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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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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점절'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5.21 [길따라 바람따라 2] 주산 통점절길37
2012. 5. 21. 08:32 길따라 바람따라

 

 

 

통점절길. 이곳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하나일 뿐이다.

충남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 그 동네에 도착 때만 해도 딱히 을 걸어야겠다는, 아니 길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가까이 지내는 형님 한 분의 고향이 그 동네였고, 그가 고향에 가는 길에 지인 몇이 봄 소풍 차 따라나선 터였다. 헌데 누군가 예비한 듯, 그곳에서 통점절길을 만났다. 우선 통점절길이라는 발음조차 잘 안 되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릴 분도 많을 테니 소개하고 가기로 하자. 미리 고백하건대 통점절길이란 이름은 내가 붙인 것이다. 통점절은 주산에서 바라보이는 산 중턱(산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에 있는 용주사(龍珠寺)라는 작은 절을 그 동네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용주사보다는 통점절이 훨씬 정감이 있지 않은가. 왜 통점절인지는 그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형님도 설명해 내지 못했다. 아무튼 통점절길은 요즘 흔히 부르는 둘레길이나 마실길, 자드락길 같은 이름을 얻지 못한, 이름 없는 산길이었다. 그리고 꽃이 김춘수를 만나듯, 산길이 나를 만나 로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별 볼 일 없는 길이겠지? 라고 예단을 한다면 그리 생각한 사람만 손해일 뿐이다. 가보면 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인지. 이 길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세상 어느 길도 소개할 자신이 없다.  

주차의 신세를 졌던 주산초등학교.

주산초등학교를 나와 오른쪽으로. 여기서부터 벚꽃길이다.

조금 더 걷다보면 이런 전원풍경이...

예로부터 자원이 풍부하며 산 좋고 물 맑은 땅에 대대손손 평강을 누리며 산다는 뜻으로 만세보령(萬歲保寧)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던 보령. 내 낡은 기억에 의하면,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장항선 열차를 타는 게 가장 좋다. 특히 우리가 목적지로 정한 주산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동차를 택하고 말았다. 주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주산초등학교.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차를 위해서다. 차를 놓고 학교 정문을 나와 오른쪽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도로 옆에는 청년기의 짱짱한 벚나무들이 미처 꽃을 다 떨어내지 못한 채, 어정쩡한 모습으로 초봄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있다. 지난주 내린 비에 꽃들과 조금 일찍 이별했나보다. 벚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다 오른쪽 철길로 방향을 잡는다. 그곳에서 내 개인의 앨범 속에 있는 바로 그 역과 만난다. 아니, 그 역이 아니다. 간이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모습. 서너 사람 비를 그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시멘트 구조물이 달랑 서 있다. 쓰레기가 쌓인 지저분한 바닥. 버림받은 것 특유의 쓸쓸한 모습이다. 내 기억에 특별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다면 이 근처엔 분명 역사가 있었다. 주산역.

 

철길을 따라 걷다.

간이역의 기능마저 잃어버린, 초라한 주산역.

안내판도 저렇게 쓸쓸히 늙어간다.

주산에 딱 한 번 와본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우리를 가르치던 국어선생님이 본인의 행동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로 좌천(?) 당해 이 동네까지 전근을 온 적이 있었다. 문예반을 이끌던 선생님이라 그랬는지 제법 친근의 염()을 품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을 뵙겠다고 어느 날 장항선 열차를 타고 내린 게 이 곳이었다. 하지만 역은 이미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 역으로서의 역할을 잃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추억 한 자락이 뭉텅 잘려나간 느낌에 가슴 속의 강물이 거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철길 걷는 것을 중동무이하고 주산산업고등학교로 들어간다. 전에는 주산농업고등학교였다. 전근 온 국어선생님이 재직하던 학교라 아직도 기억 속에 있다. 세월은 기차역 하나를 지운 것뿐 아니라 농업학교를 산업학교로 바꿔놓기도 했다. 농업실습장이 있던 곳들은 새 건물이 들어서서 식품가공실습장의 이름표를 달았다. 이쯤 해야지. 길을 안내하는 자가 개인의 추억에 오래 휩싸여 있으면 안 된다. 학교 정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니 작은 차도로 이어진다. 길 주변에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빨갛고 파란 함석지붕을 덮고 서 있다.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풍요로운 기색도 내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형님은 여기저기서 추억을 캐내느라 여념이 없다. 저 집에는 도장 파는 이가 살았고, 저긴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살던 집이고.

 

주산산업고등학교에서 나오면 나타나는 마을. 이곳이 바로 '형님'의 고향동네다. 저집이 도장집?

마을이 안온하다.

'형님'이 어릴 적 살던 집 맞을 걸?

저만치 서 있는 앞산에는 산 벚꽃이 한창이다. 산 벚은 꽃이 늦게 피어 늦게 지는 편이니 제법 세찬 비에도 별 탈이 없었나보다. 산 벚꽃이 있는 산은 파스텔 그 자체다. 우리는 지금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통점절 역시 저 벚꽃 사이 어딘가에 숨어있다. 길가 도랑에서 돌미나리를 캐는 할머니와 만난다. 일행 중 한 분이 몇 마디 말을 건네더니 미나리를 한 줌을 산다. 2천원을 드렸단다. 팔려고 뜯은 건 아니겠지만 할머니에게는 용돈이 생겨서 좋고 우리는 싱싱한 저녁 찬거리를 얻어서 좋다. 열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기서 저 속도면 역시 주산역에서는 서지 않은 것이다. 알고 있는 것도 눈앞에서 확인 되면 섭섭함은 배가 된다. 차도를 버리고 냇둑 길로 접어든다. 금암3(통점), 그리고 그 아래 용주사라고 쓰여 있는 표지석이 서 있다. , 동네의 속칭이 통점이라 통점절이라고 불렀구나. 이제야 궁금증을 푼다. 여기서부터는 차도 없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이도 없다. 걸음이 한없이 늘어진다. 온 세상에 참견할 것들이 널려있다.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쑥, 노란 꽃 하얀 꽃을 피워 낸 민들레, 보기만 해도 입맛 도는 씀바귀, 주인 없는 머위. 너도 나도 봄이 차려낸 성찬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누구는 냇가로 내려가 돌미나리를 뜯어온다. 아까 할머니에게 산 미나리보다 훨씬 실하다. 이렇게 지천인데 괜히 샀나? 하지만 그것도 이것도 선물이다. 오늘 저녁 식탁에는 풀 잔치가 벌어지겠군.역을 무시하고 달리는 열차. 서! 섰다 가란 말야!!!

네 갈래길에서 동네가 보이는 왼쪽 길로 들어섰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에게 쓸데없이 말도 걸어보고.

그렇게 느리게 걷다가 네 갈래 길을 만난다. 어느 길이 좋을까? 이곳을 고향으로 둔 형님도 어릴 적에 떠난지라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어차피 모든 길은 산으로 향하는 것. 별 망설임 없이 동네가 있는 왼쪽 길로 접어든다. 개천을 따라 가는 길이다. 사람 없는 길을 내쳐걷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늘 순박한 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동네 이름을 물어보니 안태란다. 누군가가 ? 우리 고향에도 안태가 있는데하며 반가워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이 안태라는 마을 이름은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작명의 근원은 알 수는 없지만 그만큼 안온한 동네라는 뜻이겠지. 마을 입구 사래 긴 밭에서 고랑을 일구는 아낙들을 만난다. 저 넓은 밭을 둘이 언제 다 일구나, 별 도움도 안 되는 걱정을 한다. 걱정은 기어이 큰 목소리가 된다.

거기에 무얼 심으실 거예요?”

, 고추 모종내려고요

그럼 비닐도 씌우셔야겠네요?”

, 고랑 다 만든 다음에요.”

써놓고 보니 참 알맹이 없는 대화였다. 가던 길이나 내처 갈 것이지 별걸 다 참견한 셈이다. 하지만 내가 길을 걷는 이유는 길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이 품은 존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사람도 그들 중 하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바로 그 대숲집.

일하는 사람보다는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군데군데 빈 집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 길에서 조금 떨어진 빨간 함석집(원래 빨간 색인지 녹이 슬어서 빨간 색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이 자꾸 시선을 잡아끈다. 방 두 칸에 부엌이 한 칸인 일자집이다. 뒤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앞에는 조그마한 마당이 있다. 사람이 떠난 지 제법 된 듯, 부엌 문짝도 덜렁거리고 쇠락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원래 지녔던 기품은 꼿꼿하게 남아 집을 지킨다. 저 곳에 살던 주인을 닮았을 것이다. 어쩌다 집을 떠나게 됐을까. 노랗게 여문 햇살이 부드러운 손길을 내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핥는다. 저런 곳에 살고 싶다. 누구에게도 잊힌 이름이 되어, ‘이름 없는 이름으로 살고 싶다. 친구를 두고 가는 듯,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돌아본다. 동네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늙은 개조차 화적 떼처럼 찾아온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기색이 없다. 안태라는 이름이 왜 지어졌는지 알 것 같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모판 내는 사람들을 만난다. 소독한 볍씨가 뿌려진 모판을 논에 나란히 설치하는 작업이다. 저기서 난 싹이 모가 되고, 벼가 되고 쌀이 된다. 온 가족이 모두 논으로 나왔나보다. 그냥 가족이 아니라 도시에서 온 아들 딸 며느리 손자들이 틀림없다. 아이들까지 섞이다 보니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좀 애매하지만 그래도 보기 좋다. 아이야, 지금 너는 더불어 사는 것과 생명에 숨을 불어넣는 걸 배우고 있는 중이란다.

 

나무, 빨간 함석집... 평화롭다.

일하는 어른에게 통점절 가는 길을 물으니 논두렁을 가로지르는 길을 가르쳐 준다. 일하는 이들에게 방해될까봐 조심조심 논둑을 지난다. 그리고 다시 닿은 동네. , 조용하다. 농사철이 시작됐는데도 오가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농촌에 노인들만 남아서일까. 어느 집 밭둑에 두릅이 탐스럽게 순을 내밀었다. 일행들이 입맛을 쩝쩝 다신다. 자연이 품은 맛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밭둑에 있다는 것은 주인이 있다는 뜻이다. 쑥이나 씀바귀와 달라 함부로 따면 안 된다. 마침 중년 사내가 지나길래 길도 물을 겸 말을 건넨다. “통점절이 아저씨 길은 안 가르쳐 주고 엉뚱한 농담을 한다. “저 두릅, 사진 찍는 건 돈을 내야하고요, 따가는 건 공짭니다.” 이쯤에서 낚시 밥 물듯 밭둑으로 달려가면 바보가 된다. 통점절을 모르는 걸 보니 이 동네 사람이 아니다. 외지에 오래 나가 있다가 다니러 온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때는 그저 껄껄 웃고 돌아서는 게 최선. 이름이 정해지고 공식 길로 지정된 길들은 안내판도 있고 지도도 있지만, 이렇게 이름을 얻지 못한 길은 물어물어 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부터 통점절 올라가는 길. 통점절에 핀 동백꽃. 화려하다.

통점절 마당의 우물. 물맛이 달았다.

그 와중에도 일행의 눈은 이곳저곳 풍경에 푹 빠져 있다. 까치집을 이고 있는 키 큰 나무 아래 빨간 양철집이 보기 좋다. 적당히 낡아서 더욱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도 낡을수록 정감 있고 보기 좋아지면 좋겠다. 물론 이 집은 주인이 살고 있다. 다시 길을 잡는다. 동네를 벗어나니 드디어 통점절로 올라가는 외길이 나타난다. 길은 여느 절처럼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로 포장해 놓았다.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더욱 고즈넉하고 편안하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산길을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잠시 자리를 펴고 배낭에 넣어온 술을 한 잔씩 나누는 호사도 누린다. 휴식 끝!! 조금 가팔라진 길을 따라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르니 드디어 통점절, 즉 용주사가 나타난다. 위치는 좋은데 절 자체는 시멘트로 지어놔서 특별히 볼 건 없다. 대처승이 거처하고 있는 개인 절이라고 한다. 꽃들이 아름답다. 대체로 대처승이 거처했거나 거처하고 있는 절은 꽃밭이 잘 가꿔져 있는 편이란다. 부인들이 심심하니까 꽃밭에 전념한다나? 물을 한잔 씩 마시고 절을 나와 반대쪽 길로 접어든다.

이제부터 본격 트레킹. 꽃인지 보석인지.

빛은 화가다. 저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이제부터 걷는 길은 임도(林道). 본격적인 트레킹은 여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산림관리나 나무를 실어내기 위해 설치한 차도가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로 변신했다. 구불구불 모롱이를 따라 돌고 도는 길은 일일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길은 차의 통행이 끊기고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서인지 온갖 식물을 키워내고 있다. 특히 작은 돌 틈 사이로 군집을 이룬 민들레꽃들은 보석처럼 빛난다. 카메라를 든 일행이 한참동안 떠나지 못한다. 아무리 잘 찍어도 본래의 모습만큼 나올까. 오후의 햇살이 연초록 나뭇잎을 투과하면서 그린 빛 그림이 황홀하다. 자연 그 자체가 최고의 화가다. 이곳의 색들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대들지 않는다. 봄이 되면 그저 옅은 물감을 너도 나도 조금씩 내어 공동의 그림을 그릴 뿐이다. 이곳 저곳에서 연신 감탄사가 터진다. 산 벚꽃 그늘 아래를 걷는 이들의 표정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 그들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이런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황홀하다.

잘 보면 길을 걷는 여인이 있다. 

 

여길 돌면 끝일까? 글쎄...

길 옆에는 유난히 두릅나무가 많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두릅나무들의 목이 전부 잘려져 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그리 된 걸 보니 누군가가 일부러 잘라간 게 확실하다. 누굴까. 이건 만행이다. 살아 있는 나무의 목을 댕강댕강 자르는 심보라니. 전에 들었던 두릅 이야기가 생각난다. 두릅은 봄이 되면 척박한 땅 속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물로 소담스런 새순을 만들어 낸다. 겨우내 입맛을 잃었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싹을 달랑 잘라간다. 세상을 향해 피어보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는 두릅은 다시 한 번 새순을 낸다. 그 순이라고 가만 놔둘 리 있을까. 또 한 번의 수난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두릅은 포기하지 않는다. 잎을 펼쳐보고 싶다는 염원 하나로 다시 한 번 싹을 낸다. 하지만 그렇게 낸 세 번째 새순마저 잘라내면 삶 자체를 포기한다. 그래서 내년에도 두릅 먹기를 원하는 농부는 마지막 순은 절대 자르지 않는단다. 이 얘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의 것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양심과 배려는 필수라는 것만

가슴에 두면 된다.

저만치 논밭이 보이니 이제 마을이 나오겠지.

그래. 이젠 살았다.

누군지 모를 가 두릅의 목을 댕강 잘라갔다고 먹을 게 아주 없을 리는 없다. 봄은 지천에 온갖 선물을 마련해두고 오가는 사람에게 조금씩 나눠준다. 우리의 걸음은 여전히 느리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한참. 모두들 시장기가 도는 눈치다. 하지만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다. 워낙 행복한 걸음을 걷다보니 마음이 불러서? 길이 그리 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먹을 걸 안 싸온 게 문제였다. 휴게소에서 라면이나 우동 한 그릇씩 먹은 게 전부인데 시간은 두 시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다. 종국에는 나물이고 뭐고 걸음을 재촉한다. 모롱이를 돌고 또 돌고. 이제 끝이겠지 싶으면 또 다른 모롱이가 나타나고. 풍경만 아름답지 않았으면 일행 중 두어 명은 넉장거리를 놓았을지도 모른다. 한참 걸어가서야 저만치 산 아래로 동네와 논과 밭이 보인다. 산을 내려와 동네에 들어설 무렵, 안도감과 아쉬움이 같은 비중으로 교차한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도 하지. 영화 세트장처럼 조용한 동네의 한 가운데쯤 들어서니 서서히 아쉬움의 비중이 커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년 봄에 찾아올 수 있을까. 또 찾아오면 똑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돌아가야 할 회색빛의 냉정한 도시가 가슴에 무지근하게 얹힌다.

주산의 번화가? 영화 세트장처럼 조용했다.

이번 길 여행, 통점절길 걷기는 따로 안내하거나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길은 으로 시작해서 으로 끝나는 게 가장 적절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감춰두고 남 몰래 야금야금 걷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그 동네, 그 길, 그곳 사람들, 모든 것을 대표하는 말은 평화한 단어면 충분했다. 걷는 내내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행복했다. 그래서 사진들이 별로 없다. 셔터 누를 시간을 모두 풍경에 할애한 셈이다. 세상살이가 유난히 팍팍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의 아우성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당신느닷없이 충남 보령 주산으로 가볼 일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통점절 가는 길을 물어서 느린 걸음으로 걸어볼 일이다. 걷기가 끝나는 순간 몸 안에 충만한 그 무엇이 채워졌음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미 통점절길에 중독된 것이다.

기대하시라, 허벌냉면.

꼬리)그날 점심은 그 동네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님이 냈습니다. 길을 안내하고

점심까지 내고. 저는 제 고향에 지인들을 절대 데리고 가지 말아야겠습니다. 말이 점심이지 진정 호화로운 밥상이었습니다. 밥을 먹은 곳은 허벌냉면이라는 간판을 크게 내세운 평화냉면촌이란 식당이었는데, 헛개나무와 벌나무를 넣은 육수를 쓰기 때문에 허벌

세숫대야만에 나온 허벌냉면. 들어간 게 없어도 최고의 맛.

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는 허벌나게 맛있다고 그리 이름을 지은 줄 알았습니다. 헛개는 알지만 벌나무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냉면 정도 먹고 나서 호화로운 밥상이었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님다. 그날의 진정한 주인공은 소고기였습니다. 주산은 한우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주산한우마을이라는 공동상표도 있습니다. 마침 형님의 친구 분이 평화냉면촌 앞에서 정육점(황률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온갖 종류의 고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리 연락을 했던 게지요. 그곳도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 식당에서 구워먹는 시스템입니다. 그날 먹은 고기를 일일이 열거하기는 좀 벅찹니다. 등심, 안심, 치마살, 살치살혹시 침 넘기다 익사하는 분이 생길까봐 상세 묘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그날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를 포식했습니다. 냉면요? 두 말 하면 잔소립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광고는 절대 아닙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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