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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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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탁심 광장.

트램에다가 빵을 파는 아저씨까지 마구 얽혀있다.

한 여름의 군밤장수.

나는 지금 이스티크랄 거리의 시작점인 탁심 광장으로 가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그리 멀지 않다. 퇴근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거리에는 오가는 차들과 인파가 정신없이 얽혀있다. 이스티크랄 거리는 이스탄불 최고의 번화가다. 북쪽에 있는 탁심 광장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가운데 하나로 신시가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 등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금각만이라고도 불리는 골든혼을 건너면 바로 신시가지에 닿는다. 여기도 유럽에 속한다. 이곳에서 보스포루스대교를 건너면 아시아 땅이다. 신시가지라고는 하지만 구시가지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시가지가 조성된 건 제법 오래 전이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는 제노바 상인이 자치권을 쥔 칼라타 지구였으며 거리의 북쪽에 있는 탁심 광장 인근은 페라 지구였다. 지금은 베이오울르라고도 부른다. 탁심 광장에서 튜넬까지 1km가 조금 넘는 이스티크랄 거리를 걷기로 한다. 초입부터 넘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에 명동거리를 걷는 것 같다. 거리 한 가운데로는 노면전차, 즉 트램(트란바이)이 지나다닌다. 물론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보행자들에게 전혀 위험요소가 되지 않는다. 꽁무니에는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매달려 가기도 한다. 아주 어렸을 적, 동네에 자동차만 나타났다하면 쫓아가 매달리던 생각이 난다. 어른들은 성화를 부렸지만 얼마나 재미있던지. 개구쟁이들의 장난기는 동서나 고금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거리는 트램 외에 일반 차량은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보행자 천국이라고 부른다.

 

인파로 가득 찬 이스티그랄 거리.

반은 벗어버린 여자도 있고.

전신을 감싼 여자도 있다.

거리에는 온갖 사람들이 섞여있다. 서양인과 동양인, 백인과 흑인, 내국인과 관광객. 거의 벗다시피 한 서양 여자와 온몸을 감싼 채 걸어가는 무슬림도 재미있는 대비를 연출한다. 이스탄불이 국제도시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 거리에서는 무엇을 구분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할 것 같다. 상업지구인지라 은행이 들어서 있는가 하면 명품 숍이나 화장품 가게도 즐비하다. 패스트푸드점, CD 판매점, 빵집, 피자가게. 입구에는 노점상들도 포진하고 있는데 역시 군밤장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더운 여름에 군밤을 팔고 사먹는 사람들은 또 뭐람. 돈두르마나 하나씩 먹으면 딱 좋을 것 같구먼. 한쪽에는 전단지 돌리는 청년도 있다. 얼른 돌리고 갈 심산인지 내게도 한 장 쥐어주길래 들여다보니 피자 할인문구가 들어있다. 곳곳에 좌판도 눈에 띈다. 가장 많은 것이 복권을 파는 노점이다. 장사가 제법 잘된다. 이 나라 사람들도 복권에 희망을 파종하는구나. 하긴 복권 없는 나라가 어디 그리 흔하랴. 모래 위의 집처럼 금방 무너질 꿈이라도 꾸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 조그만 함지 같은 곳에 생수를 대여섯 병 담아놓고 파는 할머니가 보인다. 저 노인은 또 어떤 사연이 있어 이 더위에 저리 나와 앉아있는지.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내 어머니의 얼굴과 오버랩 된다.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지근한 물이라 갈증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얼른 한 병을 손에 쥐고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드린다. 오늘 가지고 나온 물을 모두 팔아도 내가 드린 돈만큼은 안 될 것 같다. 내 작은 돈이 저 노인의 한 끼 식사에 도움이 되기를.

트램에 매달려 가는 개구쟁이들. 

수박에 새긴 인물상.

케밥집 진열장의 수박 조각(彫刻)에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유리창 앞에 서서 혼자 실실 웃는다. 얼굴을 새긴 주방장의 칼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오래 이러고 있다가는 더위에 맛이 갔다는 소리를 듣기 딱 알맞겠다. 어디선가 아코디언 연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리의 음악인이 곳곳에 있지만 이 아코디언 소리는 유난히 내 발목을 잡는다. 유모차를 앞에 세워둔 젊은 여자 하나가 유치원생이나 쓸법한 작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세련된 음악도 아닌데 왜 나를 이렇게 불러대지? 의지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할 땐 육신이 하는 대로 맡기는 수밖에. 가까이 가보니 유모차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다. 아무리 넉넉하게 봐줘도 6개월이나 됐을까. 다행히 무더위 속에서도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천사 같은 모습에 또 마음을 뺏긴다. 대체 이 엄마는 무얼 어쩌자고 이 어린 것을 데리고 거리에 나온 것일까. 아무리 둘러봐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란 뜻일까? 여인과 아기를 싸고 흐르던 축축한 슬픔이 내게 전이된다. 그렇다고 추하다거나 비참해 보인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냥 지나가도 되련만 송진이라도 밟은 듯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배낭을 내려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내고 마침 근처에 있던 일행에게 달려가 동전을 얻어온다. 여인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손을 멈추고 슬픔과 수줍음이 적절히 섞인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이왕 음악을 멈췄으니 한마디 물어나 보자.

아기가 참 예뻐요. 몇 개월이나 됐어요?”

……영어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어깨만 한번 으쓱하고 만다. 그냥 돌아서는 수밖에.

 

복권 파는 아저씨.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소녀.

차마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저 가슴에 담는 수밖에. 저만치서 나 하는 짓을 바라보던, 그리고 동전을 빌려준 일행이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 그런 마음으로 제대로 된 여행자가 되겠니?’ 그런 눈초리다. 아니다. 괜한 지레짐작일 뿐이다. 측은지심이야 말로 사람이 가진 근본 심성이 아니던가. 더구나 그는 여행 내내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챙긴 사람이다. 내가 특별히 갸륵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할머니의 미지근한 물을 사고 아기 엄마에게 동전을 털어준 것은 아니다. 그저 인연이 그리 이어졌을 뿐이다. 세상엔 지갑이 가난한 대신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 덕에 그나마 이 사회가 지탱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베풀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아흔아홉 개를 가진 사람 중에서 나온다. 그는 남의 한 개를 빼앗아 백 개를 채우고 싶은 욕망에 주변을 돌볼 틈이 없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건 자신이 가진 한 개를 어려운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이들이다. 그야말로 용기고 사랑이다. 물론 나는 그런 사람들 축에 끼어들기에는 반 푼어치의 자질도 없는 사람이다. 겉모습은 비슷해도 내가 호주머니를 터는 것은 스스로의 위안을 위해서다. , ‘이기(利己)’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제발이 저려서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그나저나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주고 나니 화장실 갈 일이 걱정이다. , 하필 이런 때 밀려오는 이 날카로운 요의(尿意)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 방광이란 녀석은 눈치가 엄청 빠르다. 내 인생 최악의 안티 세력임에 분명하다.

 

 

특별 세일.

눈에 보이는 화려한 곳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괜한 호기심으로 뒷골목을 흘끔거린다. 과감하게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니지 못하는 까닭은,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 젊은 친구 몇 명이 아무 생각 없이 뒷골목에 들어갔다가 몽땅 털릴 뻔했던 걸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고도 내 뒷골목 탐사의 열망은 가시지 않고 있다. 어느 곳을 가든 뒷골목부터 기웃거린다. 그 나라, 그 도시의 진실은 뒷골목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먹는 음식이 그 나라의 진짜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은 그리 위험한 도시는 아니다. 치안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완벽한 곳이 어디 있으랴. 어느 여행책자에서 이스티크랄 거리에 가면 술집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본 기억이 난다. 대충 더듬어 보면 그런 내용이었다. ‘이스티크랄 거리의 뒷골목에는 바와 클럽이 많은데 수상한 분위기의 술집에 들어가는 건 피해야 한다. 특히 여자 손님을 끌고 가려고 하거나 여자 직원이 있는 곳은 위험하다. 터키에서는 술집에 여성들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나는 술을 마실 것도 아니고 지금은 한낮인데 뭘. 골목은 아직 조용해 보인다. 그럼 별 재미가 없다. 나를 다시 큰 거리로 끌어낸 건 어디선가 들리는 묘한 소리다. 누군가 부르는 노래가 분명한데 정말 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음색이다. 저런 소리를 영혼의 울림이라고 하나? 발길은 끌려가다시피 그쪽으로 향한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내면의 경고 따위는 무시한지 오래다. 길 한쪽 공터에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다. 이스탄불에도 약장수가 있나?

 

집시 여인.

 

남자 악사가 두 명, 그리고 한 여인이 바닥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 여자가 바로 집시야.” 어디선가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른 건 그녀의 노래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 우리네 창과도 다르고 영혼을 두드리던 마두금의 음색과도 다르다. 한때 마음을 빼앗겼던 중국 소수민족의 노래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핏속을 흐르는 슬픔만 골라내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듯한 소리. 콰지모도가 사랑한 여인, 에스메랄다의 영혼 색깔이 저랬을까. 집시라는 족속은 원래 무당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뜻을 땅에 전하고 땅의 염원을 하늘에 전하는 무리. 아득한 옛날에는 그들이 제사장이고 세상의 지배자였다. 북을 치는 손놀림이 이별을 앞둔 연인을 향한 손길처럼 부드럽고 서럽다. 길게 길러 풀어헤친 머리, 선 굵은 귀고리, 멋 같은 건 고려하지 않은 하얀 색깔의 상의, 그리고 통 넓은 치마. 옆에 놓인 기타 케이스에 CD 몇 장이 놓여 있다. 그걸 팔기 위해 노래를 하는 모양이다. 내가 소스라치며 뒷걸음질을 친 건 그녀의 눈을 본 순간이다. 우물처럼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깊이, 어느 곳에도 초점을 두지 않은 눈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 대체 이게 뭐지? 이런 걸 무슨 느낌이라고 하지? 첫 눈에 반했다거나 하는 그런 정상적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늪으로 끌려들어가기 직전의 소처럼 나는 혼신을 다해서 뒷걸음을 친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진 뒤에야 철퍼덕 주저앉는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마음 한 쪽에서는 돌아가서 CD라도 사오라고 꼬드기지만 다른 한쪽은 극구 손사래를 친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온 것일까.

 

갈라타 탑 갈라타 탑 앞의 여인들.

케밥 사세요. 고등어케밥!!

고등어케밥 이렇게 만듭니다.

완성 직전.

이스티크랄 거리의 끄트머리에서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갈라타 탑을 만날 수 있다. 나로서는 꽤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지난해 지중해 여행의 끝을 이곳에서 장식했기 때문이다. 밖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사실 이스탄불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 바로 이 갈라타 탑이다. 하지만 한참 줄을 서고 좁은 곳에 올라가 엉덩이를 비벼야 하는 과정이 끔찍하다. 뭐 그냥 지나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미 한번 가봤다는 것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 갈라타 다리로 얼른 가고 싶다는 조급증도 한몫했다. 걸음을 재게 놀린다. 갈라타 다리를 오가는 인파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낚시꾼들은 여전히 바다에서 반짝거리는 물고기들을 건져 올린다. 잡상인은 작년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 사이 실업자가 늘어난 건가? 이웃인 그리스의 재정파탄이 세계 경제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어도 터키가 흔들린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이곳 사람들은 갈라타 다리를 백수다리라고도 부른다. 직업 없는 사람들이 새벽 다섯 시부터 나와서 낚싯대를 드리우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공간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도 백수들에게 낚시터를 마련해주자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어진다. 복지가 뭐 별건가? 일단 다리 아래로 내려간다. 이번엔 벼르고 벼른 고등어케밥을 꼭 먹어볼 작정이다. 이곳은 고등어케밥의 천국이다. 다리가 2층 구조로 돼 있는데, 맨 위가 낚시꾼들의 영토라면 1층은 고등어케밥을 위해 존재한다. 다리를 따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은 물론 바다에도 큰 배에서 케밥을 판다.

 

이 배에서도 고등어케밥을 판다.

저무는 이스탄불.

다리 옆은 해산물 시장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 그런지 해물의 종류가 많기도 하다. 구경하는데도 한참 걸린다. 멀리 흑해에서 온 함시(멸치보다 조금 큰 생선으로 밀가루를 입혀 튀겨먹는다)도 보인다. 발걸음을 멈춘 곳은 고등어케밥을 파는 리어카 좌판. 하얀 상의에 요리사 모자, 앞치마까지 둘러 그럴듯하게 보이는 아저씨가 고등어케밥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손님은 거의 없다. 대개 제대로 된, 에어컨이 나오는 음식점으로 찾아가는 모양이다. 물론 나도 근사한 음식점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맥주 한잔 곁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지만, 그건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좌판 아저씨에게 고등어케밥을 주문했더니 신이 나서 만들기 시작한다. 헌데 이것도 간단한 게 아니네? 빵을 반으로 갈라 잘 구워진 고등어를 얹고 그 위에 익힌 양파와 고추를 올리고 소스를 뿌리고 각종 채소를 얹고 다시 향신료를 뿌리고. 에구, 숨 가쁘다. 벼르고 벼르던 고등어케밥의 맛은? 그저 그랬다. 고등어의 비린 맛 때문에 거부반응이 일었다든가, 아니면 한 개쯤 더 먹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든가 하는 특별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가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나라의 특별한 음식문화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니까. 이것으로 이번 여행 일정은 모두 끝났다. 다시 이스탄불과 이별을 해야 한다. 갈라타 다리 위에 서서 저물어가는 도시를 바라본다. 유람선이 오가는 바다 건너 저만치에는 석양을 비껴 안은 모스크들의 미나레트가 장엄하다.

건물들은 하나 둘 불을 밝혀 12시간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는 한 사내를 전송한다. 작년에 했던 인사를 다시 반복한다. 다시 오리라. 내 형제, 내 친구의 땅이여.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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