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용마름 새끼줄'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5.02 [사라져가는 것들 6] 초가집2
2007. 5. 2. 19:08 사라져가는 것들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당가의 붉은 대추만큼이나 물씬 익은 가을이, 하늘 가득 그림을 그렸다. 말·기린·코끼리·원숭이… 아이가 든 주전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 화살처럼 빠른 빛을 되 쏜다. 아이의 발길은 날기라도 할 듯 가볍다. 하지만 주전자 속에 든 막걸리가 새어나오기라도 할세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아이의 집에서 지붕을 올리는 날이다. 아버지는 추수가 끝나면서부터 마당 한켠에 쌓아둔 짚단 옆에서 이엉을 엮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 시작했다. 그렇게 엮은 이엉둥치들이 마당을 그득하게 메울 무렵, 동네아저씨들이 이른 아침부터 아이 집에 모여들었다. 농투사니(농투성이)라면 이엉쯤 혼자 엮는 건 일도 아니지만, 지붕을 올리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는 지붕 올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붕을 올리는 날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부침개 몇 쪽은 부치게 마련이다.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토요일이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막걸리 심부름부터 한 참이었다. 아버지와 동네아저씨들은 어느새 이엉을 다 얹고 용마름 덮는 작업을 한다. 용마름은 이엉이 맞닿는 마루를 덮는 것으로서 초가를 이는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짚을 틀어서 터진 갓처럼 만들어 올린다. 아저씨들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손발이 척척 맞는다. 용마름을 다 덮으면, 이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고삿을 맨다. 다 올린 지붕이 보름달처럼 밝게 빛난다. 집이 새로 지은 듯 훤하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집 주변을 뺑뺑 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백성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던 초가집은 1970년대 '새마을노래' 2절과 함께 우르르 사라졌다. 그래서 농촌도 둥그런 초가집 대신 울긋불긋한 함석집이 주인노릇을 하게 되었다. 편리하기야 매년 바꿔줘야 하는 초가집이 반영구적인 함석집을 따를 수 있으랴.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찌 편리함으로만 재단될 수 있을까. 초가집은 잘난 체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둥그런 앞산·뒷산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산이 지붕이고 지붕이 산이 되어 서로 얼싸안고 내닫던 우리네 고향풍경. 초가나 산이나, 고난 속에서도 둥글둥글한 심성을 잃지 않았던 이 나라 백성을 닮았다. 초가집은 배타적이지 않았다. 모든 걸 품어 안을 줄 알았다. 초가지붕 속에는 참새가 둥지를 틀었으며, 어느 집은 업이라 불리는 구렁이가 상주하기도 했다. 몇 년씩 묵은 지붕은 굼벵이들의 삶터가 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용성으로 따져도 뛰어난 점이 많았다. 속이 비어 있는 볏짚은 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햇볕의 뜨거움을 덜어주고 겨울에는 집 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 그리고 볏짚은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내리므로 두껍게 덮지 않아도 비가 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초가집은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어머니의 흰머리 같은 존재였다. 때론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과도 같아서, 도시에 있어도 가슴속에서 항상 펄럭대던, 그래서 뜨겁게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고향으로 가는 길, 언덕에 올라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초가지붕을 보노라면 가슴이 울컥 뜨거워졌던 기억이 어찌 몇 사람만의 소유일까.

강제적 지붕개량사업이 아니었더라도 지금까지 초가집이 남아있을 리는 없다. 해마다 갈아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그러잖아도 일손이 없는 농촌에서 초가집을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운 건 그리운 것이다. 초가지붕의 그 따뜻한 발색. 부드러운 곡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