 말 못 들어봤어? 지난 장끔 생각하면 안되어”
“그래도… 조금만 깎아주세요”
“아이구, 남는 게 있어야 깎아 먹든지 벗겨 먹든지 허지. 자. 내 이만큼 더 줄게”
젊은 아낙이 40년 장꾼을 어찌 당하랴. 봄이 더디게 오는 길목, 시골장은 일찌감치 무르익어간다. 여기저기서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 지각한 장꾼들의 전 펴는 소리…. 배추장수 할머니는 여전히 연탄화덕을 끼고 있지만 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충남 홍성의 홍성장은 큰 장이다. 농산물장이자 어물장으로 충남 서부지역 오일장의 어른 노릇을 해왔다. 바다와 기름진 들을 동시에 끼고 있어서 물산이 풍부한 덕이다. 하지만 장터 풍경은 여느 오일장과 다르지 않다. 터줏대감들이야 운동장만한 점포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펼쳐놓고 손님을 끌어 모으지만, 갯벌에 나가 캔 바지락이나 푸성귀 조금 들고 나온 장꾼들은 신문지만한 공간에 앉아 시간이나 접을 뿐이다. 어물전 한 귀퉁이는 어촌에서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고무함지에 생선 너 댓 마리 담아온 노인도 있고, 껍질 째 가져온 굴을 까는 노인도 있다. 손길은 분주하지만 표정은 동구 밖 장승이라도 닮은 듯 무심하다. 농촌에서 온 이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시금치, 양파, 감자, 시루 째 들고 나온 콩나물…. 메주를 몇 덩이 들고 온 노인도 있고 집에서 먹던 된장을 퍼 와 해바라기 하는 노인도 있다. 손자가 군것질거리를 사달라고 졸랐는지도 모른다. 늘 그 모습인 것 같아도 장은 계절마다 조금씩 표정을 바꾼다. 봄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 이 계절은 장터에도 봄기운이 완연해진다. 조막만한 함지박마다 담겨 나온 달래와 냉이가 전령 역할을 한다. 어쩌면 봄은 시골장에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쇠전 열리나요?”
“무슨 전요?”
“쇠전, 쇠전!! 음… 우시장요”
“아, 우시장! 그거 안 열린지 꽤 됐어요. 구제역 때문에….”
말린 생선 두어 마리를 사면서 주인에게 쇠전이 열리냐고 물었지만, 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비교적 젊은 댁이라 그런지 쇠전이란 단어를 낯설어한다. 기실 홍성장이 이름을 떨치게 된 데는 쇠전의 역할이 컸다. 국내 최대 축산단지가 바로 홍성이다. 축산단지가 아니더라도 예로부터 너른 내포평야에서 키운 소들이 모여드는 게 홍성장이었다. 하지만 전국에서도 손꼽힌다는 홍성 쇠전도 역병만큼이나 무서웠던 구제역에는 두 손 다 들 고 만 것이다. 물론 머지않아 다시 열리기야 하겠지만 농민들이 겪었을 아픔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쇠전이야 그렇다고 하고, 모처럼 나선 장 구경이나 계속 하기로 한다. 커다란 무쇠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집 앞에서 저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어릴 적에는 저 국밥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나 어머니는 늘 그 소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먹지 못한 국밥은 내 상상 속에서 이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장터를 빠져나올 무렵 모녀의 실랑이를 본다.
“됐다니께 그런다”
“그러지 말고 가져가시라니께유”
딸로 보이는 중년의 아낙은 이것저것을 자꾸 싸 주고, 어머니로 보이는 허리 굽은 노인은 사양하기에 바쁘다. 혼자 사는 어머니가 모처럼 시집간 딸이 장사하는 곳에 들른 모양이다. 애틋한 마음에 딸은 이것저것 싸 보내려 하고, 딸이 한 푼 어치라도 더 팔기를 바라는 어머니는 자꾸 뿌리치는 것이다. 주책없이 시선을 뺏긴 나그네 마음까지 짠해진다. 장터머리를 나서기 전에 가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 노인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달래 조금, 냉이 조금, 미나리, 시금치, 무 몇 개…. 노인 앞에 놓인 상품 목록이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맞게 달려드는데 무릎 덮을 담요 한 장 없다.
“할머니, 이 냉이 온상에서 나온 거지요?”
“무슨 소리대유. 내가 어제 들에 나가서 하루 죙일 캔 거구먼”
노인은 도시물이나 먹었음직한 자식뻘 사내의 대책 없는 막말이 영 섭섭한 모양이다. “얼마 받으실 건데요?”
“이천 원만 줘요”
고개를 끄떡거리기도 전에 까만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봄의 전령’들을 담는다. 2천원이라… 그렇다면 오늘 가져온 걸 전부 합쳐도 대체…. 5일장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 정이 먼저 흐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