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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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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루트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노인과 당나귀.

당나귀를 만난 건 넴루트산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2,150m의 산을 오르는 데는 버스도 허덕거리는 판이었다. 그런 길을 노인 하나가 당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올라가고 있었다. 노인의 체구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짐까지 가득 실었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몇몇 사진쟁이, 다른 이들의 눈총을 무릅쓰고 버스를 세운다. 차에서 후다닥 뛰어 내려가 셔터를 누르는데 노인이 자꾸 손짓을 하며 뭐라고 한다. 아마 저리 가란 뜻인 것 같다. 에이, 사진 좀 찍는다고 뭘 그렇게 소리까지 지르시고. 버스에 올라와서 저 노인이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으니, 가까이 가면 당나귀가 미쳐 날뛰는 수도 있으니 좀 떨어져서 찍으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투덜거렸네. 할아버지 죄송해요. 다시 바라보니 당나귀나 노인이나 유유자적이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별 수 있겠느냐는 달관적 포기가 얼굴에 그득하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넴루트산은 말라티아에서 차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는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시러강과 동행한다. 산은 황량하고 강바닥은 말라있다. 비가 많은 봄에는 물이 많지만 여름에는 곧잘 강바닥을 드러낸단다. 문제는 모래가 드러나면 건축업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퍼간단다. 이 동네도 모래라면 환장하는 인간들이 있었네 그려. 그래, 모래 퍼 먹고 잘들 살아라. 자연이 준 게 모두 공짜인 줄 알면 큰 코 다치느니. 함부로 퍼 쓰다가는 그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자연도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를 치유하려 애쓰지만, 정도가 넘으면 포기하는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건기라 강바닥이 말라있다.

 

강바닥은 말랐어도 주변엔 초지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낮게 자리 잡은 집들.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에 자주 시선을 빼앗긴다. 어디든 저렇게 생명이 태어나고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 차는 산악지대를 끝없이 달린다. 우리 대사관에서 보낸 문자가 생각난다. ‘접경 지역은 가지 마세요나는 지금 그 접경지역으로 자꾸 달려가고 있다. 이것도 반정부적 행동인가? 하지만 나는 그곳에 꼭 가야할 일이 있다. 차는 이제 본격적으로 넴루트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래를 봐도 꼬불 꼬불, 위를 봐도 꼬불 꼬불. 저 길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걸까. 이렇게 자꾸 올라가다가 느닷없이 하늘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가진 젊음과 도전하는 용기가 아름답다. 끊임없이 이어진 돌산은 잘 벼린 정()도 거부할 것 같다. 그만큼 단단해 보인다. 느닷없이 커다란 분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분지 안의 평원에서 뛰노는 소와 말들. 야생마는 아닐 텐데.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풍경은 경이와 행복감을 동시에 준다. 조금 더 올라가자 드디어 돌무덤이 자리 잡은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너진 석상들도 눈에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몸을 잔뜩 움츠리고 만다.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분다. 저 아래는 펄펄 끓는 여름인데 이곳은 아직도 늦겨울이다. 겉옷을 꺼내 입는다. 산정으로 올라가는 길,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이곳에 묻힌 안티오코스 왕이 나를 거부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기어이 그대를 만나고 가리라. 곧 이 거대한 고대 묘지의 동쪽 테라스에 도착한다. 계단에 주저앉아 한숨을 몰아쉰다.

 

넴루트 산을 오르는 길.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

이제 이곳이 대체 어디며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설명하고 가야하겠지? 이곳에는 신이 되고자 하는 싸가지 없는꿈을 품었던 한 인간이 묻힌 무덤이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안티오코스 1. 옛날 아주 옛날에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이렇게 시작해서 벌거벗은 임금님식의 우화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지금 얘기하는 건 분명히 실재했던 역사다. 옛날이야기 같은 역사. 아나톨리아 땅 카파도키아의 북쪽에 콤마네게라는 왕국이 있었다. 처음부터 왕국은 아니었고, 팔자 사나운 년 역마살 타고난 사내 따라다니듯, 이 나라 저 나라에 묻어가던 속국 쯤 됐었다. 히타이트의 변방으로도 살았고,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에 점령되기도 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 치하에도 있었고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셀레우코스 왕조가 임명한 콤마네게의 총독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사람이 나도 나라 하나 세워보자고 독립을 선언했다. BC 162년에 있었던 일이다. 여기에서부터 별로 길지 않았던 콤마네게 왕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안티오코스라는 이름을 가진 네 명의 왕과 미트리다테스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왕이 다스리다 사라진 나라다보니 역사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사실 이 나라는 넴루트산의 이 거대한 무덤이 아니라면 역사에 이름을 올릴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 왕국을 유명하게 한 사람이 바로 안티오코스 1세로 넴루트산 꼭대기에 무덤을 세운 주인공이다. 또 독립 왕국을 세운 프톨레마이오스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안티오코스 1세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면서 스스로를 신과 동격이라고 선언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분지에는소와 말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돌무덤.

여기서부터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이 왕국의 역사는 안티오코스 1세의 역사다. 그가 죽은 뒤 후손들이 살아간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에 종속변수로 존재할 뿐이다. 로마는 정권을 가진 자의 입맛에 따라 이 작은 나라를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 원정 전쟁에 불러내기도 하고 필요하면 왕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서기 59년에 벌어진 로마와 아르메니아의 전쟁 때에도 불려갔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서 안티오코스 4세는 아르메니아 일부를 얻었지만, 그 떡이 바로 쥐약이었다. 그는 페르시아와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고 로마에 의해 왕위를 박탈당했다. 서기 72년이었다. 그와 그의 가족은 모두 로마로 불려갔다. 이로서 콤마네게 왕국은 역사에서 그 이름을 완전히 지우고 로마의 일부가 되었다. 다시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 안티오코스 1세가 무덤을 만들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는 살아있을 때부터 자신의 왕릉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콤마네게 사람들은 신들은 하늘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에 신전을 만들었다. 안티오코스 1세도 자신의 왕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넴루트산의 꼭대기 바위에 자신이 사후에 들어갈 석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바위를 깨트려 만든 주먹만한 돌들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물론 비밀의 문도 만들었을 것이다. 봉분의 원래 높이는 60m였지만 조금씩 흘러내리고 또 석실을 찾으려는 후세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면서 50m로 낮아졌다. 지금도 돌들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덤에는 안티오코스 1세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미트리다테스 1세 등도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테라스의 석상 몸체들.

석상들의 머리가 따로 떨어져나와 있다.

이 능묘에서 챙겨봐야 할 것은 거대한 자갈 봉분이 아니라 석상들이다. 묘에는 동쪽과 서쪽, 북쪽 세 곳에 테라스를 만들었다. 테라스는 종교의식을 치르는 성스러운 장소, 히에로테시온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제단 뿐 아니라 신상들이 서있다. 동쪽 제단에는 아폴로, 제우스, 안티오코스(자신이 신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끼어있다), 헤라클레스, 독수리, 사자의 석상 등이 있다. 반대쪽인 서쪽에는 사자와 독수리, 안티오코스(또 꼈다), 아폴로, 제우스, 헤라클레스 등이 있다. 안티오코스 자신과 신들을 함께 조각함으로써 신과 동격이라는 것을 못 박은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신들 사이에 사자와 독수리는 웬일일까. 사자는 들짐승의 왕을 상징하고 독수리는 날짐승의 왕이라 하여 모두 왕권을 나타낸다. 또 독수리는 제우스신의 신조(神鳥)이기도 한데, 바로 인간과 신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신상들은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크다. 대부분 높이가 8m 정도인데 무게로 치면 60t이나 된다. 아무리 둘러봐도 근처에는 60t 정도의 돌이 없다. 그렇다면 제법 먼 곳에서 바위를 옮겨왔다는 것인데 2000m가 넘는 이 산꼭대기까지 어떻게? 모든 게 신기할 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신상들의 조각을 보면 대개 그리스 신과 페르시아 신들을 절충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대외적 환경이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 신상들의 얼굴은 그리스풍이지만 모습 자체는 헬레니즘의 유행과 맞아떨어진다. 모자, 의상, 신발, 헤어스타일은 페르시아풍이다. 각 신상의 뒷면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리스어 비문이 쓰여 있다.

 

북쪽 테라스에서 바라본 봉분.

북쪽 테라스에는 석판들의 잔해만 남았다.

문제는 이들 석상들의 모습이 온전치 못하다는데 있다. 대부분 머리가 굴러 떨어져 있다. 꼭 시간의 심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아나톨리아의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지진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스교도들이 일부러 밀어 떨어트렸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코 부분이 주로 파손 된 것을 놓고 이 말 저 말이 많다. 설마! 그냥 지어낸 말이겠지. 과정이 어떻든 간에 신이 되고자 했던 한 인간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계단에 앉아 거친 숨을 가라앉히니 거대한 무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왕권이 대단하긴 했구나. 이 높은 곳에 저런 구조물들을 세우다니. 지금의 터키, 그리스인들이 살았고 로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한 때는 알렉산도르스와 페르시아의 점령지였고 투르크가 차지한 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참 놀라운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과연 그 위대한 유산들이 인간의 힘으로 이뤄진 것일까.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역광 때문에 셔터 누르기가 두렵다. 정말 안 좋은 시간에 올라온 셈이다. 이곳은 일출과 일몰 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별러서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대개 새벽시간을 선택한다. 황홀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워낙 고지대이다 보니 한 여름에도 새벽에는 무척 춥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옷은 물론 담요를 챙겨서 와야 한다. 그런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 광경을 놓치고 말았다. 조금 속상하다. 일출을 제대로 보려면 보통 새벽 3시쯤에 출발해야 한다. 넴루트산은 여름 한철만 개방한다.

 

서쪽 테라스로 가는 길.

 

동쪽 테라스에 있는 사자상.

다른 사람들이 동쪽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슬그머니 북쪽으로 간다. 이곳에는 테라스는 없고 몇몇 석판들의 잔해만 남아 있다. 적막만 감도는 이곳이야말로 진짜 무덤 같다. 맨 꼭대기에서 돌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려온다. 아득한 옛날에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돌이 나를 반기듯 내려와 발치에 머문다. 이 돌과 나는 어떤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까. 이 돌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것일까. 하늘은 징그러울 정도로 파랗고 내 앞에 있는 돌의 침묵은 길어진다. 사실 이 거대한 돌무덤과 석상들은 오랜 세월 망각된 존재였다. 넴루트산 위에 거대한 구조물이 있다는 게 알려진 것은 1881년 독일인 칼 세스터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 그는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항구에서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달라고 고용한 사람이었다. 길을 찾던 그가 콤마게네 지역에서 아시리아 유적을 찾았다는 보고를 했다. 다음해에 터키 학자들이 이곳을 방문했고 1883년 넴루트산 정상에 있는 돌무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발굴은 그보다 훨씬 뒤인 1938년 미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특히 테레사 고엘이라는 여성 학자의 이 유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한 재를 무덤 인근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유언대로 그녀는 영원히 이 무덤 주변에 머물고 있다. 1986년부터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석실의 입구는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쪽 테라스.

 

이제 서쪽 테라스로 넘어간다. 이곳의 모습은 대체로 동쪽 테라스와 비슷하다. 다만 석상들이 동쪽보다 훨씬 심하게 파손됐다. 동쪽테라스의 석상들이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나란히 정리돼 있다면 이곳의 석상 머리들은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다. 이곳에는 콤마게네 왕조의 조상들을 새긴 석판이 잘 보존돼 있다. 나는 또 엉뚱한 상념에 빠진다. 이곳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묻혀 있을까. 신이 되고 싶었던, 지금 내 상식으로는 약간 머리에 이상이 있는, 왕 하나의 사후를 위해서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예라는 이름으로 노역에 시달리고 죽어갔을 사람들. 그 모습을 보고 들었을 산천은 그저 무심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눈 아래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평원을 가로지른 길 하나가 끝없이 달려가고 있다. 아드야만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평원을 벗어난 산들은 산악지대 특유의 삭막함을 보여주고 있다. 계곡들은 바짝 말라있다. 예전에는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 계곡마다 숲을 이루고 기름진 토양을 만들었다지. 무엇이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었을까. 기껏 해봐야 시간에 핑계를 미루는 수밖에. 서쪽 테라스를 벗어나 남쪽으로 간다.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봉분만 눈에 들어온다. 가늘게 풀어진 길 하나가 산 밑으로 더듬더듬 내려가고 있다. 올라온 쪽이 말라티야라면 내려가는 쪽은 아드야만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동생이브라힘의 고향이라는 곳. 길 끝에 건물 하나가 서 있다. 휴게소인가보다.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 안티오코스 1세.

석판에 새겨진 조각들.

눈을 들어보면 저 먼 곳에는 파란 물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물은 갇혀 있는 듯 움직임이 없다. 저게 뭐지? 훌리아를 불러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보이는 게 아타튀르크댐이고 왼쪽이 카라카야댐이란다. 카라카야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아타튀르크댐은 익숙하다.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한 나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댐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줄기에 댐을 세우고 메마른 대지에 물을 대서 옥토로 바꾸는, 터키 동남부개발프로젝트를 GAP라고 부른다. 그동안 낙후됐던 동남부 지역을 곡창 지대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 아래 1974년부터 시작됐다. 특히 돌과 흙으로 채워진 8400만m²의 아타튀르크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댐의 물은 수로와 운하를 통해 남쪽의 170만ha의 평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터키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농업, 교육, 관광 뿐 아니라 위생상태의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국제적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특히 시리아와 긴장관계의 이면에는 이 프로젝트가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그리스 강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경계선에 있다. 따라서 이 두 나라는 터키가 물을 독점하려고 한다.”면서 문제를 삼아왔다. 상류에서 거대한 댐을 막아버리면 수자원 사용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수도꼭지를 남의 나라에 맡기는 꼴이 된다. 하지만 터키는 그 정도 문제 제기로 물러날 기미는 없는 것 같다. 내 땅을 흐르는 강을 내가 좀 막아서 써보겠다는데 왜 시비야. 그러고 보면 또 딱히 할 말도 없다.

 

저 길을 따라 아드야만 쪽으로 간다.

저 멀리 아타튀르크댐이 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댐 건설로 이주해야하는 주민만 해도 15,000명이 넘는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을 떠나야한다. 우리 땅에서도 댐을 막을 때마다 일어나는 비극이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이주해야하는 대상이 쿠르드족이라는데 있다.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운동을 막기 위해 댐 건설을 추진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사정이야 어떻든 2000m가 넘는 산정에서 바라보는 평원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뱀의 등을 탄 듯, 구불구불 걸어 산 아래로 내려온다. 시간을 보니 630. 아쉽다. 일몰까지 1시간만 기다리면 되는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다. 물론 혼자 버틴다고 해결될 될 일은 아니다. ! 다음에 꼭 혼자 와서 일출, 일몰 실컷 보고 갈 테다. 터키에서는 이곳 넴루트산을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내가 봐도 그런 주장을 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대외 홍보물에도 안티오코스 왕의 머리나 독수리 상을 빼놓지 않는다. 이 높은 곳에 세워진 거대한 왕릉. 풀어내기 어려운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다 내려와서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본다.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 그의 무너진 꿈들이 자갈돌이 되어 자꾸 굴러 내려온다콤마네게 왕국의 흔적역시 모두 지워졌다. 수도였던 샴샤트의 위치를 표시하는 유적들은 아타튀르크댐에 모두 수장됐다. 지워진 왕국의  안티오코스 1, 그는 지금 물속에 잠긴 왕국과 거대한 무덤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각종 기념품을 파는 휴게소.

아래로 내려오니 위에서 짐작한대로 휴게소가 있다. 뒤뜰에는 당나귀가 매어져 있다. 당나귀를 타고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준비했겠지. 그렇게 편하고 싶으면 집에 그냥 있을 것이지. 여기서 좀 쉬고 샨르우르파로 떠나게 된다. 휴게소 기념품 가게에서 흥정이 벌어진다.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에 있었던 석상들이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그걸 살까말까 망설이길래 터키어라고는 두 마디밖에 못하는 내가 오지랖 넓게 흥정에 나선다. 주인이 35리라를 부른다. 무슨 소리야. 너무 비싸. 그리고 그냥 팔면 아저씨도 재미없잖아.

조금만 깎아줘요.”

안 돼

조금만. 22리라면 딱 좋겠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돈이면 본전도 안 되거든? 29리라까지는 생각해볼게.”

에이, 그럼 안 사. (돌아서는 척 하다)저 혹시25리라는 어떨까? 그래봐야 10리라 깎는 건데.”

결국 25리라에 합의를 본다. 그 과정 내내 웃음이 질펀하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은 없다. 거봐. 여행의 재미는 깎는 거라니까. 물건도 안 사는 주제에 큰 소리 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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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스 강가의 전망 좋은 자리.

유프라테스강으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황금 빛 밀밭이 바람의 속삭임에 연신 자지러지고 강가의 미루나무들이 실눈으로 훔쳐보며 키들거리고 있다. 그 미루나무 잎을 사랑하여 큐피드 화살을 연신 쏘아대고 있는 태양. 황홀한 저물녘이다. 드디어 차가 멈추고 깊고 느리게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어머니의 강 유프라테스. 석양 아래 가로 누운 강은 장엄하다. 역시 강가의 좋은 자리는 음식점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건 세계 공통인가? 사람들이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람은 없다. 황혼을 품은 유프라테스에서는 사람마저 풍경 속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송어 양념구이. 이 나라 사람들은 생선을 잘 안 먹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이 강에서 잡은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고 만다. 시원(始原)의 강 유프라테스가 살찌운 물고기 맛 좀 보고가나 했더니 그럴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한번 떠난 입맛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바람 부는 강가에 앉았으니 평소 같으면 돌구이가 나와도 허겁지겁 먹을 판인데 어떤 음식이든 거부반응부터 일어난다. 몸이 지쳐서 그런 것일까.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거참.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술을 안마시면 대체 어디서 마신다는 거야. 운치 같은 건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양반들 같으니라고. 포크를 들고 깨작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옆에 앉은 사람이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 이런 땐 어떻게 해야 되지? 그래, 억지로 좀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냐.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국위선양일 거야.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것 같다는 표정으로 송어구이를 구겨 넣는다. 속에서는 아우성이지만 국위선양의 길이 어디 그리 쉬우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식사를 즐긴다.

덕분에 더욱 무거워진 속을 달래며 어둠이 내리는 강가에 선다. 이곳에서 쇠유트라고 부르는 버드나무 가지들이 여위어 가는 강바람에 머리를 감는다. 사람이여, 사람들이여. 나른한 서글픔과 행복이 동시에 밀려온다. 깜빡거리는 작은 불빛들을 보며 대상도 없이 그립다라고 속삭여 본다. 그리워하는 건 여행자의 특권이려니.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에 가득 차는 저녁이다. 내가 이 강 앞에 설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던가. 그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강인 줄 알았다.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는 아라랏산까지 올라간다. 아라랏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당신은 공부 좀 한 사람이다. 바로 대홍수로 떠내려가던 노아의 방주가 멈췄다는 전설의 산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이란과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쯤에 있다. 높이가 무려 5137m. 그 아라랏산에서 발원해서 722km를 흘러 내려오는 무라트강과 에르주름 북동쪽에서 발원한 카라강이 만나서 유프라테스강이 된다. 무라트강과 카라강의 합수머리에서, 유프라테스강이 그 짝인 티그리스강을 만나는 이라크 바스라 항구까지는 총 2,289km나 된다. 유프라테스는 잘 갖다 준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잘 갖다 주는 것만큼 고마운 존재가 어디 있으랴. 당연히 문명 하나쯤은 탄생시킬 만한 이름이다. 그리스어로는 풍요롭다는 뜻을 가졌다니 금상첨화다. 이보다 동쪽에서 흘러내려와 만나게 되는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지역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들어온 메소포타미아다. 대단한 뜻은 없다. 그저 강 사이의 땅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집트, 인더스, 황하문명과 함께 인류 4대 문명이라 일컫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잉태한 위대한 땅이다. 현재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시리아의 북동부, 이란의 남서부가 포함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BC 5000년부터 인류가 정착했으며 우르와 우루크, 아카드와 바빌로니아 제국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들이 이곳에서 명멸했다. 이 글을 읽은 분은 오늘 인류 문명사까지 공부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강, 미루나무, 강 위를 나르는 새, 그리고 구름.

말라티아 시내로 돌아온 건 제법 이슥한 시간. 남들이 시내 구경을 간 사이에 훌리아에게 한국말 교육을 시킬 겸 잡담을 나눈다. 말이 잡답이지 내겐 터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시간이다. 어쩌다 보니 남자들 군대 가는 얘기부터 나온다. 사방에 적이 많은 터키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하는 모병제를 택하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건 복무기간이 뒤죽박죽이라는 것. 대학졸업자는 6개월만 복무하면 군대생활 끝이다. 그럼 고졸은? 무려 15개월을 복무해야한다. 대학 못 간 것도 서러운 데 이런 치사한 경우가. 그게 끝이 아니다. 부자들은 1000달러만 내면 한 달 훈련으로 군대생활 종친다. 한마디로 무전(無錢) 뺑뺑이, 유전(有錢) 집으로. 너도 나도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돈을 벌려고 할 것 같다. 훌리아가 다른 얘기를 꺼낸다.

터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숫자가 뭔지 아세요?”

글쎄, 413이겠지.”

!! 7이랍니다.”

? 그 좋은 숫자를 왜?”

그냥 안 좋아해요. 그래서요. 터키 사람들은 이혼을 해도 결혼한 지 7년은 넘어야 잘 산다고 믿어요. 그래서 꾹꾹 참고 있다가 7년 되는 해 잽싸게 이혼해요.”

거참, 별 일도 다 있다. 그나저나 잘 살겠다는 놈이 이혼은 왜 한담? 터키 여자들은 보통 23~24세에 결혼을 하고 아이는 보통 2명 정도 낳는다.

동쪽 지방은 아직도 7~8명에서 11~12명까지 낳아요. 그래서 공장도 없고 할 일이 없으니까 애기나 낳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해는 지고 강은 쓸쓸해진다.

저녁 식사로 나온 송어구이.

그냥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지역 간 경제력의 차이가 심각하다는 말이겠지. 그런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쿠르드족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디야르바르크 등에서는 일거리를 찾으러 이스탄불로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터키도 요즘엔 결혼 안 하는 여자 많아요. 터키 남자들 바람 많이 피거든요. 저도 5년 사귄 제 남자 친구가 바람 피워서 헤어졌어요.”

흐흐, 얘는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려, 자랑이다. 한국 남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도 덤으로 얘기한다.

한국 남자들 터키에 여행 왔다가 다른 여자 만나면 저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터키 남자들은 절대 안 밝혀요. 그런 때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 오면 배터리 떨어졌다고 하고 끊어요.”

훌리아야, 그건 오해야. 한국 남자도 배터리 떨어지는 사람 많단다. 어디 가나 남자들은 비슷하지 뭐. 옆에서 이젯이 귀를 쫑긋 세우고 얘기를 듣고 있길래 둘이 사귀어 보는 건 어떠냐고 슬그머니 중매쟁이를 자청했더니 먼저 훌리아가 팔팔 뛴다.

아무리 없어도 죽을 때까지 이젯하고는 안 살아요.”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젯이라고 그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턱이 있나.

저도 마찬가지예요. 훌리아! 너 왜 그래. 내가 너 쳐다본 적 한 번도 없잖아.”

이거 괜히 중매 한번 했다가 애들 싸움 시키겠네. 하지만 은근히 재밌는데? 내가 볼 땐 둘이 딱 어울리는데 뭘 그렇게 정색하니? 더구나 너희는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문 아니냐. 그만한 인연이 어디 있어.

 

 

석양 그리고 강가의 여인.

말라티아 시내에 뜬 달.

터키에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은 2곳이다. 지난해 만났던 규벤이라는 친구가 다녔던 수도 앙카라의 앙카라대학이 있고, 이젯과 훌리아가 다닌 카파도키아의 에르지에스(Erciyes)대학이 있다. 에르지에스 대학은 2003년에 한국어과를 개설했는데 훌리아가 이젯보다 1년 먼저 입학했다. 나이하고는 거꾸로 선후배가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밥 먹듯이 티격대격 거린다. 물론 주도권은 훌리아가 쥐고 있지만. 훌리아가 대학에 들어가던 사연이 재미있다.

입학해보니까 25명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5명 튀었어요.”

? 그 좋은 과에 들어가서 중도에 포기해?”

한국말이 힘드니까요. 그리고 취직에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이 나라 젊은이들도 취직에 목숨을 걸은 건 우리와 마찬가지다.

그러는 훌리아는 왜 취직 안 되는 과를 선택했어?”

그게.”

거기에 기구한 사연이 있다. 처음 대입시험을 치렀는데 점수가 영 아니더란다. 맞아. 네가 공부 잘하게 생긴 스타일은 아니야. 그래도 한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아서 재수를 했는데 역시 점수는 제자리였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가보자 싶어서 대학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선택 자체가 고역이었다. 왜냐하면 터키에서는 대학을 25개까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이곳저곳 무작정 넣을 수밖에. 훌리아가 가고 싶은 과는 영어과였다. 하지만 커트라인이 높았다. 가고 싶은 대학에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순서대로 선택한 뒤 10번째까지는 이 도시 저 도시에 분산해서 넣었다.

 

 

척박한 산에도 조금의 틈이 있으면 살구나무를 심는다.

 

레벤트 협곡.

그러다가 15번째 선택한 게 한국어, 16번째가 일본어. 어차피 거기까지 갈 일은 없겠지 싶어 별 생각 없이 20번째까지 아시아 국가들을 선택했다. 20~24번째는 비워두느니 아랍국가를 지원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데도 아랍은 가기 싫어하는 모양이다.

전 최소한 이탈리아, 프랑스어과는 될 줄 알았거든요. 한 달 뒤에 인터넷에 들어 가보니 한국어문학과 합격을 축하합니다이 문구 딱 하나만 있는 거예요. 한국어과를 썼는지조차 몰랐거든요.”

한심하고 당혹스럽더란다. 집에 갔더니 아빠와 엄마가 행복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더라지. ‘진실을 말했더니 , 정신 차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하는 반응부터 나오더란다. 한국어가 뭐 어때서. 기분 안 좋은데? 그녀의 아빠는 딸이 영어선생 되는 게 소망이었단다. 그러니 한국어과는 정신 차려야 할 대상밖에 안 된 것이겠지. 그래도 어쩌나. 3수는 정말 하기 싫고. 입학을 반대하는 아빠와 싸우고 가출한 뒤 할머니 집에서 2주일을 살고 나서야 OK가 떨어졌단다. 이제 이젯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설마 이 친구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과를 택했겠지? 하지만 혹시는 역시로 끝난다. 재수 끝에 24번째로 선택한 과가 한국어과였단다. 어휴! 난 왜 이렇게 공부 못하는 애들하고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이 친구들의 한국 사랑은 각별하다. 한국에서 터키의 한국어과에 지원해주는 제도 같은 게 있으면 훨씬 활성화 될 것이라고 애정 어린 충고도 한다. 입학특전 같은 것을 좀 더 확대해도 좋고. 터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레벤트 협곡의 바위들. 자세히 보면 수많은 굴이 뚫려있다.

 

어느 노인이 내게 줬던 kenger이라는 풀. 감기, 냉방병에 직효란다.

대학 졸업생들은 한국기업에 취업하는 걸 선호한단다. 지금은 현대, 포스코, 금호, 효성 등이 진출해있다. 또 터키 사람들은 한국 전자제품을 무척 좋아한다. 믿을 수 있어서 좋다나. 기업 하는 분들이여, 제발 실망시키지 말기를. 훌리아의 이야기는 거미줄 뽑아내듯 술술 풀어진다. 참 명랑 유쾌한 처녀다. 터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순위는 1위가 군인, 2위가 경찰, 3위가 공무원이란다. 여자들은 교사를 가장 선호하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오후에는 살림이나 육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야기를 하라면 밤새라도 하겠지만 시간도 늦었고 해서 아쉽게 헤어진다.

 

 

산상화원.

184m 절벽에 세우고 있는 공중 테라스.

아크챠다흐는 레벤트 협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동네다. 버스는 평원 지대를 씽씽 달린다. 역시 살구밭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돌산이라도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개간해서 살구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지대가 높고 물이 귀하기 때문에 성장이 무척 늦다고 한다. 헐떡거리며 산정을 향해 오르던 차는 어느 순간 너른 언덕바지에 멈춰 선다. 차에서 내려 보니 고원지대 특유의 작은 꽃들이 바람을 피해 엎드려 있다. 모든 생명은 자연이 야박하게 굴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법. 그렇게 낮은 자세로도 온갖 색깔의 꽃들을 피워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잘못하다가는 날아갈 것 같아 허리를 잔뜩 구부린다. 조금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레벤트 협곡을 조망할 수 있는 공터가 나타난다. ~!! 다들 입을 다물 줄 모른다. 1400m의 고원지대에서 바라보는 골짜기는 갖가지 예술작품의 경연장처럼 화려하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광활한 땅에 카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를 심어놓은 듯한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협곡은 6500만 년 전까지 바다였다고 한다. 물이 빠지고 난 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래서 요즘도 물고기 화석이 발견된다. 28km 계곡에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128곳이나 된다. 헌데 신기한 일이다. 자세히 보면 마치 쌀밥에 박힌 강낭콩처럼 곳곳에 집들이 박혀 있다. 어떻게 이런 척박한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지? 하지만 이 협곡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을 품어왔다. 무려 9500년 전에 동굴살이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여러 문명이 이 땅을 거쳐 갔다. 히타이트, 로마,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자연과 시간이 만든 기기묘묘한 바위들.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무덤.

이곳에서는 주로 밀과 살구농사 등을 짓는데 옛날에는 벼농사도 지었다. 석회질 땅이라 척박한 것은 물론 물도 없었지만 눈 녹은 물을 받아 벼를 심었다. 인간의 끝없는 의지에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협곡은 무척 중요한 도로도 품고 있다. 일종의 교역통상로인데 말라티아에서 페르시아로 넘어가는 상품은 이 길을 거쳐서 갔다. 물건이 있으면 군침을 흘리는 사람도 있는 법. 전에는 동굴에 거주하는 산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산중왕이다. 가진 것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만화 같은 상황을 상상하며 혼자 웃는다. 지금도 동굴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세 가족이나. 이거 그냥 갈 수 없겠는데? 동행한 말라티아주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한다. 만약 성사가 안 되면 협곡으로 뛰어내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말라티아주에서는 이곳을 자연스포츠의 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무덤으로 가는 코스’(48km)강 따라 가는 코스’(28km) 등 트래킹 코스들을 만들었고 곧 25m짜리 번지점프대도 설치한다. 지금은 184m의 절벽에 공중테라스를 설치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폐교를 펜션으로 꾸며놓았다. 좋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으니 최대한 활용해야겠지. 하지만 너무 많은 삽질은 하지 마시길.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에만 인간의 욕심을 틈입시키도록. 이만큼 소망했으면 알아서 하겠지. 하긴 내 나라 강산도 못 지키는 주제에 오지랖 넓은 짓이다.

 

바위 무덤의 내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바위 꼭대기에 있는 숱한 동굴무덤들.

차를 타는데 저만치서 노인 한 분이 손짓하며 부른다. 차는 떠나려고 하고. 그래도 어른이 부르시는데. 뛰어가 봤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풀을 하나 뽑아든다. 엉겅퀴처럼 생겼는데 가시는 훨씬 더 날카로워 보인다. Kenger이라는 이름의 풀이란다. 꺾어서 하루정도 놔두면 수액이 나오는데 껌의 원료로 쓴다고 한다. 약재로도 쓰는데, 레몬과 설탕을 넣고 끓여서 먹으면 냉방병이나 감기에 즉효라나. 혹시 소화에는 도움이 안 되려나? 유프라테스강에서 국위선양을 한다면서 저녁을 억지로 먹은 뒤 속이 영 좋지 않다. 단단히 얹힌 모양이다. 아침을 건너뛰었는데도 마치 뱃속에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은 듯 단단하고 무겁다. 내겐 전혀 소용없는 풀이지만 노인의 성의가 고마워서 얼른 받아들고 차에 오른다. 고지대에서 자라서일까. 손을 콕콕 찌르는 가시.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이리 강한 가시를 지녔을까. 협곡 아래로 내려가 탐험을 계속한다. 28km의 계곡은 차를 타고서도 한참 걸린다. 가는 도중에 곳곳에 숨어있던 깜짝 놀랄만한 풍경들을 만난다. 여행자들을 위한 샘도 있다. 비바람과 시간이 빚은 기기묘묘한 바위들. 카파도키아에 있는 요정의 굴뚝은 높이가 5~10m에 불과하지만 이곳엔 40m~210m의 거대한 바위들도 있단다. 산위에는 로마시대 석관무덤도 있다. 큰 바위를 파서 시신을 안치했던 곳들이다. 로마시대 귀족들의 공동묘지였던 듯 주변엔 이런 석관무덤이 110개나 있다. 기독교가 생기기 전인 파가니즘(paganism, 무종교주의) 시대, BC3000~4000년경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무덤 앞에 서니 수천 년의 시간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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