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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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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3 [사라져가는 것들 28] 그네3
2007. 10. 3. 18:52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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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가 아주 사라지기야 했겠습니까.
지금도 유치원이나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을 태운 채 삐그덕삐그덕 흔들리는 그네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왜 이 억지냐고요?
솔직히 말해서 그 차가운 금속성 물체에 앉아있으면 그네 맛이 나던가요?
그네라면 성춘향이가 이 도령의 눈에 콩껍질을 확 덮어버린, 남원 광한루 어드메쯤 큰 나무에 매달렸던 동아줄 든든한 그네 정도는 돼야지요.
뭐 거기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 않더라도, 순이누나가 바람 휭휭 일으키며 신나게 구르던, 동네 어귀 정자나무의 그네 정도는 돼야 그럴듯해 보이지요.
이몽룡이 아니더라도, 그네를 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다고요.
흰 구름 한 아름 안고 파란하늘로 풍덩 빠져버리면 와! 와! 탄성을 지르다가도, 어느 순간엔 무섬증이 일어 한숨을 포옥~ 포옥~ 내쉬던 게 그네 아니었던가요.

어느 해 가을날, 아버지가 멀리 떠나기 전날이었을 겁니다.
이미 조락의 길에 들어선 햇볕은 그날 따라 유난히 눈부셨습니다.
아버지가 바깥마당 감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어주셨지요.
춘향이가 탔다는 그네는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고요, 순이누나가 타던 그네보다도 훨씬 작은 그런 그네였습니다.
그래도 짱짱하게 매어진 그네는 정말 예뻤습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솜씨꾼이었거든요.
나무를 손으로 깎아 매달아 놓은 발판도 앙증맞았지요.
그 날 이후, 내내 그네를 타고 놀았습니다.
틈만 나면 그네에 앉아있었지요.
어느 땐, 밥 먹으라고 불러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누가 밀어주는 사람이 있거나 특별히 재미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요.
순이누나처럼 하늘까지 날아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건 더더욱 아닙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겨울 그리고 봄….
감나무에 새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새 열매가 달릴 만큼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네에 앉아있는 시간은 자꾸 길어져갔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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