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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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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7 [사라져가는 것들 33] 키질10
2007. 11. 7. 13:1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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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에 나잇살이나 짊어지고 사는 이들은 '키' 란 말을 들으면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차서 키득키득 웃거나, 늦가을 대추처럼 붉어진 얼굴로 돌아앉기도 합니다.
키가 금세 오줌싸개 어린 시절로 데려가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다짐하고 잤건만 잠에서 깨어보면 요에는 커다란 지도가 하나 그려져 있었습니다.
애들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요.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는 건 아니고, 오줌싸개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그런 날 아침이면, 어머니는 아이에게 키를 씌우고 바가지를 들려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내보냅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옆집 대문을 두드리지요.
"엄마가 소금 좀 얻어 오라구…"
잠시 후, 머리에 쓴 키 위로 타타닥!!! 쏟아지는 부지깽이 세례.
연이어 들리는 싸르륵~ 소금 뿌리는 소리.
어마 뜨거라, 도망쳐 보지만 이미 소문은 동네방네를 달음질 친 뒤고 망신은 당할 대로 당한 뒤입니다.
아이는 그 날 등굣길-하굣길 내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 쥐구멍을 찾게 마련이지요.
오줌싸는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어 버릇을 고쳐보려는, 일종의 어른들의 공조체제였습니다.
머리에 씌운 키가 '오줌싼 아이'라는 표식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지요.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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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만들어진 목적은 물론 다른 곳에 있지요.
키는 껍질을 벗긴 버드나무가지나 산죽(山竹 조릿대)으로 만듭니다.
옛날 천시 받던 고리백정들이 만들던 품목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크기나 모양은 지방이나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가운데가 움푹 파이고 날개가 달린 건 거의 비슷합니다.
키를 아래위로 까불러서 콩·팥·들깨 같은 알곡을 껍질이나 잔돌과 분리시키는 것을 '키질'한다고 합니다.
막 거둬서 타작을 마친 알곡에는 검불이나 잔돌 등이 마구 섞여 있기 마련이거든요.
겉보리 쿵덕쿵덕 절구질을 해놓고 껍질을 날려버릴 때도 키질이 필요합니다.
키에 알곡을 한 바가지씩 놓고, 까불질을 하면 가벼운 껍질이나 먼지는 날아가고, 잔돌과 쭉정이는 키 앞머리로 갑니다.
그리고 필요한 알곡은 움푹 패인 뒤편으로 몰리게 되지요.
그렇다고 키질이 말처럼 만만한 건 아닙니다.
즉,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잘못하면 알곡이 주르르 떨어지거나 장단을 못 맞춰서 헛키질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 키질도 제대로 하려면 오랜 세월 수련이 필요합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던가요?
젊다고 힘센 척 하고 글 좀 읽었다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이 넘쳐나도, 시간이 가르치는 게 어디 한 둘이어야지요.

경상북도 영덕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던 길, 작은 마을을 지나다 마당에 앉아 키질하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여쭸더니, "이런 거 찍어서 뭐할라고요?" 하면서 마당가 단풍처럼 발갛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옷매무새를 다듬는 모습이 꼭 시집 온지 여드레쯤 된 새색시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키질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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