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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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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0 [사라져가는 것들 48] 사립문10
2008. 3. 10. 17:01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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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을 어디 문이라 할 수 있던가요?
그저 “이 안에 사람이 살고 있소” 표시나 하겠다고 세워둔 것이었지요.
그러니 애당초 타인을 경계하겠다거나 도둑이라도 막아보겠다는 건 꿈도 꾸지 않고 만든 게 사립문입니다.
도둑 구경하기 힘들다는 제주도의 정주석처럼, 집에 사람이 있고 없고 표시나 해주면 제 할 일 다 하는 것이지요.
사립문이 얼마나 엉성한지, 지나던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그 틈으로 식구들이 마루에서 밥 먹는 것, 마당에서 괴춤 내리고 오줌 누는 것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만든 지 한 두 해 지나면 벌어진 틈새로 중개(中犬) 한 마리쯤은 거뜬하게 드나들 수 있지요.
그런 마당에 무슨 경계고 자시고 할 게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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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은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베어다 대충 엮어서 세워놓은 문을 말합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남의집살이나 드난살이 하다가 독립이라고 해서 오두막을 지어놓고 보니, “내 집이다”하고 폼 한번 잡고 싶더란 말입니다.
하지만 비나 가릴 정도로 엉성하게 지은 집을 가지고 폼은 무슨 폼입니까.
담이라고 제대로 있었겠습니까.
내에서 호박돌이라도 져다 쌓아놓으면 최고의 담이었지만 그마저 없는 집도 많았지요.
그런 마당에 솟을대문이 어울리겠습니까, 쇠대문이라도 만들어 걸겠습니까.
그래도 그냥 지나기는 섭섭한지라 잔 나무를 베어다가 잎사귀 훑어 얽어놓은 것이 사립문입니다.
가끔 싸리문하고 혼동을 하기도 하는데, 싸리문은 말 그대로 싸리를 엮어서 만든 사립문의 일종지요.
하기야 사립문이든 싸리문이든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사촌이든 육촌이든 친척뻘이겠지요.
누구는 공평하라고, 그 둘을 합쳐서 싸립문으로 부르기도 하는 걸요.

사립문을 보면 기우뚱하거나 비뚜름한 게 문틀하고 조금씩 어긋나 있습니다.
문틀 자체가 정밀하게 짜서 맞춘 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통나무를 양쪽에 세워놓고 문짝을 매달아놓은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가끔은 워낭(말이나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을 장식 삼아 달아놓기도 하는데, 그 문을 어디 사람만 드나들던가요.
지나가던 바람도 심심할 때마다 들러서 딸랑딸랑 흔들어 놓고 도망가지요.
그래봐야 문 열고 뛰어나오는 사람도 없더랍니다.
사립문은 그 집 사람을 닮아 배타적이지 않은 건 물론 겸손했습니다.
애당초 잠금장치 따위는 달 생각도 안했지요.
끼익끼익 소리나 지르는 나무문이나 철문과 달라, 밀면 못 이기는 척 뒤로 물러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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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있을 땐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사립문이, 없어지고 나니까 서럽도록 그립더란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이 내 고향 같지 않습니다.
초가지붕과 돌담과 사립문이 사라지고 함석지붕과 시멘트담과 쇠대문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그 고향 말입니다.
열일곱 살에 집을 나가 스무 살에 파마머리로 돌아왔던, 돌아온 지 넉 달 만에 아비 모를 아기를 낳았던 첫사랑 영자처럼, 본질은 그대로일 텐데도 영 다가설 수 없더란 것이지요.
사립문.
지금이라도 굽은 등과 흰머리가 설운 내 할미가 지긋이 밀고 나올 것만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면 세월이란 지우개는 할미도 사립문도 깨끗이 지워버린 뒤입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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