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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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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에 해당되는 글 2

  1. 2010.07.26 [사라져가는 것들 143] 미시령휴게소18
  2. 2008.10.27 [사라져가는 것들 82] 마장터12
2010. 7. 26. 09:0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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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애인과, 친구라고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동해바다 피서를 도모해본 적 있으십니까?
이왕이면 폼 나게 가야지 대중교통이 웬일이냐고, 졸부가 된 오촌 당숙을 혀가 닳도록 설득한 끝에 차를 빌리는 데 성공하지요.
그렇게 떠나는 길, 하늘의 구름 따위는 우습게 보일 만큼 온몸이 둥둥 떴을 겁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꿈은, 곧잘 끔찍한 현실을 동반하기도 하지요.
막히는 길이야 애당초 각오했던 일이고, 애인의 솜사탕 같은 수다도 있으니 별 문제될 건 없습니다.
한숨 쉴 일은 인제를 지나 미시령 초입에 접어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이까지 갈며 잠들어버린 철없는 애인 때문이냐고요?
그건 아니고…, 아찔한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급경사, 급커브 길 때문이지요.
숙달된 운전사도 천지신명, 조상님 찾으며 납작 엎드려야 통과시켜준다는 길이 미시령 아닙니까.
하물며 지갑 속에서 잠만 자던 면허증 소지자가 남의 차 빌려 타고 길을 나섰으니, 지옥문으로 발 하나 들여놓은 셈이지요.
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험한 세상 버텨온 몸,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나요.
등이 축축해지고 이가 뽀득뽀득 갈리지만, 여유 있는 척 해가며 부득부득 올라가는 길, 그게 바로 미시령입니다.
하지만 지옥길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 아닙니다.
미시령 정상에 거의 다가갈 무렵, 차는 어느 순간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새벽녘의 들개들처럼 우우~ 소리치며 몰려다니는 그 구름을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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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고성(古城)처럼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미시령 휴게소.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하던 풍경에 당신의 입은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을 겁니다.
어떻게 이 높은 고갯마루에 저리 넓은 곳을 숨겨뒀을까 싶은 광장과, 조금은 이국적 양식의 휴게소 건물.
그리고 축축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구름 또는 안개.
혹시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어서 꼬집어본 사람인들 없었겠습니까.
갑자기 엄마 품에라도 안긴 것 같은 안도감에, 눈물까지 찔끔거린 마음 약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요.
맑은 날에 만나는 미시령 정상도 천상의 후원처럼 아름답습니다.
주차장 난간에 기대어 동쪽을 바라보면 속초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게 펼쳐진 동해바다.
쓔웅! 하고 몸을 날리면 바다로 풍덩 빠져들 것 같은, 그 터무니없는 거리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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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때문에 곧잘 통제되긴 했지만, 겨울이면 겨울대로 독특한 ‘맛’이 있었습니다.
흰 눈을 가득 이고 서 있는 설악의 줄기, 봉우리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으르릉 거리는 바다….
눈 때문에 휴게소에서 오도가도 못 한, 끔찍한 추억을 가진 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요.
휴게소는 꽤 큰지라 대형식당은 물론이고 간이음식점, 특산물 매점, 기념품가게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넓은 곳이 늘 인파로 북적거렸습니다.
밥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그저 담배 한 대 태우며 이국적 풍경을 만끽하고는 했지요.
한계령, 진부령과 함께 동해로 가는 세 개의 고개 중 하나이자, 속초로 가기 위한 유일한 관문.
그곳, 미시령 휴게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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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을 얼마 전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전해드리면 참담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때 당당함을 자랑했지만 이젠 죽음을 코앞에 둔, 늙은 짐승을 보고 온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직장동료들과 동해안으로 워크숍을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미시령옛길을 기억해내는 순간 모두가 신이 났지요.
오가는 차로 가로 가득했던 길은 왕조가 버리고 간 옛 수도처럼 쓸쓸했습니다.
덕분에 느긋함과 게으름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행복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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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정상에 올라서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짙은 구름은 여전히 달려와 반기고, 그 속에 잠겨 있는 휴게소도 옛 모습으로 손짓했습니다.
눈물이 찔끔 솟을 만큼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터널이 개통된 뒤에는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하던 무심한 사람인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 찾아먹 듯, 추억을 하나씩 꺼내들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휴게소에 들어가면서부터 일어났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눈보다 몸이 먼저 감지했습니다.
오가는 사람이 드문 거야 그러려니 했지만, 활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큰 식당을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었는데 손에는 파리채 하나만 달랑 쥐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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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건 화장실을 가다가 본 풍경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게 텅 비어서 폐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각종 젓갈을 진열했던 냉장고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특산물을 팔던 가게는 할 일 없는 선반만 남았습니다.
감자수제비, 우동, 해물라면… 분식점의 조리기구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탁자와 여기저기 올라선 의자들은 더 이상 음식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절망을 웅변하고 있었고요.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건물 밖이라고 다를 게 없었습니다.
나무 기둥과 계단은 삐걱삐걱 비명이라도 지를 듯 낡았고, 지붕 역시 손을 보지 못한 지 오래인 것 같았습니다.
뒤로 돌아가 보니 더욱 참혹했습니다.
사람 손길이 닿은 지 오래인 듯, 곳곳이 잡초가 무성했고, 한 때 화려함을 자랑했던 많은 것들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만남의 집’ 녹슨 자물쇠는 주인이 영원히 외출했음을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한 때 화려했던 것들이 안개 속에서 하릴없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고통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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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무섭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터널이 뚫린 게 2006년5월이니 5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젊고 화려했던 휴게소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되어 있다니….
‘빠르고 편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절감했습니다.
내려가던 중에 울산바위가 코앞에 보이는 길에서 잠시 서성거렸습니다.
울산바위를 모르는 분들은 없겠지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던 그 울산바위.
뭐랄까, 집 채? 어림도 없지요.
마치 커다란 산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하던 그 울산바위도 터널이 생긴 뒤 쓸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앞에 서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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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바람이나 새들만 넘는 고개, 미시령.
그 곳에 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결에 전하는 부탁이 고작이었습니다.
‘동해에 갈 사람은 구경삼아서라도, 운전이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미시령 옛길로 가 보세요.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꼭 휴게소에 들르세요. 화장실만 가지 말고 차라도 한 잔 사드세요. 밥을 먹으면 더욱 좋겠지요. 혹시 알아요? 그렇게 해서 그 추억의 장소가 조금 더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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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7. 10:56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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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은 큰 산이다. 속초시와 양양군·인제군·고성군에 걸쳐 치마폭을 펼치고 있다. 그 너른 치마폭에는 온갖 것들을 품고 있다. 사람과 짐승과 나무, 바위,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이 나르는 갖가지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누군가의 손으로 기록이 되어 후세에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 곳 저 곳 떠돌다 어느 골짜기에 묻히기도 한다. 특히, 풀처럼 흔들리다 떠나간 민초들의 이야기는 늘 불임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록이라는 자식을 잉태하지 못한다. 결국 기억하고 구전(口傳)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뜨면 억새처럼 홀로 서걱거리다 스러져간다. 이 나라 최고의 오지 중 하나인 마장(馬場)터가 그렇다. 역사에 기록 한 줄 못 남기고 입을 통해서만 전해지다가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다. 그 빈자리엔 바람과 새소리가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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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로 넘어가는 길, 샛령(641m)에 있었던 산중 마을의 이름이다. 샛령이 시작되는 용대3리는 미시령과 진부령의 갈림길에서 미시령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만나는 동네다. 박달나무쉼터라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길이 시작된다. 보통 대간령(大間嶺),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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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으로 표기되지만 이곳 사람들은 샛령으로 부른다. 이 고개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진부령과 미시령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인제에서 고성으로 넘어가는 가장 짧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이 포장되면서 잊혀져가는 길이 되었다. 박달나무쉼터를 끼고 조금 가면 수정 같은 물이 흐르는 내가 나오고 자유분방하게 배열된 돌무더기를 의지해서 내를 건너면 군훈련장이 있다. 그 옆길을 끼고 돌면 샛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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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다. 비록 흐릿하지만, 길을 한번 잡으면 잃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은 소풍을 가는 셈 치고 올라가면 된다. 옛길은, 이제 들을 사람이 없는 옛이야기를 베개 삼아 숲 사이로 게으르게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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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산이 금지된 지역이라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부드럽고 원만한 길이 오래된 넥타이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 잠시 한눈을 팔다, 길을 잃었나 싶어 허둥거릴 무렵이면 금세 눈앞에서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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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내를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교대로 끼고 이어진다. 숲은 아름답다. 나뭇잎들이 손을 흔들고, 그 사이를 다람쥐가 곡예 하듯 오간다. 길가에 야생화들이 도열해 있다. 도시는 아직 여름의 화장을 지우지 못했는데 숲은 벌써 가을을 품고 있다. 나무들은 옷 갈아입을 준비에 분주하다. 어차피 오라는 이 가라는 이 없는 산행, 천천히 걷는다. 개울의 유혹에 못 이겨 결국 주저앉는다. 계곡은 푸른 이끼의 세상이다. 이끼도 군집을 이루면 저렇게 장엄한 것을. 거울처럼 맑은 냇물 안에 나무와 새와 바람이 들어있다. 개구리 한 마리가 움찔도 않고 틈입자를 노려본다. 나는 이 숲에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가. 이 숲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이들이다. 자주 잊어버릴 뿐…. 걷다가 쉬다가 하늘 한번 바라보다, 40분쯤 걸었을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경사가 급해진다. 숨이 턱에 닿을만하니 고갯마루가 나타난다. 작은샛령(소간령)이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마장터가 시작된다. 갑자기 숲의 풍경이 달라진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낙엽송(落葉松=일본잎갈나무)이 빽빽하게 키를 자랑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낙엽송 은 1970년대 초반 화전민 정리 사업을 한다고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가 살던 곳에 사람이 살더니, 사람이 살던 곳에 나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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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연은 아랑곳 없이 
낙엽송 샛길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향기롭다. 한참을 내려가니 개활지(開豁地)가 펼쳐진다. 깊은 산 속에 이렇게 넓은 곳을 마련해둔 건 누굴까. 청송 주왕산의 내원마을에서 토해냈던 것과 똑같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여름을 나느라 지친 잡초 사이로 ‘마장터’라고 쓴 안내판이 숨어있다. 순간적으로 길을 잃어버린다. 아니, 스스로 길을 버리고 억새숲을 헤매는 선택을 한다. 이리 저리 걷다보니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기대했던 귀틀집은 아니다. 별장(?)으로 지어놓은 듯 제법 번듯하다. 아무도 없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억새숲을 헤맨다. 억새가 뜸해질 무렵 드디어 귀틀집 두어 채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 마장터가 있었다’고 웅변하는 존재들이다. 그래도 이곳에 장이 섰다는 건 실감이 안 된다. 마장터라는 이름은 샛령을 넘던 말이 쉬어가는 마방과 주막이 있었다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고성이나 속초에서 소금이나 미역을 지게에 지거나 마차에 실어 샛령을 넘어오고 인제쪽 사람들은 감자나 옥수수, 잡곡 등을 지고 와 맞바꾸다보니 이 곳에 자연스럽게 장이 서고 동네가 생긴 것이다. 샛령은 그만큼 큰 길이었다. 아직 마꾼들이 쉬어갔다는 주막터가 남아있다. 마을에 많을 땐 50가구 이상이 살았으며 양조장과 담배포까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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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과 귀틀집들을 바라보다보니 그 옛날에 오가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장터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한두 잔 먹은 막걸리에 흥타령이 절로 나오고…. 먼저, 위에 있는 귀틀집으로 가본다. 집은 비어있다. 서너 칸은 돼 보일 정도로 규모가 있다. 굵은 통나무를 엇갈려 쌓고 흙으로 마무리한 전형적인 귀틀집이다. 지붕은 굴피를 덮고 그 위에 다시 억새로 이엉을 엮어 얹었다. 굴피와 억새의 공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뒤뜰로 가보니 뒷간과 헛간 이 옹기종기 서 있다. 텃밭에는 고춧대와 채소들이 서거나 눕거나 제멋대로 한 계절을 나고 있다. 집 주위를 돌아보지만 역시 사람의 온기는 없다. 내를 따라 내려가다가 혹시나 해서 아랫집으로 들어선다. 아! 사람이 있다. 손바닥만한 마당에 앉아있던 중년남자가 눈인사로 객을 맞는다. 모자 아래의 머리는 백발인데 얼굴은 대춧빛으로 빛난다. 어디서 본 얼굴이다. 맞다. 초입에서 길을 물을 때 잠깐 만났던 박달나무쉼터의 주인 염봉성씨(56세)다. 그는 자신을 약초꾼으로 소개한다. 동충하초를 세상에 최초로 알린 게 본인이라고 자랑한다. 길 잃은 등산객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는 ‘고마운 아저씨’로도 알려져 있다. 등산객이 올라가는 걸 봤는데 시간이 돼도 내려오지 않으면 결국 찾으러 나선단다. 조난 직전에 구조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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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마장터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다. 윗집에는 50대의 백모씨가 산다. 명문대 출신인 그는 한 때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는데 외국을 떠돌다 돌아온 뒤 마장터로 들어왔다. 지금도 어느 날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는 습관은 여전하다고 한다. 가장 먼저 보았던 현대식 집은 그의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지은 ‘별장’이란다. 그리고 아랫집에는 60대의 정모씨가 산다. 사실 마장터의 이 두 주민은 그동안 여러 차례 세상에 소개된 유명인사다. 정씨의 집 역시 귀틀집인데 지붕은 파란 함석으로 ‘개량’하고 통나무와 돌을 얹었다. 정씨는 젊어서 산에 들어왔는데 철따라 약초꾼, 나물꾼으로 살다가 겨울이 되면 가족이 사는 속초로 간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매달 말에서 초 사이에는 ‘결산’을 하러 속초로 나간단다. 염봉성씨는 정씨가 집에 없는 게 영 아쉬운 눈치다. “방을 보여드리면 좋을 텐데 지금 열쇠가 없어서… 재미있는 게 참 많거든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마을 아닌 마을, 그 속에 삶터를 꾸민 사람들은 문명을 버린 대신 평화와 정(情)을 선택한 것 같다. 염봉성씨가 주섬주섬 막걸리 병을 꺼내더니 한 잔 그득하게 따라준다. 정이 철철 넘쳐흐른다. 그가 품은 평화로운 기운에 내게 그대로 전해진다. “산에 오래 사시더니 도인 다 되셨네요?” 절대 빈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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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많으니 조심해서 내려가라는 염봉성씨의 배웅을 받으며 하산 길에 든다. 올라올 때 길옆을 잔뜩 파헤친 것을 보며 궁금했는데 그 주인공이 멧돼지? 괜히 등골이 오싹해진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진리는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하지만 멧돼지는 금방 잊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잠시 주저앉아 땀을 들이는 김에, 지고 온 캔맥주를 꺼내 배낭을 비우고 주변의 풍경을 대신 담는다. 이 순간만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이곳을 삶터로 삼고 또 이곳에서 물건을 교환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들은 욕심 따위는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늘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 이상적인 나라 하나가 세워졌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왕이나 대통령 같은 권력자가 필요 없는… 그래서 세금도 병역도 전쟁도 없는…. 잠시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다. 누군가의 소망으로 태어난 길은, 문명의 척후병이 되어 속도와 번잡을 껴안든가, 어느 순간 망각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서 지워지기도 한다. 샛령은 후자가 되었다. 그나마 안부를 묻듯 찾아오는 사람들마저 사라지면 마장터라는 이름은 끝내 잊혀져갈 것이다. 내려오는 길,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자꾸 두리번거린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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