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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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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에 해당되는 글 1

  1. 2007.12.12 [사라져가는 것들 37] 간이역8
2007. 12. 12. 16:23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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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의 시간들은 박제된 채 나무마다 걸려있다. 구둔이라는 조금 투박한 이름 탓일까, 아니면 겨울아침이라 그럴까. 모든 게 느리게 움직인다. 마을풍경은,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어도 그림을 보는 듯 변화가 없다. 추수를 마친 들녘은 도둑맞은 곳간처럼 텅 비어있다. 그 한가운데를 장난기 가득한 바람이 킬킬거리며 지나간다. 아무리 둘러봐도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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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있을 만한 동네는 아니다. 충청도나 강원도 길에서 눈에 익었던 그만그만한 시골마을일 뿐이다. 설마 다른 길을 가르쳐주었을까. 좁은 언덕길을 자꾸만 올라가니, 아! 보인다. 세월을 이고 진 간이역 하나가 달력 속의 그림처럼 덩그러니 서 있다. 어쩌면 기차역보다는 교회라도 들어앉아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를 울리는 게 더 어울릴 듯 한 위치다. 아침햇살이 부챗살 같은 손을 내밀어 역사(驛舍)를 쓰다듬고 있다. 머리에 잔설을 이고 있는 향나무는 역사와 함께 유물인 듯 늙어버렸다. 내내 가슴을 옥죄던 매듭이 한없이 느슨해진다. 무엇을 얻고자 그리 허덕거리며 살아온 건지. 천천히 역 앞마당을 걷는다. 역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간을 최대한 유예하기로 한다. 아끼고 싶은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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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역을 찾은 건, 좀 느닷없이 이뤄진 일이었다. 순례기라도 쓸 만큼 간이역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간이역들을 찾아다니며 작은 돌, 풀 한 포기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의 정성에 비하면 기차니 역이니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 순전히 마음의 짐 때문이었다. '장항선 개량사업'에 의해 간이역 몇 개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은 뒤 턱없는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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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에 시달렸다. 장항선은 고향과 연결된 탯줄 같은 존재다. 아직도 마음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로 남아있다. 성장기에 새겨진 간이역들의 풍경은 삭막한 도시생활에도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간이역은 그 자체가 그림이고 음악이고 시였다. 키 작은 소나무가 흰눈을 쓰고 서있는 초겨울 풍경, 역에서 출발해 끝간데 없이 달음질치던 들길, 팻말 하나 벤치 두개를 달랑 안고있는 플랫폼. 그 풍경과 항상 겹쳐 떠오르는 하얀 교복의 소녀….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그 간이역들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면서도 이상스러울 만큼 발길을 할 수 없었다. 마치 무엇인가가 자꾸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중앙선의 구둔역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따지고 보면 '선장역'이든 구둔역이든 다를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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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뒤편으로 돌아가 본다. 이 쪽과 저 쪽을 구분하는 담은 없다.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어서 오라고 난리다. 애당초 경계라는 걸 배운 눈치가 아니다.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은행잎처럼 노랗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맞으며 강아지와 놀고 있는데 역사에서 사람이 나온다. 한 사람이 근무하는 역이니 역장이실 테다. 꽤 오랫동안 가슴을 적시던 일본영화 '철도원'의 역장이 떠오른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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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속의 철도원보다는 젊지만, 쓸쓸한 역을 홀로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성을 본다. 목례로 인사를 나눈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여기까지… 대합실로 들어가서 난로 켜놓고 몸이나 녹이세요." 이미 객과 주인의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알아챈다. 추운 사람은 누구나 들어가 난로를 펴고 몸을 녹이는…. 기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숨 한번 토해 놓을 새 없이 내쳐 달린다. 하루 상하행 세 번씩 외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 역. '그냥 지나가는 기차' 중 하나를 본 셈이다. 그래도 박제된 짐승의 핏줄에 피가 도는 걸 본 듯 반갑다. 철망 안의 토끼 몇 마리, 그리고 괜스레 닭들을 겁박하고 있는 오리(?)와 잠시 눈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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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아홉 개의 진지가 구축되었다고 해서 구둔(九屯)이라 불렀다던가.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일신리이다. 구둔역은 1940년5월1일 보통역으로 문을 열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법 북적거리는 역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약초와 산나물을 팔러 서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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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장을 나다니기도 했고, 양평장날이면 장꾼들로 넘쳤다는 것이다. 또 통학하는 학생들도 꽤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차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속속 등장하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역은 나날이 쓸쓸해졌을 것이다. 결국 1996년1월1일 '승차권 차내취급역'으로 전환됐다. 즉, 차표를 팔지 않고 열차내에서 표를 사는 간이역이 된 것이다. 지금은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상/하행 세 번씩 선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다가 벽에 붙어 있는 팻말을 발견한다. '등록문화재 제 296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그나마 다행이다. 문화재가 되었다니 최소한 헐릴 일은 없을 것이다. 2010년 중앙선 복선화 공사가 끝나면 통과열차도 사라진다. 따라서 지금은 한국철도공사 소속이지만 2010년 이후에는 문화재청으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결국 기차역은 사라지고 건물만 남아 추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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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들어서니 커다란 난로부터 눈에 들어온다. 금붕어들이 헤엄치는 어항은 좀 이질적으로 보인다. 오른쪽 벽에는 열차시각표와 운임표가 붙어있다. 역시 시각표에는 상행, 하행이 딱 세 줄씩이다. 청량리, 청량리, 청량리…. 안동, 강릉, 제천. 매표구는 막혀있다. '구둔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대신 붙어있다. 많게는 여남은 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의자에 방석 몇 개가 곱게 놓여있다. 누군가가 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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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금방 기차를 타고 떠난 것처럼 온기가 느껴진다. 무언가 미진한 마음에 자꾸 대합실을 둘러본다. 따지고 보면 새삼 아파 할 건 없다. 어차피 세상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방향으로 달려가게 마련이다. 새로운 철로가 놓이고 그 위를 빠른 기차가 달리면 훨씬 편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빨라지는 만큼 놓치는 것도 많아진다는 걸 너무 쉽게 잊는 건 아닐까. 느린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하나하나 가슴에 담던 풍경들, 그리고 간이역에서 정을 나누던 따뜻한 모습은 이제 어디서 만나야할지. 구둔역. 몇 년 뒤면 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지만, 향나무·은행나무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늙은 이야기꾼처럼 쉬지 않고 들려줄 것이다. 긴 세월 이 곳에 서서 듣고 보았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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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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