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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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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종소리'에 해당되는 글 2

  1. 2009.10.05 [사라져가는 것들 123] 사물(四物)6
  2. 2009.09.21 [사라져가는 것들 122] 학교종10
2009. 10. 5. 10:52 사라져가는 것들

“사물이 뭔지 아는가?”
“사물이라….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그 정도는 알지요. 꽹과리, 장구, 북, 징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 사물을 가지고 한 마당 어울리는 걸 사물놀이라고 하고요.”
소백산 자락의 희방사와 희방폭포를 보고 내려와 부석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세상은 널브러지듯 사지를 내맡기고 있었다. 부석사로 올라가는 언덕길, 빗속의 사과과수원은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풍경화가 되었다. 가슴이 온통 푸르게 물드는 기분이다. 질문을 했던 선배가 조금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왜요? 그게 사물이 아니던가요?”
“허참. 이 사람아, 절 밑에 와서 사물을 물었으면 적당히 눈치 챌 줄도 알아야지 기껏 꽹과리, 징을 안다고 자랑하고 있나?”
“…”
“절집의 사물은 범종‧법고·운판·목어 4가지를 말하는 걸세.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고 하지. 어지간한 절에서는 범종각이나 범종루에 이 사물을 같이 걸어둔다네. 공통점은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는 거고. 그런 면에서는 자네가 말한 사물하고 일치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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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

이거야 원,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수박 겉핥듯 절 몇 곳 구경 다녔다고, 사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떠벌린 터에 사물이 뭔지도 모르다니…. 무참한 얼굴로 강의나 듣고 있는 수밖에. 빗줄기가 갈수록 촘촘해지는 기색이다. 하지만 우산을 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선배의 설명이 이어진다. 물건이든 지식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지 못해 늘 안달인 양반이다.
“똑같이 두드려 소리를 내지만, 그 사물의 소리가 목적으로 하는 건 각기 다르다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한다고 하지. 또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그 중에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을 제도한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제 무지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하면, 요즘은 어지간한 절에서도 사물을 격식 갖춰서 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아. 그런데 이곳 부석사는 시간만 맞춰 가면 사물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단 말일세. 사물이 금세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록해둘 필요가 있을 게야. 오늘 사물 소리를 직접 듣는다면 자네는 운이 좋은 거네.”
선배는 말이 나온 김에 어리석은 중생 하나 제도하겠다는 듯,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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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판

범종은 본래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쳤으나 점차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 치게 되었다고 한다. ‘범((梵)’이란 우주만물이며 진리란 뜻이다. 모든 중생의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 악도(惡道)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종을 친다. 그뿐 아니라 종소리를 지옥에 있는 중생에게까지 들려줘서 고통을 벗게 한다. 불교의 자비심이 넓고도 크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새겨진다. 지하세계의 중생이나 날아다니는 새, 물고기의 영혼까지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종을 울리고 북을 치다니…. 범종은 아침저녁 예불할 때 친다. 종소리가 지옥까지 울려 퍼지라는 의미에서 종 입구는 아래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다. 그 중에 특히 가축이나 짐승 등 축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몸통은 나무로 만들고 두드리는 면은 가죽을 대는데, 한쪽은 수소 가죽을 다른 쪽은 암소 가죽을 대야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법고는 북소리가 사바세계에 널리 울려 퍼져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사물 중에서 가장 먼저 친다. 두 개의 북채로 마음심(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물고기의 배 부분을 파낸 뒤 두드려 소리를 낸다. 어고(魚鼓) 또는 어판(魚板)이라고도 부른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로 만들었으나 점차 용머리에 여의주를 문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절에서 목어를 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물고기처럼 늘 깨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의미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목탁은 이 목어가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둥글게 깎은 것을 목탁이라 하고 길게 깎은 것은 목어라고 부른다. 운판(雲板)은 구름 모양으로 얇게 만든 청동판이나 철제 평판을 말한다. 대판(大版)이라고도 부른다. 판에는 보통 보살상이나 진언(眞言)을 새기고 가장자리에는 승천하는 용을 조각한다. 본래 공양간에 걸어두고 대중들에게 공양시간을 알릴 때 사용했으나 점차 의식 용구가 되어 예불 때 다른 사물과 함께 친다. 위쪽에 구멍을 두 개 뚫어 매달 수 있게 했다. 운판의 소리는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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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덧 ‘극락에 이르는 입구’라 일컬어지는 안양루에 이른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사물을 칠까요? 새들도 날개를 접고 물고기도 잠들었을 텐데….”
“치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제도할 게 없겠나. 아마 여섯시쯤일걸? 그때까지 기다려보시게.”
안양루 계단을 지난 일행이 무량수전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어차피 초행도 아니니 오늘은 일행과 떨어져 사물 치는 걸 볼 셈이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덕분에 세상은 적막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돌 벤치에 철퍼덕 앉아 비에 젖은 옛 절집을 감상하는 일로 시간을 줄인다. 여섯시가 가까워지는데도 누각은 텅 빈 채다. 오늘은 사물을 안 치려나?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잠시 뒤 어둑어둑한 누각 안에 희미한 움직임이 있다. 스님 한 분이 법고 앞에 서는가 싶더니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대지를 안마하듯,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북소리가 절집을 한 바퀴 돌더니 산 아래로 구르듯 내려간다. 풍진에 찌든 중생 하나가 감동에 젖어 그 소리를 와락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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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아참! 마냥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카메라를 앞세우고 안양루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가사장삼을 갖춰 입은 스님이 춤추듯 법고를 치고 있다. 법고는 마음심(心)자를 그리며 두드린다는데, 마음을 볼 능력을 못 갖춘 중생에게는 강약이 교차되는 소리만 귓속을 파고든다. 보인들 무엇 할 것이며 안 보인들 어떠랴. 훠이~ 훠이~ 이 소리 부처님의 사자후 되어 고통 받는 모든 영혼을 쓰다듬어 주기를…. 카메라에 소리까지 담아내고 싶지만, 늘 그렇듯 욕심일 뿐이다. 북소리가 절정을 넘긴 뒤 다른 스님이 운판을 치기 시작한다. 북소리와는 또 다른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허공을 떠도는 영혼들이여! 영원한 안식을 얻으소서. 카메라 뷰파인더 속에 들어온 스님과 운판 사이로 붉은 꽃이 얼굴을 내민다. 장미는 아닐 테고 배롱나무꽃일까? 가섭존자의 미소를 불렀다는 부처의 연꽃은 아니지만 이 또한 인연이려니…. 이어서 법고를 치던 스님이 목어 앞에 선다. 물고기 뱃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소리가 전신을 감싸고 흐른다. 목어를 치는 시간은 길지 않다. 범종각은 별도로 세워져 있다. 목어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우렁찬 종소리가 긴 파장을 남기며 산을 넘고 들로 달려 나간다. 무지한 중생들을 일깨우고 땅 아래 영혼까지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고자…. 뜻대로 되게 하소서.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참고자료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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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1. 09:18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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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종순이가 땡순이라는 새 이름을 얻기까지에는 남다른 곡절이 있었다. 종순 아버지 뻐꾹씨 -유백국(劉白國)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있었지만 모두 그렇게 불렀다-는 어느 날 다짜고짜 아내에게 씨암탉 한 마리를 잡아놓으라고 일렀다. 그러더니 땅거미가 마당을 기어 다닐 무렵 강토국민학교의 교장 공두말(孔頭末) 선생을 앞세우고 사립문을 들어섰다. 강토국민학교는 지난해까지 종순이가 다니던 학교였다. 퇴근길에 바로 끌려온 듯, 양복차림의 교장은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이마만 자꾸 쓰다듬었다. 부처님이라도 모시듯 안방에 교장을 모신 뻐꾹씨는, 실팍하게 삶아낸 닭과 함께 제사 때 쓰려고 담가둔 밀주(密酒)를 독채로 내오라고 일렀다. 공두말 선생이 누구던가. 술 한통을 짊어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갈 수 있다는, 둘 째 가라면 통곡이라도 할 주당(酒黨)아니던가. 그런 그 앞에 잘 익은 술이라니. 처음에는 무슨 꿍꿍이인가 경계도 하고 사양하는 체라도 하더니, 술이 목젖을 타고 한번 내려가자 술독으로 슬슬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뻐꾹씨 또한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리란 건 코흘리개도 아는 터. 아무런 목적도 없이 교장 모셔다가 씨암탉 잡고 찍어먹는 것조차 아까워하던 밀주를 독 채로 내줄 그가 아니었다. 교장선생의 코끝이 늦가을 홍시만큼이나 익어갈 무렵 드디어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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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나저나. 교장선생님. 아참, 두말 성님. 우리 종순이년, 공무원 한번 맹글어주쇼.”
“아니, 이 사람아! 공무원 맹글라믄 중고등핵교를 졸업시켜서 셤을 보게 허야지. 워째 나더러…?”
“아 참 성님두. 누가 그걸 물러서 물유? 핵교를 졸업시킬 능력이 되믄 장관이나 국회의원 시키지 뭐한다구 성님헌티 이러겄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소사라도 시켜달라는 거쥬. 종도 치고 청소도 하는 거 있잖유.”
“소사라믄 이미 있자녀. 김씨 말여. 그 사람 하나면 충분헌디 뭔 또 소사여. 그럴만한 예산이 있간디? 그러구 소사가 무신 공무원이여. 그냥 잡부지.”
“아, 나라가 운영하는 핵교에 댕기믄 공무원이지, 공무원은 뭐 이마빡에 레떼루 붙이고 태어났답디여? 저년이 넘덜 클 때 뭘허느라구 저렇게 거시기 똥자루만 혀서… 아직 초조(初潮)도 못 치렀으니 공장도 못 보내구, 갈칠 능력은 더욱 안 되고… 워쩐대유 성님이 좀 챙겨줘야지.”
결론부터 말하면, 그날 교장은 뻐꾹씨에게 졌다. 술 한 독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다. 문제는 다음날 술이 깬 다음이었다. 다른 기억은 무 베듯 싹뚝 잘려나갔는데 종순이를 학교에 취직시켜주겠다고 한 약속은 찰거머리처럼 뇌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취직을 시켜준단 말인가. 교장선생님은 머리를 싸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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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두말 교장의 고민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은, 역시 꾀돌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갈량(趙葛亮) 교감이었다. 교장이 이도 저도 어렵게 된 사연을 털어놓자마자 단칼에 해결책을 내놨다.
“쓰지요 뭐. 청소하고 종치는 아이 하나 있으면 좋지요.”
“누가 그걸 물러서 그려? 돈을 뭘루다 주느냐 말이지.”
“간단합니다. 일 손 덜어준다고 하고 선생님들에게 매달 조금씩 걷는 겁니다. 돌려가며 종치는 것도 귀찮을 테니…. 총대는 제가 멜 테니 교장선생님은 보고만 계십시오.
그렇게 해서 종순이는 신 김치와 장아찌를 싼 ‘벤또’를 들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종순 아버지 뻐꾹씨는 딸이 공무원이 됐다고 자랑하느라 이 동네 저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교사도 학생도 아닌 종순이의 주 업무는 종을 치는 일이었다. 물론 교무실을 청소하고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다. 종순이는 종치는 일이 좋았다. 자신이 종을 쳐야 수업이 시작되고 끝나니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종을 안치면 밤새 수업을 헐지도 물러….’ 혼자 씨익 웃는 날도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종을 안 쳐서 수업이 제대로 끝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교사들이 모두 수업에 들어간 뒤 교무실에 혼자 앉아있던 종순이가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교장이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방에서 나와 보니 그 모양이었다. 그날 종순이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

종소리는 교사나 학생들에게만 소용되는 게 아니었다. 농부들은 들판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로 새참을 먹고 시간을 가늠했다. “우리 애기도 벤또 먹을 시간이구먼.” 종소리는 학교 상황을 그림 그리듯 전해주기도 했다. 애나 어른이나 종순이를 보면 땡순이라고 불렀다. 종을 땡땡 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지만 ‘종순’이나 ‘땡순’이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것도 한몫을 했다. 종순이는 세월이 흘러도 키가 자라지 않았다. 마치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 등장하는 점순이를 보는 것 같았다. 국민학교를 남들보다 두어 살 늦게 들어갔으니 열다섯 살이 꽉 찼건만 기껏해야 3~4학년 정도로 보였다. “저걸 원제 켜서 시집보낸댜.” 종순이 어머니는 걱정을 혹처럼 매달고 다녔다. 열세 살이 되던 해 혹시나 하고, ‘개짐’(여자가 월경을 할 때 헝겊 따위로 기저귀처럼 만들어 차는 것)을 마련해줬건만 몇 년째 장롱 속에서 나올 기색이 없었다. 그런 종순이의 삶을 송두리 째 틀어놓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에는 교감선생님 이하 모든 교사들이 교무실 난로 가에 둘러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유일하게 혼자 떨어져서 먹는 게 종순이었다. 그녀는 종이 매달린 근처의 자기 책상에서 먹었다. 그날도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고 늘 똑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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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처럼 고요한 그 풍경을 살짝 찢어놓은 사람이 바로 나민암(羅珉巖) 선생이었다. 나 선생은 그 학교의 유일한 총각선생이었다. 교대를 졸업하고 바로 부임해왔으니(1981년 이전까지 교육대학은 2년제였다) 미처 여드름자국도 다 지우지 못한 풋내기였다. 대개는 도시로 부임하기를 원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나 선생은 산골학교로 자원했다. 선생님을 하늘과 동급으로 아는 종순이에게는, 총각이든 유부남이든 어려운 존재일 뿐이었다. 모두들 아무 말 없이 도시락 파먹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나 선생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종순씨! 추운데서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
종순이는 설마 그 목소리에 들어있는 ‘종순씨’가 자신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들끼리 얘기려니 하고 크기가 만만찮은 총각김치 하나와 씨름하고 있었다. 모든 선생님의 눈이 나 선생과 종순이 사이를 왕복했다.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 차 있었다. ‘종순이’가 아닌 ‘종순씨’라는 호칭도 그러하거니와 종치는 아이보고 같이 밥을 먹자니…. 어색한 침묵이 교무실을 팽팽하게 채웠다. 그제야 종순이도 사태를 파악했다. 그녀의 볼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는 사실 외에, 그날의 이야기를 더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뒤로도 달라진 건 없었다. 종순이는 다음날도 여전히 자신의 곰보책상에서 밥을 먹었다. 물론 열다섯 소녀의 가슴에 한 남자가 들어앉았다는 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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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순이의 세상은 어느 날 아침 온통 다른 색으로 색칠 돼 있었다. 학교 가는 게 너무 기다려졌다. 전에는 등을 떠미니 다니는 정도였다. 종을 치는 건 좋았지만, 혼자만이 이질적인 존재인 학교 자체에는 그리 정이 가지 않았었다. 가슴은 송장메뚜기 뛰듯 벌떡벌떡 뛰었다. 뺨은 봉숭아 빛이었다. 모든 꽃들은 황금빛 너울을 쓰고 있었고 내에는 오색찬란한 보석이 돌돌돌 흘렀다. 길을 가다 발에 채는 개똥까지 소중했다. 난감한 일도 있었다. 나 선생님을 볼 때가 그랬다.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뱀 만난 개구리처럼 얼어붙고는 했다. 도망치고 싶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런 일들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즈음에는 종순이가 치는 종소리가 유난히 멀리 울려 퍼졌다. 하지만 행복이란 건 늘 그 꼬리를 생각보다 일찍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그날 변소에서 너무 오래 앉아있었던 게, 불행을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변소 뒤 나무그늘에서 남자선생님 둘이 나누는 말이 창을 타고 넘어왔다.
“그렇다고 학기 중에 떠나는 법이 어디 있답니까? 나 선생 그렇게 안 봤는데 영….”
“나 선생 뜻이 아니고 와병 중인 아버지 때문이라잖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빨리 올라오라고 그렇게 성화였다니. 어디 성화뿐인가. 그 ‘빽’ 좋다는 양반이 각계에 손을 써서 나 선생을 불러 올렸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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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길어도 내용은 간단했다. 나 선생이 전근을 간다는 것이었다. 순간 변소의 벽이, 아니 눈앞의 모든 것이 우르르 무너졌다. 세상은 더 이상 황금빛 꽃밭이 아니라 시커먼 개흙으로 뒤덮인 수렁이었다. 그날부터 종순이의 넋은 허공을 떠돌았다. 밤이면 먼 길을 걸어 나 선생님이 밥을 붙여먹고 있는 집 주변을 맴돌았다. 한지 창에 그림자라도 어릿거리면 부둥켜안을 듯 달려가 보지만, 결국 저만치 가 있는 건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닭이 홰를 칠 무렵이 되어서야 이슬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나민암 선생님이 떠나는 날, 종순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프다는 핑계였지만 꼭 핑계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아랫배가 쌀쌀 아프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몇 마디 지청구를 날리던 어른들이 들판으로 나간 뒤 종순이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맨 먼저 자신의 궤짝을 뒤져 오래 전에 보관해두었던 개짐을 꺼냈다. 드디어 쓸 날이 온 것이었다.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처리를 마친 뒤, 궤짝에서 헌옷가지 몇 가지를 꺼내 보자기에 쌌다. 집을 나온 그녀가 조심스레 두리번거린 것도 잠시, 걸음을 재게 놀려 들판을 가로질렀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 다니는 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멀리서 땡땡땡! 종소리가 울렸다. 다른 날보다 5분쯤 늦게 치는 수업시작 종소리였다. 순간, 맨발에 검은 고무신을 신은 작은 소녀가, 선생님의 새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꼭 쥐고 신작로를 달음질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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