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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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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알리오을루 공원'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2.27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20]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24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듀덴 폭포.

듀덴 폭포 앞을 지나는 해적선을 닮은 배.

듀덴 폭포의 위용

터키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 대한 믿음 씨의 품평은 계속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국인 흉도 보겠지? 외국에 나가서는 품행을 더욱 방정하게 해야겠다는 갸륵한 생각이 든다. 사고를 쳤을 때는 일본에서 왔다고 해야지. 국위선양이 따로 있나. 이 한 몸 바쳐서 나라 욕 안 먹이는 게 애국이지. 좀 특이한 건, 광수입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터키의 관광호텔에는 카지노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도 사연이 있다. 한 때 카지노를 허가한 적이 있었는데 내국인들이 드나들면서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속출하더란다. 노름에 미치면 마누라까지 팔아먹는다더니, 터키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카지노를 없애고 말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선카지노 생각이 난다. 언젠가 지나다가 본, 사람이 사는 집보다 전당포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이던 풍경. 그리고 어깨를 늘어트리고 걷던 군상들. 그 뒤 그들은 잭팟이 터져서 태평양에 요트라도 띄웠을까? 카지노를 차려 손 짚고 헤엄치듯 거둔 돈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얼마나 쓰이고 있을까? 버스는 시내를 다시 거쳐 일행을 듀덴(Duden)폭포에 내려놓는다. 듀덴 폭포는 시내와 붙어있는 지중해 쪽에 있다. 꿩 대신 닭? 쿠르순루 폭포에서 물 먹은 대신 듀덴 폭포라도 보라는 뜻인가? 하지만 폭포 앞에 서는 순간잠시 비비 꼬였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와!!! 하는 탄성이 터진다. 대체 저 폭포가 어떻게 생긴 것이란 말인가?

폭포는 저렇게 건물 아래에서 느닷없이 솟아나온다.

폭포의 하단. 가운데쯤 아주 작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시는지.

폭포 위에는 그저 평범한 건물들에다가 잔디가 깔린 공원뿐인데, 느닷없이 허연 물줄기가 나타나 엄청난 물을 시퍼런 바다에 쏟아 붓는다. 이 물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안탈리아를 감싸고 있는 타우르스산이 출발지라고 한다. 그곳에서 발원한 물이 30km를 땅 밑으로 달려와 도시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단 한번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폭포는 해적선을 닮은 유람선과, 개구쟁이들처럼 바다를 질주하는 작은 쾌속정들과 어울려 한편의 풍경화를 그려놓는다. 헌데 속물근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혼자 드는 생각. 저 엄청난 물이야말로 오염되지 않은 천연수인데. 그냥 바다로 흘려보내지 말고 병에 넣어 팔면 돈 좀 될 텐데. 아무튼 삶을 위해서라면 눈먼 돈 한 푼 챙기지 못하는 주제에 별 상상을 다 하고 있다.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햇볕이 쏟아지는데도 심신이 모두 시원하다. 다음 행선지는 안탈리아 고고학박물관. 터키 최고의 고고학 박물관 중 하나라니 기대될 만도 하건만 폭포 곁을 떠나기 싫다. 믿음 씨의 재촉에도 뭉그적거리고 있다가 느릿느릿 삐거덕거리는 몸을 일으킨다. 예까지 와서 박물관을 들르지 않을 수는 없지. 박물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까지 거쳐 오면서 본 어떤 박물관들보다 규모가 크다.

안탈리아 고고학박물관.

안탈리아 박물관 입구의 깨진 석상들 중 하나.

안탈리아 박물관에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품인가.

섬세한 옷주름을 보시라.

안탈리아 인근의 페르게와 아스펜도스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들이 전시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한다. 시대별로는 선사시대에서 오스만 제국까지 모두 아우른다.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머리 없는 석상들. 머리가 있으면 팔이나 다리를 잃었고,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가 싶어서 가까이 가보면 코가 깨져있다. 전쟁터의 부상병동이 따로 없다. 어매, 어쩔거나. 이 아까운 예술품들을. 하지만 그렇게 몸의 한 조각씩을 잃고서도 석상들은 여전히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좀 억지스런 역설일지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들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상실의 미()’, 그런 조어(造語)도 가능할까? 그런 말이 가능하다면 지금 이 순간 딱 어울릴 만한 말이다. 특히 눈길을 자꾸 끌어당기는 건,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 옷의 주름 하나하나가 바람이 불면 팔랑거리기라도 할 것 같다. 이들이 정말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단 말인가. 특히 관람객을 가장 많이 불러 모으는 건 4~8번 전시관의 로마시대 유물들이다. 로마 황제는 물론 여러 신들의 석상, 그리고 웅장하고 세밀한 조각을 온 몸에 두른 대리석관들은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 로마의 영광을 웅변해주고 있다. 박물관 2층에는 뎀레에서 만났던 산타클로스, 즉 성 니콜라스의 초상과 성모마리아의 성화 등도 전시돼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보고 찍어야할 유물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이 박물관은 사진 촬영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미처 반도 돌아보기 전에 지치기 시작한다.

고대의 각종 도자기들.

사람의 손으로 빚은 게 맞나?

엄청난 유물들 앞에서 괜스레 심통이 나기도 한다. 원래 그리 많지도 않았던 유물을 일제의 도둑놈들에게 이리 저리 약탈당하고, 잔챙이들까지 소중하게 전시해 놓은 우리나라의 박물관이 생각나서다. 빼어난 작품들이 워낙 많다보니 나중엔 뭘 봐도 그저 돌덩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박물관은 문화의 감옥이라는 내 지론은 바꾸지 말아야할 것 같다.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서 있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면 질릴 틈이 어디 있으랴. 결국 후반부는 건성건성 본 뒤 남들보다 먼저 전시실을 빠져 나온다. 나야말로 문화인으로 훈련받지 못한 무식한 여행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저 소중한 인류의 유산들을 이렇게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 대충 훑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진리지만, 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교육된 자만이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진리다. 야외전시장으로 나가는 길에 입구 쪽에 비치해둔 방명록을 들여다보다 외국어들 사이에서 한글 이름 몇 개를 발견한다. 한국인들도 제법 많이 오는 모양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 때문에 비껴지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이곳에 서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동료애(?) 느낀다. 나는 물론 나는 사인을 생략한다. 어디 가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직도 익숙하지 못하다. 박물관 뜰로 나와 보니 그곳 역시 또 다른 박물관이다. 마치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세워둔 것처럼 각종 석상과 석주들이 이곳저곳에 서 있다.

석관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다.

오스만터키 시대의 생활상.

외계인이 만든 유물들

석상에 새겨진 저 조각들을 보라.

거대한 관들은 화려하고도 위압적이다. 죽은 뒤 드러누울 관 하나에까지 저렇게 신경을 썼다는 건 내세를 그만큼 기대했다는 것이겠지.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유물들이 지닌 아름다움은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진부할 정도다. 그럼 무슨 말이 어울릴까. 누군가가 말했듯 사람의 솜씨만은 아닌 것 같다. 전에 그 말을 들을 땐 황당하다고 웃고 말았지만 정말 외계인들이 만들어놓고 떠난 건 아닐까. 사실 유럽 사람들이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작품이란 게,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이들의 작품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악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있을 땐 두 눈으로만 보려고 하지 말고, 오감으로 느끼려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가슴 속 깊이 담아갈 수 있다. 카메라를 아예 배낭에 갈무리 하고 햇살이 명주실처럼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잠시 뒤 내 곁으로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작은 내로 졸졸졸 흐르기도 하고 커다란 강이 되어 도도하게 흐르기도 하고 폭포가 되어 우르르 쾅쾅 떨어지기도 한다. 시간의 곳곳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리스 사람, 로마 사람, 터키 사람그들과 대화하고 밥을 먹고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손을 잡고 깔깔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조그만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다.

마당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돌들 중에도 예술품 아닌 게 없다.

오스만 시대(?)의 가옥.

이슬람시대 이후의 유물은 아예 보는 걸 포기하고 만다. 이 이상의 예술을 담아가기엔 내 안의 그릇이 너무 작다. 언젠가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도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박물관을 떠날 무렵, 길게 키를 늘인 햇살이 땅 위에 비껴 내리기 시작한다. 다음 목적지는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라알리오을루(Karaalioglu) 공원. ‘가장 아름답다는 수식어만으로도 가슴은 부풀어 오르는데 그 이름이 문제다. 외우려다가는 날을 새야할 것 같아서 믿음 씨에게 수첩을 내밀고 써달라고 부탁한다. 공원의 위치는 어제 탐색했던 칼레이치 구역 남쪽 끝에 바다와 잇닿아 있는 곳. 역시 아름다운 공원이다. 아니, 공원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공원 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 파랗게 빛나는 지중해와 그 건너편으로 펼쳐진 산들은 어느 명장의 손을 거친 듯 조화롭다. 마침 석양이 조금씩 짙어지면서 풍경은 조금씩 채색을 바꿔나간다. 공원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산책하기에는 딱 좋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더니 그예 콧노래까지 불러낸다. 공원에는 산책 삼아 나온 동네 사람들도 있고, 일부러 찾아온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의 발자국마다 사랑,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가 고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경계 삼아 쌓아놓은 담장에 기대거나 올라앉아 저물어 가는 하루를 눈에 담고 있다.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라알리오을루 공원

연인들? 그냥 여자들.

한 남자에 마음을 빼앗기다

그 중 한 남자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저런 걸 아우라라고 하나?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앉아 있는데 다른 이들하고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이 있다. 처음에는 역광 속의 뒷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도촬을 하려고 접근했다. 헌데 뷰파인더 속에 들어온 그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사진을 찍고서도 눈을 떼기 힘들다. 맨발에 소매 없는 셔츠만 걸친 가벼운 옷차림, 금빛 나는 갈색 수염과 잘 빗어서 묶은 긴 머리. 옆에 놓인 배낭과 물통은 그가 홀로 떠도는 나그네임을 설명해준다. 청년이라기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중년이라는 표현은 당치도 않고. 하나씩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데 왜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는 것일까. 어쩌면 그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고독? 인연을 내려놓고 떠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잘 걸러진 고독이 침몰된 어선을 숙주로 삼은 따개비들처럼 온 몸을 감싸고 있다. 저런 고독을 가진 이에겐 고독과 행복이 각자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을 터. 나는 지금 그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에 시선을 깊이 박아 넣고 있다. 어쩌면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다가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질 것 같다. 물론 그는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 천천히 일어나 배낭을 어깨에 멘 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나무들 사이를 걸어간다.

내가 반했던, 아니 부러워했던 사내.

태양은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기고.

그의 모습을 저녁 어스름이 지워버리자, 구름 한 자락에 매달려 있던 해가 바다 속으로 몸을 담근다. 날이 어둑어둑해져가면서 공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만치서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제법 듣기 좋아서 가까이 가보니 한 청년이 기타를 치고 다른 하나는 신나게 노래를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이 청년들 더욱 신났다. 잠시 뒤에는 노래를 멈추고 콜라를 한 잔 가져와 내민다. 오늘의 첫 청중이 돼줘서 고맙다는 뜻이리라. 고맙긴 뭐, 사진을 찍게 해줬으니 내가 더 고맙지. 그나저나 여행지에서는 남이 주는 음료를 함부로 마시지 말라는 여행자 수칙을 어쩐담.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다. 청년들의 눈빛을 보니 절대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못된다. 그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나는 콜라들 마시면서 노래를 듣고. 난데없는 호강이다. 노래를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터키 사람 특유의 호기심으로 눈까지 반짝거린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이번에는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에 'I love core'를 넣어서 후렴구처럼 부른다. 이런 환영이 있나.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자연스레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청년들은 토크쇼를 하듯 중간 중간 관중과 이야기도 나눈다. 관광객에게는 안탈리아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접대성 멘트도 아끼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공원서 노래하는 청년들.

 공원에서 노래하는 청년들

청년들은 콜라는 마시지만 술은 절대 사양이다. 소위 말하는 공원에서 껄렁대는청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왼쪽에 기타 치는 청년은 열아홉 살로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노래를 하는 청년은 스물 셋이라는데 바에서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둘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데도 절친이란다. 함께 공원서 노래를 한 건 2년 째. 노래를 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느냐고? 그런 건 없고 그냥 노래가 좋을 뿐이란다. 앙코르 신청을 했더니 혼신을 다해 불러준다. 목소리 톤이 아까보다 한 옥타브 올라갔다. 어이, 청년들. 무리는 하지 말어. 그러다 목 상할라.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쳐준다. 안탈리아의 저녁은 그들의 노래가 있어 한층 빛난다. 세상은 아직 온전히 저물지 않았다. 청년들과 헤어져 다시 바닷가 쪽으로 걷다가 어느 순간 몸을 낮춰 앉는다. 사물은 조금씩 희끄무레 하게 자취를 흐려간다. 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특히 여행을 할 때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즐긴다. 몸을 한껏 낮추고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엔 요술나라처럼 신기한 것들로 그득 차 있다.

안탈리아 밤거리는 화려하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본 지중해.

신의 안배는 얼마나 절묘한지. 뛰어갈 때보다는 천천히 걸어갈 때 훨씬 많은 것을 보기 마련이다. 물론 걷는 것보다 서 있을 때, 서 있을 때보다는 앉아 있을 때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 몸을 한껏 낮추고 고개를 숙여야 드디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다. 눈으로 보는 걸 포기할 때도 있어야 한다.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을 열어 세상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여행은 좋은 스승이다. 어느 순간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해지거나, 스스로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면 배낭을 꾸려볼 필요가 있다. 나그네가 되어 떠돌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잃어버렸던 자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다큐팀의 저녁 풍경 촬영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간다. 안탈리아 시내는 대도시답게 화려하다. 느닷없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괜스레 눈을 크게 떠본다. 절대 그럴 리 없지.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난 일정 덕분에 안탈리아의 두 번째 밤은 비교적 여유롭다. 식사를 한 뒤 야간 촬영을 나간다는 다큐팀과 떨어져 혼자 남는다. 이렇게 버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 책을 읽다 창문을 열어보니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배 하나 꼬박꼬박 졸고 있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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