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듀덴 폭포.

듀덴 폭포 앞을 지나는 해적선을 닮은 배.

듀덴 폭포의 위용

터키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 대한 믿음 씨의 품평은 계속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국인 흉도 보겠지? 외국에 나가서는 품행을 더욱 방정하게 해야겠다는 갸륵한 생각이 든다. 사고를 쳤을 때는 일본에서 왔다고 해야지. 국위선양이 따로 있나. 이 한 몸 바쳐서 나라 욕 안 먹이는 게 애국이지. 좀 특이한 건, 광수입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터키의 관광호텔에는 카지노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도 사연이 있다. 한 때 카지노를 허가한 적이 있었는데 내국인들이 드나들면서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속출하더란다. 노름에 미치면 마누라까지 팔아먹는다더니, 터키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카지노를 없애고 말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선카지노 생각이 난다. 언젠가 지나다가 본, 사람이 사는 집보다 전당포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이던 풍경. 그리고 어깨를 늘어트리고 걷던 군상들. 그 뒤 그들은 잭팟이 터져서 태평양에 요트라도 띄웠을까? 카지노를 차려 손 짚고 헤엄치듯 거둔 돈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얼마나 쓰이고 있을까? 버스는 시내를 다시 거쳐 일행을 듀덴(Duden)폭포에 내려놓는다. 듀덴 폭포는 시내와 붙어있는 지중해 쪽에 있다. 꿩 대신 닭? 쿠르순루 폭포에서 물 먹은 대신 듀덴 폭포라도 보라는 뜻인가? 하지만 폭포 앞에 서는 순간잠시 비비 꼬였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와!!! 하는 탄성이 터진다. 대체 저 폭포가 어떻게 생긴 것이란 말인가?

폭포는 저렇게 건물 아래에서 느닷없이 솟아나온다.

폭포의 하단. 가운데쯤 아주 작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시는지.

폭포 위에는 그저 평범한 건물들에다가 잔디가 깔린 공원뿐인데, 느닷없이 허연 물줄기가 나타나 엄청난 물을 시퍼런 바다에 쏟아 붓는다. 이 물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안탈리아를 감싸고 있는 타우르스산이 출발지라고 한다. 그곳에서 발원한 물이 30km를 땅 밑으로 달려와 도시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단 한번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폭포는 해적선을 닮은 유람선과, 개구쟁이들처럼 바다를 질주하는 작은 쾌속정들과 어울려 한편의 풍경화를 그려놓는다. 헌데 속물근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혼자 드는 생각. 저 엄청난 물이야말로 오염되지 않은 천연수인데. 그냥 바다로 흘려보내지 말고 병에 넣어 팔면 돈 좀 될 텐데. 아무튼 삶을 위해서라면 눈먼 돈 한 푼 챙기지 못하는 주제에 별 상상을 다 하고 있다.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햇볕이 쏟아지는데도 심신이 모두 시원하다. 다음 행선지는 안탈리아 고고학박물관. 터키 최고의 고고학 박물관 중 하나라니 기대될 만도 하건만 폭포 곁을 떠나기 싫다. 믿음 씨의 재촉에도 뭉그적거리고 있다가 느릿느릿 삐거덕거리는 몸을 일으킨다. 예까지 와서 박물관을 들르지 않을 수는 없지. 박물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까지 거쳐 오면서 본 어떤 박물관들보다 규모가 크다.

안탈리아 고고학박물관.

안탈리아 박물관 입구의 깨진 석상들 중 하나.

안탈리아 박물관에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품인가.

섬세한 옷주름을 보시라.

안탈리아 인근의 페르게와 아스펜도스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들이 전시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한다. 시대별로는 선사시대에서 오스만 제국까지 모두 아우른다.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머리 없는 석상들. 머리가 있으면 팔이나 다리를 잃었고,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가 싶어서 가까이 가보면 코가 깨져있다. 전쟁터의 부상병동이 따로 없다. 어매, 어쩔거나. 이 아까운 예술품들을. 하지만 그렇게 몸의 한 조각씩을 잃고서도 석상들은 여전히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좀 억지스런 역설일지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들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상실의 미()’, 그런 조어(造語)도 가능할까? 그런 말이 가능하다면 지금 이 순간 딱 어울릴 만한 말이다. 특히 눈길을 자꾸 끌어당기는 건,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 옷의 주름 하나하나가 바람이 불면 팔랑거리기라도 할 것 같다. 이들이 정말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단 말인가. 특히 관람객을 가장 많이 불러 모으는 건 4~8번 전시관의 로마시대 유물들이다. 로마 황제는 물론 여러 신들의 석상, 그리고 웅장하고 세밀한 조각을 온 몸에 두른 대리석관들은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 로마의 영광을 웅변해주고 있다. 박물관 2층에는 뎀레에서 만났던 산타클로스, 즉 성 니콜라스의 초상과 성모마리아의 성화 등도 전시돼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보고 찍어야할 유물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이 박물관은 사진 촬영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미처 반도 돌아보기 전에 지치기 시작한다.

고대의 각종 도자기들.

사람의 손으로 빚은 게 맞나?

엄청난 유물들 앞에서 괜스레 심통이 나기도 한다. 원래 그리 많지도 않았던 유물을 일제의 도둑놈들에게 이리 저리 약탈당하고, 잔챙이들까지 소중하게 전시해 놓은 우리나라의 박물관이 생각나서다. 빼어난 작품들이 워낙 많다보니 나중엔 뭘 봐도 그저 돌덩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박물관은 문화의 감옥이라는 내 지론은 바꾸지 말아야할 것 같다.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서 있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면 질릴 틈이 어디 있으랴. 결국 후반부는 건성건성 본 뒤 남들보다 먼저 전시실을 빠져 나온다. 나야말로 문화인으로 훈련받지 못한 무식한 여행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저 소중한 인류의 유산들을 이렇게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 대충 훑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진리지만, 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교육된 자만이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진리다. 야외전시장으로 나가는 길에 입구 쪽에 비치해둔 방명록을 들여다보다 외국어들 사이에서 한글 이름 몇 개를 발견한다. 한국인들도 제법 많이 오는 모양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 때문에 비껴지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에 서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동료애(?) 느낀다. 나는 물론 나는 사인을 생략한다. 어디 가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직도 익숙하지 못하다. 박물관 뜰로 나와 보니 그곳 역시 또 다른 박물관이다. 마치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세워둔 것처럼 각종 석상과 석주들이 이곳저곳에 서 있다.

석관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다.

오스만터키 시대의 생활상.

외계인이 만든 유물들

석상에 새겨진 저 조각들을 보라.

거대한 관들은 화려하고도 위압적이다. 죽은 뒤 드러누울 관 하나에까지 저렇게 신경을 썼다는 건 내세를 그만큼 기대했다는 것이겠지.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유물들이 지닌 아름다움은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진부할 정도다. 그럼 무슨 말이 어울릴까. 누군가가 말했듯 사람의 솜씨만은 아닌 것 같다. 전에 그 말을 들을 땐 황당하다고 웃고 말았지만 정말 외계인들이 만들어놓고 떠난 건 아닐까. 사실 유럽 사람들이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작품이란 게,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이들의 작품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악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있을 땐 두 눈으로만 보려고 하지 말고, 오감으로 느끼려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가슴 속 깊이 담아갈 수 있다. 카메라를 아예 배낭에 갈무리 하고 햇살이 명주실처럼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잠시 뒤 내 곁으로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작은 내로 졸졸졸 흐르기도 하고 커다란 강이 되어 도도하게 흐르기도 하고 폭포가 되어 우르르 쾅쾅 떨어지기도 한다. 시간의 곳곳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리스 사람, 로마 사람, 터키 사람그들과 대화하고 밥을 먹고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손을 잡고 깔깔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조그만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다.

마당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돌들 중에도 예술품 아닌 게 없다.

오스만 시대(?)의 가옥.

이슬람시대 이후의 유물은 아예 보는 걸 포기하고 만다. 이 이상의 예술을 담아가기엔 내 안의 그릇이 너무 작다. 언젠가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도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박물관을 떠날 무렵, 길게 키를 늘인 햇살이 땅 위에 비껴 내리기 시작한다. 다음 목적지는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라알리오을루(Karaalioglu) 공원. ‘가장 아름답다는 수식어만으로도 가슴은 부풀어 오르는데 그 이름이 문제다. 외우려다가는 날을 새야할 것 같아서 믿음 씨에게 수첩을 내밀고 써달라고 부탁한다. 공원의 위치는 어제 탐색했던 칼레이치 구역 남쪽 끝에 바다와 잇닿아 있는 곳. 역시 아름다운 공원이다. 아니, 공원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공원 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 파랗게 빛나는 지중해와 그 건너편으로 펼쳐진 산들은 어느 명장의 손을 거친 듯 조화롭다. 마침 석양이 조금씩 짙어지면서 풍경은 조금씩 채색을 바꿔나간다. 공원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산책하기에는 딱 좋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더니 그예 콧노래까지 불러낸다. 공원에는 산책 삼아 나온 동네 사람들도 있고, 일부러 찾아온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의 발자국마다 사랑,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가 고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경계 삼아 쌓아놓은 담장에 기대거나 올라앉아 저물어 가는 하루를 눈에 담고 있다.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라알리오을루 공원

연인들? 그냥 여자들.

한 남자에 마음을 빼앗기다

그 중 한 남자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저런 걸 아우라라고 하나?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앉아 있는데 다른 이들하고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이 있다. 처음에는 역광 속의 뒷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도촬을 하려고 접근했다. 헌데 뷰파인더 속에 들어온 그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사진을 찍고서도 눈을 떼기 힘들다. 맨발에 소매 없는 셔츠만 걸친 가벼운 옷차림, 금빛 나는 갈색 수염과 잘 빗어서 묶은 긴 머리. 옆에 놓인 배낭과 물통은 그가 홀로 떠도는 나그네임을 설명해준다. 청년이라기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중년이라는 표현은 당치도 않고. 하나씩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데 왜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는 것일까. 어쩌면 그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고독? 인연을 내려놓고 떠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잘 걸러진 고독이 침몰된 어선을 숙주로 삼은 따개비들처럼 온 몸을 감싸고 있다. 저런 고독을 가진 이에겐 고독과 행복이 각자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을 터. 나는 지금 그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에 시선을 깊이 박아 넣고 있다. 어쩌면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다가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질 것 같다. 물론 그는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 천천히 일어나 배낭을 어깨에 멘 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나무들 사이를 걸어간다.

내가 반했던, 아니 부러워했던 사내.

태양은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기고.

그의 모습을 저녁 어스름이 지워버리자, 구름 한 자락에 매달려 있던 해가 바다 속으로 몸을 담근다. 날이 어둑어둑해져가면서 공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만치서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제법 듣기 좋아서 가까이 가보니 한 청년이 기타를 치고 다른 하나는 신나게 노래를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이 청년들 더욱 신났다. 잠시 뒤에는 노래를 멈추고 콜라를 한 잔 가져와 내민다. 오늘의 첫 청중이 돼줘서 고맙다는 뜻이리라. 고맙긴 뭐, 사진을 찍게 해줬으니 내가 더 고맙지. 그나저나 여행지에서는 남이 주는 음료를 함부로 마시지 말라는 여행자 수칙을 어쩐담.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다. 청년들의 눈빛을 보니 절대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못된다. 그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나는 콜라들 마시면서 노래를 듣고. 난데없는 호강이다. 노래를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터키 사람 특유의 호기심으로 눈까지 반짝거린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이번에는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에 'I love core'를 넣어서 후렴구처럼 부른다. 이런 환영이 있나.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자연스레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청년들은 토크쇼를 하듯 중간 중간 관중과 이야기도 나눈다. 관광객에게는 안탈리아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접대성 멘트도 아끼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공원서 노래하는 청년들.

 공원에서 노래하는 청년들

청년들은 콜라는 마시지만 술은 절대 사양이다. 소위 말하는 공원에서 껄렁대는청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왼쪽에 기타 치는 청년은 열아홉 살로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노래를 하는 청년은 스물 셋이라는데 바에서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둘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데도 절친이란다. 함께 공원서 노래를 한 건 2년 째. 노래를 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느냐고? 그런 건 없고 그냥 노래가 좋을 뿐이란다. 앙코르 신청을 했더니 혼신을 다해 불러준다. 목소리 톤이 아까보다 한 옥타브 올라갔다. 어이, 청년들. 무리는 하지 말어. 그러다 목 상할라.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쳐준다. 안탈리아의 저녁은 그들의 노래가 있어 한층 빛난다. 세상은 아직 온전히 저물지 않았다. 청년들과 헤어져 다시 바닷가 쪽으로 걷다가 어느 순간 몸을 낮춰 앉는다. 사물은 조금씩 희끄무레 하게 자취를 흐려간다. 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특히 여행을 할 때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즐긴다. 몸을 한껏 낮추고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엔 요술나라처럼 신기한 것들로 그득 차 있다.

안탈리아 밤거리는 화려하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본 지중해.

신의 안배는 얼마나 절묘한지. 뛰어갈 때보다는 천천히 걸어갈 때 훨씬 많은 것을 보기 마련이다. 물론 걷는 것보다 서 있을 때, 서 있을 때보다는 앉아 있을 때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 몸을 한껏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드디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다. 눈으로 보는 걸 포기할 때도 있어야 한다.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을 열어 세상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여행은 좋은 스승이다. 어느 순간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해지거나, 스스로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면 배낭을 꾸려볼 필요가 있다. 나그네가 되어 떠돌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잃어버렸던 자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다큐팀의 저녁 풍경 촬영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간다. 안탈리아 시내는 대도시답게 화려하다. 느닷없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괜스레 눈을 크게 떠본다. 절대 그럴 리 없지.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난 일정 덕분에 안탈리아의 두 번째 밤은 비교적 여유롭다. 식사를 한 뒤 야간 촬영을 나간다는 다큐팀과 떨어져 혼자 남는다. 이렇게 버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 책을 읽다 창문을 열어보니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배 하나 꼬박꼬박 졸고 있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1
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노면전차 트램의 외관

트램의 객차 내부. 느린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트램을 타다

모두들 조금씩 상기된 얼굴로 트램에 오른다. 터키 여행 내내 버스만 타고 다녔으니 다른 탈것이 신기할 법도 하다. 트램은 노면전차 또는 시가(市街)전차라고 부르는데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전동차를 말한다. 하지만 믿음 씨는 트램이란 단어를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터키에서는 트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건 뭔데? 그야 전철이란 뜻의 트란바이(tranvay)라고 하지요. 그럼 기차는? 그건 트렌(tren)이고요. 한국의 터키 관련 책자에는 모두 트램이나 트렘으로 썼던데? 그게 잘못된 거라니까요.(버럭!!) 그려, 그려. 누가 뭐라고 했남? 아무렴, 여기 사는 네가 맞겠지. 두 손을 들고 가만 생각해보니 트램이란 단어 자체가 국제적 통용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터키에 와서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트램은 주로 유럽에서 운행되는데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세계 약 50나라의 400개 정도 도시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189812월 서울 서대문-청량리 구간에 처음 개통돼 1968년까지 운행되던 노면전차가 바로 트램이다. 터키에서 트램이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전차라고 하는데 외국인이 와서 트램이라고 하면 이질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아무튼 믿음 씨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트램으로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믿음 씨 배신해서 미안해요.

안탈리아의 상징, 이블리 미나레트.

이블리 미나레트 근처에 있는 시계탑.

트램의 운임은 1~1.5리라. 돈은 차 안에서 받는다. 안탈리아는 해발 35m의 석회석 지반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땅을 팔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지하철을 놓을 수 없다. 트램의 외부에는 광고가 붙어 있고 객차에는 나무의자를 놓았다. 쌩쌩 달리며 사람을 위협하는 병기가 아닌, 사람에 맞춰 움직이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느낌에 정이 간다. 트램이 천천히 해변을 따라 달린다. 모처럼 느린 속도가 주는 안도감을 만끽한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꼭 봐야할 것을 놓치고 마는지도. 트램이 일행을 내려놓은 곳은 이블리 미나레트와 시계탑을 볼 수 있는 광장. 이블리 미나레트는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높이 38m. 안탈리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미나레트는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모스크, 즉 이슬람사원에 세운 첨탑을 말한다. 이블리는 ’ ‘홈이 파인이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 미나레트의 외벽에 붉은 벽돌로 여덟 줄의 세로 홈이 파여 있다. 이블리 미나레트는 룸 셀주크의 술탄이었던 알라딘 케이쿠바드1세가 1219년에 세웠다. 그리스 정교회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고 이 미나레트를 세운 것이다. 안탈리아의 구시가지를 칼레이치(Kaleiçi)라고 부르는데 이블리 미나레트는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계탑과 함께 칼레이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미나레트를 지나 마리나 항구로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다시 한번 소개하는 유료 화장실.

유쾌 상쾌한 화장실 할아버지. 코리언이라는 말에 경례를 붙여줬다.

터키탕에 대한 오해

때가 되면 찾아오는 생리현상을 어찌하랴. 도살장 들어가는 소걸음으로 유료화장실에 들렀다가 유쾌 상쾌한 어른들을 만난다. 노인 두 분이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데 노인들이 갖기 쉬운 지치고 음울한 기색이 전혀 없다. 특히 수염을 멋지게 기른

이블리 미나레트.

노인은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멋지게 경례까지 붙여준다. 이분들도 혹시 참전용사인 코레 가지’? 그렇지만 화장실 요금은 절대 깎아주지 않는다. 활짝 웃으며 헤어진 뒤 본격적인 이블리 미나레트 탐색에 나선다. 당연한 일이지만 미나레트 옆에는 모스크가 있다. 원래 그리스정교회 성당이었다는 바로 그 모스크다. 안을 들여다보니 청년 하나가 창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약간은 어두운 실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과 실루엣에 가까운 청년의 모습이 경건함을 넘어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풍경이 날아갈 것 같아서 자꾸 망설인다. 모스크 앞에는 대형 쇼핑몰이 있는데 옛날에는 신학교였다고 한다. 쇼핑몰이 되어버린 신학교. 비극이라고 해야 하나, 희극이라고 해야 하나. 세월의 짓궂은 장난이겠지. 미나레트에서 시계탑 쪽으로 가다보면 옛 터키 목욕탕인 하맘을 개조한 도자기 가계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못 찾았기보다는 일행과 보조를 맞추다 보니 찾을 기회를 놓쳤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은 혼자나, 혹은 비슷한 시각을 가진 친구와 단출하게 다니는 게 좋다. 외로움을 충분한 탐색으로 바꿔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블리 미나레트 옆의 모스크 내부.

슬그머니 내 사진도 하나 끼워넣고. 처음 공개하는 사진이다. 긴 수염과 까맣게 탄 얼굴이 특징이다. 클릭 절대 금지.

이왕 하맘 이야기가 나온 김에 터키탕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터키에 간다니까 은근한 목소리로 다녀와서 재밌는 얘기어쩌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대체 뭘 기대하고 하는 소릴까. 아직도 터키탕에 대한 오해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터키에는 당연히 터키탕이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엉뚱한 오해속의 터키탕은 없다. ‘하맘(Hamam)’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전통의 목욕탕이 있을 뿐이다. 아직도 터키탕과, 매춘을 연상시키는 증기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실제 터키탕은 일부가 상상하는 것처럼 야한 곳이 절대 아니다. 어쩌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그렇게 음습한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여기에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오랜 동안 터키탕에 오명을 씌웠던 증기탕(1996년에 이름이 바뀌었다)은 일본에서 온 퇴폐문화라고 한다. 남성이 탕에 들어가면 지목된 여성이 따라 들어가 목욕과 사우나·마사지 등을 한꺼번에 서비스 하는 것은 물론 매춘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지 나는 한 번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터키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굳이 인연을 따지자면 남녀 혼욕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거기에도 오해가 있다. 터키에서 혼욕은 우리가 생각하는 탕 안에 남녀가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작은 하맘일 경우 남녀가 시간을 나누어서 오전-오후 교대로 탕을 쓰는 걸 말한다는 것이다. 함께 목욕을 하는 온천도 있다는데, 그곳도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니 수영장이나 다름없다.

마리나 항구시장.

골목시장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터키탕에는 물이 없다

터키로서는 자국의 이름이 붙은 듣도 보도 못한 목욕탕 때문에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외국에 가서 섹스문화로 둔갑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9961129일자 연합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입법예고한 공중위생법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건전한 목욕문화의 정착을 위해 터키탕업의 명칭을 증기탕업으로 변경키로 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기사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터키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 측에 터키탕 명칭변경을 끈질기게 요구해왔으며 특히 지난 8월 딩겔테페 대리대사가 신문 독자투고문를 통해 한국에서 터키탕은 사실상 매춘행위를 하는 장소인데 이런 목욕탕은 터키에서 유래되지 않았고 존재도 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항의했었다.’ 결국은 터키의 항의에 의해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터키탕을 증기탕으로 바꾼 것이다. 쓸데없이 목욕탕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터키의 목욕탕 하맘에 대해 조금 알고 가자. 물론 나는 터키에서 대중목욕탕을 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걸 전할 수밖에 없다는 걸 고백한다. 터키탕은 로마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중동을 정복한 로마인들이 자신들 방식의 욕탕을 건설했는데 이것이 터키탕이 됐다는 것이다. 터키탕은 증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밀실에 열기를 가득 채우는 건조욕으로 땀을 내고 나서 몸을 씻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한증막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기념품 중엔 가면도 많았다.

온갖 기념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터키탕을 잠깐 들여다보고 가자. 우선 터키의 목욕탕에는 물이 없다. 사방이 온통 건조한 대리석이다. 뜨끈하게 덥혀진 대리석 방에 앉아 열기로 땀을 내고, 수건으로 때를 밀고 물을 받아 바가지로 몸을 씻어내는 것이 터키 사람들이 목욕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터키탕에서는 옷을 홀딱 벗지 않는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지라 동성 간에도 중요부위는 노출하지 않는다. 괜히 한국에서처럼 속옷까지 홀라당 벗고 들어갔다가는 구경거리가 되기도 전에 쫓겨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터키에서는 목욕탕에 가려면 때수건보다 수영복을 챙겨야 한다. 한 여성의 터키탕 경험담을 들어보자. 입구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고르는데 30리라면 필링(피부의 각질층을 얇게 벗겨내는 것. 남자가 할 일이야 있을까 만은)과 전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을 끼얹은 뒤 사우나실에서 10분 정도 몸을 불리면 때밀이가 순서가 됐다고 부른다. 중앙 홀에 있는 널찍한 대리석 평상에 천을 깔고 누우면 때밀이 아주머니가 터키식 때밀이 타월로 작업을 시작한다. 때를 다 밀면 간단한 샤워 후에 터키식 거품 마사지가 이어지고 두세 차례 물을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 개인적으로 샴푸하고 나오면 끝. 터키에는 동네마다 몇 백 년 묵은 터키탕도 많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한번쯤 들러서 이색적인 경험도 해보고 마음의 묵은 때까지 벗기고 나오는 건 어떨지.

25년동안 양탄자만 수선한 아저씨.

비록 계단에 점포를 열었지만 그는 당당했다.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어차피 터키탕 구경은 팔자에 없는 모양이니 포기하고 골목 탐색이나 열심히 하기로 한다. 조금 내려가니 온갖 기념품을 파는 골목시장이 나온다. 마리나 항구시장이다. 맨 먼저 입구에서 양탄자를 수선하는 아저씨를 만난다. 길 옆 계단에 앉아서 일하지만 당당한 풍모가 도인을 보는 것 같다. 뭐든지 한 가지 일을 지극정성으로 오래 하면 득도를 하는 모양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10세부터 양탄자 수선하는 일을 해서 25년 동안 이 일만 했단다. 전 세계 어디서 만든 카펫이라도 척 보면 한 눈에 출신지를 알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터키 카펫은 두 번을 묶기 때문에 한 번만 묶는 다른 나라 카펫보다 튼튼하단다. 그런데 두 번 묶는다는 게 뭐지? 지금 수선 중인 카펫은 25년 된 것인데 이 정도면 새것 축에 들어간단다. 25년 쓴 게 새것이면 대체 얼마나 오래 쓴다는 거야.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보통은 100~200년은 써야 앤틱(antique)’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오래 쓸수록 골동품적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100~200년은 좀 심하다. 몇 대를 이어 쓴다는 것인지. 수선하는 사람이야 일거리가 많아 좋겠지만 새로 만드는 사람은 누구에게 판담. 쓸데없이 별 걱정을 다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다 좌판에 장신구를 파는 사내아이를 발견한다. 열 살쯤 됐을까? 부모를 대신해 좌판을 잠깐 봐주는 게 아니라 생업인 것 같다.

장신구를 파는 아이. 열심히 권하고 있다.

손님이 그냥 가자 실망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다른 손님마저 그냥 가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힘내라, 아이야.

보석이라고 내놓은 것들이라 봐야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절실함이 눅진눅진 달라붙어 있다. 간이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다가 누가 물건을 들여다보면 눈을 반짝이면서 달려간다. 목걸이를 걸어줘 보기도 하고, 어울릴만한 걸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처럼 온 손님은 살 듯 살 듯 하다가 그냥 가버린다. 아이는 상심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시선을 허공에 묻는다.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와 한참 흥정을 하더니 그냥 돌아선다. 아이가 좌판에 얼굴을 묻는다. 우는 걸까? 꼭 쥔 작은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대체 저 아이는 무슨 사연으로 이 골목에 좌판을 펼쳤을까. 장사를 하던 부모님이 병이라도 난 것일까?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저렇게 절실한 몸짓을 하는 것일까. 와르르 무너지려는 가슴을 추스르며 돌아선다. 조금 더 내려가다 장신구 틈에 숨어있는 남색 돌들에게 발길을 잡힌다. 눈동자처럼 생긴 흰 돌이 남색 돌 안에 박혀 있다. , 저게 굿 럭(Good Luck)’이구나. 굿 럭을 지니고 다니면 그 눈이 악귀를 다 지켜보기 때문에 나쁜 것들이 범접하지 못하다고 한다. 터키 사람들은 그 영험함을 굳게 믿어서 테이블보에서부터 그릇까지 굿 럭의 문양을 곳곳에 새겨놓는다. 또 가게나 집, 관공서 등 출입문이 있는 곳에는 대개 하나씩 매달려 있다. 마음이 넉넉한 터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굿 럭을 달아주고 행운을 빌어준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이 바로 굿 럭.

쫀득쫀득 아이스크림 장수. 온갖 쇼를 한다.

쫀득쫀득 아이스크림

골목이 거의 끝나고 마리나 항구에 다다를 무렵 한 무리의 동양인들을 만난다. 안탈리아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그동안 스쳐온 도시와 다르게 동양인들이 꽤 많다. 중국인도 있고 일본인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인들은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분명 한국인이다. 그 느낌을 믿고 한 마디 던져본다. “안녕하세요?” 길을 가던 그들이 그제야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는다. 역시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피가 피를 당기는 법. 그쯤 되면 길거리 수다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들 일행은 뉴욕에서 왔다고 한다. 터키 땅에서 뉴욕 교포들을 만난 셈이다. 반가워라. 터키에 와서, 타큐팀을 제외하고는 처음 만나는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또 헤어져야 한다. 그들과 작별하고 해변을 걷는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다. 그동안 보드롬이나 페티예, 카쉬에서 워낙 아름다운 바다를 많이 봤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리나 항구는 안탈리아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의미를 갖고 있다. 2세기부터 지중해를 오가던 배들이 쉬어가던 일종의 정거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콘얄트 해변 쪽에 새로운 항구가 생겨 고유의 기능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안탈리아의 명소로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복원돼서 유럽연합이 주는 황금사과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항구는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까마득한 성벽.

오스만 시대에 지은 오래된 집들.

늑골이 드러났지만 정겹다.

거의 몸을 비비 듯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낯설고 익숙한목소리가 들린다. “쫀득쫀득 아이스크림!!” 어라? 이게 웬 쫀득? 돌아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한국말로 우리를 부른다. 저 사람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어딘가 표가 난다는 건데, 그게 뭘까. 그나저나 한국말로 아이스크림을 팔 정도면 이 동네는 정말 한국인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스크림은 쫀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찰떡처럼 생겼다. 우리가 발걸음을 멈추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신나는 몸짓으로 아이스크림을 늘렸다 줄였다 온갖 쇼를 한다. (귀국한 뒤 인사동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 사람을 봤지만 쇼를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로 보면 찹쌀떡쇼쯤 되겠다. 항구 구경을 건성건성 마치고 다시 옛시가지 쪽으로 길을 잡는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성곽의 가파른 길을 헐떡거리며 오른다. 옛날, 배를 타고 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일 테다. 원래 칼레이치는 성내(城內)라는 뜻으로 항구를 둘러싼 4.5km의 성벽 전체를 걸어서 돌 수 있다고 한다. 성곽을 지나고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지나니 오래된 집들이 나온다.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들이다. 늙은 말의 잔등이처럼 헐벗었거나, 늑골을 다 드러낸 집들도 있지만 내 눈엔 그래서 더욱 정겹다. 해가 잠자리를 찾는 듯,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