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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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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1 [사라져가는 것들 51] 장제사(裝蹄師)
2008. 3. 31. 18:5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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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한 기억일 뿐이다. 그래서 직접 본 것인지 간접경험에 의해 어느 순간 뇌리에 틈입한 것인지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대장간 옆 자그마한 공터에는 튼튼한 나무말뚝이 몇 개 박혀 있었다. 평소에는 텅 비어 있어 바람이나 놀다 가지만, 가끔 그 말뚝의 용도를 확인할 기회가 왔다. 소를 묶어놓고 굽에 U자 모양의 쇠붙이를 붙이는 작업을 그 곳에서 했다. 쟁기질을 하는 일소는 아니었고, ‘구루마’라 부르던 우마차를 끄는 소가 대상이었다. 당시 큰 짐은 대부분 우마차로 날랐고, 우마차를 끌고 먼 길을 다니는 소의 굽에는 어김없이 쇠붙이가 붙어있었다. 어른들은 그 쇠붙이를 ‘징’이라 불렀던 것 같다. 그것의 진짜 이름이 편자라는 건 훗날에 알았다.(주) 아마 ‘개발에 편자’ 따위의 속담을 배울 무렵이었을 것이다. 기억에 특별한 오류가 없다면, 몇 번 편자 바꾸는 모습을 구경을 한 적이 있다. 워낙 어릴 적이라 구체적인 과정은 흐릿하지만, 편자에 못을 박던 걸 본 기억은 뚜렷하다. “얼마나 아플까…동물에게 왜 저런 짓을 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게 전부였다. ‘편자의 존재’ 정도만 기억하고 살았을 뿐이다. 앨범을 들여다보듯, 어릴 적 추억을 펼칠 때마다 가끔 그 때의 광경이 고개를 내밀었고, 이제는 사라져서 다시는 볼 수 없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주)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징은 ‘신의 가죽 창이나 말굽·쇠굽 따위에 박는, 대가리가 크고 넓으며 길이가 짧은 쇠못’을 편자는 ‘말굽에 대어 붙이는 U자 모양의 쇳조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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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편자는 아주 사라진 게 아니었다. 편자와 다시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생김으로써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배기자들의 취재현장에 동행할 일이 있었다. 그들의 취재처가 바로 말의 편자를 갈아주는 곳, 과천 서울경마공원 장제소였다. 살면서 경마장 한번 가본 적 없으니, 말과 편자를 연관 지어 생각할 기회조차 없었다. 수십 년 만에 보는 편자였다. 편자를 다른 말로 하면 ‘말 신발’이다. 편자를 달아주는 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장제(裝蹄)’다. 꾸밀 장(裝)자와 굽 제(蹄)자를 쓴다. 그곳에서 베테랑 장제사 신상경(45)씨를 만났다. 그는 25년째 말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를 통해 비로소 ‘발굽을 깎고 뜨겁게 달궈진 쇠를 대고 못을 치는 것’이 동물학대가 아니라 동물보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십 년 만의 시각교정이었다. “말의 발굽에는 신경이 없어서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사람이 손톱이나 발톱을 깎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오히려 굽을 다듬지 않거나 편자를 대주지 않으면 말이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지요.” 승용마든 경주마든 모든 말은 발굽의 손상을 막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발굽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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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는 발굽의 마모 방지 외에도 질병 예방과 교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순서는 우선 발굽 상태를 검사하고 기존의 편자를 떼어 낸 다음 발굽이 자란 부분을 깎아내고 줄로 형태를 고른다. 편자를 발굽의 모양에 맞도록 수정하여 붙인 뒤 고정용 못을 박으면 끝이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걸리는 작업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장제사에게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말은 400kg이 넘는 거구지만 겁도 많고 신경이 무척 예민하다. “말이 움찔하는 순간 비껴 맞아도 골절상입니다. 장제사들 중에 흉터 없는 사람이 없어요. 워낙 위험한 일이다보니 경력 5년이 안 되면 혼자서 작업을 못하게 합니다.” 신 장제사는 일을 하는 중에도 장제과정마다 상세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이 일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시끄럽지 먼지나지 땀나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눈은 말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만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말에 대한 애착 없이는 어림도 없지요.” 교육생을 훈련시키는 도중에 자질이 없어 보이면 “이 길은 네 길이 아니다.”라고 바로 커트한다고 한다. 그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장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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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사가 갖춰야할 최고의 미덕은 성실이다. 물론 눈썰미와 타고난 솜씨는 필수요소다. 교육을 마치고 장제사가 되었다고 해도 실력이 떨어지면 의뢰가 안 들어온다. 말에게 편자는 생명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제사로 입문해서 3~4년이 지나면 개인별 능력차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베테랑 장제사들은 말과 교감을 나눈다. 피부만 봐도 어떤 상태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신 장제사는 말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말이란 동물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잘 보세요. 눈에 쌍꺼풀도 있고 아주 선하게 생겼거든요. 말과 교감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무나 못하는 게 장제사인가 보다. 국내에 장제사는 약 50명 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15명 정도가 서울경마공원 소속인데 몇 명은 ‘개업 장제사’로 독립해서 일한다. 그밖에는 지방의 소규모 승마장 소속으로 일하기도 한다. 그가 장제사가 된 계기는 약간 드라마틱하다. 원래는 기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체중이 문제였다. 기수는 50㎏ 이하여야 하는데 그 당시 60㎏ 가까이 됐단다. 그래서 포기하려는 참이었는데 한 마필관리자의 권유를 받고 장제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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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어선 길이지만, 신 장제사의 눈은 살아온 날에 대한 보람으로 빛난다.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이 장제사의 존재를 알기나 할까. 하지만 장제사가 없으면 경마 자체가 이뤄질 수 없다. 어디 경마뿐이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 사회가 그나마 지탱되지 않던가.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장제학교를 세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다. 최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1급 장제사가 되려면 최소 17년이 걸린다. 그리고 그만큼 되기 위한 과정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 어려운 길을 가려는 젊은이들이 자꾸 줄어들고 있는 것도 그에겐 걱정거리다. 어렵게 교육생을 뽑아놓으면 고된 과정을 못 견디고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는 장제학교를 세워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아무려나 이 나라에서 말이 영원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제사 역시 말이 있는 한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동서남북으로 파발마가 달리고 우마차가 짐을 싣고 고갯길을 넘던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편자 박는 사람을 생활주변에서 보는 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숨어있는 장인(匠人), 장제사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전하는 건 기쁜 일이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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