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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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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6.22 [사라져가는 것들 114] 제비19
2009. 6. 22. 09:4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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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제비를 찾아 나서는 길에도 설마 하는 마음은 여전히 뒤를 따랐다. 봄‧여름이면 강가의 돌멩이보다 더 흔했던 게 제비 아니었던가. 그들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채근한 건 신문기사 몇 줄이었다. ‘최근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제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비=천연기념물’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등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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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길을 떠날 때만 해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먼저 충청도 평야지대와 해안가를 찾았다. 전에는 제비가 지천이었던 곳이다. 하지만 끝내 한 마리의 제비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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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못 들어가게 틀어막은 제비집

. 그들이 까맣게 앉아있던 전선은 텅 빈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찾아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애써 자위하면서도, 제비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되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서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제비로 인해 생긴 암울한 기분을 떨쳐버리려면 제비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
엔 전라도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쪽을 뒤져볼 생각이었다. 오염이 덜 된 곳이기도 하지만 지기(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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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아래 제비집을 부순 흔적이 여럿 보인다.

氣) 자체가 생명을 끌어안는 곳이다. 마이산이 멀찍이 보이는 진안의 한 동네에서 차를 멈췄다. 역시 하늘도 전깃줄도 텅 비어 있었다. 지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동네에 제비집이 있습니까?”
“제비집? 제비집은커녕 제비 구경한지도 언젠지 모르우.”
노인은 과장스러울 만치 고개를 썰레썰레 저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 곳 저곳을 하루 종일 쏘아 다녔지만 제비의 꼬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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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았던 제비들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예전엔 논에 쟁기질을 하는 날은 제비들의 잔칫날이었다. 기류를 타고 허공을 흐르던 제비들이 어느 순간 화살처럼 쏟아져 내려 흙 속에서 나온 벌레를 물고 솟아오르곤 했다. 여러 마리가 급강하와 급선회를 반복하면서 하늘을 나는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광경을 현실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보물이라도 잃은 듯 힘이 빠졌다.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와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비를 찾는다는 사연을 올렸다. 주마간산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서 정보를 사전에 확보하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제비가 많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릴 수는 없었다.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남해안, 강원도, 충청도… 얼마 전 허탕을 쳤던 전북 진안에서도 제비들이 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중 몇 곳에 부화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며칠 뒤 다른 취재 건으로 속초에 갔다가 우연히 제비를 보았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전깃줄에 까만 새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제비가 틀림없었다. 쫓아나갔을 때는 이미 날아간 뒤였지만 근처 길가에서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제비집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이 다녀서인지 그 뒤로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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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제비를 보았으니, 근처의 농촌을 들러보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통 마을을 찾아갔다. 옛날에 지은 집들이 잘 보존돼 있는 동네였다.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제비가 둥지를 짓기에는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가장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동네에 제비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비집이라…. 있기야 있지요. 그런데 자꾸 똥 싸고 해서 몇 번 부숴버렸더니 요샌 안 보이네….”
허! 집을 부숴버렸다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 제비가 있으면 귀찮은 건 사실이다. 배설물로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애써 지은 집을 부숴버리다니. 그럼 제비는 어디 가서 알을 낳는단 말인가. 다른 집에도 가봤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거칠게 차를 몰고 동네를 나오는 걸로 화풀이를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옛사람들은 제비를 한 식구처럼 여겼다.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을 물고 오면 먼 길을 떠났던 가족이 돌아온 듯 반겼다. 흥부놀부 이야기에서 보듯, 수만리 길을 오가는 제비는 행운을 날라다 주는 메신저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알 낳을 곳 하나 가질 수 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일까? 제비가 집을 지으면 받침대를 해주고 부화하는 과정을 온 가족이 기쁨으로 지켜보던 시절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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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제비를 찾아 떠난 곳은 남도 땅 순천이었다. 순천의 낙안읍성은 시간이 백년 년 쯤 늦게 흐르는 곳이다. 그 곳에서 드디어 ‘제비다운 제비’들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덮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여러 마리의 제비들이 활공하고 있었다. 오래 묵은 가슴의 체기가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원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댁에 제비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럿 있단다. 따라가 봤더니, 이럴 수가…. 제비집마다 과자봉지며 라면봉지로 틀어막아놓았다. 왜 저리 해놨냐고 물으니 똥 치우는 게 귀찮아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다 지어놓은 집을 부숴버린 흔적도 여럿 보였다. 그 사이에도 집을 강탈당한 제비들이 서러운 몸짓으로 처마 밑을 맴돌고 있었다. 화낼 힘도 없었다. 말없이 그 집을 나와 조금 걷다가 제비가 드나드는 집을 또 발견했다. 인기척을 하고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눈짓으로 반겼다. 처마에 멀쩡한 제비집이 몇 개 보였다. 아래에는 판자로 받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할머니, 제비 집 사진 좀 찍어도 되겠어요?”
“그려시구랴.”
“할머니는 제비 똥 귀찮지 않으세요? 다른 집들은 지저분해진다고 부수던데.”
“늙은이가 제비집 부술 힘이 있나…?”
농담을 하셔도 참…. 부술 힘이 없는 분이 받침대 대줄 힘은 있었을까. 피를 철철 흘릴 만큼 상처가 났던 가슴을 적잖게 치료 받고 그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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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돌아와도 씁쓸함은 가시지 않았다. 물론 제비가 적어진 이유가 집을 막거나 부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농약과 살충제의 과다 사용으로 주식인 벌레들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지을만한 공간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파트 벽에 제비집을 지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전문가들은 제비들이 겨울을 나는 강남, 즉 동남아시아지역의 환경에서도 원인을 찾는다. 개발열풍으로 서식지 감소와 생태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가까운 선배에게 제비마저 사라지는 각박한 세상에 대해서 투정을 부렸다.
“어찌 보면 미련한 짐승들이지요. 그렇게 심술스러운 인간이 뭐 좋다고 꼭 처마 밑에 집을 짓는단 말입니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릴세. 알다시피 제비집은 논흙과 지푸라기가 주재료 아닌가. 들판이나 나무에다 집을 지으면 집이 남아나겠는가? 비가 오면 다 녹아버리지.”
“그건 그렇다고 쳐도…. 자꾸 부수면 뒤 처마에다 지으면 될 텐데 뭔 고집으로 꼭 사람들이 드나드는 앞에다 집을 짓느냐는 말입니다.”
“그것도 이유가 있다네. 옛날 초가집에는 구렁이가 같이 살지 않았는가. 업이라고 하는 거 말이야. 그 구렁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제비 알이고 새끼니 참사를 피하려면….”
입으로만 안타까우니 뭐니 했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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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에 홍천의 한 농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제비새끼들이 제법 자랐다는 것이었다. 홍천군 서면 개야리. 험하지 않은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마을. 제비 아니라 봉황이라도 깃들어 살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온한 곳이었다. 연락해준 분의 집을 찾았을 땐 아이들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학생이 다섯 뿐인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작은 아이는 시종 곁을 떠나지 않고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흔하디흔한 제비나 찍고 다니는 사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새끼들은 털이 재법 자라 있었고 어미는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고 있었다. 노란 주둥이를 벌리고 먹이를 채근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했다. 제비를 찾는 긴 여정은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구멍 뚫린 가슴은 아직 채우지 못하고 있다. 사전에서 제비를 찾아보면 ‘한국에 흔한 여름새’라고 나온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새’가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도 제비는 꽤 많이 있다. 어느 노인은 그 흔한 제비를 찾아다니는 사내를 이상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인심 역시 각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사천의 한 횟집에 제비가 금반지를 물어다 줬다는 이야기도 머지않아 뉴스가 아닌 전설이 될 것이다. 그 집에는 부수지 않은 둥지가 무려 15개였다는 사실마저도….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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