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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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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 가위바위보'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6.27 [길섶에서 15] 지하도의 작은 축제
2007. 6. 27. 18:49 길섶에서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하도에 펼쳐진 색다른 풍경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할아버지와 손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발걸음이 분주한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다. 이긴 사람이 한 계단씩 먼저 올라가는 놀이다. 바쁘게 지나던 사람들도 잠깐씩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준다.

손녀아이가 연달아 이기는 모양이다.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터뜨리는 웃음이 구슬이라도 굴리는 듯 맑고 경쾌하다. 노인도 함박웃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조손(祖孫)이 펼치는 즉석 축제에 구경하는 사람들의 입가에도 웃음꽃이 핀다. 모처럼 도심에서 보는 색다른 풍경이 잠자던 동심을 두드려 깨운 듯, 밝은 얼굴들이다.

그러고 보면 우린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산다. 아이들은 별을 세는 대신 TV앞에서 만화영화를 본다. 팽이를 돌리고 숨바꼭질을 하는 대신 컴퓨터 속의 적을 쏘아 죽인다. 할아버지·할머니 무릎을 베고 견우직녀의 사랑 얘기를 듣는 대신 학원에 앉아 외국말을 배운다. 우리가 잃고, 잊은 것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한다면 너무 큰 억지일까. 지하도에서 본 작은 축제의 잔상이 하루종일 떠나지 않는다.
2005.1.31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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