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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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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7 [사라져가는 것들] 너와-굴피집
2007. 10. 7. 16:44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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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저곳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오래 묵은 체증처럼 가슴에 남아있던 존재가 너와집과 굴피집이었다. 초가가 사라지고 기와집마저 보기 어려워진 세상에 너와집이나 굴피집이야말로 '사라지는 것들'의 맨 앞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볼 수 없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이 부채의식처럼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너와집이나 굴피집을 소재로 다루기에는 부담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충청도에서 나고 자란 터라 너와집이나 굴피집에서 살아본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을 중심으로 기록하겠다는 원칙을 세워온 게 어쩌면 부담의 원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망설일 수만은 없는 일. 현장으로 가서 보고 기록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너와집이나 굴피집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어지간한 곳만 가도 너와펜션이나 너와가든이란 이름의 너와집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껍질만 '너와'였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원형 그대로의 너와집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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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에는 화전민들이 살던 산골마을을 재현해놓은 민속마을이 있다. 민속마을 말고도 근래까지 실제 사람이 살던 너와집이 두 채 있는데(아직 살고 있는 집도 있다고 하는데 미처 가보지 못했다.), 그 중 위쪽 큰집이 바로 중요민속자료 33호로 지정된 김진호씨(작고) 집이다. 이 집은 모든 게 원형대로 보존돼 있지만, 그래도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점은 내내 아쉬웠다. 다행히 김진호씨 집은 누구든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어 자세히 살펴볼 수도 있고, 사진도 편히 찍을 수 있었다. 너와집은 굵은 적송을 도끼로 잘라 널판을 만들고 이것들을 지붕에 이어 만든 집이다. 기와나 볏집 같은 지붕의 재료를 구할 수 없는 산골 화전민들이 주로 썼다. 너와의 크기는 보통 세로 약 70cm, 가로 30~40cm, 두께는 약 5cm 정도이다. 모서리가 기와처럼 반듯하게 맞물려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도 새지 않고 기와보다 수명도 길다고 한다. 현지에서 얻은 자료에 의하면 김진호씨 집은 150년 전에 지어졌으며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 규모의 정방향으로 봉당(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흙바닥)이 있고, 마루를 중심으로 사랑방, 샛방, 도장방, 안방, 정지, 외양간이 있다. 방안에는 조명과 난방을 위하여 모서리 부분에 '코클(코쿨)'이 있고, 부엌에는 불씨를 보관하는 '화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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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살아보지 않았으니 너와집의 그 오밀조밀한 구조를 용도별로 설명할 능력은 없다. 집은 주로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평소에는 군데군데 틈이 생기고 그 곳으로 빛과 바람이 들어온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다보니 역시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하늘이 쏟아져 들어왔다. 엉성해 보이는 너와집도 그 구조 자체로 볼 땐 상당히 폐쇄적인 집이다. 모든 기능들이 집 안에 들어 있다. 즉, 한 지붕 아래에 존재한다. 눈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겨울에 눈이오면 보통 1~2m 정도가 쌓이는데, 이 경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소를 먹이는 외양간까지 집 안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통로만 존재하게 된다. 너와집의 가장 큰 특징은 수축과 팽창에 있다. 눈비가 오지 않고 건조할 때 너와는 수축하여 하늘이 보일 정도로 성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눈이나 비가 오면 너와는 물을 머금고 급격히 팽창하기 때문에 지붕의 틈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방수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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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피집을 만난 건 그보다 한참 뒤였다. 곳곳을 다니며 굴피지붕을 여러 번 보았지만 주거공간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진짜 굴피집' 같은 굴피집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만났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에 있는 '웰컴투 동막골'의 세트장을 찾았을 때였다. 굴피집이라고 하지 않고 '굴피집 같은'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곳의 굴피집 역시 세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 자체야 다른 곳에서 보았던, 흉내에 그친 굴피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의 굴피집에서는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분을 만난 것은 동네(?)를 거의 한바퀴 돌고 난 다음이었다. 어느 집 안에 들어가 코클을 찍고 나오는데 초로의 남자가 손짓을 했다. 가보니 굴피집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중이었다. 굴뚝으로 연기가 솟아오르자 조금 전까지 죽은 것처럼 보이던 집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고 있었다. 그 분이 그곳에서 기거를 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관리인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려나 그 분 덕택에 그 집은 세트가 아닌 집이 되어 있었다. 그 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포인트를 가르쳐주며 사진을 찍어 보라고 했다. 언뜻 봐도 사진에 대해 꽤 전문적 식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그 곳의 광경이 내내 잔영처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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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피집 역시 살아본 경험이 없으니 피상적 기록이나 남기는 수밖에 없다. 굴피집은 기와나 짚 같은 재료는 물론, 적송조차 귀해 너와를 만들기 어려운 지역에서 나무껍질로 이은 지붕을 말한다. 보통 굴피나무·상수리나무·삼나무 등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서 재료로 쓴다. 나무껍질을 이어 만든 지붕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산간지방 화전민들의 지붕에 널리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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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지붕재료로 쓸 굴피를 벗겨내자면 적어도 20년 이상 자란 나무라야 하며, 수명은 5년 정도라고 한다. 굴피는 두 겹으로 끝을 겹쳐가며 물고기비늘모양으로 지붕 아래, 즉 처마부분부터 위쪽으로 깔아나간다. 이음작업이 끝나면 그 위에 '너시래'라는 긴 나무막대기를 걸치고 지붕 끝에 묶거나 돌을 얹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한다. 굴피는 너와와 마찬가지로 습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건조하면 수축되어 통풍이 이루어지고, 눈비가 와 습도가 높아지면 이내 팽창하여 틈새를 막음으로써 방수가 된다. 그러나 눈이 없어 건조한 겨울날에는 벌어진 틈 사이로 온기를 빼앗기기 때문에 보온이 잘 안 된다는 단점도 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중요민속자료 제223호로 지정된 굴피집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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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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