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본 블루모스크 히포트롬에 서 있는 이집트 오벨리스크
솔직하게 말하면 이스탄불을 하루 만에 돌아보겠다는 것은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게 주마간산으로 둘러볼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어쩌랴. 이번에는 신이 내게 준 시간이 그뿐인 것을. 맛보기라도 하려면 뛰듯이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내가 세운 여행 철학과는 어긋나지만 이런 기회라도 주어졌음에 감사해야지. 자! 어서 가자. 트램을 내린 술탄아흐메트 정류장에서 로마와 비잔틴 시대 전차 경주가 벌어지던 히포드롬은 코앞이다. 보통은 성소피아 성당(아야소피아 박물관)에서 출발해서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자미(블루모스크), 이곳 히포드롬 순서로 돌아보게 되지만 1분이라도 아까운 나는 그 코스를 거꾸로 잡았다. 세로 500m, 가로 117m의 히포드롬은 공원이 돼 있다. 이곳은 비잔틴 제국의 중요한 국가행사가 치러지던 곳이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높다랗게 솟아있는 기둥. 이집트 오벨리스크(Egyptian Obelisk)다. 지금부터 3500년 전인 BC 16세기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룩소르의 라크라크 신전에 세운 2개의 기둥 중 하나라고 한다. 신전 이름이 어떻게 간이침대 이름 같냐. 지금 그거 신경 쓸 땐 아니지.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가져와서 지금 있는 자리에 세웠다. 오벨리스크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한다는데, 그 상징성에 눈독을 들인 것이겠지. 이집트가 로마의 속국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짐작은 가지만 한 나라의 상징물이 점령자의 욕심에 의해 제 땅을 떠난 건 마뜩치 않다.
오벨리스크 기단에 새겨진 부조.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뱀기둥.
이 오벨리스크는 기단에 새겨진 부조로 유명하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명령에 의해 그의 가족과 측근들이 마차 경주를 관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무지함으로 뒤덮인 내 눈에는 숱한 조각품들 중 하나일 뿐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게 뱀이 휘감은 듯 나선으로 된 기둥. 재료는 청동으로 보인다. 이 뱀기둥은 BC 478년 페르시아를 물리친 기념으로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앞에 세운 승전탑이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제가 있던 곳에서 살 팔자가 못 됐던지 콘스탄티우스 대제가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원래는 높이가 8m에 달했지만 머리 등이 파손되고 5m정도만 남아 있다. 본의 아닌 타향살이도 서러울 텐데 훼손까지 당한 걸 보니, 꿈도 의지도 사라지고 몸까지 쇠락해버린 망명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떨어져 나간 뱀 머리 가운데 하나는 이스탄불 국립 고고학박물관에, 또 하나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니 이별이 멀고도 길다. 광장을 벗어나 블루모스크로 접어든다. 블루모스크, 정식 이름은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다. 자미는 이슬람 사원을 말하는데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모스크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 같은데 두 단어 사이의 정확한 차이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길게 풀어 써보자면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지은 이슬람 사원’ 정도가 될 것 같다.
여러 방향에서 본 블루모스크. 세번 째 사진에서 여섯개의 미나레트를 확인할 수 있다.
블루모스크는 1609년에 착공돼 1616년에 완공됐다. 이 사원이 유명한 것은 내부의 아름다움에 있다. 26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실내를 비추는데, 그 빛이 2만1000장의 푸른색 타일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을 불러온다. 그 때문에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보통은 맞은편의 성 소피아성당을 먼저 둘러보고 블루모스크를 보는데 거꾸로 들어가다 보니 역사를 거꾸로 걷고 있는 셈이다. 순서야 어쨌든 이 두 건물은 가까이 있다는 것 이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그 사연을 잠깐 듣고 지나가보자. 오스만 제국의 14대 황제였던 아흐메트 1세는 성소피아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그 무엇’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이 성당에 미나레트(첨탑)를 세우고 모스크로 바꾸긴 했지만 비잔티움제국이 세운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찜찜하기도 하고 열도 받았던 것이다. 고심 끝에 그는 성소피아 성당보다 더 멋진 모스크를 하나 세우기로 한다. 결국 블루모스크라는 역작은 성소피아라는 불세출의 걸작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셈이다. “그래, 결심했어” 술탄은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는 건축가 메흐메트 아가를 불러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문제는 그 당시 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그 정도 건물을 지을 형편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충성스런 건축가였던 아가, 그런 현실과 지금은 때가 아님을 간곡히 진언했지만 왕이라는 캐릭터는 원래 주변 말을 안 듣고 어깃장 놓는 게 주특기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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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모스크의 안뜰. “뭔 잔말이 그렇게 많다냐? 그냥 지어. 특히 미나레트는 본때 있게 황금으로 떡칠 혀봐.” 그래서 할 수 없이 짓기 시작한 게 이 블루모스크다. 술탄은 기공식에 직접 나와 삽질을 하고 흙을 나를 만큼 기대가 컸단다. 쯧, 삽질 좋아하는 거 하고는…그런데 특이한 건 이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6개라는 점이다. 이웃의 성소피아 성당 등 대부분의 모스크는 2~4개의 미나레트가 고작이다. 미나레트 자체가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오로지 이슬람 성지 메카의 모스크만 6개를 세운다고 한다. 완공 후 현장에 간 술탄이 기가 막혀 물었다. “아니, 저것이 워째서 여섯 개랴?” “아따, 시방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허신대유. 원래 여섯 개 세우라고 혔잖유?” 이렇게 어긋나게 된 사연이 있다. 물론 기록에는 없는 야사(野史)다. 터키어로 6은 ‘알투(Altu)’, 황금은 ‘알툰(Altun)’이다. 왕은 알툰, 즉 황금 미나레트를 세우라고 지시했는데, 건축가는 그걸 알투, 즉 여섯 개를 세우라는 말로 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 건축가의 귀가 어두워서 그리 된 걸까? 그렇지 않았다는 후문이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린다. 술탄은 철없이 고집을 피우지만, 미나레트마저 황금으로 세우면 나라 곳간이 완전 바닥날 걸 염려한 건축가가 미친척하고 ‘알툰’ 대신 ‘알투’ 미나레트를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말도 있다. 술탄이 원래 여섯 개를 세우라고 해놓고 메카의 눈치를 보느라 건축가의 어두운 귀를 탓했다는 설이다.
블루모스크 내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환상적이다.
이제 블루모스크에 직접 들어가 볼 차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만찮은 위용에 감탄사부터 나오게 된다. 지금까지 터키에서 본 건축물 중 가장 크고 당당하다. 높이 43m, 직경 27.5m의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중간 돔이 받치고 있어 무척 안정적이다. 또 그 주변으로 또 30개나 되는 작은 돔들이 배열돼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마치 크고 작은 몽골 게르들을 보는 것 같다. 본당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6개의 미나레트 앞에 서서 역사의 기록이 숨겨뒀던 뒤안길을 더듬어본다. 실내로 들어가면 감탄사는 더욱 커진다. 수없이 많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들이 쳐놓은 환상적인 푸른 커튼. 아름답다. 어쩌면 이 빛을 만나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나머지 까마득한 돔형 천장이나 거대한 샹들리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밖으로 나와 잘 가꾼 정원에서 조금 전 본 걸작을 되새김질 해본 뒤 성소피아 성당으로 향한다. 블루모스크와 성소피아 성당 사이에는 깔끔하게 단장된 광장이 있다. 그곳에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과 한가한 고양이들이 햇볕을 즐기고 있다. 나도 잠시 돌 의자에 몸을 기댄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 교과서에서 시작해 숱하게 듣고 사진으로 봤던 성소피아 성당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감동스런 순간은 잠깐의 뜸을 들인 뒤 마주칠 때 더 가슴을 뛰게 하는 법이다.
성소피아 성당.
성소피아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공식명칭인 아야소피아 박물관이라고 써 있다.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의 회랑. 회랑 황제의 문 위에 있는 모자이크화. 가운데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특히 목재로 지었기 때문에 화재가 잦았다는 핑계로, 고대 신전의 기둥까지 뽑아다 썼다. 이때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델피 신전의 대리석 기둥도 징발돼 머나먼 이곳으로 옮겨졌다. 황제의 성당 욕심에 나라의 기둥뿌리가 남아나지 않은 셈이다. 532년 2월에 착공한 성당은 5년 10개월 만인 537년 12월에 완공됐다. 준공테이프를 끊고 성당에 들어서던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외쳤다는 한 마디는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오,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 아무튼 황제 정도 하려면 뭔가 멋있는 말 한 둘쯤은 준비하고 다니나 보다.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아름다운 걸작을 자기 대에 완성했다는 감동에서 나온 말이었다. 성소피아 성당은 돔 양식 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중앙 내부 면적은 7000m². 엄청나게 넓다. 비잔티움 석조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107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이 성당은 동방 정교회 수장인 대주교가 머무는 곳으로 비잔티움 제국 기독교 신앙의 중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진, 화재 등으로 수난을 겪다가 1204년 4차 십자군 원정 때는 성상과 성물들이 대거 약탈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이교도도 아닌 기독교도가 기독교의 상징을 턴 것이다. 결정적인 시련은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에 의해 함락 당하면서 일어난다.
성소피아 성당의 내부. 숱한 샹들리에와 이슬람문자가 새겨진 원판이 눈에 띈다.
무슬림의 성전(聖戰) 관습에 의하면 점령지에는 3일 간의 약탈이 허용된다고 한다. 당연히 성소피아 성당도 약탈 대상이 됐다. 하지만 성당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점령군주 메흐메드 2세는 병사들에게 건물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그 뒤 이 성당에 미나레트를 세워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고 모자이크로 된 기독교 성화 위에 회칠을 해서 가려버렸다. 비극이지만 부숴 없애지 않을 것만으로도 고마워 할 일이다. 그렇게 회칠로 덮여졌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회반죽벽에 그려진 벽화기법)는 1931년 미국인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역사를 훑어봤으니 이제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씩 확인할 차례. 성당은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할 정도로 인파가 넘쳐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와 관광객들이다. 문을 들어서니 본당 앞에 큰 회랑이 나타난다. 기도를 준비하던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 본당으로 들어서는 문은 모두 9개인데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문이 황제만 드나드는 전용 문, 즉 ‘황제의 문’이었다고 한다. 지금 황제는 간데없고 세상의 온갖 장삼이사들이 그 문을 드나든다. 물론 나도 잠시 황제가 되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들어선다. 황제의 문 바로 위에 모자이크화가 보인다. 성당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성화다. 예수를 중심으로 왼쪽은 성모 마리아, 오른쪽은 천사 가브리엘이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는 비잔티움 황제 레오 6세다.
내부 천장. 두번 째 사진 가운데 상단에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가 보인다.
그림의 내용은 황제가 예수 앞에서 아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황제를 무릎 꿇릴 수 있는 신권, 새삼 경외심이 든다. 오른쪽 문 외벽 위에는 두 명의 황제와 아기 예수 모자이크가 있는데 오른쪽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콘스탄티노플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봉헌하고 있다. 왼쪽은 성소피아 성당을 지은 유스티아누스 황제인데 그가 지은 성당을 봉헌하고 있다. 봉헌이라는 단어를 입에 되뇌다 보니 서울시를 자신이 믿는 신에게 봉헌했다는 전직 시장님이 떠오른다. 원래 이렇게 봉헌들을 하는구나. 시장은커녕 통반장 할 자격도 못되는 난 뭘 봉헌하지? 아, 다행스럽게도 내겐 봉헌 받을 신이 없구나. 본당으로 들어서면 누구나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우선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거대한 돔과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찬란한 빛, 숱한 샹들리에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종교와 상관없이 온몸은 성스러움으로 충만해진다.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충동이 든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이슬람 문자가 크게 새겨진 원판이 시선을 잡는다. 무하마드를 비롯한 이슬람 지도자들의 이름을 써놓은 것이란다. 직경이 7.5m나 된다는 이 글씨 판은 이슬람 세계 최고의 달필로 손꼽힌다는데 이 까막눈이 제대로 알아볼 수나 있나. 금색으로 치장한 이슬람교 예배의 표상 마흐라브(Mihrab)는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는데 이는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성당 내부 모습. 땀 흘리는 기둥에 붙어 있는 동판. 저 구멍에 엄지를 넣고 한 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뤄진단다.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 경사로 바닥의 돌은 세월을 흠뻑 머금고 있다.
인간이 반드시 파괴적이고 잔인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가슴은 더 없이 포근해진다. 감동은 감동, 탐색은 탐색!! 2층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입구 쪽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떡이라도 나눠주나? 비집고 들어가 본다. 떡은 없고 그 유명한 ‘땀 흘리는 기둥’이 서 있다. 기둥이 땀을 흘린다고? 하긴 피눈물 흘리는 성모상도 있고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어대는 나무도 있다는데 기둥이 땀 좀 흘린다고 흉 될 건 없을 게다. 기둥에는 구멍이 뚫린 동판이 있다. 줄을 선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 동판의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씩 돌린다. 완전히 한 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뤄진단다. 세상에 소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니 줄이 길어질 수밖에. 줄에는 기독교인도 이슬람교도도, 동양인도 서양인도 있다. 산타클로스의 고향,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도 소망을 빌기 위해 어두운 통로를 한 바퀴 도는 사람들을 봤는데. 소망을 이루겠다는 마음은 어디든 다르지 않구나. 돌부처 앞에서 손금이 닳도록 무언가 간구하던 우리네 민초들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오버랩 된다. 나도 잠깐 망설인다. 줄을 섰다가 한 바퀴 돌려? 에라, 나 같은 속물이야 기껏 복권 어쩌고 할 텐데, 그냥 팔자대로 살다 가자. 그 시간에 사진이라도 한 장 더 찍지. 1층 탐색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간다. 회랑의 왼쪽 끝에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2층은 여성들이 예배를 보던 곳이라고 한다.
가장 유명한 벽화. 가운데가 예수, 왼쪽이 성모 마리아, 오른쪽이 세례 요한이다.
성소피아 성당의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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