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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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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해당되는 글 1

  1. 2011.08.01 [백두산을 가다 6] 시원(始原)의 호수, 천지 앞에 서다12
2011. 8. 1. 08:23 백두산을 가다

 

3
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201165일 새벽 530. 냉장고가 없는 호텔에도 모닝콜은 우렁차게 울립니다. 눈을 뜨자마자 창문으로 달려가 커튼을 열어 제치고 긴장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이, 아니 날씨가 오늘의 운명을 가름하기 때문입니다. 참 애매합니다. 맑다고 하기도 그렇고 흐리다고 하기도 그렇고. 1년 중에 백두산을 올라갈 수 있는 기간은 석 달 남짓, 그 중에서도 천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30%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구름과 안개, 비바람으로 천지는커녕 앞사람 뒤통수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가이드 역시 그런 점을 내내 강조했습니다. “백두산을 올라간다고 반드시 천지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기도 잘 하세요.”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리산 일출을 보는데도 이 말이 적용되든가요? 아무튼, 제가 백두산에 간다니까 모두 한마디씩 했습니다. “2대는 몰라도 당대는 좀 의심스러운데?” 질풍노도의 삶에 대해 반성 많이 했습니다. 헌데, 제 집안과 저만 덕이 있으면 뭐합니까. 일행 중에 개차반으로 살아온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공염불이 될 텐데요. 그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목욕재계하고 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았던 어젯밤의 분위기와는 달리 뷔페식 식당은 인파로 북적거립니다. 한국인, 중국인들이 마구 섞여 있습니다. 모두 백두산에 가는 사람들일까? 이들 중에 악업을 쌓은 사람은 없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유난히 깔깔한 아침식사를 마칩니다.

백두산을 향하여
차에 오르니 역시 어른들이 먼저 앉아 계십니다. 그분들의 눈 속에도 기대와 우려가 한데 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나빠질 기색도 좋아질 기색도 아닙니다. 그런 차에 가이드가 희망의 한마디를 던집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요. 기대해볼 만 하겠는데요.” 그러면서 절망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어제 올라간 분들은 천지를 못 봤다고 합니다.”

통화에서 백두산 아랫동네인 송강하(松江河)까지는 4시간30분 정도 걸립니다. 명색이 백두산의 관문도시에서 입구까지 가는데 또 4시간이 넘게 걸린다니. 아무튼 버스는 힘차게 백두산을 향해 달립니다. 같은 영화를 연달아 돌리는 듯, 비슷한 창밖 풍경이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희망과 절망을 버무린 가이드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백두산이 왜 백두산인 줄 아세요? 번 중에 번만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두산이랍니다.” 아예, 악담을 해라. 악담을. 버스는 작은 도시들과 농촌, 그리고 산촌을 번갈아 지나칩니다. 하지만 산악지대에 가까워지는 건 확실한 듯 침엽수가 자주 눈에 띕니다.

장백산이냐, 백두산이냐

사진 아래 자그맣게 서 있는 저 자가 바로 이 글을 쓴 자입니다. 클릭은 하지 마십시오.

하얀 살결의 나부(裸婦) 같은 자작나무도 언뜻 언뜻 모습을 드러냅니다. 백두산 권역에 들어섰다는 뜻입니다. 가이드 말로는, 화산재 토양의 백두산에서는 자작나무가 잘 자란다고 합니다. 백두산은 동물보호구역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호랑이나 곰이 10여 마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천막에 기거하며 벌을 치는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띕니다. 꽃이 피면 벌통을 지키며 산속에서 한 계절을 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늘 삶의 종착지가 은둔이기를 꿈꾸는 저로서는 부럽다는 생각에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가이드가 백두산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전달합니다. “플래카드나 태극기를 들고 사진 찍는 행위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무속 같은 기도행위도 안되고요.” 2007년 장춘(長春,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한국의 쇼트트랙 선수들이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피켓을 들고 세리머니를 펼친 뒤 한국인들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고 합니다.

끝없이 달릴 것 같던 버스가 어느 순간 멈춰 섭니다. 드디어 백두산의 들머리인 송강하입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백두산에 오른다고 합니다. 아침 먹은 게 미처 꺼지지 않았지만 산을 올라가야 하니 든든히 먹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로 치면 가든정도 되는 집에서 차려낸 음식은 지금까지 먹은 것보다 부실한 편입니다. 그래도 먹는 게 남는 것! 열심히 먹습니다. 음식점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백두산은 꽤 화려하게 지어놓은 건물을 통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매표소 겸 대합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건물을 바라보는 순간 턱, 하고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높다랗게 올라간 입간판에 쓰인 글자는 백두산(白頭山)이 아니라 장백산(長白山, 창바이이산)입니다.

백두산의 중국 이름이 장백산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돌고 돌아 찾아온 우리의 산이 장백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걸 보고서 속이 편할 리 없습니다. 중국은 백두산 개발에 유난히 힘을 쏟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을 펼치는 김에 백두산이라는 상징물을 중국의 것으로 말뚝 박아놓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래서 장백산 공항과 관광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 장춘 동계아시안게임 때는 백두산에서의 성화를 채화했고 백두산이란 이름이 붙어 있던 학교들을 장백산으로 바꿨습니다. 눈앞의 근사한 건물도 그런 과정의 하나로 지어진 게 아닌지 짐작을 해봅니다.

백두산에 들어서다
입장권을 손에 쥔 가이드를 따라서, 마치 지하철 개찰구와 비슷한 곳을 통과합니다. 진짜 백두산 영역에 접어들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버스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습니다. 백두산까지 오르내리는 셔틀버스라고 합니다. 이 버스로 약 9부 능선까지 오르면 서백두(西白頭)주차장이 나오고 거기서부터 계단을 걸어 올라가게 됩니다. 주차장까지는 40~50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차 안에는 한국인 중국인들이 마구 섞여있습니다. 다행히 자리를 잡아 카메라를 꺼내들고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눈을 차창에 고정시킵니다.

버스가 앞으로 갈수록 계절은 농익은 늦봄에서 연초록의 초봄으로, 눈이 녹아 흐르는 늦겨울까지 조금씩 뒷걸음질 칩니다. 어느 순간 차 안에 아! 하는 탄성이 울려퍼집니다. 시선을 들어보니 저 멀리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봉우리가 보입니다. 아직은 작아서 형태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두 말 할 것 없이 백두산입니다. 말 그대로, 머리에 하얀 눈을 쓰고 있다는 백두(白頭). 드디어 백두산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차가 올라갈수록 눈은 더욱 풍성해지고 산의 윤곽도 뚜렷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주변 풍경도 달라집니다. 고사목들은 세월을 이불 삼아 덮은 채 곳곳에 누워있고 살아있는 나무들도 아직 한겨울 속에 서 있습니다. 녹지 않은 눈들이 길 가에 그대로 널부러져 있습니다. 버스가 헐떡거리며 마지막 고비를 오릅니다. 뒤를 돌아보니 버스가 지나온 길이 둥근 원을 반복해서 그려놓았습니다.

어느 독자분이 이 사진이 궁금하다고 물어오셨습니다. 만년설입니다. 눈이 사람의 몇 길은 되게 쌓인 것이지요. 저 눈은 여름에도 다 녹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험해도
목적지에 도착한 버스가 지친 몸을 세웁니다. 주차장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크! 몸이 저절로 움츠러듭니다. 미처 물러가지 못한 겨울이 늙고 지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눈, , . 바람은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을 함부로 휘두릅니다. 배낭에서 얼른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어 입습니다. 아예 겨울 파커를 입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늘까지 닿은 듯, 계단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1340개의 계단. 저 계단을 모두 올라가야 천지에 닿습니다. 하늘 못(天池)으로 가는 계단이니 그곳에 정말 하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어올라갑니다. 그리 만만한 계단은 아닙니다. 중간 중간에 가마꾼들이 호객을 하고 있습니다. 돈이 뭔지. 맨 몸으로 올라가기도 벅찬 계단인데 사람을 태우고 가다니. 실제로 일행 중 한 분은 허리가 안 좋아서 가마를 빌렸다가 중간에 내리고 말았습니다. 가마꾼의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휘청거리는 다리가 가슴 아파 더 이상 타고 있을 수 없더라고 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절경입니다. 중간 중간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오르다보니 정상이 저만치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봅니다. 구름 사이로 파란하늘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희망적입니다. 정상을 눈앞에 둔 순간, 숨이 차서인지 기대에 차서인지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계단, 그리고 정상. 몸은 주저앉고 싶은데 마음은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 하늘은 무심치 않았습니다. 시선이 닿은 그곳, 천지가 활짝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시원(始原)의 호수. 할아버지, 아버지. 고맙습니다. 제 일행의 조상님들도 감사합니다.

! 천지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천지는 그 푸르디푸른 속살을 감춰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감동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호수 주변에 눈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집니다. 한참동안 천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자꾸 하얗게 바래갑니다. 평생 글밥을 먹고 살아왔는데도 어떤 언어를 동원해야 이 순간을 제대로 표현할지 막연할 뿐입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가릴 것 없이,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5호경계비에 올라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한쪽은 中國다른 한쪽은 조선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혼자 그 경계선을 왔다갔다 해봅니다. 두 나라를 수십 번 오가는 셈입니다. 누구도 말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에는 북한군 병사들이 주둔하면서 월경하는 것을 막았다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른쪽엔 가장 높은 봉우리 장군봉이 하얀 눈을 고깔처럼 쓴 채 천지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라도 달려갈 수 있을 듯 가까워 보입니다. 느닷없이 경계도 이데올로기도 미움도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백두산이 백두산이란 이름조차 얻지 못했을 때, 그 어디에 네 것 내 것이 있고 그 어디에 금이 그어져 있었으랴. 천지는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백두산을 가다는 이쯤에서 마칠까 합니다. 말로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백두산을 내려오면서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금강대협곡의 웅장한 모습도 보았고, 다음날 심양에서 북릉공원 들렀지만, 그 역시 기록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백두산에 올랐고 천지를 보았을 뿐입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 큰 질책 없이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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