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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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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에 해당되는 글 1

  1. 2011.08.08 [이야기가 있는 사진 11] 인연2
2011. 8. 8. 08:32 이야기가 있는 사진

 

위 사진들은 어느 여름날,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찍은 것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물안개가 물씬 피어오르고 강 가운데에는 섬도 보이고.
모처럼 만나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보면서 왜 똑 같은 걸 네 장씩이나 올려놨지?” 궁금해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언뜻 보면 정말 똑 같은 사진을 아무 생각 없이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눈치가 어지간한 분은 벌써 저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을 겁니다.
, 그렇습니다.
사람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오른쪽에서 걸어오는 두 명의 여인과 왼쪽에서 걸어오는 노인.
여인들은 우산을 접은 채 들었고 노인은 우산을 썼습니다. 
맨 위의 사진을 보면 양쪽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때쯤은 비록 한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지만 각각의 풍경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두 번째 사진을 볼까요
?
풍경이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런데 양쪽 사람들 사이가 아까보다는 훨씬 가까워져서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듭니다.
세 번째 사진, 드디어 그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인들과 할머니가 길에서 만나 스쳐 지나가게 되지요
그 순간만큼은 거의 겹친 듯 보입니다.
여기서,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궁금한 게 하나 생깁니다.
할머니와 저 여인들은 지나는 순간 옷자락을 스쳤거나, 혹은 서로를 인식했을까요?
저렇게 만나는 것도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저렇게 잠깐 스치는 건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는 인연일까요?
아무도 없이 텅빈 네 번째 사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연이란 말이 가지는 뜻은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도 과거의 인과 관계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 인연이라는 결과가 생긴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행위나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겠지요.
윤회를 중시하는 불가(佛家)에서는 긴 시간을 표현할 때 이란 말을 씁니다.
겁은 천년에 한번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바위 위를 거닐 때 나풀거리는 옷자락에 스친 바위가 다 닳아지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인연론은 시작됩니다.
옷깃을 한번 스치고 지난 사람과는 1겁의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 바위 하나가 다 닳아질 정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하루라도 여행을 같이 한 사람은 5백겁의 인연이, 한 나라에 같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1천겁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부부로 만난 다는 것은 7천겁,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5천겁의 인연이 쌓여야 한다고 하지요.

겁이란 말을 꺼내드는 순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은 소멸되고 인연의 무게만 남게 됩니다.
옷깃을 스치는 관계를 넘어, 친구나 직장 동료나 연인이, 그리고 가족이 된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인연을 전제로 하는지.
우리는 늘 마주치는 가까운 사람들을 당연한 존재로 여기고 소중함을 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와 다투고 부모에게 짜증을 부리고 친구를 원망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수천 겁동안 맺어지고 또 맺어진 인연에 대해 짜증내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시간이 얼마나 찰나인지 헤아려본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끼고 보듬고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가 하늘에서 받아온 시간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 강 풍경을 찍다가 우연히 뷰파인더 속으로 걸어들어온 사람들을 보며 불현 듯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들입니다.

, 처음에 던졌던 궁금증을 풀어야 할 시간인가요?
저렇게 스쳐지나간 사람들에게도 인연이 존재할까 하는 그 물음 말입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지요?
저 사진에서 스쳐지나간 분들은 기본적으로 1천겁의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에 태어났으니까요.
그리고 마주 지나는 순간 옷자락을 스쳤다면 다시 1겁의 인연을 갖게 되겠지요.
그래서 최소 1천겁, 최대 11겁의 인연을 가진 분들입니다.
네 번 째 사진에서는 아무도 볼 수 없지만, 그들이 맺은 인연은 소멸되지 않고 영겁의 시간을 돌고 돌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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