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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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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잣집'에 해당되는 글 1

  1. 2010.11.08 [사라져가는 것들 151] 문패10
2010. 11. 8. 08:30 사라져가는 것들
“당신 정말 계속 그러고 있을 거유? 그러다 그거 다 닳아 문드러지겄수. 지극 정성두 분수가 있지. 하루 이틀두 아니고, 그걸 밤새 닦을 건 뭐래유. 낼 새벽에 비 그치면 리아까 끌구 나갈 양반이… 할 일 없으면 다리나 주물러 주든지.”
구멍 난 양말을 꿰맨다고 초저녁부터 뻗정다리를 하고 앉아 졸다 말다하던 아내, 청양댁이 자리를 깔고 누우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고봉 씨는 눈길 한번 힐끔 준 뒤, 후후 입김까지 불어가며 무릎 위에 놓인 문패 닦는 일을 계속한다. 까만 바탕에 박힌 자개가 파리똥 덕지덕지 붙은 알전구의 불빛만으로도 영롱하게 빛난다. 문패의 오른 쪽 위로부터 집주소가 내리닫이로 적혀 있고 한 가운데는 큼직한 글씨로 許高峰(허고봉)이라고 쓰여 있다.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꿈틀거리기라도 하는 듯 제법 멋을 낸 필체다. 그걸 들여다보는 고봉 씨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 한 가닥이 걸린다. 이번엔 구두를 닦듯, 손가락에 천을 단단히 감은 고봉 씨가 좀 더 빠른 속도로 문패를 문지른다. 잠시 뒤엔 문패를 조금 멀리 밀어놓고, 가느스름한 눈으로 바라본다. 좀 더 큰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소리가 청양댁의 코고는 소리와 어울려 장단을 맞춘다. 장마가 시작된 지 나흘이 지났다. 고봉 씨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그리움 한 덩어리를 연기에 담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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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꼭 문패를 달고 살거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다시 환청처럼 들려온다. 그건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남들은 아들에게 “장관이 돼라” 혹은 “선생님이 돼라”, 하다못해 “펜대를 굴리고 살아라”라고 당부한다는데 고봉 씨의 아버지 만복 씨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문패를 달고 살라”는 말을 남기고 저승길로 떠났다. 운명을 하기 전, 가릉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가 갑자기 억센 손아귀로 고봉 씨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보물이 묻힌 장소라도 말해주듯 귓속말로 남긴 말이 문패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금세 숨을 거뒀다. 잠시 어리둥절한 채 앉아있던 고봉 씨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난과 집 없는 설움이 얼마나 뼛속 깊이 박혔으면 ‘문패’를 유언으로 남겼을까. 아버지는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 소작인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치던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흘러들어와 하층민의 배고프고 서러운 삶을 살다 갔다. 평생 한 일이라고는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남들이 싸지른 똥을 퍼 나른 게 전부였다. 농사지을 땐 생산을 위해 똥을 펐지만 도시에 와서는 버리기 위해 똥을 펐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여름에는 빗물에 넘쳐흐르는 똥을 펐고 겨울에는 꽁꽁 언 똥을 깨트려가면서 펐다. 그렇게 똥을 퍼서 가족의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고봉 씨도 공부 같은 건 꿈도 못 꾼 채 또 하나의 ‘준비된 빈민’으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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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떠난 뒤 고봉 씨의 삶의 목표는 문패가 되었다. 문패를 달기 위해서는 대문이 있어야 되고, 대문에 내 이름을 걸 수 있다는 건 내 집을 가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집이란 게 어디 장에 가서 검정고무신 사오듯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배운 것 없이 몸뚱이 하나만 달랑 가진 고봉 씨로서는 사다리를 놓고 달나라에 가겠다는 것만큼이나 막막한 꿈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밑천 삼을만한 건 없었다. 물려받은 거라고는 보증금 없는 월세 방과 멜빵 나달거리는 지게 하나, 바퀴에 바람 빠진 리어카 한 대뿐이었다. 아니, 또 하나, 남 다른 솜씨가 있었다. ‘재주 많은 사람은 밑구녕 찢어지게 산다’는, 덕담보다는 어깃장에 가까운 옛말이 있었지만 고봉 씨에게는 그게 유일한 밑천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처음엔 하수구 치우기, 굴뚝청소, 아버지의 평생사업이었던 똥 푸기 같은 막일을 했다. 조금 지나면서 리어카에 고물을 수집하는 일로 전업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고물장수에 머물지 않았다. 각종 도구를 싣고 다니며 땜장이도 하고 수리공도 했다. 물론 하수구를 치워달라면 치우고 굴뚝을 뚫어달라면 뚫어주고 칼을 갈아달라면 갈아줬다. 새는 지붕을 고쳐주고 깨어진 유리창을 갈아주기도 했다. 그를 불러 해결되지 않는 일은, 할머니에게 애를 점지해달라거나 게으름뱅이를 부자 되게 해달라는 거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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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리어카는 만물창고였고, 그의 직업은 만능 해결사였다. 어느 동네에서도 그는 인기가 좋았다. 동네 입구를 들어서며 “고물 팔아요~ 솥이나 냄비 때워요~ 굴뚝 뚫어요~ 지붕 고쳐요~” 외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 그에게 손짓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에서는 하루 종일 잡혀있기 일쑤였다. 일을 하면서도 그의 눈길은 자주 이집 저집의 대문에 머물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패에 가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태어난 다음이었지만, 고봉 씨의 문패를 향한 꿈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문패는 집을 가졌다는 상징이고 징표였다. 그래서 누구나 집을 마련한 순간 자랑스럽게 문패부터 내걸었다. 문패도 가지각색이었다. 거친 판자에 조악한 솜씨로 직접 쓴 것, 잘 깎은 나무에 전문가의 손으로 쓴 뒤 니스 칠을 한 것, 돌에 이름을 새겨 넣은 것, 자개를 붙여서 만든 것…. 얼떨결에 부자동네에 들어가는 때도 있었는데, 거기서도 고봉 씨의 시선은 문패에 가있고는 했다. 그런 동네의 문패는 서민들이 사는 동네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드문 일이었지만, 부부 이름을 나란히 적은 집도 있었다. ‘남우세스럽게 문패에 마누라 이름을 적누. 이 인간은 처가살이를 하든가. 마누라한테 잡혀 사는 못난이가 틀림없어…’ 그는 혼자 씨익씨익 웃으며 부자 동네를 구경하고 다녔다. 그런 동네에서는 그의 손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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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일하고 개미처럼 먹었지만, 집을 살만한 돈은 쉽사리 모아지지 않았다. 청양댁도 남의 식당에서 밤늦도록 일했지만 돈은 늘 저만치서 꼬리만 흔들었다. 더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돈 들어갈 일은 자꾸 생겨났다. 고봉 씨는 이러다가는 살아생전 아버지 유언을 못 들어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유달리 힘든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패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유리창 안으로 견본을 들여다보면서 “난 저걸로 해야지, 저 글씨가 좋겠군….” 혼자 흥을 돋우기도 했다. 집을 살 기회는 아주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하지만 좋아할 일이 아니라 땅을 치고 통곡할 사건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청양댁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식당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당한 사고였다. 집을 빨리 마련하겠다고 늦게까지 일한 게 화근이었다. 골반이 깨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이었다. 몇 달 간 병원에 누워있다 퇴원하는 길에는 목발과 약간의 보상금이 따라왔다. 눈물에 젖어 지내던 청양댁이 어느 날 고봉 씨를 부르더니 보상금과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 집을 사자고 했다. 결국 놔두면 쏠락쏠락 푼돈으로 사라질 테고, 다리 한쪽과 바꿀 만큼 가치 있는 건 집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고봉 씨로서야 유구무언이었다. 청양댁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며칠 산동네를 돌아다니더니 덜컥 집 하나를 계약했다. 세를 사는 동네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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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라고는 하지만 양지바른 곳이었다. 누군가가, 그곳이 물길을 메우고 집터를 닦은 곳이라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가 날지도 모른다고 귀띔했지만, 그 말을 흘려들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물론 판잣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허름한 집이었다. 원래 방 두 개 부엌 한 칸인 집이었는데, 전 주인이 처마 끝에 사람 두엇 누울 만한 방을 더 들여서 방이 세 개나 되었다. 번듯한 대문은 아니었지만, 양쪽에 든든한 말뚝을 세우고 함석 문을 달아놓아서 문패를 다는 것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고봉 씨는 계약금을 건네자마자 문패집부터 찾아갔다. 아내의 다리를 팔아 산 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하고 무거웠지만, 드디어 아버지의 유언을 이룬다는 가쁨에 날아갈 것 같기도 했다. 문패장수가 문패는 나무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괜히 겉멋 든 사람들이 자개니 금박이니 찾는 거라고 거들었지만, 고봉 씨는 자개문패를 고집했다. 스스로도 손바닥만한 판잣집에 자개문패가 과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문패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이름표였다. 평생 짐승처럼 살다간 아버지에게 “당신의 자식이 이렇게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라고 고하는 선언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금이라도 박아 넣고 싶었다.

비는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쏟아 붓는다.
“에이, 이게 벌써 며칠 째여”
쪽마루에 앉아서 원망스런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던 고봉 씨가 끄응!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비가 오면 일을 나갈 수 없다. 아내도 일을 못하는데 자신마저 며칠 씩 놀고 있다는 생각에 영 바늘방석이다. 방에서는 청양댁이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 혼자 이삿짐을 싸고 있다. 이삿날이 한참 남았는데도 조급증이 난 것이었다. 그 꼴을 보니 버럭 화증이 인다. ‘장마가 오기 전에 이사를 했어야하는데… 우리 주제에 뭔 남의 사정을 봐준다고…’ 새로 산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 옮길 곳을 못 구했다고 울며 사정하는 바람에, 잔금까지 치르고도 이사를 연기한 참이었다.
“거, 라지오 좀 틀어봐. 대체 이놈의 비가 언제까지 온다는 거여”
라디오에서도 악마구리 우는 소리가 난다. 물난리… 산사태… 참사… 어쩌구하는 흥분된 목소리가 다급하게 튀어나오는 걸 보니 뭔가 큰 난리가 나긴 난 모양이다.
“가만 가만, 시방 저게 뭔 소리여? 저기가 거기, 거기, 우리 집 있는 데 아녀?”
고봉 씨의 더듬거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양댁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다리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내닫는다. 고봉 씨가 따라 나갔을 땐 이미 빗속으로 뛰어든 뒤다.

산 한쪽이 뭉텅 떨어져 나갔다. 드러난 속살이 뻘건 황토물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린 뒤였다. 그 속에 묻힌 집들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몇몇 집은 내동댕이쳐진 채 장난감처럼 부서져 있었다.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하늘에서는 화살 같은 햇살이 연신 쏟아져 내린다. 여기저기서 통곡이 봇물처럼 터진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고봉 씨에게 기대고 있던 청양댁의 몸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이봐! 이봐!” 소리치며 아내를 들쳐 업던 고봉 씨의 몸에서 문패가 툭! 떨어진다. 황토에 누운 작고 까만 몸피가 유난하게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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