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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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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냉면'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5.18 [사라져가는 것들 110] 아바이마을11
2009. 5. 18. 09:19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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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까지 나를 데려간 것은 뒤늦게 본 신문제목 한 줄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6.25 흔적’ 강원도 속초에서 쓴 기사였다. 늘 그렇듯이, ‘사라진다’는 단어가 던지는 미끼를 그냥 지나칠 도리가 없었다. ‘2011년에 신수로가 개통되면 아바이마을이 섬으로 변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집단이주가 불가피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바늘을 물어 미늘이 입천장에 걸렸으니 현장으로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바이마을. 1·4후퇴 때 국군을 따라 남하한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바닷가에 움막형태의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는 촌락이다. 주민들이 이주한 시기는 대부분 수복(속초는 광복 이후 1951년까지 북한 지역이었다)이후부터 1960년대 초까지라고 한다. 아바이마을은 속칭이고 행정상 공식명칭은 청호동(靑湖洞)이다.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노인들이 많아, 그 곳 사투리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족 간의 전쟁이 폭 200여미터, 길이 1800미터의 척박한 모래땅에 마을을 하나 만들어놓은 셈이었다. 처음에는 동향사람끼리 옹기종기 모이면서 신포마을‧홍원마을‧단천마을 등 9개 마을로 구분됐었지만, 모두 개발되어 흔적도 없어지고 신포마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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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 중에도 곧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고향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정착했던 함경도 아바이들. 하지만 전쟁은, 내 집에 가서 살겠다는 소박한 꿈까지 짓밟아버리고 말았다. 반도의 북쪽 끝에서 안온하게 늙어갔어야 할 아바이들은, 서걱거리는 일상을 운명처럼 등에 지고 타향에서 살아야했다. 꿈속에서나 고향땅을 밟아보던 1세대 노인들은 이제 거의 사망하고 그 자손들이 고향인 듯 타향인 듯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날은 금세 눈물이라도 쏟을 듯,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속초시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어서 찾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땐 마침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함흥냉면과 아바이순대로 유명한 단천식당부터 찾았다. 조용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식당 안에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아바이마을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사연과는 상관없이, 입에 붙는 음식을 찾아 몰려든 것이다. 아바이바을의 냉면과 순대, 가자미식해야말로 본의 아니게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남긴 서글픈 유산이다. 오징어순대에도 사연은 있다. 전쟁의 와중에 돼지창자를 구할 수 없었던 피난민들이 비교적 흔한 오징어에 온갖 재료를 넣고 순대처럼 만들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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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사람이 들끓으니, 한쪽 구석에서 ‘눈치 순대’와 ‘눈치 냉면’을 후딱 해치우고 식당을 나섰다. 소문난 ‘맛집’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음식은 맛이 있었다. 하지만 운전 때문에, 벽에 ‘맛있다’고 써 붙인 막걸리를 못 먹어본 건 영 마음에 걸렸다. 주말인데도 마을은 고즈넉했다. 뭐랄 사람도 없고 시간도 넉넉한 참이니, 집 나온 강아지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쏘아 다녔다. 골목마다 지난 세월이 남겨놓은 흔적들이 더께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눈에 띄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식당의 그 활기차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몇 걸음 걷는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다니. 노인들 역시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았다. 멋지게 차려입고 자전거에 앉아 골목을 휘젓고 가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비척거리며 걸어가는 노인도 있었다. 상당수의 노인들은 텃밭에 매달려 있었다. 바닷가의 손바닥 만 한 땅은 전부 텃밭으로 가꿔져 있었다.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말뚝을 박거나 끈을 두르거나 포장을 친 밭에는 상추, 쑥갓, 파 등 온갖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젊어서 바다로 나가 파도와 싸우던 이들이 남새밭에 남은 생을 파종하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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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복 노인(74세)을 만난 건 골목을 벗어나 바다 쪽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노인 하나가 담배연기를 길게 날리며 초점 없는 시선을 하늘에 박아두고 있었다. 눈앞에서 포탄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걸음을 돌려 노인에게로 갔다.
“어르신, 이 동네에서 오래 사셨나요?”
“그렇소만….”
“이 동네 생길 때부터 사신 겁니까?”
노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지난 세월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덥석 손이라도 잡고 싶을 만큼 반가웠다.
“그럼, 처음 집을 지을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
노인은 말을 아꼈다. 새삼 그 이야기를 꺼내 무얼 하겠느냐는 것 같기도 하고, 네가 누군데 이야기를 해줘야하느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람인데 이 마을 이야기를 꼭 기록하고 싶다고 간곡하게 설명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근본적으로 말이 없는 노인인 것 같았다. 두세 마디를 물어야 한 마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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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이 했소. 피란을 올 때만 해도 금방 돌아갈 줄 알았는데, 전쟁이 끝났는데도 길이 막혀 있더란 말이오. 그래서 거처는 마련해야 되겠고…. 예가 전부 모래밭이었소.”
노인이 느리게 끌어가던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은 여전히 찌푸린 채였다.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속으로 계산해봤다. 올해 74세, 1951년에 내려왔다면 채 스물이 안됐을 나이다. 부모님과 함께였을까, 혼자였을까…. 하지만 그 물음은 끝내 목을 넘지 못했다. 50여젼의 세월을 모래밭에 묻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타향살이. 그 사이 소년은 노인이 되었다.
“집은 어떻게 지었나요?”
“예가 바람이 보통이 아니오. 까딱하면 날아갈 판이었지. 게다가 전쟁 끝이니 무슨 자재가 있나? 그래서 땅을 파고 이것저것 가져다가 고깔처럼 생긴 집을 지었지.”
그랬다고 한다. 집을 지을 능력은 안 되지만 가족이 살아갈 공간이 절실했으니 온갖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여기저기서 주워온 막대기를 삼각형이나 원추형으로 세우고 그 위에 이것저것 둘러쳐서 공간을 만들었다. 그래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팍팍한 날들을 견딜 수 있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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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어떻게…?”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지요. 내 배가 없으니 남의 배를 탔지만 먹고사는 건 큰 문제가 없었소. 그렇게 해서 아이들 가르치고….”
그렇게 키워낸 자식들은 모두 객지로 나갔다고 한다. 그들만큼은 실향민도 아바이마을 사람도 아니다. 어차피 고향으로 가는 걸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식들이라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것이 아바이들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저 세상으로 가버렸소.”
고향을 못 보고 떠난 이들을 추억하는 노인의 빈 시선이 이번엔 먼 바다 쪽을 훑었다.
“이 마을이 곧 헐린다지요?”
“예, 그런답디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요?”
노인이 고개를 젓는다.
“그럼, 이 땅에다는 뭘 한답니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한 아파트라도 짓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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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작별하고 마을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곳곳에 퇴락의 흔적이 역력했다. 해머질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떠난 것인지, 빈집도 눈에 띄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로 지어져, 60년 가까이 고단한 이들을 품어온 마을. 이 마을을 만들고 이 마을에서 살다 간 사람들이야말로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희생자다. 누구도 이곳에서 살거나 생을 마치길 원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아바이마을이 세상과 이별할 날도 그리 멀지 않다. 누구는 보상금을 따져보기도 하고 누구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한숨의 나날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망각의 유령은 이미 마을 위를 떠돌고 있었다. 고향의 등 굽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 끝내 눈을 감지 못했을 아바이들, 얼마 뒷면 그들의 옹이 깊은 삶을 기억해줄 사람은 어느 곳에도 살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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