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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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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탕'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2.13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18] 터키탕 이야기28


*1
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노면전차 트램의 외관

트램의 객차 내부. 느린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트램을 타다

모두들 조금씩 상기된 얼굴로 트램에 오른다. 터키 여행 내내 버스만 타고 다녔으니 다른 탈것이 신기할 법도 하다. 트램은 노면전차 또는 시가(市街)전차라고 부르는데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전동차를 말한다. 하지만 믿음 씨는 트램이란 단어를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터키에서는 트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건 뭔데? 그야 전철이란 뜻의 트란바이(tranvay)라고 하지요. 그럼 기차는? 그건 트렌(tren)이고요. 한국의 터키 관련 책자에는 모두 트램이나 트렘으로 썼던데? 그게 잘못된 거라니까요.(버럭!!) 그려, 그려. 누가 뭐라고 했남? 아무렴, 여기 사는 네가 맞겠지. 두 손을 들고 가만 생각해보니 트램이란 단어 자체가 국제적 통용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터키에 와서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트램은 주로 유럽에서 운행되는데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세계 약 50나라의 400개 정도 도시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189812월 서울 서대문-청량리 구간에 처음 개통돼 1968년까지 운행되던 노면전차가 바로 트램이다. 터키에서 트램이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전차라고 하는데 외국인이 와서 트램이라고 하면 이질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아무튼 믿음 씨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트램으로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믿음 씨 배신해서 미안해요.

안탈리아의 상징, 이블리 미나레트.

이블리 미나레트 근처에 있는 시계탑.

트램의 운임은 1~1.5리라. 돈은 차 안에서 받는다. 안탈리아는 해발 35m의 석회석 지반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땅을 팔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지하철을 놓을 수 없다. 트램의 외부에는 광고가 붙어 있고 객차에는 나무의자를 놓았다. 쌩쌩 달리며 사람을 위협하는 병기가 아닌, 사람에 맞춰 움직이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느낌에 정이 간다. 트램이 천천히 해변을 따라 달린다. 모처럼 느린 속도가 주는 안도감을 만끽한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꼭 봐야할 것을 놓치고 마는지도. 트램이 일행을 내려놓은 곳은 이블리 미나레트와 시계탑을 볼 수 있는 광장. 이블리 미나레트는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높이 38m. 안탈리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미나레트는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모스크, 즉 이슬람사원에 세운 첨탑을 말한다. 이블리는 ’ ‘홈이 파인이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 미나레트의 외벽에 붉은 벽돌로 여덟 줄의 세로 홈이 파여 있다. 이블리 미나레트는 룸 셀주크의 술탄이었던 알라딘 케이쿠바드1세가 1219년에 세웠다. 그리스 정교회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고 이 미나레트를 세운 것이다. 안탈리아의 구시가지를 칼레이치(Kaleiçi)라고 부르는데 이블리 미나레트는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계탑과 함께 칼레이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미나레트를 지나 마리나 항구로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다시 한번 소개하는 유료 화장실.

유쾌 상쾌한 화장실 할아버지. 코리언이라는 말에 경례를 붙여줬다.

터키탕에 대한 오해

때가 되면 찾아오는 생리현상을 어찌하랴. 도살장 들어가는 소걸음으로 유료화장실에 들렀다가 유쾌 상쾌한 어른들을 만난다. 노인 두 분이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데 노인들이 갖기 쉬운 지치고 음울한 기색이 전혀 없다. 특히 수염을 멋지게 기른

이블리 미나레트.

노인은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멋지게 경례까지 붙여준다. 이분들도 혹시 참전용사인 코레 가지’? 그렇지만 화장실 요금은 절대 깎아주지 않는다. 활짝 웃으며 헤어진 뒤 본격적인 이블리 미나레트 탐색에 나선다. 당연한 일이지만 미나레트 옆에는 모스크가 있다. 원래 그리스정교회 성당이었다는 바로 그 모스크다. 안을 들여다보니 청년 하나가 창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약간은 어두운 실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과 실루엣에 가까운 청년의 모습이 경건함을 넘어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풍경이 날아갈 것 같아서 자꾸 망설인다. 모스크 앞에는 대형 쇼핑몰이 있는데 옛날에는 신학교였다고 한다. 쇼핑몰이 되어버린 신학교. 비극이라고 해야 하나, 희극이라고 해야 하나. 세월의 짓궂은 장난이겠지. 미나레트에서 시계탑 쪽으로 가다보면 옛 터키 목욕탕인 하맘을 개조한 도자기 가계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못 찾았기보다는 일행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찾을 기회를 놓쳤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은 혼자나, 혹은 비슷한 시각을 가진 친구와 단출하게 다니는 게 좋다. 외로움을 충분한 탐색으로 바꿔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블리 미나레트 옆의 모스크 내부.

슬그머니 내 사진도 하나 끼워넣고. 처음 공개하는 사진이다. 긴 수염과 까맣게 탄 얼굴이 특징이다. 클릭 절대 금지.

이왕 하맘 이야기가 나온 김에 터키탕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터키에 간다니까 은근한 목소리로 다녀와서 재밌는 얘기어쩌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대체 뭘 기대하고 하는 소릴까. 아직도 터키탕에 대한 오해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터키에는 당연히 터키탕이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엉뚱한 오해속의 터키탕은 없다. ‘하맘(Hamam)’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전통의 목욕탕이 있을 뿐이다. 아직도 터키탕과, 매춘을 연상시키는 증기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실제 터키탕은 일부가 상상하는 것처럼 야한 곳이 절대 아니다. 어쩌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그렇게 음습한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여기에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오랜 동안 터키탕에 오명을 씌웠던 증기탕(1996년에 이름이 바뀌었다)은 일본에서 온 퇴폐문화라고 한다. 남성이 탕에 들어가면 지목된 여성이 따라 들어가 목욕과 사우나·마사지 등을 한꺼번에 서비스 하는 것은 물론 매춘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지 나는 한 번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터키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굳이 인연을 따지자면 남녀 혼욕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거기에도 오해가 있다. 터키에서 혼욕은 우리가 생각하는 탕 안에 남녀가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작은 하맘일 경우 남녀가 시간을 나누어서 오전-오후 교대로 탕을 쓰는 걸 말한다는 것이다. 함께 목욕을 하는 온천도 있다는데, 그곳도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니 수영장이나 다름없다.

마리나 항구시장.

골목시장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터키탕에는 물이 없다

터키로서는 자국의 이름이 붙은 듣도 보도 못한 목욕탕 때문에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외국에 가서 섹스문화로 둔갑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9961129일자 연합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입법예고한 공중위생법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건전한 목욕문화의 정착을 위해 터키탕업의 명칭을 증기탕업으로 변경키로 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기사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터키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 측에 터키탕 명칭변경을 끈질기게 요구해왔으며 특히 지난 8월 딩겔테페 대리대사가 신문 독자투고문를 통해 한국에서 터키탕은 사실상 매춘행위를 하는 장소인데 이런 목욕탕은 터키에서 유래되지 않았고 존재도 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항의했었다.’ 결국은 터키의 항의에 의해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터키탕을 증기탕으로 바꾼 것이다. 쓸데없이 목욕탕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터키의 목욕탕 하맘에 대해 조금 알고 가자. 물론 나는 터키에서 대중목욕탕을 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걸 전할 수밖에 없다는 걸 고백한다. 터키탕은 로마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중동을 정복한 로마인들이 자신들 방식의 욕탕을 건설했는데 이것이 터키탕이 됐다는 것이다. 터키탕은 증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밀실에 열기를 가득 채우는 건조욕으로 땀을 내고 나서 몸을 씻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한증막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기념품 중엔 가면도 많았다.

온갖 기념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터키탕을 잠깐 들여다보고 가자. 우선 터키의 목욕탕에는 물이 없다. 사방이 온통 건조한 대리석이다. 뜨끈하게 덥혀진 대리석 방에 앉아 열기로 땀을 내고, 수건으로 때를 밀고 물을 받아 바가지로 몸을 씻어내는 것이 터키 사람들이 목욕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터키탕에서는 옷을 홀딱 벗지 않는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지라 동성 간에도 중요부위는 노출하지 않는다. 괜히 한국에서처럼 속옷까지 홀라당 벗고 들어갔다가는 구경거리가 되기도 전에 쫓겨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터키에서는 목욕탕에 가려면 때수건보다 수영복을 챙겨야 한다. 한 여성의 터키탕 경험담을 들어보자. 입구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고르는데 30리라면 필링(피부의 각질층을 얇게 벗겨내는 것. 남자가 할 일이야 있을까 만은)과 전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을 끼얹은 뒤 사우나실에서 10분 정도 몸을 불리면 때밀이가 순서가 됐다고 부른다. 중앙 홀에 있는 널찍한 대리석 평상에 천을 깔고 누우면 때밀이 아주머니가 터키식 때밀이 타월로 작업을 시작한다. 때를 다 밀면 간단한 샤워 후에 터키식 거품 마사지가 이어지고 두세 차례 물을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 개인적으로 샴푸하고 나오면 끝. 터키에는 동네마다 몇 백 년 묵은 터키탕도 많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한번쯤 들러서 이색적인 경험도 해보고 마음의 묵은 때까지 벗기고 나오는 건 어떨지.

25년동안 양탄자만 수선한 아저씨.

비록 계단에 점포를 열었지만 그는 당당했다.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어차피 터키탕 구경은 팔자에 없는 모양이니 포기하고 골목 탐색이나 열심히 하기로 한다. 조금 내려가니 온갖 기념품을 파는 골목시장이 나온다. 마리나 항구시장이다. 맨 먼저 입구에서 양탄자를 수선하는 아저씨를 만난다. 길 옆 계단에 앉아서 일하지만 당당한 풍모가 도인을 보는 것 같다. 뭐든지 한 가지 일을 지극정성으로 오래 하면 득도를 하는 모양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10세부터 양탄자 수선하는 일을 해서 25년 동안 이 일만 했단다. 전 세계 어디서 만든 카펫이라도 척 보면 한 눈에 출신지를 알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터키 카펫은 두 번을 묶기 때문에 한 번만 묶는 다른 나라 카펫보다 튼튼하단다. 그런데 두 번 묶는다는 게 뭐지? 지금 수선 중인 카펫은 25년 된 것인데 이 정도면 새것 축에 들어간단다. 25년 쓴 게 새것이면 대체 얼마나 오래 쓴다는 거야.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보통은 100~200년은 써야 앤틱(antique)’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오래 쓸수록 골동품적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100~200년은 좀 심하다. 몇 대를 이어 쓴다는 것인지. 수선하는 사람이야 일거리가 많아 좋겠지만 새로 만드는 사람은 누구에게 판담. 쓸데없이 별 걱정을 다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다 좌판에 장신구를 파는 사내아이를 발견한다. 열 살쯤 됐을까? 부모를 대신해 좌판을 잠깐 봐주는 게 아니라 생업인 것 같다.

장신구를 파는 아이. 열심히 권하고 있다.

손님이 그냥 가자 실망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다른 손님마저 그냥 가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힘내라, 아이야.

보석이라고 내놓은 것들이라 봐야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절실함이 눅진눅진 달라붙어 있다. 간이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다가 누가 물건을 들여다보면 눈을 반짝이면서 달려간다. 목걸이를 걸어줘 보기도 하고, 어울릴만한 걸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처럼 온 손님은 살 듯 살 듯 하다가 그냥 가버린다. 아이는 상심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시선을 허공에 묻는다.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와 한참 흥정을 하더니 그냥 돌아선다. 아이가 좌판에 얼굴을 묻는다. 우는 걸까? 꼭 쥔 작은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대체 저 아이는 무슨 사연으로 이 골목에 좌판을 펼쳤을까. 장사를 하던 부모님이 병이라도 난 것일까?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저렇게 절실한 몸짓을 하는 것일까. 와르르 무너지려는 가슴을 추스르며 돌아선다. 조금 더 내려가다 장신구 틈에 숨어있는 남색 돌들에게 발길을 잡힌다. 눈동자처럼 생긴 흰 돌이 남색 돌 안에 박혀 있다. , 저게 굿 럭(Good Luck)’이구나. 굿 럭을 지니고 다니면 그 눈이 악귀를 다 지켜보기 때문에 나쁜 것들이 범접하지 못하다고 한다. 터키 사람들은 그 영험함을 굳게 믿어서 테이블보에서부터 그릇까지 굿 럭의 문양을 곳곳에 새겨놓는다. 또 가게나 집, 관공서 등 출입문이 있는 곳에는 대개 하나씩 매달려 있다. 마음이 넉넉한 터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굿 럭을 달아주고 행운을 빌어준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이 바로 굿 럭.

쫀득쫀득 아이스크림 장수. 온갖 쇼를 한다.

쫀득쫀득 아이스크림

골목이 거의 끝나고 마리나 항구에 다다를 무렵 한 무리의 동양인들을 만난다. 안탈리아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그동안 스쳐온 도시와 다르게 동양인들이 꽤 많다. 중국인도 있고 일본인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인들은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분명 한국인이다. 그 느낌을 믿고 한 마디 던져본다. “안녕하세요?” 길을 가던 그들이 그제야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는다. 역시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피가 피를 당기는 법. 그쯤 되면 길거리 수다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들 일행은 뉴욕에서 왔다고 한다. 터키 땅에서 뉴욕 교포들을 만난 셈이다. 반가워라. 터키에 와서, 타큐팀을 제외하고는 처음 만나는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또 헤어져야 한다. 그들과 작별하고 해변을 걷는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다. 그동안 보드롬이나 페티예, 카쉬에서 워낙 아름다운 바다를 많이 봤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리나 항구는 안탈리아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의미를 갖고 있다. 2세기부터 지중해를 오가던 배들이 쉬어가던 일종의 정거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콘얄트 해변 쪽에 새로운 항구가 생겨 고유의 기능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안탈리아의 명소로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복원돼서 유럽연합이 주는 황금사과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항구는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까마득한 성벽.

오스만 시대에 지은 오래된 집들.

늑골이 드러났지만 정겹다.

거의 몸을 비비 듯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낯설고 익숙한목소리가 들린다. “쫀득쫀득 아이스크림!!” 어라? 이게 웬 쫀득? 돌아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한국말로 우리를 부른다. 저 사람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어딘가 표가 난다는 건데, 그게 뭘까. 그나저나 한국말로 아이스크림을 팔 정도면 이 동네는 정말 한국인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스크림은 쫀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찰떡처럼 생겼다. 우리가 발걸음을 멈추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신나는 몸짓으로 아이스크림을 늘렸다 줄였다 온갖 쇼를 한다. (귀국한 뒤 인사동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 사람을 봤지만 쇼를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로 보면 찹쌀떡쇼쯤 되겠다. 항구 구경을 건성건성 마치고 다시 옛시가지 쪽으로 길을 잡는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성곽의 가파른 길을 헐떡거리며 오른다. 옛날, 배를 타고 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일 테다. 원래 칼레이치는 성내(城內)라는 뜻으로 항구를 둘러싼 4.5km의 성벽 전체를 걸어서 돌 수 있다고 한다. 성곽을 지나고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지나니 오래된 집들이 나온다.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들이다. 늙은 말의 잔등이처럼 헐벗었거나, 늑골을 다 드러낸 집들도 있지만 내 눈엔 그래서 더욱 정겹다. 해가 잠자리를 찾는 듯,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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