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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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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6 [사라져가는 것들 27] 풍금4
2007. 9. 26. 18:01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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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금 선생님은 음악시간만 되면 늘 긴장했다.
혼자 부르는 노래라면 신고산타령이라도 두렵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풍금에 서툴다는 것이었다.
풍금을 잘 못 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국민학교 교과과정에 국어나 사회나 체육만 있었으면 좋으련만, 가난한 종갓집 제사 돌아오듯 음악시간은 꼬박꼬박 돌아왔다.
음악시간이 되기 전에 두어 번 화장실을 다녀와도 풍금 앞에만 앉으면 아랫배가 무지근하고 등에 땀이 났다.
하지만 도망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 따라 불러라 잉! 시이~작!"
'해님이 방긋 웃는 이른 아침에/나팔꽃 아가씨 나팔 불어요//잠꾸러기 그만자고 일어나라고/나팔꽃이 또또따따 나팔 불어요'
별 문제없이 잘 나가는 듯 싶었다.
이대로~!!!!
허억!
황만금 선생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나팔'이 문제였다.
'나팔 불어요~' 하고 끝내야하는데 나팔에서 음이 턱, 하고 걸리더니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었다.
나팔, 나팔, 나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대신 킥킥 웃었다.

황만금 선생님에게 노래를 배운 아이들은 '나팔불어요'라는 노래를 부를 땐, 항상 '나팔꽃이 또또따따 나팔, 나팔, 나팔 불어요' 라고 불렀다.

황만금 선생님은 속절없이 늙어갔고, 학교마다 풍금은 사라졌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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