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와우아파트'에 해당되는 글 1

  1. 2007.11.28 [사라져가는 것들 36] 시민아파트8
2007. 11. 28. 16:33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0년 4월8일 아침, 어처구니없고도 충격적인 뉴스가 전국에 타전됐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산2번지의 와우시민아파트 15동 콘크리트 5층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새벽잠이 깨기도 전인 오전 6시20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고로 주민 70여명 중 33명이 압사를 당했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아파트라는 말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 낯설던 시절, 날림공사가 낳은 참사였다. 69년 12월 준공돼 4개월만에 무너진 와우아파트는, 받침기둥이 건물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게 시공됐다고 한다. 산비탈에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린 데다 기둥에 철근을 턱없이 적게 쓴 것이다. 사고가 나기 한달 전부터 주민들이 '골조기둥이 가라앉고 벽에 금이 가고 있다.'고 신고했다는데 강심장을 자랑하는 공무원들이 개 짖는 소리쯤으로 들었던 것 같다. 와우시민아파트 15동은 69년 서울시가 37개 지구에 건립한 406동의 아파트 가운데 하나였다. 서울시는 당시 와우산 일대를 아파트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총 24개의 시민아파트를 세웠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불도저'라는 별명을 이마에 달고 다니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물러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들 가슴에는 큰 구멍 하나가 뚫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뒤 얼마 안 돼 완공한 아파트가 회현시범아파트였다. 남산시민아파트라고도 부르고 회현제2시민아파트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시범아파트라는 이름은 와우아파트 붕괴에 놀란 당시 서울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이 "이 아파트만큼은‘시범’삼아 튼튼하게 지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 덕분인지 이 아파트는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70년을 전후해서 우후죽순으로 솟아났던 시민아파트들은 모두 철거되고 남은 것은 회현시범아파트 1동뿐이다. 최초의 중앙난방과 세대별 수세식화장실을 자랑하던 최첨단(?)아파트. 이 아파트는 원래 남산 일대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원칙대로만 되던가. 중앙난방과 수세식 화장실 덕분에 서울 시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돈 내는 순서대로 입주권이 주어졌는데, 돈 푼 깨나 쥔 사람들이 몰려와서 서로 먼저 내겠다고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결국 판자촌 출신의 입주민은 30%도 못 미쳤다. 때문에 전기요금도 못 내 촛불을 켜고 사는 철거민들과 고위관료·연예인·방송계 인사들이 섞여 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80년대 이후 이곳 저곳에 고급 신식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시범아파트는 드디어 서민들의 차지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범아파트를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4호선 회현역 3번 출구로 나와 동사무소를 끼고… 대충 들은 풍월대로 가파른 골목을 오른다. 골목 속에 갇혀 방향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숨이 턱이 찰 만큼 언덕길을 올라서야 한 동 짜리 아파트와 조우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쓸쓸함 속에서, 아파트는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 코끼리처럼 숨이 가빠 보인다. 인터뷰 계획도 없고, 주민들에 폐를 끼치는 걸 피하기 위해 날이 밝기 전에 도착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만 아파트는 벌써 두세두세 깨어나고 있다. 일가족인 듯 싶은 노부부와 젊은 아들이 일찌감치 외출을 하는지 아파트에서 나온다. 신고라도 하듯 가볍게 목례를 해보지만, 외부사람에게 경계도 관심이 없다는 듯 갈 길을 간다. 하긴 마지막 시민아파트라는 이름 때문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귀찮을 정도로 많이 찾는다고 하니 무심해질 만도 하다. 마지막 시민아파트… 마지막이란 말이 미쳐 넘기지 못한 고기가시처럼 자꾸 목안을 맴돈다. 우선 육교(?)위로 올라간다. 시범아파트의 가장 특이한 점이 바로 6층과 지상이 연결되는 이 육교다. 육교는 완전히 떨어진 두 공간(지상의 언덕과 아파트)을 하나로 이어준다. 그래서 10층 짜리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데도 별 불편을 모른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헐어버린 짐승의 주둥이처럼 낡은 아파트 입구에서 노인들이 하나 둘 나온다. 부지런히 걸어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육교 위에서 몸을 풀기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다. 안노인 한 분은 추운 날씨인데도 의자를 내어다놓고 마냥 앉아있다. 역시 카메라를 든 외부사람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하늘바라기만 한다. 맨 아래 빈 공간에는 수많은 화분과 장독들이 나와있다. 장독들은 붉은 '고무다라'를 머리에 쓰고 있다. 얼마나 많은지 계단까지 점령했다. 이 아파트가 사라지고 나면 아파트라는 이름의 공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일 것이란 생각에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허락도 받지 않고 살짝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 본다. 계단은 닳고닳아 세월을 노래하고 복도는 불빛 아래서도 침침하다. 어두컴컴한 복도 끝,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복도 천장에는 배관들이 포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육신으로 매달려 있다. 낡은 존재들이 품어내는 특유의 기운이 전신을 감싼다. 나 역시 낡아 가는 것이기 때문일까.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포근함으로 아득하다. 수십 년의 온기가 벽면마다 배어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가난해야만 나눌 정이 넘쳐흐르는 법. 주민들은 비 오는 날이면 모여서 김치전이라도 부쳤을 테고, 벚꽃 흐드러지게 핀 날이면 돗자리 깔고 막걸리라도 나눴으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 지상(?)으로 나와 아파트 뒤쪽으로 내려간다. 남산타워가 눈앞에 우뚝 다가선다. 미처 잎새를 다 떨구지 못한 나무들이 지나가는 계절과 작별인사를 하고 새 계절을 맞느라 분주하다. 뒤쪽은 더 쓸쓸하다. 놀이터가 있지만 놀 아이들이 사라진지 오래인 모양이다. 시든 풀밭 위에 그네 기둥이 늑골을 드러낸 채 녹슬어가고 있다. 아파트도 사람도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되짚어 올라오다 보니 큼직한 부동산 간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이 '헐릴 아파트'임을 강변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철거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서울시와 주민 사이의 이견으로 자꾸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상당수의 가구는 이미 떠났다는데 나머지 주민들과의 협상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하긴 3자에게, 마지막 시민아파트의 사라지는 시점이 그리 중요할 이유는 없다. 한 두 해 더 걸린다고 해서 남산자락에 영구히 남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시민아파트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하여, 가고 오는 것의 순서가 뒤바뀔 턱이 없다. 하지만, 건물 하나 스러진다고 모든 것이 스러지기야 하랴. 저 곳 사람들의 삶은 또 어디선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은 여전히 눈물겹다. 따뜻한 피를 가진 사람들이 숨쉬는 공간, 내 유년기의 어머니 품처럼 포근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