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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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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벽돌집'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1.21 [사라져가는 것들 42] 담배막8
2008. 1. 21. 15:27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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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나 경북, 충북 등의 오지를 지나다 보면 '이상한 건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건물이다. 집 모퉁이에 기대고 있는 2층 짜리 조그만 흙벽돌집. 대부분 함석이나 스레트로 지붕을 해 얹었고, 지붕 바로 밑에는 공기가 들락거리도록 만든 조그만 창이 나 있다. 요즘 세상에 흙벽돌집이 남아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흙벽돌집 주제(?)에 왜 다른 집들보다 우뚝하게 솟은 2층 구조일까. 그 정도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꽤 호기심이 많다고 할 것이다. 그 흙벽돌집이 바로 담배막이다. 담배막이라는 이름보다는 담배건조실이란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밭에서 거둔 담뱃잎을 새끼줄로 엮은 다음 줄줄이 매단 뒤 불을 지펴 말리는 곳이 바로 이 담배막이다. 황초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담배뿐 아니라 고추 등을 말릴 때도 이 담배막은 유용하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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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농사를 일러 '뼛골 빼는 농사'라고 한다. 베테랑 농사꾼에게도 뼛골이 빠질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 어떤 농사보다 농사를 짓는 기간이 길고 손도 많이 간다. 그래도 어렵던 시절에 담배농사는 자식을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자식만큼은 '펜대를 굴리며' 살기를 원하는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뼛골이 빠지건 부러지건 이 담배농사를 지었다. 담배 농사는 이른봄 경칩을 전후해서부터 시작한다. 하우스에 씨앗을 파종해서 떡잎이 나오면 밭에 이식한다. 이랑을 만들고 그 이랑 위에 비닐을 덮은 다음, 비닐에 구멍을 뚫고 한 포기씩 심게 된다. 모종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줘야하고, 살충제도 뿌려야 하며 순도 따 줘야한다. 보통 키 이상으로 자라게 되는데 잎이 노란 빛깔을 띠기 시작하면 맨 아래부터 차례로 따서 말린다. 그 작업의 대부분은 여름에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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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불볕더위에, 밭고랑 속에서 담뱃잎을 찌려면 숨이 턱턱 막힌다. 더위보다 더 큰 고역은 담뱃잎에서 나오는 진액이다. 하얀 색깔의 이 액은 피부에 묻으면 벌겋게 부풀어오르며 쓰리다. 그렇게 따낸 담뱃잎은 담배막으로 옮기게 된다. 갓 딴 잎은 무척 무거워서 지게로 져 나르려면 허리가 휜다. 담배막으로 가져간 담뱃잎은 새끼에 엮어 건조대에 달아매고 건조실에 불을 지펴서 말리게된다. 담뱃잎이 다 마르면 새끼줄에서 하나씩 빼서 창고에 쌓아둔다. 건조실에 불을 지필 땐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다. 졸다가 불길을 조절하는데 실패하면 잎의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매에서 하등품 판정을 받으면 그 뜨거운 여름의 수고는 허공으로 날아가고 눈물만 남는다. 담배막을 흙으로 높게 지은 것은 통풍성을 감안해서 일 것이다. 습기를 잘 빨아들이는 흙이야말로 건조실에 가장 적절한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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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담배를 따서 옮기고 말리는 과정은 여름 내내 계속 된다. 담배를 다 말렸다고 담배농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면 창고에 쌓아두었던 마른 잎을 꺼내어 색깔 따라 분류하고 다발로 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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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한다. 이 작업도 만만치 않아서 밤을 낮 삼아 일해야 한다. 색깔과 길이별로 고르고 가위질을 하느라 손가락에서 피가 나기도 한다. 그 끝에 드디어 기쁨이 온다. 된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 때가 되면 시·군별로 엽연초조합에서 잎담배 수매를 시작한다. 전에 잎담배가 제값을 받을 때는 담배수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지역 전체가 들먹거렸다. 매상에서 좋은 등급을 받게되면 목돈을 쥐게된다. 1년 동안 흘린 피와 땀을 보상받는 것이다. 농민들은 그 걸로 빚도 갚고 아이들 새학기 등록금도 마련했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흥청거리는 기분에 젖어 기생집에 틀어박거나 사기꾼에 털리기도 했다. 또 외지에서 온 노름꾼들의 꼬임에 넘어가 하루저녁에 '1년 농사'를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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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담배농사를 짓는 농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값싼 수입담배의 영향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뿐더러, 1년 내내 담배농사에 매달릴 인력도 없기 때문이다. 경북 봉화와 안동·강원 평창 등에 담배농가가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폐농할지 모른다. 아무튼, 담배농가가 줄어들고 건조기술이 발달하면서 담배막은 쓸모 없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곳곳에 방치된 가운데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다. 경북 어느 산골에서 만난 촌부는 "뜯어버리기 뭐해서 창고로 쓴다."고 말했다. 하긴 그 힘든 시절을 같이 했으니 정도 들었을 것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담배 대신 온갖 농기구가 늘어서 있었다. 흙집이라는 게 생각보다 오래간다고는 하지만 수명이 영구할 턱이 없다. 그러니 어느 곳은 옆구리에 뻥 뚫려 바람이 드나들고 어느 곳은 지지대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져 가는 담배막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리다. 쓰러져 가는 농촌의 현실, 그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늙은 농부들의 무너지는 가슴을 대신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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