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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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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객주집 물레방아 밀회 수차 돌확 공이'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5.30 [사라져가는 것들 10] 물레방아5
2007. 5. 30. 18:37 사라져가는 것들

청춘남녀가 사랑을 나누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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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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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계집은 손을 빼려고 하며, "점잖으신 어른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하면서도 그의 몸짓에는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 보였다. 영감은 계집의 몸을 끌어안더니 방앗간 뒤로 돌아 섰다. 계집은 영감 가슴에 안겨서 정욕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보면서, "영감." 말 한번하고 침 한번 삼키었다. "영감이 거짓말은 안 하시지요?" "아니." 그의 말은 떨리었다. 계집은 영감의 팔을 한 손으로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방앗간 속을 가리켰다. "저리로 들어가세요." 영감과 계집은 방앗간에서 이삼십 분 후에 다시 나왔다. (나도향의 '물레방아' 중에서)

우리 문학작품이나 옛이야기 속에는 물레방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위에 예를 든 소설 외에 시나 노래에도 물레방아는 단골 메뉴다. 가수 조영남이 Proud Mary를 번안해서 불렀던 '물레방아 인생' 이라는 노래 중에 '세상만사 둥글둥글/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정처없이 이곳에서 저 마을로/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대목은 왜 물레방아가 우리네 백성과 왜 그리도 친했던지 단초를 보여준다. 어차피 삶이란 물레방아 같은 게 아니던가. 구비를 넘고 산모롱이를 돌고 돌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가진 것 없고 힘도 없던 이 땅의 민초들이 욕심을 내어본들 무엇하랴. 그저 주어진 여건대로 둥글둥글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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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물레방아는 곡물을 찧는 것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레방앗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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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사랑'을 나누거나 '밀회'를 하는 장소로 주로 쓰여진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생원의 하룻밤 사랑이 그랬고, '물레방아'의 신치규가 남의 여자를 상대로 욕망을 푼 곳 역시 물레방앗간이다. 문학작품뿐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빈번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밀회를 위한 장소로 물레방앗간 만한 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레방아가 물길을 따라가다 보니 마을 어귀나 민가와 좀 떨어진 곳에 있기 마련이었다. 또 잔치 같은 게 있을 때나 쓰였고, 그것도 주로 낮에만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남들의 눈을 피하는데는 안성맞춤이었을 터이다.

물레방아 구조는 크게 물레 부분과 방아 부분으로 나눠진다. 물레는 말 그대로 쏟아지는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수차를 말한다. 물레 좌. 우에 십자목을 설치하여 물레가 돌아가면서 생산한 에너지로 방아를 찧는 것이다. 방아공이와 곡식을 담는 돌확은 방앗간 안에 있다.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 즉 물레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면서 공이로 돌확에 담긴 곡물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동작이 자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방아를 찧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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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삶의 주변에서 물레방아를 볼 수 없게된 건 오래 전이다. 동네마다 기계식 도정시설인 방앗간이 들어오게 되면서 대부분 퇴출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물레방아를 보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지자체 등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하는 것은 물론, 장식물로 물레방아를 달아놓은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물레방아가 아니다. '방아'가 없이 수차인 '물레'만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물레도 물 대신 전기의 힘으로 돌아간다. 그거라도 볼 수 있으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서글퍼 해야할지. 전시용 물레방아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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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많이 생긴다 해도 물레방앗간의 정서야 다시 돌이킬 수 있을까. 으슥한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을 나눌 돌이와 순이가 사라진지 오래이거늘.

[취재를 하면서] 오리지널 물레방아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전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진짜'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강원도 정선 백전리라는 곳에 아직도 곡물을 찧는 물레방아(사진 맨 위)가 있다고 하여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곳의 물레방아 역시 '현역'은 아닌듯, 물줄기를 맞으며 세월을 관조하고 있었습니다. 물레는 힘차게 돌아가고, 방앗간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정작 방아는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명절 같은 때만 가동할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진짜 물레방아가' 눈물겹게 반가워, 오래 그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람이 차갑게 부는 날이었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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