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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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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8.10 [사라져가는 것들 119] 옹달샘11
2009. 8. 10. 09:20 사라져가는 것들

‘괴산(槐山)은 충청북도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군청소재지다.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이 대치하던 시기에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날만 새면 드잡이하는 전장이기도 했다.’ 괴산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의 전부가 이 두 줄이었다. 그런 괴산을 느닷없이 찾게 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풀 한 포기에도 애정을 쏟지 못해 안달이 난 어느 선배 덕이었다. 그는 최고의 ‘문화탐사가’이기도 하다.
“괴산에 가면 말일세. 기가 막힌 샘이 하나 있다네. 말로 설명하긴 그렇고… 언제 나하고 한번 가보세.”
기가 막힌 샘이라…. 샘이라봐야 물이 솟아서 고이는 곳이겠지, 어찌 생겼으면 기가 막힌다는 표현이 가능할까. 궁금증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 선배가 ‘틈’을 내기도 전에 혼자 괴산행을 감행했다. 같이 못 가는 걸 영 아쉬워하던 선배가 샘의 위치를 가르쳐주면서 미선나무 군락지도 찾아가보라고 당부했다. 꽃피는 시절이 아니니 별로 볼 건 없을 거라는 첨언과 함께…. 미선(尾扇)나무는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한반도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충북 괴산과 전북 부안 등에만 분포돼 있다. 귀한 나무라니 보지 말라고 해도 찾아봐야할 참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충북 괴산군 장연면추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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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까지는 별 무리 없이 도착했지만, 아무리 잘 난 내비게이션이라고 해도 미선나무가 어디서 자라는 지까지 가르쳐줄 수는 없는 법. 워낙 일찍 도착한데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바람에 동네를 한 바퀴 돌 때까지도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난감해져서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서 젊은이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동네 사람인지 아니면 근처에 일 때문에 온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세주라도 만난 양 반갑게 달려가서 길을 물었다.
“미선나무요? 저~쪽 아닙니까. 저 길로 오셨을 테니 다시 돌아가서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하세요. 목책을 쳐놨으니 바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 청년이 선선하게 길을 가르쳐줬다. 그러던 참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청년이 말을 자르고 나섰다.
“아니야, 이 분이 찾는 곳은 거기가 아니라 약수터 미선나무일 거야. 여기서 나가서요. 오시던 길로 계속 가면 고개가 하나 나타나고, 그 고개를 넘으면 약수터가 나오거든요. 거기에도 미선나무가 있습니다.”
가만? 듣다보니 약수터란 곳이 선배가 가르쳐 준 그 ‘기가 막힌’ 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두 곳 모두 가보지요 뭐. 저야 다 보면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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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미선나무 군락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미선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한 적이 없는 터라 아예 목책을 목표로 가다 보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헌데 문제는 미선나무를 촬영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3월에 핀다는 꽃을 7월에 구경할 방도야 애당초 없는 것이고, 열매가 열렸는지는 목책을 넘어 들어갈 수 없으니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언덕 위의 미선나무 군락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중에 시선을 잡아당긴 것이 옹달샘이었다. 언덕 밑에 샘 하나가 수줍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동네와 꽤 떨어진 곳에 있으니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우물은 아닐 테고, 분명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옹달샘이 틀림없었다. 산기슭에서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걸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 둘 돌을 쌓고 지붕까지 만들어 보호하기 시작했으리라. 그런데 샘은 더 이상 샘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입구에는 모터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모터에 주둥이를 댄 파이프 하나가 샘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샘 바닥은 거의 말라 있었다. 샘이 마른 뒤 파이프를 박은 건지 파이프를 박아서 샘이 마른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산 거북이 등처럼 세월이 새겨져있는 옹달샘에 파이프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파이프를 박아 물이 나올 정도면 수원이 끊긴 샘은 아닐 텐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안내판 하나를 발견했다. ‘추점유샘’이라는 고색창연한 이름까지 있는 오래된 샘이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심한 가뭄이 들어도 맑고 깨끗한 물이 언제나 솟아 오른다하여 이곳 샘을 ‘류(流)샘’이라 불러왔으며… 마을 사람들이 옻이 오르거나 두드러기가 났을 때에는 이 샘의 차가운 물로 씻어 효험을 보았다하여 ‘옻샘’이라 부르기도…‘
심한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샘이 어찌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 줄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 되었을까. 심지어 안내판 한편에는 ‘먹는데 부적합’하다는 경고문까지 있었다. 두드러기도 낫게 해줬다는 샘이 어느 날 저 홀로 독을 품어 못 먹게 됐을 리는 없고, 이 역시 인간들의 횡포가 만들어놓은 결과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 흔하던 옹달샘들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옛날에는 어지간한 산기슭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길을 지나던 나그네에게, 목마른 나무꾼에게, 밭을 매던 아낙네에게 시원한 물을 주던 그 옹달샘들. 저 홀로 물이 퐁퐁 솟아오르던 곳에 사람들이 지나며 돌도 둘러놓고 주변도 치우고 해서 쉼터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도시에 가까운 곳에 있는 샘은 약수터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은 세월과 흙에 쓸려 그 흔적을 지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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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넘으면 ‘약수터’가 또 하나 있다하니 부지런히 찾아갈 수밖에. 선배가 이야기한 옹달샘과 같은 곳이라면 추점유샘을 보며 불편해졌던 마음을 씻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발길을 재촉했다. 샘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선배가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니 유명하긴 한 모양이었다.주변에 차가 여러 대 서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아예 판을 벌이고 음식을 해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입간판이 서 있고 ‘솔티찬샘물(옹달샘)‘이라는 샘 이름과 함께 유래를 써놓았다.
‘솔티마을 앞을 지나던 한 나병환자가 찬 샘물을 마신 후 보리가리 아래서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신기하게도 나병이 깨끗이 치유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솔티재를 오가는 나그네들이 즐겨 찾아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나병환자를 낫게 했다니 보통 샘은 아닌 모양이다. 샘 쪽으로 내려가 보니 역시 돌로 지붕을 만들어놓은 조그만 샘이 있었다. 돌 틈에서 물이 용솟음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샘의 규모에 비해 수량이 만만치 않았다. 샘이 이고 지고 살아왔을 긴 세월을 주변의 돌과 파란 이끼들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샘 주변에 난 풀들이었다. 견문이 부족해서겠지만,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풀들이 물이 솟아오르는 바위주변을 파랗게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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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셔봤다. 시원한 느낌이 입과 목을 통해서 흘러내려가더니 내장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었다. 매일 마시는 ‘정수된’ 강물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 이 맛 때문에 사람들이 좋은 물을 찾아다니는구나. 수십 년 전, 아니 수백 년 전 이 곳을 지나갔을 나그네의 심정이 되어 물맛을 음미해봤다. 지친 몸을 이끌고 길을 가다 산기슭에서 퐁퐁 솟는 옹달샘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으랴. 잠시 뒤 멀지 않은 곳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중년남자가 큰 물통을 들고 내려왔다. 자리를 비켜주며 눈인사를 하니 말을 건넸다.
“물맛 좋지요? 여기 물이 얼마나 좋은지 장 담그는 계절만 되면 저만치까지 줄을 섭니다. 각지에서 뜨러 오니까요.”
절로 고개가 끄떡거려졌다. 그러다보니 조금 전에 봤던 추점유샘이 다시 생각났다. 한 때 같이 사랑을 받았던 옹달샘들일 텐데 어떤 곳은 가슴에 파이프롤 박아 그 의미를 잃고 어떤 곳은 사람들이 줄로 서서 물을 뜨고 있다. 무엇이 그 운명을 바꾼 것일까. 결국 사람들의 변덕과 무관심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주변에 널려있는 비닐봉지를 걷어내며 이 샘이라도 잘 보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슴에 안았다. 옹달샘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지는 모르지만, 그 역시 선인들이 살아온 자취이다. 무엇인들 함부로 버릴 게 있을까.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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