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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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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5. 19:12 사라져가는 것들

햇살마저 사랑에 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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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의 첫 구절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읊조리다보면, 눈물 한방을 찔끔 솟고 육신을 벗어난 마음은 어느새 둥실 떠올라 고향으로 내닫는다. 어쩌면 이 비정한 회색도시에서 오늘도 견디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나마 가슴에 지닌 그리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괜히 간지럽고 기쁘고 슬프고 조금은 어지럽고… 조금은 은밀함까지 내포한…. 돌담은 그런 복합적 서정을 품고 있다.

마을마다 어지간하면 앞자락에 내 하나씩을 끼고 있었다. 거기서 건져 올린 아이들 머리 만한 호박돌이 돌담을 쌓는 재료였다. 하긴 산에서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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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내려온 막돌이나 밭에서 캐낸 잡석인들 돌담의 재료로서 모자람이 있으랴. 시골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그만그만한 돌담으로 네 집 내 집을 구분했다. 한 집의 담을 따라서 가면 또 다른 집의 돌담이 이어지고 그렇게 어깨를 겯고 달리며 한 동네를 이루고 살았다. 여린 백성들이 사는 동리의 돌담은 솟을대문 우뚝한 대갓집의 담처럼 배타적이지 않았다. 집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라기보다는 그저 최소한의 영역을 구분하는 선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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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집 사이에 쌓은 돌담은 그리 높지 않아 이웃 간에 정을 나누는 곳이었다. 아낙네들은 담을 사이에 두고 낭자한 수다를 아끼지 않았고 쑥 넣고 버무리라도 찐 날이면 식을세라 순자야! 철수야! 불러서 넘겨주고 받고는 했다. 겨울 한낮,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약속하지 않아도 돌담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햇살은 돌담을 사랑했다. 돌담 앞에 머물며 고운 손길로 오래 애무했다. 겨울바람도 돌담 앞에서는 칼날을 거두고 얌전해졌다. 아이들은 그 햇살 아래서 딱지도 치고 구슬치기도 하고 연도 날렸다. 어른들 몰래 킬킬거리며 담배도 한 모금씩 빨아보고 저녁의 닭서리를 모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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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뿐이 아니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양지바른 돌담은 만남의 장소이자 놀이터였다. 콧궁기 벌름거리며 곰방대 베어 물면 연기 한 줄기 푸른 꼬리를 남기며 하늘로 올랐다. "내 소싯적에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만주벌판을 달리기도 하고 종로 뒷골목의 주먹패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막걸리 내기 윷놀이 한판에 동네가 떠내려가라 흥에 겹기도 했다. 그런 돌담이 어느 순간부터 시멘트 벽돌담으로 바뀌고, 그 시점에 맞춰서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담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골목에서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돌담이 사라진 지금 영랑의 햇발은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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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