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혼례 신랑 신부 맞절'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5.23 [사라져가는 것들 9] 전통혼례4
2007. 5. 23. 18:30 사라져가는 것들

얼씨구 좋구나~ 흥겨운 동네잔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잔치가 열리기 여러 날 전부터, 마을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괜스레 이리저리 내닫고, 그 뒤를 동네 강아지들이 겅중겅중 따른다. 모듬으로 사는 전통 농경사회에서 혼인은 마을 전체의 잔치였다. 아니, 그 마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웃마을까지도 들뜨게 했다. 혼례 하루 전엔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혼사가 있는 집엔 근동의 모든 아낙들이 몰려들어 전을 부치고 떡을 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은 엄마를 찾는다는 핑계를 앞세워 이 곳 저 곳을 누빈다. 엄마들은 눈짓으로 타박을 주면서도 부쳐놓은 전 한 장을 얼른 집어 아이 호주머니에 찔러준다. 모두가 배고픈 시절, 혼주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눈을 질금 감기 마련이다. 어차피 나누기 위한 음식이니 말릴 일도 아니다.

밑이 찢어지도록 가난하지 않은 다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야, 혼사를 치르는 집은 빚을 내서라도 돼지 한 마리쯤은 잡게 마련이다. 딸이 장성한 집들은 아예 혼사용으로 미리부터 돼지를 키우기도 한다. 너른 마당에는 돼지를 잡기 위해 남정네들이 모여든다. 마당 한켠에 걸어놓은 무쇠솥에서는 물이 펄펄 끓는다. 힘깨나 쓰는 남자가 도끼를 잡고 돼지를 어르다가 어느 순간 두개골 깊숙이 박아 넣는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당에 쓰러진 돼지가 파르르 떨다가 숨을 거둔다. 아이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한쪽에서 서 있다. 어른들이 저만치 가서 놀라고 몰아대지만 주춤주춤 물러서는 척 하다가 다시 그 자리로 모여든다. 혹시 얻어먹을지도 모르는 몇 점의 고기(주로 내장 삶은 것이지만)와 돼지 오줌보를 기다리는 참이다.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으면 멋진 축구공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는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치르게 된다. 즉,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가는 셈이다. 그래서 '장가간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과거에는 대례를 치르고 짧게는 3일 길게는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 신부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요즘으로 보면 신혼여행을 처가에서 보내는 셈이다. 혼인날이 되면 날이 미처 밝아지기도 전에 동네사람들이 잔칫집에 모여든다. 먼 곳에 사는 친척들은 하루 전에 도착해서 묵기도 한다. 신랑이 도착할 시간이면 모두 마당에 나와 기다린다. 성미 급한 사람은 고개를 자라목처럼 몇 번 빼다가 동구까지 내쳐 나가 보기도 한다. 바닥에는 멍석과 돗자리를 깔고 위에는 차일(광목이나 삼베로 만든 천막)을 친 혼례청에는 괜스레 설레는 눈길들이 가득 차 반짝거린다.

드디어 신랑이 도착해서 혼례청에 들어서면 혼례식이 본격 시작된다. 신랑 뒤에는 나무기러기를 든 기럭아비가 따른다. 동네의 존경받는 어른이 주례(집례)가 되어 식을 이끌어간다. 가장 먼저 신랑이 기러기를 드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는 의식인 전안례를 하게된다. 다음으로 신랑신부가 손을 씻은 다음 맞절을 하는 교배례가 있다. 신랑은 2번 신부는 4번 절을 하게된다. 옛날에는 이 때 신랑·신부가 처음 얼굴을 보게되었다고 한다. 교배례는 두 사람이 상대방에게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랑 신부가 한 표주박을 둘로 나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의례인 합근례를 치른다. 합근례 뒤에 하객 및 어르신들께 감사의 절을 하는 보은보배와 주례의 덕담 등 몇 가지 절차를 마치면 혼례식은 정리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식이 끝나면 기다리던 잔치가 시작된다. 어찌 보면 혼례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이다. 마당 가득 깔린 멍석 위로 잔칫상이 놓여지고 이웃끼리 친구들끼리 둘레둘레 앉아 음식과 술을 나눈다. 술이 어느 정도 돌아가면 흥에 겨워 노랫가락을 쏟아내는 이도 생기고 한쪽에서는 윷놀이판이 벌어진다. 저녁 어스름이 몰려올 때쯤에는 신부를 짝사랑하던 동네 청년 하나가 굴뚝모퉁이에 숨어서 끼억~ 끼억~ 숨죽인 울음을 토해놓기도 한다. 잔치는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된다. 마당에 화톳불이 놓아지고 등이 걸린다. 혼례의 후속행사도 계속된다. 동네 청년들은 자기 동네 색시 데려간다고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고, 장모는 귀한 사위 살살 다뤄달라고 새로 술상을 들이고… 그렇게 힘든 과정 끝에 놓여난 신랑·신부가 신방에 들어도 마지막 시련은 남아있다. 신방에 불이 꺼지면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서 창호지에 구멍을 내는 아낙들의 장난기 가득한 눈… 그렇게 혼인날의 밤은 깊어간다.

[취재를 하면서] 전통혼례식 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면 시골에서 직접 하는 혼례식을 취재하고 싶었는데, 요즘 시골에 결혼할만한 젊은이들이 있던가요.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고, 알아보니 서울이나 근교에서 전통혼례식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남산 한옥마을입니다. 이 곳에서는 일반인들의 신청을 받아서 주말에 공개 혼례식을 진행합니다. 진짜 결혼식이지만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한국민속촌과 인사동에서도 주말이면 전통혼례식이 열립니다. 민속촌에서 하는 혼례식은 진짜 는 아니고 모델(?)들이 나옵니다. 어찌나 빨리 진행하는지 건성건성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사동 혼례식은 외국인이 많아서인지 몇 개 국어로 진지하게 설명하는 게 약간은 지루할 정도였습니다. 전통방식대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볼 만 합니다.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