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석양을 받은 크즐쿨레가 붉게 빛난다.
조선소 쪽에서 바라본 크즐쿨레.
크즐쿨레의 꼭대기층. 가운데에 물 저장고가 있다.
크즐쿨레와 테르사네
오후 일정은 크즐쿨레와 테르사네에서 시작한다. 크즐쿨레는 높이 33m의 8각형 5층탑을 말한다. 단순히 기념물로 세운 탑은 아니고 직경이 29m나 되는 작은 성이다. 알란야 성이 산 위에 있는데 반해 크즐쿨레는 바다 곁에 세웠다. 두 곳은 서로 마주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 셀주크 튀르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 1세 때인 1226년에 지었다. 테르사네는 역시 셀주크 튀르크 지배시기인 1228년에 완공한 조선소다. 그 당시 지어진 조선소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두 곳은 위치도 가깝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크즐쿨레를 지은 목적이 바다를 통한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조선소 테르사네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 내부에는 대포도 설치했었다고 한다. 시리아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 탑은 튼튼하기로도 유명하다. 두꺼운 곳은 벽 두께가 무려 12.5m나 된다. 어지간한 대포 정도로는 눈도 깜짝 안하게 생겼다. 단단하게 짓기 위해서 시멘트 반죽을 할 때 달걀을 섞었다는 말도 있다. 건축에는 문외한인지라 달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먹을 것 안 먹고 탑을 짓는데 썼다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겠다. 또 중간 기둥은 신전에서 뜯어다 썼다고 한다. 기둥이 탑보다 훨씬 오래된 셈이다. 1951년에 수리를 하면서 크즐쿨레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붉은 탑’이란 뜻이다. 석양 무렵이면 탑 전체가 붉은 보석덩어리처럼 빛난다.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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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즐쿨레 내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각종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크즐쿨레에서 내려다 본 알란야 언덕의 주택가. 동굴처럼 보이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조선소 테르사네다. 테르사네의 도크와 도크 사이.
세계 最古의 조선소에서
가장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세계 최고(最古)의 조선소를 볼 수 있으니 나 역시 운이 좋은 편이다. 생각해 보면 독특한 의미를 지닌 조선소인 건 분명하다. 셀주크든 오스만이든 튀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민족이야 말로 근본이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이들 아닌가. 호수 정도에 배를 띄워봤을지는 모르지만, 커다란 전선을 타고 전쟁을 한다는 걸 꿈이나 꿔봤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만든 조선소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튀르크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조선술과 해전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확보한 배나 해전술로 그리스를 지배했다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기는 하지만. 그런 역사를 거치다 보니, 두 나라는 지금도 ‘원수’나 다름없다. 아무튼 오스만 튀르크가 해양까지 장악하는 기초가 된 조선소가 바로 이 테르사네다. 키프로스를 정복하러 갔을 때도 바로 이곳에서 만든 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소로 가는 길 옆에는 올리브 열매가 소담지게 달려 있다. 오렌지 나무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풍성하게 자란 아주까리도 자주 눈에 띈다. 아, 아주까리.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것인데. 조선소는 다섯 개의 도크가 있다. 맨 첫 번째 도크에는 목제 기중기가 전시돼 있다. 세월의 때가 덜 묻어 있어 아직은 도크와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한다. 다음 도크에는 건조 중인 목선이 전시돼 있다. 이것 역시 최근에 만든 것이다. 여기서 건조된 배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만조가 되면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테르사네 도크에서 바라본 지중해. 배를 만들 때 쓰던 기중기. 배의 골조.
알란야의 부두.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안탈리아 외곽. 이스탄불로 가는 길. 바다, 산맥, 그리고 도시들이 교대로 나타난다.
일찌감치 누워보지만 이 생각 저 생각이 거미줄처럼 얽혀 잠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집을 떠나온 지 몇 년은 된 기분이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깜박 잠에 들었나 했는데 알람이 울린다. 새벽 3시. 부지런히 샤워하고 옷 입고 호텔 문을 나서니 작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 혼자 버스를 전세 내보기는 처음이다. 출발하려는데 믿음 씨가 눈을 비비며 로비로 내려온다. 운전사와 내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안탈리아 공항까지 잘 태워다주라고 부탁하러 나온 것이다. 고마운 친구. 서울에 오면 내가 쏘가리 매운탕 곱빼기로 쏠게.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자 버스는 온통 캄캄한 새벽길을 달려간다. 안탈리아 공항에 도착해 보니 제법 시간 여유가 있다. 안도감 때문인지 그제야 미뤄뒀던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까딱 잘못 졸았다가 비행기 놓칠라. 캐리어를 인천공항까지 보내고 일찌감치 수속을 밟는다. 6시50분 이스탄불행 비행기 이륙. 지중해여, 안녕.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아나톨리아 땅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떠도는 영혼들, 그리고 바다, 나무, 바람 한 자락에게까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안탈리아에서 이스탄불까지는 한 시간 남짓. 올 때도 그랬지만, 비행기가 비교적 낮게 날아가기 때문에 산과 바다와 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 낮은 집들도 보이고.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메트로를 타러 가는 길이다.
어이~ 역무원 아저씨. 얘가 내 코인 삼키고 안 내놓는데? 헌데 이 친구 반응이 또 엉뚱하다. 가까이 와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질문은 못 들은 척하고 카메라를 얼마에 샀느냐고 자꾸 묻는다. 야, 이…인간아!! 묻는 것에 대답부터 해야지. 이젠 카메라 얼마냐 소리 아주 지겹다. 한참 뒤 설명을 듣고 보니 코인을 넣고 그냥 가면 되는 것이란다. 그럼 나갈 땐? 그냥 나가면 된단다. 하지만 이미 코인으로 인한 불행이 잉태됐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탄 전철,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구조 자체가 시쳇말로 ‘대략 난감’이다. 폭이 좁디좁아서 앞에 사람과 겸상 받듯 가까이 앉아야 한다. 잘하면 얼굴 맞닿겠다. 다행히 내 앞에는 예쁜 여자가 앉아있다. 물론 딱 거기까지만 다행이다. 그녀 옆에는 남편이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다. 이들 역시 외국에서 온 여행객인 것 같다. 두 정거장을 간 뒤 내리더니 이번엔 아가씨가 탄다. 이번에야 말로…. 어라? 이 아가씨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이게 웬 ㄸ…. 그런데 가만히 보니 눈의 초점이 내게서 약간 비껴나 있다. 그럼 그렇지. 내 옆에 그녀의 남자친구가 서 있다. 쯧! 열차는 지상과 지하를 교대로 달린다. 내가 내려야하는 역은 가만, 가만, 굉장히 어려운 역인데? 맞다. 제이틴부르누(Zeytinburnu). 이 역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고 구시가지까지 가야한다. 전철역과 트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종점인 악사라이 역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것보다는 편리하단다.
메트로 정거장 풍경. 트램을 타고 가는 길.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저 멀리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보인다.
다 쓰고 난 악빌은 출국하기 전에 가까운 판매점에 반납하면 보증금도 돌려준다. 깨달은 진리 하나. ‘무식하면 용감하고, 용감하면 고생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트램으로 갈아탔다. 이제 구시가지의 술탄아흐메트역에서 내리는 것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좀 마음이 놓이니 별 쓸데없는 게 궁금해진다. 출근시간인데 왜 이렇게 트램이 한가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떠오른 생각. 그래, 오늘 일요일이잖아. 왠지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더라니. 요일이야 어떻든 나는 지금 로마 땅을 달리고 있다. 사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이곳은 1000년 넘게 로마의 수도였던 곳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이 걸쳐 있는 도시이자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터키 최대 도시다. 동양과 서양 문화,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만나고 융합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공화국의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갔지만 이스탄불은 여전히 이 나라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부동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벅차게 뛰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에 유적들도 보인다. 내가 드디어 이스탄불 한 가운데에 발을 디뎠구나. 트램이 서고 드디어 술탄마흐메트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저만치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어서 오라고,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 손짓한다. 야호!! 나는 지금 이스탄불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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