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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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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에 해당되는 글 1

  1. 2010.04.19 [사라져가는 것들 136] 해녀5
2010. 4. 19. 09:39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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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라는 제목을 써놓고 꽤 오랫동안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공황상태라도 빠진 듯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버린 때문이다. 가슴에서는 쏴아 쏴아~ 파도가 끊이질 않고, 휘이유~ 숨비소리가 이명처럼 귓전을 두드린다.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껏 제주도 몇 번 다녀온 주제에 무엇을 안다고…. 껍질만 핥아보고 수박의 맛을 안다고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건 아닐까. 더구나 해녀들에 관한 기록은 넘칠 정도로 많아, 내가 덧댈 게 있기나 할지. 천형처럼, 아니 축복처럼 바다에 작은 몸 기대어 평생을 사는 해녀들. 살아가기 위해 6~7kg의 납덩어리를 허리에 차고 바다 깊이 잠수하고, 호흡이 멎기 직전에 그 납덩어리를 이끌고 수면으로 박차 올라야하는 연명의 고통. 그녀들의 궤적은 문자 몇 줄이나 사진 몇 장으로 기록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막막하다. 하지만 써야한다. 내가 본 것만큼이라도 기록해야한다. 다리든 머리든 코든 허리든, 각자 만져서 그려낸 것을 합하면 코끼리 하나가 완성되겠지. 나도 장님 중 하나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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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우뭇개 해안에서 만난 오순덕(71세ㆍ가명) 할머니는 반(半)쯤 은퇴한 해녀다. ‘반’이라는 애매한 단어에 ‘쯤’까지 덧붙인 까닭은, 날마다 물에 들어가긴 하지만 본격적인 물질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할머니는 여전히 자신을 해녀라고 믿는다. 성함을 묻자 망설임 없이 밝혔지만 피해드리는 게 예의일 듯싶어 가명을 쓴다.
“나? 하군은 무슨 하군. 나는 똥군이요. 하하”
상ㆍ중ㆍ하군 중에 하군쯤에 속하시느냐는 속 쓰린 질문에, 오 할머니는 거침없이 자신을 똥군이라 이르며 껄껄 웃는다. 하지만 웃음 속 빈자리에서 ‘화려했던’ 날들에 대한 향수를 캐내고 만다. 병이 깊어 이젠 더 이상 깊은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할머니는 ‘해녀의 집’ 소속으로 관광객을 위한 ‘공연’을 한다. 얕은 바다에서 하루 두 번 씩 물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복ㆍ소라ㆍ멍게를 관광객에게 파는 게 일이다. 할머니가 더 이상 먼 바다에서 물질을 못하는 건 나이 탓만은 아니다. 제주도에서, 그깟(?) 일흔 한 살 정도는 한창 나이다. 90세 현역 해녀도 있는 마당이니. 제주 여자들은 물속에서 숨만 쉴 수 있다면 일흔이든 여든이든 고무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간다. 나이가 아니라 오로지 건강과 체력이 물질을 허락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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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덕 할머니는 인터뷰 중에도 연신 터져 나오는 기침을 주체하지 못했다. 금방 물에서 나온 터라 숨이 가쁜 탓도 있지만, 평생 물질로 얻은 병이 꽤 깊은 것 같았다. 안타까운 눈빛을 읽었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오늘따라 약을 안 가져와서 그래. 해녀로 살다보니 남은 건 병 뿐이여. 심장이 안 좋아서 깊은 델 못 들어가. 당뇨도 있고…. 사리돈을 하루 두 번은 먹어야…. 작년만 훨씬 못혀. 아마 내년이면 그나마 똥군도 못할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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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기침은 각혈 같은 한숨을 동반한다. 바다 깊은 곳에서 전복이니 소라니 따 올리던 시절이 다시 한 번 파노라마처럼 노인의 눈동자를 달음질친다. 물위로 솟구치며 내뱉는 숨비소리가 금세 입술 사이를 비집을 듯하다.
“열여덟 살에 시작했어. 혼인하기 전이었지. 처녀 때 시작해야지, 시집가서는 못해. 왜 하게 되었냐구? 그땐 당연한 줄 알았어. 다들 그랬지. 뭐, 하고 싶어서 했겠나? 배운 것도 없고 먹고살려니까….”
열여덟 살에 시작해서 일흔 하나면 53년을 물속에서 살았다. 직장생활 30년도 돌아보면 까마득하다고들 하는데, 물질 50년이라….
“그래도 이거 해서 아들 3형제 다 공부시키고, 먹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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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허려는 사람이 없어. 누가 이 힘든 일을 허나. 옛날에는 물질 안 하면 구박을 받고, 또 그거 아니면 살 길이 없었지만 지금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어. 젊은 사람들은 물질 같은 거 쳐다도 안 봐.”
새로 물질하려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물음에 고개부터 내젓는다. 하긴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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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든 일을 배우려고 할 것인가. 젊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해녀학교도 만들고 장려도 한다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물론 아직도 해녀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제주도의 해안을 따라 돌다보면 곳곳에서 ‘어촌계’나 ‘해녀의 집’을 볼 수 있다. 심각한 건 숫자가 아니라 고령화다. 2009년 말 현재 제주 해녀는 5095명이었다. 이는 2005년에 비해서 450명(8.1%)이나 줄어든 숫자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연령대로 볼 때 감소 그래프는 급격히 가팔라질 것이다. 최연소 해녀는 대정읍 가파도에서 물질하는 33세의 김 모 씨다. 하지만 30~39세의 해녀는 고작 7명(0.1%)에 불과하다. 연령대로 보면 40~49세 206명(4.0%), 50~59세 1043명(20.5%), 60~69세 1818명(35.7%), 70세 이상 2021명(39.7%)이다. 결국 10명 중 7명이 60대를 넘긴 노인이란 뜻이다. 조천읍 신촌리의 한 모 할머니는 90세에 물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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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때? 물질 할 때보다 고무옷을 입고 벗고 할 때가 더 힘들어. 뭣보다 물질을 마치고 나올 때…. 힘은 부치는데, 그득 찬 망사리(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망태기)를 끌고 나올라믄…. 그리 무섭든 안 혀. 아프지만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두….”
그들은 바다가 있고, 그 바다가 키워내는 소라ㆍ전복ㆍ성게가 있기에 숙명처럼 물에 들어간다. 하지만 물질은 매번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데도 삶을 마치는 날까지 그 곳을 잊지 못한다. 세포마다 뼈마디마다 각인됐기 때문일까. 고통도 몸 안에서 화석처럼 굳어지면 그리움이 되는 걸까. 해녀들이 바다에 한번 나가면 적어도 4시간 이상 물질을 한다. 자맥질 숫자로 보면 300번 정도라고 한다. 한번 잠수하면 물속에서 2분 정도를 견디는데, 그 정도면 보통 소라 5~6개를 건져 나올 시간이다. 바다와 인간의 몸은 그 이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조금만, 몇 개만 더, 욕심을 부리다가 아예 숨을 놓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래서 늘 허락 받은 만큼만 손에 쥐어야한다. 상군이 그렇게 하루 물질을 하면 15만~20만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상당한 액수 같아도 따져보면 그리 실속 있는 벌이는 아니다. 물때와 날씨를 감안하면 한 달에 바다에 들어가는 날은 보름을 넘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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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라고 해녀들이 쉬는 건 아니다. 밭에서 김을 매거나, 남의 집 삯일을 하기도 한다. 바다를 나서는 순간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쉴 틈 없는 그녀들을 일러 ‘제주해녀에게는 밭이 두 개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하나의 밭이 바다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지금은 남자들이 도와주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해녀들이 물질을 마칠 무렵이 되면 지게를 지고 마중 나온 남정네들이 해안가에 서성이는 풍경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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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어렵지 않게 됐다. 옛날에는 어림도 없던 일이라고 한다. 오순덕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 살아 계실 때 많이 도와주셨어요?” 하고 여쭸더니, “그럼 도와줬으니 이만큼 살았지.” 대답하면서도 뒷말은 흐린다. 하지만 제주의 여자들에게, 바다는 외면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여자로 태어나면 7∼8세 때부터 헤엄을 배우기 시작하여 12∼13세가 되면 물려받은 두렁박(테왁)을 들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연습을 했다. 15∼16세에는 본격적인 물질을 배워서 해녀가 되고, 17∼18세부터는 짭짤한 한 몫을 한다. 이때부터 40세 전후까지가 가장 왕성하게 물질을 하는 시기이다. 그동안에 혼인도 하고 물질과 밭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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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해녀를 잠수(潛嫂), 혹은 잠녀라고 불렀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일부지역만 있다고 한다. 그 기원은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든 만큼 멀다. 인류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한, 까마득한 옛날에 시작됐을 것이다. 조선조에는 진상품에 시달리기도 하고 탐관오리들에게 수탈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진상의 압박에서 벗어나면서 물질이 활발해졌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제주 해녀들은 육지는 물론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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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해녀에게도 오랜 세월을 따라 만들어진 계급이 있다. 상군(대상군)ㆍ중군ㆍ하군으로 분류되는 계급은 작업능력을 기준으로 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상군이 중군으로, 중군이 하군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상군은 보통 배를 타고 나가 10m정도 깊은 바다에서 자맥질을 한다. 당연히 작업강도도 높고 수확도 많다. 중군은 6~7m에서 작업하는 60~70대들이다. 하군은 3~4m 얕은 바다를 차지한 70~80대 노인들이다. 마음은 늘 바다 깊은 곳에 머물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뭍 쪽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평생 몸을 혹사하는 해녀들에게는 직업병이 있다. 잠수병이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바다 속에서 자맥질을 하면 수압으로 질소가 몸에 쌓이고, 이 때문에 머리와 온 몸에 통증이 지속된다. 그래서 대부분은 오순덕 할머니처럼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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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들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여자’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들도 고무옷을 입고 물에만 들어가면 돌고래처럼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그리고 다시 뭍으로 나오는 순간 늙고 병든 노인이 된다. 온몸의 진을 내어준 대가를 자식들을 가르치는데 아낌없이 쓰는 여인들. 자식들이 자란 뒤에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거나 부담 되지 않으려고 물질을 멈추지 못하는 어머니들. 그녀들이 습관처럼 털어 넣는 진통제는 약이 아니라 아픔의 덩어리일 것이다. 해녀의 집에서 그냥 나오기 미안해 급하게 소주 몇 잔을 마신 뒤, 몇 번이나 망설이다 부엌으로 들어갔다. 인터뷰를 마칠 새도 없이 급하게 불려 들어간 오순덕 할머니는 고무옷을 벗지도 못한 채 손님들이 주문한 전복죽을 끓이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덥석 잡은 손에는 등걸처럼 마디진 세월과 거친 파도가 뒤채고 있었다.
“할머니, 건강 잘 챙기세요. 이제 그만 댁에서 쉬셔야지요. 이렇게 편찮으시면서 어떻게 맨날….”
“이놈의 약값 땜에 쉴 수가 있나. 한 푼이라도 벌어야….”
소금기 묻은 미소로 버무려 감춘 서러움이, 달궈진 인두처럼 가슴을 지져대는 바람에 서둘러 등을 보이고 말았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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