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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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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3 [사라져가는 것들 145] 똥돼지5
2010. 8. 23. 08:57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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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을 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응칠아저씨가 둘도 없는 뻥쟁이라는 건 석 달 된 강아지까지 다 알고 있었거든요.
더구나 내용도 얼마나 구질구질 한지, 모두 밥 먹던 중에 입에 파리라도 들어간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요.
아저씨 말에 의하면, 제주도에 가면 돼지가 사람 똥을 먹고 산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특히 남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는 거 있지요.
돼지란 놈이 떨어진 똥을 얌전히 주워 먹는 게 아니라, 학교 운동회 때 줄에 매달린 과자 따먹듯 점프를 해서 받아먹는다는 거지요.
문제는 돼지란 놈의 시력이 별로였는지, 남자의 거시기가 떨어지는 똥인 줄 알고 덥석 물어버린답니다.
그래서 거시기를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도 제법 된다고, 직접 본 것처럼 늘어놓는 겁니다.
그곳 사람들은 뒷간에 갈 때 돼지를 쫓을 수 있는 작대기를 필수적으로 지참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고요.
여자들도 안전한 건 아니랍니다.
섬사람들이야 작대기라도 들고 가지만, 뭍에서 구경 간 사람들은 뒷간에 돼지가 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하겠지요.
볼 일을 보다 갑자기 나타나 꿀꿀거리는 시커먼 놈 때문에 아예 정신 줄 놓은 여자도 한 둘이 아니라고 또 입에 침을 튀기더라고요.
지도책에서나 제주도를 본 아이들이야, 그런 험한 곳에 갈 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냔 듯 한숨까지 포옥 쉬었지만, 사실 대부분 아이들은 그저 뻥 치는 거 하나 또 들었으려니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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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훗날 들어 보니, 그 거짓말 같던 얘기가 상당 부분 사실이더라고요.
제주도에서는 뒷간을 통새 또는 통시라고 부른다지요?
그 통시는 돼지막인 돗통과 사람의 공간인 뒷간으로 구성됩니다.
돗통은 돼지의 공간만큼 돌로 담장을 두르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뒷간은 다른 쪽의 약간 높은 곳에 디딤돌 두 개를 놓고 사람이 앉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담장을 두릅니다.
비 가릴 지붕? 돼지에게는 있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비오는 날은 작대기 들고 우산 쓰고 가서 담배까지 한 대 피워 물려니 절차가 제법 복잡했겠지요.
그런 마당에 문짝인들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문짝도 없이 대충 만드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지요?
외적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라, 볼일 보면서도 늘 경계를 하다가 적이 나타나면 후다닥 도망치기 위해서 그랬답니다.
또 볼일을 볼 땐 자주 헛기침을 해야 된답니다.
그래야 지나가던 사람이 적당히 외면해준다나요.
통시의 바닥은 마당보다 낮게 만들어 오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와 같은 통시는 반드시 안거리 정지(부엌)와 반대쪽 큰 구들의 황벽 옆 또는 멀리 떨어진 밖거리 옆 울담에 덧붙여 만들었답니다.
제주도의 ‘남선비 설화’에 의하면 조황신과 측간신은 처첩 사이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부엌과  통시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라지요.
제주에서는 가장 무서운 동티를 측간 동티라 부르고, 측간의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옮기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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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통시라고 해서 돼지를 똥만으로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돗통 한쪽에 먹이통을 놓아두고 거기에 음식물 찌꺼기 같은 걸 넣어주었습니다.
사실은 그게 주식인 셈이지요.
하지만 가족이 많은 집에서는 오로지 사람의 배설물로만 키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돼지란 녀석은 시력은 좀 떨어져도 후각과 청각은 무척 발달한 모양입니다.
오밤중에 조용히 볼 일을 보려고 살금살금 통시에 가도 어느 틈엔가 먹을 게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달려 나온답니다.
그리고 제법 깔끔을 떨어서 몸에 오물이 묻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지요.
그래서 뭔가 묻은 느낌이 들면 정신없이 털어댑니다.
여기서 또 낭패를 보는 사람이 허다하게 등장하지요.
큰일을 보는 중에 배설물이 돼지 입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몸에 떨어지면 인정사정없이 털어대는 겁니다.
그때 흘러가는 구름이나 감상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괴춤이고 뭐고 챙길 새 없이 후다닥 도망치는 게 장땡입니다.
통시 바닥에는 보리 짚이나 볏짚을 깔아줍니다.
돼지는 먹거나 잠잘 때를 빼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분뇨를 배설하고 짚을 다집니다.
그렇게 돼지분뇨와 적당히 섞인 짚이 쌓이고 발효해서 질 좋은 거름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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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긴 세월 자리 잡고 살던 재래돼지는 오래 전 만주지역에서 소형종이 들어온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들이 제주도까지 유입돼 토착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도에는 뱀이 많았는데, 뱀을 잡아먹는 돼지의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길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주도의 토종돼지는 검은 색 털로 완전히 덮여있으며 얼굴이 좁고 주둥이가 길다고 합니다.
또 몸집이 작고 엉덩이와 배 부분이 좁지만 가슴은 상대적으로 넓은 편입니다.
다리는 짧고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종의 돼지보다 육질과 맛이 좋다는 것이고요.
보통 한꺼번에 5~8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는 개량종들보다 성장이 느린 편입니다.
체질이 강건해서 전염병 등에 강하며 환경변화에도 잘 적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번식력이 좋고 덩치가 큰 외국 개량종들이 대량 유입 되고, 또 토종돼지와 교잡되는 바람에 순수 혈통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지금은 제주도에도 순수한 토종 돼지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그 혈통이 섞여있는 흑돼지가 남아 있을 뿐이지요.
물론 이 흑돼지들도 똥을 먹이는 게 아니라 보통 돼지처럼 사료를 줘 사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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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돼지가 제주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뭍에도 인분을 돼지먹이로 삼은 곳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지리산 깊은 산골에서는 최근까지도 똥돼지를 키웠다고 하지요.
하지만 노인들만 사는 그 골짜기에 돼지 먹을 인분인들 제대로 생산되려고요.
게다가 그런 식으로 돼지를 기를만한 뒷간이 어디 남아있나요.
제주도에서도 민속마을이나 가야 똥돼지의 잔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느닷없이 거시기를 물리는 남자나 오밤중에 놀라자빠지는 여자를 볼 일은 없어진 셈이지요.
도시에서 가끔 길을 걷다보면 ‘제주도 똥돼지’라고 버젓이 달아놓은 간판을 봅니다.
‘제주 직송’이란 선전문구도 빠지지 않고요.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지만, 그야말로 과장광고일 뿐이지요.
하긴 찾아가 먹는 사람이라고 진짜 똥돼지인 줄 알고 먹겠습니까?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똥돼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옛날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응칠아저씨가 그리워지네요.
그 양반도 오래 전에 이 세상을 떠나셨지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가보지도 않은 제주도 이야기 한 자락 깔아놓으시려나….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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