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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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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 물고기 어부'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6.27 [사라져가는 것들 14] 죽방렴
2007. 6. 27. 18:50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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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서핑이라도 하듯, 빠른 물살을 너무 즐겼던 게 탈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태어난 지 1년도 안된, 어린 멸치에 불과한 내가 그 길이 가서는 안될 길이고, 그 곳이 들어서면 못 나올 곳임을 어찌 알았으랴. 너른 바다에서 노는 것도 심심해진 어느 날 엄마 몰래 친구들과 모험을 떠났다. 이곳 저곳 구경을 하다가 빠른 밀물을 타고 들어선 곳이 남해의 지족해협이었다. 모험은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인지. 신이 난 나와 친구들은 엄마가 걱정한다는 사실도 몽땅 잊어버렸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두 팔을 넓게 벌리고 서 있는 나무말뚝들이었다.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반갑다고 저리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것인가.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악동들은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물살이 빨라 헤엄칠 능력을 상실했을 것이라거나 멸치 떼를 노리고 뒤를 쫓는 농어나 숭어 때문에 쫓기듯 들어갔을 거라고 짐작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갔을 뿐이었다. 좀 좁긴 하지만 숨바꼭질하기엔 알맞은 곳이었다. 죽방렴이라 불리는 그 곳에서 우린 정말 즐거웠다. 어부 하나가 배를 타고 와 뜰채로 우릴 떠올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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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남반부를 달리다 보면 하동을 지나, 우리나라 네 번째 섬이었다가 다리(남해대교)를 놓은 뒤 육지가 된 남해를 만날 수 있다. (뒤에 사천과 연결되는 삼천포대교도 건설) 그리고 고구마 두 개를 나란히 놓은 것처럼 생긴 남해를 또 달려, 두 번 째 고구마 가슴쯤을 지나다 보면 물살 빠르기로 유명한 지족해협을 만날 수 있다. 그 곳엔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연결해주는 바다 위의 다리, 창선교가 있고 그 다리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높다란 입간판에는 죽방렴의 본고장임을 자랑하는 글귀가 써 있다. '지족해협 청정해역의 명품-원시어업 남해 죽방렴멸치'. 자랑스레 '현존하는 가장 원시형태의 어로포획방식'이라 부르는 죽방렴. 그런데 죽방렴이야 말로 가장 첨단어업이었고,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원시적 어로라면 물고기를 손으로 잡거나 작살로 찍어내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죽방렴은 원시어업이라기보다는 '자연친화' 어업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돌로 담을 쌓아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서해의 '독살'과 함께, 인간의 지혜와 노력이 가장 많이 투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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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은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簾) 고기를 잡는다(防)는 뜻으로 '대나무 어살' 또는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불렀다.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빠르며 수심이 비교적 얕은 곳에 설치하게 된다. 좁은 물목의 조류가 흘러 들어오는 쪽을 향해 길이 10미터 정도의 참나무 말목을 V자 모양으로 벌려 일정하게 박고 말목과 말목 사이에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든다. 그리고 통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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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그물을 엮어 넣으면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는 이 미로로 된 함정(임통, 불통)에 빠져 썰물 때가 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물고기는 후진을 할 줄 모르니 들어오는 길에 생각이 바뀐다 해도 다시 나갈 방법은 없다. 임통은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히게 된다. 죽방렴을 설치한 주인들은 하루 두세 차례 물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물고기들은 건져 올린다. 고기잡이는 3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며, 5월에서 8월 사이에 멸치와 갈치를 비롯해 학꽁치·장어·도다리·농어·감성돔·숭어·보리새우 등이 주로 잡힌다.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 1~2월에는 임통만 빼서 말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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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잡힌 물고기 중에는 멸치가 80% 정도를 차지한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스트레스를 덜 받아 맛이 좋다고 한다. 또 잡는 과정에서 상처가 나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다. '죽방멸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물로 잡은 멸치보다 최소 두 배에서 수십 배의 가격으로 팔려나간다. 잡은 멸치는 회로도 먹지만 대부분은 즉시 육지로 운반해서 솥에 삶아 말린다. 죽방렴 어업은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 어로법이다. 바다 위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고기는 맞아들이고 지나가는 건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둔다. 놓친 물고기를 아쉬워하거나 더 많이 잡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법이 없다. 바다 밑까지 긁는 기계식 어로처럼 무지비한 싹쓸이를 꿈꾸지 않는다. 자연도 살리고 인간도 살자는 상생의 어로이다. 죽방렴의 혜택을 받는 건 사람뿐이 아니다. 갈매기란 놈도 지친 날개를 접어두고 참나무 말목에 앉았다가 은빛 멸치라도 한 두 마리 튀어 오르면 잽싸게 낚아채 배를 채운다. 잡히는 물고기가 많지 않더라도 매일 거둬들일 것이 있으니 어부의 마음은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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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고려시대부터라고도 하고 5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도 하는데 문헌상에는 조선조(1496년)부터 나타난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죽방렴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큰 조수간만의 차와 빠른 물살이 필수조건이며 수심 역시 적당해야 한다.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는 지족해협에는 20통이 넘는 죽방렴이 남아 있다. 이밖에도 남해군 창전면과 사천시 삼천포 사이에 있는 삼천포해협에 원형이 살아있는 죽방렴이 있다. 여수·완도 등에도 몇 통이 있었으나 철거되었다고 한다. 목포에는 해양유물전시관에 보관해놓았다. 죽방렴이 아직은 거액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것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배를 타고 대양을 누비는 어로법의 발달, 연안의 어업자원 감소, 관리하기 위한 노동력의 부재 등은 죽방렴을 석양 아래 세워놓았다. 아마도 새로운 죽방렴이 설치되는 것 자체가 끊길 날이 그리 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임통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죽방렴의 이름을, 가슴에서마저 지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취재를 하면서] 남해 지족해협은 석양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석양 속에 꿋꿋이 서 있는 죽방렴들과 그 곁을 지나는 작은 배들은 마치 꿈속인 양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지족해협 죽방렴을 남해 12경 중 4경으로 꼽습니다. 제가 지족해협을 찾았을 때는 장마철도 아닌데 날이 계속 흐렸습니다. 그래서 석양풍경을 잡는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하늘에게 무언가 못 마땅하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반성했습니다. 훗날 다시 찾을 기회가 있다면 좋은 사진 많이 찍어오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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